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독서습관414_숲과 바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글_완벽한 날들_메리 올리버_2004_마음산책(210717)

by bandiburi 2021. 7. 17.

오랜만에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시와 산문 모음집인 메리 올리버의 <완벽한 날들>을 읽었다. 등장하는 배경과 주인공이 되는 사물, 그리고 관련된 언어의 나열이 독자의 마음을 책 속으로 초청한다.

 

연일 뉴스에 나오는 소식은 지구환경에 대한 경고,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중심으로 한 경제 우려, 코로나 4차 대유행에 대한 것, 그리고 2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되는 대권주자들의 행보에 관한 것들이다. 마음의 평안을 앗아가는 이런 건조한 소식들에 압도된 삶에서 잠시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시인과 거닐게 만드는 책이다. 

 

하지만 새벽은 - 새벽은 선물이다. 하루의 문이 열리는 이 시간에는 열정이나 무관심으로 신의 많은 걸 드러내게 된다. 새벽을 사랑하고 새벽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은, 나에게 낯선 존재일 수가 없다. (46페이지)

 

'새벽은 선물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새벽의 조용한 시간을 좋아한다. 5시경에 눈을 뜨면 세상이 조용하다. 특히 주말의 새벽시간은 신이 우리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 맞다. 예전에 <새벽 나라에 사는 거인>이란 책을 읽었다. 그 이후로 의도적으로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다. 

많은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집을 짓지만 그건 대개 사회적 행위로 그곳에서 영역과 사회에 관련된 놀이를 한다. 나의 경우에는 혼자 있는 게 중요했다. 고독은 잎과 빛, 새소리, 꽃, 흐르는 물의 세계에 솔직하고 기쁘게 감응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었다. (47)

 

과거에는 남자아이들은 들과 산에서, 여자 아이들은 길 위나 모퉁이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놀이를 했다. 지금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학교와 학원에서 미리 짜인 틀에 맞춰 지낸다. 지식적인 면에서 도움이 될진 몰라도 아이들에게 놀이의 선택권을 가졌던 과거가 사회적 행위를 배우는 데는 더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나비에서 거듭거듭 초월이라는 관념을 본다. 숲에서는 무기력함이 아닌 야심을 본다. 영원히 떠나고 영원히 돌아오는 물에서는 불멸을 체험한다. (50)

 

시인의 상상력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나비를 통해 초월을 생각하고, 숲에서 야심을 보고, 물을 통해 불멸을 체험한다. 직관적으로 독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거꾸로 이런 문장을 창조해내는 것은 어렵다. 특히 숲과 야심은 숲에서 날것이 느껴지고 길들여진 것이 아닌 야생의 냄새가 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바람의 신(출처: https://publicdomainvectors.org/)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는 자신의 동굴에 바람들을 가두어뒀다가 기분 내킬 때마다 세상으로 날려 보내서 하나의 세상이 아닌 수천 개, 수백만 개의 세상을 만든다! (60)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시간이 사라진 듯했다. 긴급함도 사라졌다. 나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 간의 중요한 차이도 다 사라졌다.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 속해 있음을 알았고 전체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 편안했다. (62)

 

이 부분은 행복의 느낌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 특히 바다에 둥둥 떠있는 느낌은 어떤 걸까 살짝 상상해보게 된다. 시간이 멈추고 마음의 조바심도 사라진 상태, 몰입의 상태가 아닐까. 일이든 놀이든 몰입해서 하게 되면 그 자체가 행복감을 준다. 

728x90

<달력이 여름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나는 학교에서 나온다 재빨리
그리고 정원들을 지나 숲으로 간다.
그리고 그동안 배운 걸 잊는 데 여름을 다 보낸다.

2 곱하기 2, 근면 등등, 
겸손하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법, 
성공하는 법 등등, 
기계와 기름과 플라스틱과 돈 등등.

가을쯤 되면 어느 정도 회복되지만, 다시 불려 간다. 
분필 가루 날리는 교실과 책상으로, 
거기 앉아서 추억한다. 

강물이 조약돌을 굴리던 광경을,
야생 굴뚝새들이 통장에 돈 한 푼 없으면서도 
노래하던 소리를,
꽃들이 빛으로만 된 옷을 입고 있던 모습을. 

랠프 왈도 에머슨(출처: https://www.flickr.com/)

랠프 왈도 에머슨은 1803년에 태어났고, 그의 아버지 윌리엄 에머슨은 1811년에 세상을 떠났다. 에머슨의 가족은 가난했지만 신앙심이 두텁고 지적 야망이 있었다. 하지만 죽음의 빠르거나 느린 번개가 너무도 자주 그 가족을 덮쳤다. 누이 둘과 형제 하나가 어려서 죽고 세 형제 윌리엄, 에드워드, 찰스는 성년 초기까지밖에 살지 못했다. 천수를 누린 형제는 로버트 하나뿐이었는데 어린애 같은 정신의 소유자였다. (76)

 

문학의 최고 효용은 제한적인 절대성이 아니라 아낌없는 가능성을 지향한다. 문학은 답을 주기보다는 의견, 열띤 설득, 논리, 독자가 자신과의 싸움이나 자신의 곤경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것이 에머슨의 핵심이다. 그는 곧장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제의 모든 면에서 어슬렁거린다. 친절한 몸짓으로 제안을 하고,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면 우리 눈으로 직접 보라고 말한다. 그가 완강히 주장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우리 스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78)

 

에머슨이 한 잠언이 다른 책에서 많이 인용되는 것을 봤는데 에머슨의 성장과정에서 가족의 죽음이 여러 번 있었고, 보살핌이 필요한 형제를 돌보며 그의 문학적 토양이 비옥해졌을 것 같다. 쉬운 환경은 아니다. 에머슨의 글쓰기의 핵심이 직접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 스스로 곤경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하니 그의 책도 읽어봐야겠다. 

 

품위를 잃은 글은 중요성을 잃는다. 더욱이 영감을 주면서도 절도를 지키는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에머슨의 요령은 글의 소재는 '사물들'이면서도, 주제는 개념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희미한 빛에 지나지 않지만 예리한 직관의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82)

 

우리는 육체에 내려온 정신이라는 걸 에머슨은 확신했다. 우리 각자가 지극히 중요하고 '무한한' 존재라는 것도 확신했다. (84)

 

이런 영광되지도, 그렇다고 굴욕스러울 것도 없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호손은 <낡은 목사관의 이끼>에 담을 단편들을 모을 때 느긋하게 작품을 고르거나 무작정 기다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는 1845년에 출간 제의를 받고 책을 내기로 했다. 그는 낡은 목사관의 집필실에서 많은 작품들을 써냈고 <낡은 목사관의 이끼>에 담긴 단편 대부분이 그 시기(1842년 여름부터 1845년 가을까지)에 탄생했다. (91)

Nathaniel Hawthorne(출처: https://www.flickr.com/)

호손은 악과 그 부하들이라고 할 수 있는 무기력, 의심, 절망, 지독한 야심 등 양심이 성취한 것을 파괴하는 모든 형태의 인간적 나약함과 허영에 관한 최고의 상상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주요 주제는 악의 다양한 얼굴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호손은 세일럼의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92)

 

호손이 자신의 사려 깊고, 쾌활하고, 편안한 삶의 모습을 보여준 작품은 <낡은 목사관의 이끼>뿐이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이 작품에서만 우리는 악의 실체를 파헤치는 이야기와 더불어 위트와 환한 햇살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의 리듬은 갖지 못한 호손이 철저히 시인의 기교로 써낸 이야기들. (99~100)

 

우리가 상상력을 통해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건 바로 표현력이니까. 그리고 그건 분명 모든 훌륭한 책들의 특별한 능력이다. 오래도록 퇴색되지 않게 채색된 장면과 순간들이 다시금 먼 풍경들의 기쁨과 고통을 전한다. (101~102)

마녀사냥(출처: https://www.flickr.com/)

17세기라는 이례적이고 야만적인 시대에(정확히 1690년) 뉴잉글랜드(정확히 매사추세츠 세일럼) 청교도 사회는 억제 불가능해 보이는 히스테리에 사로잡혀 '피의 사냥'을 벌인다. 그들은 주민들 중에 특정한 남자들과 여자들을 '적발하여' 마녀재판을 열고 사형선고를 내린다. (104)

 

14세기경 유럽에서 일어났던 마녀사냥에 대해 들어봤는데 1690년대까지 그것도 청교도들이 정착한 미국에서 마녀사냥이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의료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대에는 마녀사냥을 정적을 제거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17세기 말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생각의 수준은 크게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호손은 역사 속 청교도의 광기를 허구적으로 바꾸어 소개한다. 그건 먼 과거의 일이지만 꼭 필요한 이야기다. (109)

 

우리는 흰 구름을 유심히 본다. 조만간 저 하늘에서 무심하고 평온하게 흘러가는 베어를 보게 될 것이다. 전능의 신들이 떠도는 먼지로 얼마나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을 창조했는가!(124)

시는 바늘처럼 단순하든, 물레고동 껍데기처럼 화려하든, 백합 얼굴 같든, 상관없어. 시는 말들의 의식 하나의 이야기, 기도, 초대, 아무런 현실감 없이 독자에게 흘러가서 마음을 흔드는, 진짜 반응을 일으키는 말들의 흐름. (126)

 

날이 선, 반짝반짝 빛나는 십 대, 자물쇠 채워진 시간. 단단한 이십 대, 느슨해지는 삼십 대, 초조한 사십 대, 가끔은 희망과 약속의 시간이 있는 버팀의 오십 대, 지금은, 육십 대. - 시 <가자미, 여덟> 중

 

멀리서 시계탑이 울리며 짧은 소식을 전하면 - 나도 모르게 아, 3 시구나 생각하며, 정신 한두 알갱이가 죽는 걸 느꼈다. (131)

 

너 또한 네 헌신들에 의해 새로이 조각된다. - 시 <가자미, 아홉> 중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138)

 

소위 문명시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위험성 중 하나는 이 영혼과 풍경, 우리 자신의 최고 가능성들과 우리의 창으로 보이는 경치의 관계를 충분히 인식하고 소중히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에게도 세상이 필요하다. (139)

 

올리버가 미국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 된 건 문명의 온실 속에서 안락하게 살면서도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존재의 온전한 기쁨을 누리며 사는 법을 알려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메리 올리버는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시 <기러기Wild Geese>가 실려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지만 작품집이 정식으로 변역, 소개되긴 이 책이 처음이다. (159)

 

■ 저자에 대해: 메리 올리버 Mary Oliver

시인, 1935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63년 첫 시집 <항해는 없다 No Voyage and Other Poems>를 발표했다. 1984년 <미국의 원시 American Primitive>로 퓰리처상을, 1992년 <새 시선집 New and Selected Poems>으로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가 "단연코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이라고 인정한 메리 올리버의 시들은 자연과의 교감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단순하고 빛나는 언어로 노래한다. 월트 휘트먼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내면의 독백, 고독과 친밀하게 지냈다는 측면에서 에밀리 디킨슨과 비교되기도 한다. 미국 시인 맥신 쿠민은 소로가 "눈보라 관찰자"였던 것처럼 올리버는 "습지 관찰자"이며 "자연 세계에 대한 포기할 줄 모르는 안내자"라고 일컬었다. 스무 편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낸 메리 올리버는 예술가들의 고장 프로빈스타운에서 날마다 숲과 바닷가를 거닐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시를 쓰면서 소박하게 살고 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