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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354]리스본행 야간열차_자신을 찾아가는 철학적 소설

by bandiburi 2021. 3. 9.

주말에서 포항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에서 가볍게 읽으려고 고른 책이 <리스본행 야간열차>다. 불편한 차 안에서 읽으려고 가벼운 소설을 원했다. '리스본'이라는 가보지 않은 도시를 소설 속에서 여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무거운 책이었다.

저자 페터 비에리는 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답게 독자로 하여금 실존에 대해 생각하도록 언어들을 나열한다. 주인공의 동선과 그의 생각의 흐름에 맞춰 우리 독자들도 사고하게 만든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베른에서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박식한 고전문헌학 교사로 살고 있었다. 똑똑한 범생이의 전형으로 매력이라고는 거의 없는 단순한 덕후였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인기가 있어 젊은 아내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날 자살을 하려는 낯선 포르투갈 여인과의 만남과 그녀가 말한 '포르투게스'라는 소리의 울림, 그리고 우연히 접하게 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의사의 글에 이끌린다.


그레고리우스의 삶은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었다. 아무런 알림도 없이 프라두라는 인물을 추적하기 위해 무작정 베른을 떠나 리스본으로 떠난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는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33페이지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44페이지


유복한 귀족 집안의 자제이면서도 아주 영민했던 프라두의 삶은 척추 경직증으로 고통 속에 살던 판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의사의 삶을 산다. 프라도는 병원을 찾아온 살라자르 치하의 인간백정 멩지스를 목숨을 구해준다. 그의 명성은 이로 인해 타격을 입는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프라두는 반정부군의 비밀 요원으로 활동한다. 결국 시한폭탄과 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맥류를 가지고 살다 어느 날 오전에 뇌에서 피가 터지며 사망한다.

천박한 허영심은 우둔함의 다른 형태죠. 우리의 모든 행위가 우주 전체로 봤을 때 얼마나 무의미한지 몰라야 천박한 허영심에 빠질 수 있어요. 그런 어리석음이 조야한 형태로 나타난 거예요.-202페이지

현재에 아름다움과 두려움을 부여하는 것은 죽음이다. 시간은 죽음을 통해서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모든 것을 안다는 신이 왜 이것을 모르는가?-220페이지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라는 인물을 알기 위해 언어의 귀재답게 포르투갈어를 배워 리스본으로 간다. 프라두와 관련된 여동생, 친구, 지하조직의 동료 등을 찾아간다. 이전의 삶과는 전혀 다른 그의 모습이다.


그레고리우스는 프라두의 삶을 이해할수록 자신의 삶의 의식해간다.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서 그레고리우스에게 현기증이 점차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끝까지 읽으면 작가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들은 인생이 가볍든 힘들든 가난하든 부유하든 상관없이 더 많은 삶을 원한다. 끝나고 나면 모자라는 인생을 더 이상 그리워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들은 삶이 끝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269페이지

그레고리우스는 마지막에 리스본에서 다시 베른으로 돌아가는 야간열차를 탄다. 여기서 야간열차는 우리의 인생이라는 메타포다. 우리는 누구나 현재의 삶에서 벗어나 미지의 경험하지 못한 인생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움직이는 기차에서처럼, 내 안에 사는 나. 내가 원해서 탄 기차가 아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아직 목적지도 모른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이유는 뭔가? 그들이 외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서 내적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317~318페이지

영혼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해. 우리 인간의 가장 천재적인 발명품이지. 현실 세계에서처럼 영혼에도 뭔가 발견할 게 있으리라는, 무척이나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만한 암시성 때문에 천재적이지. 하지만 조르지, 진실은 그렇지 않아. 우린 대화할 대상을 갖기 위해 영혼을 만들어낸 거야.-438페이지


이 소설은 어렵지만 생각할 기회를 주는 면에서 좋은 책이다. 저자와의 대담 내용이 마지막에 첨부되어 있어 무작정 떠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말로 소감을 마무리한다.

"무엇보다 자기 인식, 즉 깨달음이 절대적이죠. 인간을 다른 생명체와 구별해주는 인식 작용 말입니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그대로 살아갈 것인지, 그게 정말 원하는 것인지 자문하는 거요. 오직 우리 인간만이 자기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고, 진실한 자아를 탐구하려는 욕구를 지니고 있습니다."-574페이지

독서습관354_리스본행 야간열차_파스칼 메르시어_2014_들녘(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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