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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325]소설가의 일_작가가 글을 쓰는 방법을 쉽게 설명한 책

by bandiburi 2021. 1. 11.

소설가가 되어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려서 그럴듯하게 만든다. 독자가 냄새로 맡고, 눈으로 보고, 맛을 상상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글자로 뽑아낸다. 이런 과정을 딱딱하지 않으면서 물 흐르듯이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되는 책이다. 작가 주변에서 흐르는 시간과 공간을 잡아내서 자신의 상상력 속에서 의도한 바와 맞춰 글로 던지는데 재미있으면서 빠져든다.

'김연수'라는 작가를 모르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1988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었으니 나보다 1년을 앞선다. 그는 내가 군입대를 위해 휴학중이던 1994년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나는 뭘 했지. 별 생각이 없었던 때였다. 대학교 부적응자였다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처럼 살려고 했으니까. 한 세대가 지났다. 그 당시에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한 걸, 많은 경험을 못 한 걸 후회하느니 지금 현재를 충실하게 사는 편이 인생에 도움이 되겠다. 아무튼 김연수 작가는 책을 써냈다. 그리고 지금도 작가로서 활동 중이다. 30년의 세월이 도도하게 흐르고 난 뒤에 그의 글을 접했다.

상점들이 즐비한 역전 제과점의 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나는 자영업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 잘 안다. 그들에게는 일의 반대가 휴식이 아니라 손해다. 그래서 그들은 휴일에도, 심야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일을 계속할 수 있다면 당분간 큰 문제는 생기지 않는, 그러니까 매일 일하는 삶이다. 어린 시절에 내가 지켜본 이웃 상점 주인들의 삶은 근면하다거나 성실하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였다.-16페이지

처형이 2019년 12월 크리스마스에 서울 장안동에서 고깃집을 오픈했다. 오픈 전부터 바빴다. 새 건물 1층에 인테리어를 하고 직원들도 고용해서 교육시켰다. 드디어 가게를 열었는데 많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도 방문했다. 당초 기대했던 매출의 50%를 밑도는 수준이다. 그래도 더 어려운 처지의 자영업자들에 비해 버틸 정도는 된단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났다.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날 방문했다. 365일 동안 쉬지를 못하고 일했다. 이제는 익숙해졌다고 한다. 자영업자는 건강해야 한다. 성실함은 기본이다. 시간이 매출로 환산되는 것이 보인다. 매달 나가야 하는 고정비는 정해져 있다.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수익을 늘이기 위해서는 일해야 한다.

인간이란 다른 동물과 달리 생각한다고 우쭐해한다. 그런데 생각하는 자체로 자신의 몸을 돈의 제단 위에 온전히 바친다. 길어야 100세를 사는데 돈에 대한 욕망과 함께 돈으로 인한 걱정과 두려움이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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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누군가 고민할 때, 나는 무조건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 외부의 사건이 이끄는 삶보다는 자신의 내면이 이끄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심리적 변화의 곡선을 지나온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98페이지

2020년 연말이었다. 회사 임원이 직원들에게 5만원 상당의 선물을 보냈다. 해산물과 수제쿠키 중에서 아이들을 위해 수제쿠키를 골랐다. 코로나로 회식이 줄어 예산이 남아 선물로 대신한 것이지만 고마웠다. 그래서 임원에게 고맙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카톡을 보낼까 고민했다.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며칠 후 임원과 중식시간에 선물에 대해 감사해서 카톡을 보내려다 말았다고 했다. 인생에서 좋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할 때도 망설여지면 나쁜 일이 아니면 하라고 한다. 시도하는 것은 과정과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과정을 지나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이 반응했고, 결과에 대해 만족했거나 아쉬워했다. 그 자체로 우리는 성장한 것이다.

그때는 MRI 같은 게 없었으니까 우디 앨런의 영화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우리 뇌에는 신경가소성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하느냐에 따라서 세계를 해석하는 우리의 방식이 새롭게 결정되고, 일단 그렇게 생각이 바뀌면 다시 그 사람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리라. 플롯이 아니라 캐릭터가 이끄는 소설이라고 할 때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다. 시련에 맞서서 행동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이 인생과 세계를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즉 세계관이 바뀌는 셈이다. (중략)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건 대사와 행동과 표정과 몸짓 같은 것뿐이다.-120페이지

내가 선택해서 책을 읽었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세로로 적힌 심훈의 <상록수>였다. 배경이 되는 지명이 '한곡리'였다. 내가 자란 마을 이름과 똑같았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인 '동혁'이 나의 아바타로 생각하며 영신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이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사실 내용은 몽땅 기억에서 사라졌지만 주인공과 지명은 선명하다. 블로그를 3년 전에 시작하면서 매주 만들던 가족신문을 멈췄다. 가족신문에 한 주간 있었던 아이들 성장기와 특별한 이벤트를 남겼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께 편지로 보내드렸다. 손주들과 떨어져 있기에 칼라로 사진을 글과 함께 인쇄한 가족신문을 좋아하셨다.

블로그는 신변잡기를 담았다. 그리고 책을 읽은 소감을 올렸다. 글이 늘어나면서 이전 글을 들춰본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읽었다.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게 아니다. 국내외의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면 가족신문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지만 방법을 온라인으로 변경하면서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의 무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다시 책을 잡는다.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도 점점 다듬어지고 있다. 저자의 말과 같이 뇌는 자극을 줄수록 신경가소성이 있어 적응해 가는 것이다.


이 책(마쿠라노소시)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사계절의 멋을 논한 제1단은 이렇게 전체를 모두 베낄 정도로 아름답다.

봄은 동틀 무렵. 산 능선이 점점 하얗게 변하면서 조금씩 밝아지고, 그 위로 보랏빛 구름이 가늘게 떠 있는 풍경이 멋있다.

여름은 밤. 달이 뜨면 더할나위없이 좋고, 칠흑 같은 어두운 밤에도 반딧불이가 반짝반짝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은 보기 좋다. 반딧불이가 달랑 한 마리나 두 마리 희미하게 빛을 내며 지나가는 것도 운치 있다. 비 오는 밤도 좋다.

가을은 해질녘. 석양이 비추고 산봉우리가 가깝게 보일 때 까마귀가 둥지를 향해 세 마리나 네 마리, 아니면 두 마리씩 떼 지어 날아가는 광경에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기러기가 줄을 지어 저 멀리로 날아가는 풍경은 한층 더 정취가 있다. 해가 진 후 바람 소리나 벌레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기분 좋다.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려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버려 좋지 않다. -170~171페이지


세이쇼나곤이라는 11세기 일본의 고위 궁녀가 쓴 수필집 <마쿠라노소시>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눈으로 문자를 지나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이 그려진다. 한 폭의 그림을 글로 적는다면 이렇게 적겠다. 11세기의 궁녀가 살았던 환경을 그려본다.

스마트폰 알람소리에 눈을 뜨고 주위에 잔잔하게 들리는 지나가는 차들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린다. 불을 켜고 어제와 비슷한 하루를 떠올린다. 재수하는 아들에게 아침 6시에 일어났니 '파이팅!' 하는 카톡을 날린다. 집을 나서 큰 도로를 끼고 회사로 향한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며 경제방송을 듣는다. 사무실에 도착해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이런 생활의 반복이다. 궁녀가 살았던 시대는 시골에서 문명의 이기를 단절한 환경이다. 유년시절이 그랬다.

내 눈에는 분명 파란색으로 보이는데, 선생님은 그게 파란색이 아니라니. 선생님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2001년 일본인 사사키 미쓰오 부부가 쓴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를 읽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반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도 그게 실제로 본 풍경이 아니라 추상화처럼 해석된 풍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사키 부부가 반 고흐의 그림 속에 나오는 장소들을 찾아가 찍은 사진을 보면, 그 풍경의 구도와 색채가 반 고흐의 그림과 똑같다. 그러니까 반 고흐는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린 것이다. (중략) 그렇게 눈네 보이는 대로 '별이 빛나는 밤'을 그렸던 셈이다. -176페이지


학창 시절에는 미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미술책과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이해해서 그리면 점수를 보고 잘 그리지 못했구나 생각했다. 중학교 1학년 4월이었다. 수채화로 풍경을 그리라고 운동장 여기저기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다.

눈에는 저렇게 보이는데 도화지 위에 어떻게 그려야 할지, 어느 정도 물을 섞고 어떻게 붓을 대야 할지 몰랐다. 수채화는 이전에 칠했던 위에 덧칠이 되어 보이는 것과 다른 그림이 되고 말았다. 고흐가 보이는 그대로 그린 그림만 보고 고흐를 통해 가공된 단순화된 그림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그린다는 것은 물감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작가는 글을 쓸 때도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많이 알수록 유리하다고 한다. 소설가가 표현하고 싶은 장면이 있는데 늘 사용하는 말만 등장한다면 독자도 식상할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언어로 쓴다면 독자는 생생한 묘사에 빠져들 것이다.



가능하면 동사(혹은 형용사)와 시제만 남게 서술어 부분을 단순하게 만든다. (중략) 이렇게 서술어 부분을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쓴 것인지 조금씩 명확해진다. 그러면서 글의 내용이 빈약해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복잡한 서술어 구조 때문에 가려졌던 빈약한 구조가 드러나면서, 내가 무엇을 쓰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211페이지

작가의 이 말이 나의 블로그 글쓰기를 보고 말한다고 생각됐다. 형용사와 동사를 장황하게 사용했다. 동사도 생각한다는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모호했다. 그래서 이번 블로그 글부터 서술어 부분을 간단하게 쓰기로 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는 표현이 좋다. 하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미식가보다는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이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소설가라면 얼음을 만질 때마다 다음과 같은 문장을 쓸 수 있기를 늘 갈망해야 하리라.

"저건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란다."
"아니오, 이건 얼음이오." 그 집시가 고쳐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가 그 납작한 덩어리를 만져보려고 손을 내밀자 집시가 그의 손을 막았다. "만지려면 5레알을 더 내시오." 집시가 말했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는 5 레알을 낸 뒤 얼음 위에 손을 얹은 채 몇 분 동안 그대로 있었는데, 그사이 신비한 물건을 만지고 있다는 두려움과 기쁨으로 인해 그의 가슴은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몰라, 자식들이 그 신비한 경험을 직접 할 수 있도록 10 레알을 더 지불했다. 어린 호세 아르까디오는 얼음을 만지려 하지 않았다. 반면에 아우렐리아노는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 얼음에 손을 얹더니 화들짝 뒤로 뺐다. "펄펄 끓고 있어요." _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 년의 고독 1>


생각 속에서 물은 0도씨에서 응고돼 얼음이 되지만, 감각 안에서 얼음은 펄펄 끓고 있다.

<마르케스의 서재>란 책에서 만났던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여기에서 또 만났다. 그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으며 콜롬비아로 여행을 다녀왔었다. 김연수 작가는 마르케스의 <백 년의 고독 1>을 인용해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도 강렬하게 맛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일상에서 만나는 상황을 강렬하게 맛본다는 것이 뭘까. 짧은 찰나에 일어나는 것이라도 그 부분을 마르케스와 같이 얼음을 끓는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상상해 봤다. 퇴근 후에 마주치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실수한 것에 대해 무안하지 않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이 장면을 강렬하게, 선명하게 글자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쓰려는 소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을 해도 좋다. 그보다는 자신이 잘 몰랐던 일들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흥미롭고, 미처 몰랐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뜻밖의 기쁨이다. 날마다 이 재미를 위해 시간을 내는 것, 그게 바로 소설가의 일이다.

소설가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어 낼까 궁금했다. 작가 자신이 살아온 경험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김연수 작가는 딱 한 권의 소설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다음부터는 자기가 모르는 사람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들의 삶의 관점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생각하고 경험하려고 한다.

책상에 앉아 있기만 해서는 알 수 없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하나의 소설을 탈고하며 그 잔념들을 훌훌 털어버리기 위해 여행을 한다고 들었다. 이전 주인공의 관점을 잊고, 새로운 주인공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준비를 하는 것이다.

신과 소설가의 공통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를 창조하되 자신은 그 시간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은 우주의 바깥에, 소설가는 소설의 바깥에. 어떻게 하면 소설의 신이 될 수 있는지 그간 궁금했다면, 여기 그 해답이 있다. 소설의 바깥에 있으면 된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이 표현 마음에 들었다. 신과 같이 소설가는 소설 속에서는 신이다. 소설속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고 바깥에서 소설을 만들어 간다. 희로애락, 남녀노소 모두 소설가의 마음에 달렸다. 그렇지만 독자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기 때문에 '일기'처럼 써서는 곤란하다.

일인칭이든 이인칭이든 삼인칭이든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고 시공간을 초월해서 모르는 게 없는 소설의 신이 되어 써야 한다. 이 책의 매력은 작가의 경험, 다른 작가의 인용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잘 섞어서 글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연인 간에, 부부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를 위해 노력하는 행위 자체가 삶을 살만한 가치가 있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가 사랑이다. 어떤 관계 속에서도 상대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노력하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노력하는 만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노력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 먼저 노력하고 다가가면 좋겠다.

 


독서습관325_소설가의 일_김연수_2014_문학동네(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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