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훈의 경제쇼에 출연한 유현준 교수의 이야기를 듣다 최근에 <공간의 미래>란 책을 새로 출간했다고 해서 바로 도서관에서 예약을 했다. 방송을 통해서 이미 유현준 교수의 생각을 들어본 적이 있기에 저자의 생각을 따라 가는데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오히려 기존에 읽었던 책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
코로나로 인해 불가피한 비접촉 시대에 맞게 어떻게 공간을 배치해서 사회적 가치를 높일 것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건축가라는 직업이 단순히 건물을 배치하고 재료를 이해하고 하중을 계산하는 등 공학적인 지식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는 책이다. 나라와 도시의 역사, 건물의 발달사,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심리학과 사회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그리고 종교와 건축 등 다방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이 책 <공간의 미래>는 조금씩 각 분야를 맛볼 수 있다.
침대는 공간을 낭비하는 '공간적 사치'다. 평당 2천만 원짜리 집에 산다면 침대 하나당 4천만 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서양에서 침대를 사용한 이유는 난방 시스템이 '온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6페이지)
서울의 집값이 평균 10억을 넘었다고 한다. 32평형의 실평수만을 고려하면 우리는 값비싼 공간에 침대, 식탁, 소파 등 짐을 두기 위해 살고 있다. 은행에 이자를 납부하면서까지 평수를 넓히고자 하는 것이 공간적 사치를 위한 것이라면 물건의 노예로 사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한편으로는 집안의 슬림화를 통해 동일한 공간도 두 배로 넓게 사용 가능하겠다.
사실 가장 친환경적인 건축물은 태양광 발전 장치가 많거나 친환경 건축 자재로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기둥식 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은 시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을 수 있고, 신축을 안 해도 된다. 신축을 안 해도 되면 콘크리트나 철의 소비를 줄일 수 있다. (47)
목구조는 네 가지 측면에서 친환경적이다.
첫째, 목구조는 기둥식 구조이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다른 용도로 변형하면서 오랫동안 사용 가능해 친환경적이다.
둘째, 나무로 만든 건축물은 부분적인 보수를 통해서 오랫동안 사용 가능하다. (중략)
셋째, 목재로 건축하면 시멘트나 강철을 생산할 때 만들어지는 엄청난 양의 탄소 배출을 하지 않기에 친환경적이다.
넷째, 나무가 자라면서 공기 중의 탄소를 흡수하고 이후 건축 재료로 쓰이면서 탄소를 보관하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 (53)
여러 가지 상황들을 종합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지어질 아파트의 디자인 원칙을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가구 1 발코니'다. 폭이 2.5미터가 넘는 발코니를 만들어서 누구나 집에서 사적인 외부공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둘째, '소셜 믹스 공원'이다. 아파트 단지의 1층 지면을 적극 개방하여 아파트 주민뿐 아니라 누구나 공원, 상업 시설, 문화 시설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셋째, '기둥식 구조'다. 기존의 벽식 구조가 아닌, 기둥 구조로 만들어서 바뀌는 시대적 상황에도 재건축 없이 변형해 사용될 수 있게 한다.
넷째, '복합 구성'이다. 도시 속에 주거, 업무, 학교 등을 나누어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내에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작은 위성 학교, 공유 오피스 등을 작게 나누어서 주거와 섞어서 배치한다면 교통량도 줄이고 전염병 전파도 줄일 수 있는 공간 구조가 될 것이다.
다섯째, 친환경적인 목구조를 사용하는 것이다. 환경 문제와 지구 온난화를 막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54)
지구온난화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시대다. ESG라고 하여 기업의 환경에 대한 노력을 재무적인 성과로 평가하는 시대다. 국가 간에 무역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이런 환경하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저탄소다. 건축에서도 목구조가 저탄소를 위해 유리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업종인 시멘트나 철강의 사용을 줄이고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을 통해 목재 자체가 탄소를 함유하고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간으로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에서 횃불을 들어 그림을 쳐다보던 인간은, 고딕 성당에서 유리를 이용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발명한 덕분에 햇빛을 이용해서 컬러풀한 그림들을 감상했고...(60)
기원전 8500년경에 만들어진 종교 건축물인 괴베클리 테폐는 둥그런 벽만 세워서 세상의 공간과 성스러운 공간을 나누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거대한 돌을 세워 놓고 그 돌 표면에 인간과 동물을 조각해 놓았다. 인류 최초의 건축물인 이 종교 건축물은 공간 구성적으로 구분된 공간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었다. (65)
최초의 도시가 만들어진 메소포타미아의 '우루크'가 있는 지역은 돌을 구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었다. 이들은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강가의 진흙으로 벽돌을 구워서 쌓아 '지구라트'라는 신전을 만들었다. 지구라트 신전은 건축 공간을 이용해서 권력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66)
내가 만든 '공간과 권력의 제1 원칙'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사람을 모아서, 한 방향을 바라보게 하면 그 시선이 모이는 곳에 권력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68)
학교에서의 권력, 종교에서의 권력의 예를 들어서 어떻게 시간과 공간을 통해 권력을 만들어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교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자주 모이는 활동, 정해진 시간의 예배, 장의자, 예식행위, 그리고 사죄하고 죄를 사하는 행위 등이 일종의 교회 권력을 만들고 유지하는 활동이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에 모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종교의 권력은 많이 쇠퇴할 것이다.
핍박받던 초기 로마 기독교 시대에는 지하 무덤 카타콤에 숨어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된 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기독교인들에게 이제 돈과 기술이 생겼다. 편리하게 실내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모여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건축물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당사에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던 재판장이나 시장 같은 기능을 하던 바실리카라는 건축 양식이 교회 건축의 표준이 되었다. (70)
장의자에 앉을 경우 좌우 양 끝단에 앉은 사람은 복도를 통해서 나갈 수 있지만, 가운데 앉아 있는 열 명의 사람들은 예배가 끝날 때까지 꼼짝 못 한다. 좋으나 싫으나 설교자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설교자에게 권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74)
모이는 횟수로 보면 3 대 52의 차이다. 공간으로 만들어지는 권력은 목사님이 스님보다 17배가량 센 거다. 게다가 불교는 참석하는 날에도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하루 중 아무 때나 가면 된다. 반면 기독교는 매주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한다. 그만큼 시간적으로도 자유가 적다. (76)
종교의 장점이 있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종교단체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언론에서 보도되는 종교인들의 돈과 성에 대한 부정직한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일반인들도 종교인들을 볼 때 권위를 떼어내고 봐야 한다. 공간과 시간을 통해 창출된 권력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종교인도 문제가 있지만 그전에 그런 메커니즘을 우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고 바라봐야 하겠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같은 곳을 바라보게 되면 권력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 의식도 강해진다. 가족의 결속력이 커지는 것은 같은 집에서 하루에 열두 시간씩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78)
지도자는 주로 천을 많이 사용한 패션을 선보인다. (중략) 무엇이든 낭비를 할 때 권력자가 된다. 풍성한 옷은 옷감을 낭비한 디자인이다. 그만큼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중략) 그런 복장을 한 종교 지도자의 한마다 한마디에 따라 식순이 진행되고 일사불란하게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일반 성도들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한다. 그런 복잡한 예식을 치를수록 예식을 인도하는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다. 교회 예배의 앞부분 순서는 회개 기도다. (중략) 마치 앞의 예배를 진행하는 분에게 죄를 사해 주는 권위가 주어진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예식이다. (79)
유목 민족의 종교였던 이슬람교 같은 경우다. 이들은 계속 이동하고 흩어져서 살아야 하는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같은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가 힘들다. 장소를 정해 놓고 모이게 하는 '공간' 규제가 불가능하다 보니 둘 중 하나인 '시간'만 규제했다. 대신 더 강하게 규제한다. 이슬람교는 하루에 다섯 번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한다. 이들은 어디에 있든지 이 시간이 되면 메카를 향해서 엎드려 기도한다. (81)
이슬람교에서는 왜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저자가 설명한 부분을 통해 이해하게 됐다. 유목민들을 위한 종교라서 정착생활을 하지 않으니 공간적인 제약을 가할 수는 없기에 시간적인 제약을 하되 더욱 엄격하게 자주 하도록 규제한다는 설명이다. 사람이란 지성이 가장 발달했음에도 동물이 하지 않을 이런 맹목적인 종교행위를 하며 살아간다. 이슬람을 믿지 않는 입장에서는 지나칠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학교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지식 전달의 기능, 둘째, 또래들 간 사회 공동체 경험의 장으로써의 기능, 셋째, 낮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 주는 탁아소의 기능이다. 동영상 강의는 지식 전달의 기능을 해결해 주지만 나머지 두 개의 기능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91)
종교를 설명하면서 다루었지만 공간 구조와 권력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 보자. 첫째, 사람들의 시선이 한 곳에 모이는 곳에 위치하면 권력을 갖게 된다. 둘째, 더 많은 사람이 함께 볼 때 권력이 더 강해진다. (92)
대화를 통해서 학생들 내면의 것들을 밖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될 것이다. 학생들 각자는 깊은 우물과도 같다. 선생님과의 대화는 두레박이다. 학생들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을 긴 줄에 매달린 두레박으로 길어 내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 되어야 한다. 21세기 선생님들은 20세기 화가들이 했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95)
카메라의 발달로 화가들이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개성을 담아서 그림을 그렸듯이 학생수가 줄고 비대면 수업이 많아지는 시대에 맞게 교사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부분에 공감한다.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 이들의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로 가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교사의 역할을 점차 대체될 수도 있다.
이미 2011년부터 '미네르바 스쿨'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인 미네르바 스쿨은 전 세계의 도시 곳곳에 위치한 캠퍼스에 가서 생활하고 동영상 수업을 듣는 것으로 교육을 실행한다. (110)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는 공정한 경쟁도 있고 1등도 있을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기회에 모든 학생이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같은 교육 과정에서 경쟁해야 하는 제도는 바뀌면 좋겠다. 지금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사람 간의 만남도 쉽게 조직할 수 있다. (114)
새로운 공립학교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과연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교육은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생각의 틀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19)
이러한 개인화된 공간 체계는 조직을 쪼개서 개인으로 파편화시킬 것이고, 이는 일자리의 프리랜서화를 가속시킬 것이다. 팀장급 이상의 사람들에게 재택근무에 대한 평가를 들어 보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개인별로 업무의 계획과 실행이 명확해져 기존에 큰 조직 내에서 무임승차하던 사람들을 구분해 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개인의 업무 수행 능력을 냉정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는 이야기다. (130)
회사에서도 코로나 시대에 맞춰 재택근무를 부분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집에서 근무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바로 옆이 아니라 원격지에서 근무하기에 성과를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계획한 대로 실행이 되었는지 드러나고 무임승차하던 사람들이 구분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적응해가야 한다.
뉴욕은 고밀화된 도시 공간뿐 아니라 전화기라는 통신망을 깔아서 사람 간 소통할 수 있는 관계의 시냅스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하루 동안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를 비교해 보면 뉴욕에 사는 사람은 유럽 도시에 사는 사람보다 열 배 이상 많은 숫자의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을 것이다. (165)
재건축 재개발을 하면서 바둑돌을 놓듯이 도심 속 중요한 곳에 공원, 도서관, 벤치를 두도록 하자. 그게 우리가 이 시대에 만들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화목하게 하는' 도시다. 이것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181)
LH의 업무는 바뀌어야 한다. 지난 50년간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택지를 녹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린벨트에 비닐하우스밖에 없으면 비닐하우스를 없애고 나무 심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린벨트와 도시가 만나는 접경의 좁은 면적을 고밀하게 개발해서 그린벨트 내 주거를 이전하고 나머지는 녹지로 전환하면 가능하다. (209)
LH 직원들의 땅 투기 비리가 드러난 것이 최근의 일이다. 하물며 직원들의 숫자가 지속 늘었다고 한다. LH의 사명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존재 이유가 LH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인지, 직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셀프 활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해온 것이다.
유현준 교수의 제안대로 인구구조의 변화와 주택수를 고려해서 앞으로는 택지를 녹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과정에서 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국민을 위한 정책, 국민이 화합할 수 있는 주택과 공원(녹지) 조성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대지 경계선에서 띄어서 건물을 짓는다. 건물 사이를 띄워서 채광과 통풍을 하겠다는 이유다. 그러다 보니 건물 사이사이에 쓸모없이 버려지는 땅이 많다. 반면 파리나 뉴욕 같은 도시는 건물끼리 옆으로 붙어 있다. 건물 사이사이의 공간은 한 곳에 모여서 중정이나 뒷마당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게 가능한 것은 필지가 좁고 길게 구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도시가 처음 만들어질 때 필지를 좁고 길게 만든 이유는 도심 속에서 장사를 하기 위해서다. 장사를 하려면 길가에 면해서 가게 입구가 나야 한다. (218)
만약에 우리가 골목길과 골목길 사이의 6개에서 20개 정도의 필지를 묶은 규모로 재개발을 촉진하는 인센티브 법안을 만들면 어떨까? 이때 새롭게 건축되는 건물의 주차장은 지하에 통합으로 넣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최소화되고 골목길과 접한 1층은 필로티 주차장 없이 보행 친화적인 환경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된다. (222)
설혜심 교수의 저서 <소비의 역사>를 보면 수정궁 덕분에 기존에는 없던 '소비자'라는 계층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물건 사는 것을 신분 상승의 방법으로 여기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졌다. (238)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노출하는 것이 자신을 과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건 소비 대신 공간을 소비하는 것이 코로나 이전의 소비 패턴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공간을 소비하지 못하게 되니 다시 물건 소비로 돌아가게 됐다. (250)
시간을 사용하여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다면 그 공간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살아남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힙지로' 공간이다. 을지로라는 낡은 도심 속 슬럼가에 젊은이들만 가는 카페와 와인바가 있다. 이곳이 힙한 이유는 아는 사람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254)
토마 피케티의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의하면 소련 붕괴 이후 전 세계적으로 사회 내에서 부의 쏠림 현상이 심해졌고, 경제적으로 하위 50퍼센트의 사람들이 차지하는 돈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말한다. (265)
전체 주택 중에서 임대 주택의 비중이 커질수록 정치가는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지주가 된다. 그리고 그 정치가들은 자기 입맛에 맞게 권력을 넘겨주려 할 것이다. 이것은 정치권력의 속성이다. 점점 더 많은 국민이 국가 소유의 임대주택에 살게 되는 것은 점점 더 많은 권력을 정치가에게 넘겨주는 일이다. (276)
2016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은 상을 수상하기에는 젊은 나이인 40대 후반의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게 돌아갔다. 그가 디자인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 '엘레멘털'의 아이디어는 독특하다. 저소득층은 돈이 없기 때문에 비싼 집을 살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그는 집을 절반만 지어서 분양했다. 절반 정도 지어진 건축물의 대부분이 외장 마감재도 없고 인테리어도 전혀 하지 않은 껍데기 상태에서 집을 분양했다. 이렇게 해서 집을 마련한 사람은 입주 후 돈을 벌면서 점점 자신의 집을 완성해 나갔다. (290)
집값이 올랐으니 주택 구입을 포기하고 임대 주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집값을 안정화시켜서 청년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중략) 주택 소유를 통해서 더 많은 청년 개개인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 바람직한 사회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292)
자문이라는 것은 심히 모욕적인 요청이다. 자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이디어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교통비 정도를 주고 자문을 받으려 하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지적 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저급한 사회다. (309)
다양한 분야에서 교수들의 자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교수가 아니라서 어떤 상황인지 몰랐다. 유현준 교수의 의견을 보니 지식으로 직업을 삼는 교수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자문을 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모욕적인 요청이라는 것이다. 자문의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정한 자문료를 주면서 그에 상응하는 결과물을 기대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겠다.
어느 제약회사에서 창의적인 사람의 특징을 조사했더니 우편배달부나 옆 부서 직원들과 쓸데없이 잡담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편하게 이야기를 할 때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313)
소제동은 그런 대전역에서 걸어서 5분이다. 게다가 대전에는 카이스트를 비롯해 대덕 연구단지의 많은 연구소에 우수한 두뇌들이 위치하고 있다. 소제동의 독특한 공간적 상황과 대전의 인재들이 합쳐진다면 차고 창업이 일어나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스마트타운이 만들어질 수 있다. (316)
인류사의 큰 변화나 갈등은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시공간의 변화가 기존 사회와 충돌했을 때 일어난다. 전염병 역시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시간 거리가 축소되고 공간이 압축되면서 전파되고 문제를 발생시킨다. 14세기에 말이라는 교통수단이 있었기에 몽고의 흑사병이 갑작스럽게 유럽까지 전파되어 문제를 일으켰다. 21세기에는 비행기라는 교통수단이 거미줄처럼 전 세계를 엮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가 단기간에 전 지구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350)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교황은 바티칸의 조그마한 땅을 빼놓고는 모두 이탈리아 정부에 토지를 몰수당했다. 커다란 위기였지만 교황은 그 당시 신기술인 라디오를 이용해서 전 유럽과 남미까지 주파수가 닿는 땅 끝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352)
영조 때 한양의 도시 공간 인프라를 재정비한 덕분에 한양에 19만 명의 인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자 정조 때에 이르러 상업 수요가 폭증했다. 당시에는 금난전권이라고 해서 한양 내 37개의 허가받은 시전들 외에는 도성 안팎 10리(약 4킬로미터) 이내에서는 가게를 열어 판매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 권리가 특정 상인들에게 있었다. 기득권을 가진 상인들이 정부와 결탁해 확보한 독점 상업 특권이었다. 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거래도 늘자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했다. 이로 인해 상업이 발달했고 조선 후기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 (355)
역사를 이렇게 배우면 참 재미있을 거다. 금난전권이란 말은 오랜만에 들어본다. 영조의 한양 인프라 개선 덕분에 상업이 흥해서 특권을 인정해준 '금난전권'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은 자율 경쟁 시스템으로 변화되면서 상업이 더욱 발달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인구가 19만이었다고 하니 200년 만에 20만이 1000만으로 50배가 늘었다.
중요한 시기인 지난 이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과거사 재정의' 과정에서 빨갱이와 토착왜구로 상대방을 비방하며 분열됐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역사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는 없다. 미래는 미래에 대해 구체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시선의 초점을 과거에서 방향을 돌려, 미래를 향하길 바란다. (359)
독서습관412_공간의 미래_유현준_2021_을유문화사(21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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