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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05_시민을 위해 검찰의 변화가 필요한 시간_조국의 시간_조국_2021_한길사(210626)

by bandiburi 2021. 6. 27.

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데 아내가 직접 구매해서 읽은 후 강권하기에 책을 펼쳤다. 조국이란 사람이 겪었을 고뇌의 시간에 공감하며 단숨에 읽었다. 진보와 보수, 수구를 떠나서 대한민국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시민으로서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검찰'에 대해 상당 부분 동의한다. 

저자는 법대 교수였고,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경험했다. 검찰개혁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개혁을 거부하는 검찰과 언론 그리고 정치인들의 공격을 심하게 받았던 저자는 글로써 울분을 드러냈다. 책을 통해 저자의 주변에서 있었던 일을 정리해서 공유했기에 마녀사냥과 같은 검찰의 초미세먼지 털이식 조사로 인해 그와 가족, 지인들이 굉장한 고통을 겪었고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을 큰 틀에서 알 수 있었다. 

검사 출신으로 검찰의 민낯을 폭로한 비판서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를 출간한 이연주 변호사는 개탄했다. 
 "검사들은 과거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던 잘못은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검찰이 휘두른 칼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느끼지 않으면서, 검찰 조직 문제에만 기개 있게 덤비고 정의를 내세운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겁한 사람들이다."(131페이지)

거듭된 사과를 통해 진보를 외치면서도 강남좌파가 되어 부지중에 세상과 동일한 교육을 추구하며 청년들의 공정에 대한 욕구를 몰랐던 점을 인정했다. 최근에 '시사기획창'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586세대들이 현실 안주하며 살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저자도 그 세대다. 한 때는 정치의 민주화를 외치고 실현했지만 경제적으로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2020년 12월 31일 역사학자 전우용 선생은 페이스북에서 일갈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중립적이고 정의로운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껏 검찰은 그런 기관이었던 적이 없습니다. 검사들 스스로 그런 기관으로 만들려고 노력한 흔적도 없습니다. '중립적이고 정의로운 기관'은 검찰의 과겅와 현재가 아니라 미래입니다. 그런 미래를 만들려고 노력한 건 검사들이 아니라 시민들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148)

대부분의 국민들은 언론보도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에만 의존했던 과거와는 다르다. 일반 시민들의 눈에도 검찰 자신들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는 대충 얼버무리고 끝나버리는 것이 많다. 반면에 검찰에 반대되는 세력에 대해서는 사냥감을 몰듯이 대한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에 대한 부분도 지나칠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김학의 성접대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최근에 있었던 2차 접대와 관련된 검사들에 대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제 식구 감싸기의 전형이다. 검찰의 사명 즉 존재이유가 뭔지 검사들 개개인은 생각해봐야 한다. 왜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검사가 되고자 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대부분은 돈과 권력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카르텔과 같이 형성된 그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잊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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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떨이 수사, 인디언 기우제 수사의 법률적 표현은 '별건수사'다. 검찰은 별건수사의 폐해와 남용을 조사하고 이에 대한 반성을 한 적이 없다. 별건수사는 피의자를 어떤 범죄로든 처벌받도록 하기 위해 원래의 목표였던 '본건' 범죄에 대한 증거가 없거나 미미할 경우 피의자나 그 가족 친구 지인의 별건 혐의에 대해 끝도 없이 파헤치는 것이다. (168)

정의는 '누구에게나' '어느 사건에나' 공평하고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되어야 그 진정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취사 선택적 정의 적용은, 정의의 이름을 빌린 '불의'일뿐이다." (178)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가는 시민들이다. 경찰서에서 오라고 해도 가슴이 뛰는데 검찰에서 오라는 것은 더 큰 부담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검찰은 과거에 남고 이제는 사회정의를 올바르게 실현하는데 집중하기 바란다. 

대학입시 중심으로 초중고 생활을 하는 아이들에게 잘 외우고 문제를 잘 풀어내는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다양성이 드러날 기회가 없다.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판검사,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이 되는 길을 선호한다. 아이들이 왜 이런 전문직을 원할까. 소명의식이 있어서일까. 아니다. 돈과 권력이다. 부모들이 부추기는 면도 있을 것이다.

묵묵히 걷고 또 걸어나가야 한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몬테크리스토 백작> 끝부분에 나오는 주인공 에드몽 당테스가 쓴 편지의 마지막 문구, "견디며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도 보냈다. 이는 나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해진 그물을 묵묵히 꿰매며 출항을 준비하는 어부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자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한 말을 되뇌면서. 
 "사람은 패배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은 파괴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366)

그래서 나는 전문직에 있는 사람들이 성적이 좋았던 점과 전문직을 가진 사실을 가지고 시민들의 우위에 있다는 착각을 가지고 살까 걱정이다. 과거에는 일제의 잔제의 영향이라 생각되는데 양형을 결정하는 권력,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권력을 가지고 국민들의 우위에 있었다. 지금도 그런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인데 거꾸로 생각한다.

현 정권에서는 검찰개혁이 화두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과 후임자인 추미애 전 법무부장관이 검찰개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발하는 검찰과 언론, 야당의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까울 지경이다. 검사 본인들과 관련된 비리에 대해서도 조국 가족들에게 들이댄 동일한 기준으로 샅샅이 파헤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자신들의 권한을 유지할 수 있다. 과도하게 편파적으로 사용되는 권력은 지속되서는 안 된다. 적당한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 그들은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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