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아 포항에서 서울로 이동하는 전세버스 안에서 읽고 있던 <북학의>를 모두 읽고 나니 스마트폰으로 뉴스거리를 보기보다는 다른 읽을거리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교보도서관' 앱을 통해 전자도서를 검색했다. 바로 대출이 가능한 것들을 보다가 <쾌락독서>란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독서란 것을 좋아하고 앞에 왜 '쾌락'이란 말을 붙였을까 궁금했다.
바로 다운로드 하고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보니 법관 출신으로 작가가 된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의 글이다.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작가의 말대로 어깨에 힘을 빼고 솔직하게 적어 내려 간 글이 몰입도를 높인다. 전자책으로 보는 것보다는 책으로 보는 편이 편리하기에 정약용 도서관에서 대출을 받아서 완독 했다.
작가가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책과 관련해 경험했던 사례들을 자신의 생각으로 풀어놓은 글로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아직 읽지 않았기에 작가의 설명을 통해 읽어보고 싶은 책도 많이 발견했다. 또한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생활을 살짝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일반인의 입장에서 유익한 부분이었다.
인간이란 판단력이 없어서 결혼을 하고, 인내력이 없어서 이혼을 하며, 기억력이 없어서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10페이지
결혼과 관련된 재미있는 해석이어서 인용했다.
'인문학 고전을 읽어야 성공한다' '대입을 위해 서울대 추천 인문 고전 50선을 꼭 읽어야 한다'는 등의 조언 또는 겁주기를 볼 때면 의문은 더 커진다. <키케로의 의무론> <실천이성비판> <아함경> <우파니샤드> <율곡 문선>... 잠시 서울대 교수님들 중 이 50선을 모두 읽은 분이 몇 분이나 될지 불경스러운 의문을 가져보았다. 나는 달랑 세 권 읽었더라. -12페이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독자가 궁금해서 알고 싶어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글을 보는 것이다. 개인마다 스마트폰이 있고 24시간 옆에 두고 사는 청소년들입니다. 이들에게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본인들의 관심이 스마트폰을 통한 세상과의 접속에 있다면 마이동풍에 그칠 뿐이다. 학생들이 이런 분야에 관심을 가질 환경을 조성한 뒤에 권장해야 한다. 대입 수능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중고등학교 6년의 주된 과정이라면 시험과 관련 없는 어려운 책들에 관심이 갈 여력이 없다.
셰익스피어가 왜 엄청 유명한지는 고등학생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학교 도서관에 셰익스피어 희곡 전집이 있었는데, 무심코 읽다보니 아니, 이 작가의 주인공들은 전부 전생에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정말 엄청난 말장난의 고수들이었다. 호레이쇼도, 머큐쇼도, 폴스타프도, 심지어 줄리엣조차도 대체 입을 쉬질 않는다. -22페이지
셰익스피어의 책을 희곡집이 아닌 스토리 중심으로 요약된 어린이본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다. 작가의 말대로 희곡집 원본을 읽어본다면 동일한 인상을 받을 수 있을지 도전해 봐야겠다. 마침 큰아들이 인도에서 9학년 때 셰익스피어 전집(희곡집은 아니고 스토리를 모아놓은 책)을 수업으로 들었던 책이 서가이 있어 먼저 전체적인 스토리를 파악하고 희곡집에 도전하는 편을 고려해본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끊임없이 군기, 서열, 뒷담화, 질투, 무리 짓기와 정치질, 인정투쟁에 시달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나는 소인국 릴리퍼트에 표류한 걸리버다. 저 많은 소인들이 뭐라뭐라 지지배배 짹짹거리며 자기들끼리 나를 놓고 찧고 까불고 있다. -31페이지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고 있다.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인간관계로 인해 감정적인 낭비가 발생할 수도 있다. 저자가 걸리버 여행기의 소인국에 표류한 걸리버처럼 자신을 간주한다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라 생각된다. 지나치게 타인의 평가나 의견에 대해 신경을 써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서야 되겠는가
고등학생이 되어 읽은 황석영의 <장길산>의 한 장면이다. 광대 마을 우두머리 손돌 노인은 오갈 데 없는 처자 묘옥을 거두어 보살펴주다가 묘옥이 장길산에 대한 연정으로 길을 떠나자 가진 모든 패물을 봇짐에 넣어준다. 그녀가 떠난 후 손돌 노인은 초가집에 불을 놓고 한바탕 마지막 광대춤을 추고 "잘 놀다 가우"라는 말을 남기고 초연히 불로 뛰어든다. 표현하지 못한 연정과 함께 말이다. -37페이지
6.25 전후문학을 통해 송병수의 <쇼리 킴> 등 전쟁으로 인한 청순한 누나가 '양공주'로 전락한 시대적 비극을 묘사한 작품을 보고, 장용학의 <원형의 전설>에서 신화적인 모티프로 사용되는 근친상간에 집중하여 보면서도 부수적으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의 이념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려는 후진국 지식인의 고뇌도 엿보게 되고-46페이지
최근에는 현대사에 대한 책을 몇 권 읽었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위에서 소개된 두 개의 소설도 이 나라의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읽어봐야 할 목록에 추가한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연애소설은 시엔키에비츠의 <쿠오바디스>였다. 기독교 소설 아니냐고? 천만에.-49페이지
쿠오바디스는 '(주여) 어디로 가나이까'라는 의미이고 고전영화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감동적인 연애소설인지는 직접 검증하는 단계를 가져야겠다.
나는 왠지 김연수 하면 동시에 김영하가 같이 떠오른다. 아까 '고양잇과의 글'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김연수가 수줍고 순둥순둥한 고양이 느낌이 강하다면 김영하는 성격 나쁘고 까칠한 고양이 같아서 매력 있다. -56페이지
김영하 작가는 알고 있고 김연수 작가는 처음 들었다. 그래서 바로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길>과 <청춘의 문장들>을 빌렸다. 어떤 스타일의 글이기에 저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글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래 글은 김영갑의 <그 섬에 내가 있었네>를 소개하기 위해 쓴 글이다.(중략) -59페이지
사진작가 고 김영갑이 20년을 섬을 찍었고 루게릭병으로 하루하루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묘지인 갤러리 두모악을 만들었고, 결국은 뼛가루가 되어 그곳에 뿌려졌다는 소개글이 감동을 준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기 힘든 삶을 사신 분이기에 더욱 책을 읽어보고 싶다.
먼저 북홀릭 첫 모임 때 함께 읽은 위화의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있다. 작가의 실제 경험을 통해 문화대혁명 당시 얼마나 황당한 일들이 벌어졌었는지, 반대로 급속하게 천민 자본주의화된 현대 중국 사회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인민, 혁명, 루쉰, 산채, 홀유 등 열 개의 키워드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65페이지
2008년에 1년간 중국 상해에서 머문 경험이 있다. 당시에 중국 영화에 대해서도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문화대혁명과 관련된 영화를 보며 이념이란 것이 국민을 이렇게까지 궁핍하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 놀란 적이 있다. 위화의 책은 문화대혁명 시기부터 현대 중국의 모습까지 담고 있다니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
공대 출신 판사가 추천해준 책도 있다.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다. SF중단편집이라고 분류해야 할 텐데, 작가가 다루는 이야기, 그리고 그 배경을 이루는 수학, 물리학, 언어학, 뇌과학 등 학문의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 -67페이지
테드 창이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조회하니 대만계 작가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 하니 전문성도 대단한 사람이다. 더구나 SF 소설계에서 세계적인 작가라고 하니 그의 책을 모르고 있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공대 출신 입장에서 몰입해서 읽을 것 같다.
이쯤 되니 독서를 주제로 책을 쓰기 시작한 나 자신이 무모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도대체 <책은 도끼다>같은 책은 어떻게 쓰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해 폭포수 쏟아지듯 감상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83페이지
거창한 얘기 이전에 영화 <타짜>에서 아귀가 얘기하듯 도박판에서 밑장 빼다가 걸리면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이 정의인 것이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대법원장이든 누구든. -92페이지
우리 사회에서 점점 '공정'이란 단어가 자주 언급된다. 그 말은 국민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기는 일들이 역으로 많다는 얘기다. 판사나 검사들이 관련된 비리에 대해서는 기소조차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언론에 드러나고, 금융인과 기업인들은 청탁을 받아 취업을 시켜줘 취업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청년들의 기운을 꺾고,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이 국민들의 복지보다 앞에 있는 듯 행동한다.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도 부정한 행위를 하면 동일하게 취급받아야 한다.
평생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잠시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 김용 소설들을 꼽을 것 같다. -115페이지
김용 작가가 한국사람인 줄 알았는데 홍콩 출신 소설가로 1924년생으로 2018년에 사망했다. 어떤 작품이기에 저자가 인생의 재미있는 책이라고 할까 궁금해진다. 무협소설 자체보다도 '이야기의 힘'에 매료되었다고 하니 김용의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다.
오랜만에 투박하지만 오래된 이야기의 맛을 느끼게 해 준 소설이 위화의 <인생>이다. 몇 페이지 읽자마자 작가의 능수능란한 이야기 솜씨와 능청맞은 문체에 정신을 빼앗겼다. -119페이지
위화라는 작가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2008년에 중국에 체류하면서 <형제>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이 위화의 것이라는 데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당시에 중국어를 6개월 정도 배운 뒤라서 중국어로 된 글을 읽어보고 싶어 중국 친구에게 소개해 달라고 한 것이 <형제>였다.
나는 대학 시절 <상실의 시대>가 출간되자마자 거의 환장하도록 좋아하며 몇 번씩이나 읽었다. 이 소설은 하루키 소설 중에서 유일무이한 이질적인 소설이다. -136페이지
하루키 하면 마라톤 하는 작가로 알고 있다. 저자가 환장하도록 읽었다는 <상실의 시대>는 나도 읽은 기억은 나는데 내용은 거의 기억에 없다. 다시 읽으면 아하 하고 생각이 나긴 할 거다.
외국어 학습법에도 이런 이론이 있다. C.I.와 M.I. 가 중요하다는 이론이다. C.I. 는 Comprehensive Input, 즉 자기 수준에서 쓱 읽어서 70~80퍼센트 쉽게 이해되는 외국어 텍스트를 읽으면 나머지 모르는 20~30퍼센트는 뇌 속에서 유추가 가능하므로 학습이 되는데(중략)
M.I. 란 Meaningful Interaction, 즉 유의미한 상호작용이다. 언어란 암기 등 단순 인풋만으로는 내 것이 되지 않고 그걸 써먹어야 내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 인간의 기억 메커니즘과도 연관 있을 것 같다. 책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낀 몇 가지를 글로 적어보거나 남과 수다를 떨어보는 거다. -170페이지
3년 전부터 책을 읽고 블로그에 소감을 올리고 있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는 책을 읽고 나면 한 권의 책을 읽었다는 성취감과 이 책은 이제 내용을 알기 때문에 다시 읽을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보니 극히 일부분만이 내 것으로 흡수된 것임에도 책의 내용을 모두 흡수한 것처럼 착각했다.
지금은 책을 읽으며 주요한 부분에 태그를 붙여두고 블로그에 소감을 적을 때 글을 인용하거나 전후 문맥을 확인하고 있다. 책을 두 번 읽는 효과가 있다. 내용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M.I. 유의미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교나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을 얘기해보라고 하던가 내가 읽고 경험했던 것을 나누려고 한다. 그런 식탁문화가 정착되면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과 습관이 될 것이다.
단지 텍스트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장점이기도 하다. 3D를 넘어 4D까지 제공하는 영상매체는 오감을 압도하는 정보를 쏟아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다. 여백이 없는 것이다. 책은 빈 공간이 많기 때문에 우리의 뇌가 끊임없이 여백을 보충하게 만든다. 상상력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게 만든다. -175페이지
학창 시절에 <소설 허균>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 즈음해서 <허균>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소설을 즐겁게 상상하며 읽었던 감동이 있어서 드라마에 대한 기대도 컸다. 하지만 드라마는 장면을 만들기 위해 이미 작가의 상상력으로 제단 되어 있는 것이라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SNS, 유튜브, 넷플릭스 접속으로 우리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수동적으로 보기만 하는 것보다는 역시 능동적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책이 좋다고 생각한다.
'집단지성'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남용하는 이들은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다시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나치 시대의 성실하고 평범한 독일인들에게 과연 집단지성이 발동했나? 개인이든 집단이든 지성적으로 사고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야만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의 직접민주주의란 공포일뿐이다.-176페이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커피 두 잔 값으로 타인의 삶 중에서 가장 빛나는 조각들을 엿보는 것이다. 그것도 쓴 사람 본인이 열심히 고르고 고른... -183페이지
백퍼 공감 가는 글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도구가 책이다. 또한 타인의 경험까지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커피 두 잔 값으로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그 공감이 기존의 세계를 부숴버릴 충격으로 다가왔던 순간들이 있다. 고등학생 때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을 읽었던 순간, 1980년 광주에서 이른바 국가가 시민들에게 어떤 일을 행하였는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중략)
대한민국은, 그런 곳이, 아니었습니다. 난 그래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권한다. 교과서에 몇 줄 추가된 설명만으로는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괴물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190페이지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같이 저성장 시대에 절망한 젊은이들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지 보여주는 책들을 읽는다.-191페이지
군사정권 시절 언론을 통제하며 국민들의 알 권리를 우롱하듯이 자기들의 입맛에 맞게 국민들을 길들였다. 하지만 세상에 비밀이란 없는 것이다. 결국은 관련된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다. 다만 합당한 죄과를 치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국가라는 것이 일부 국민에게는 역할을 하지만 많은 국민들에게는 오히려 무서운 괴물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점차 나아지고 있지만 불평등이 커지고 있어 염려가 되는 부분도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타인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무지는 공포와 혐오를 낳는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들의 모든 언어가 소음으로만 들리고 그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으로 느껴진다. -193페이지
요즘 대한민국 사회가 나와 의견이 다른 타인에 대한 이해의 노력이 사라지고 있는 듯 보인다. 유튜브를 종종 보는데 여기에 있는 추천 기능이 이런 분위기를 악화시킨다. 좌와 우로 분리된 정치 지지층을 보면 좌에 관련된 것을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주로 보는 채널을 추천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강화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서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다.
독방에 갇힌 무기수가 있다. 어느 날 그는 우연찮게 한 영문학 교수를 만나 셰익스피어 강의를 듣게 된다. 이후 십 년간 이어진 수업의 결과, 무기수는 삶의 구원을 얻는다. 실로 놀라운 이 얘긴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라는 책의 줄거리다. -196페이지
히스 형제의 책 <스위치>에 어린 자녀를 구타해 골절상을 입히는 등 아동학대 부모들을 대상으로 행동치료를 수행한 사례가 나온다. -202페이지
나는 '자기 객관화'에 도움이 되는 책이야말로 법조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207페이지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 같은 책은 법원과 검찰의 권위주의적인 조직문화를 세세히 해부한다. 민주주의를 수호할 최후의 보루라는 곳들이 서열주의, 상명하복, 튀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 평판에 대한 두려움, 청탁 문화, 아랫사람은 쥐어짜면서도 윗사람에게는 순종적인 이중성으로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다양한 내부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발하고 있다. -209페이지
현재의 검찰총장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조직에 충성한다'라고 해서 크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검사들이 조직의 권력의 그늘 아래서 보여주는 좋지 않은 모습들은 저자가 언급한 것들이 사실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대표작 <속죄 Atonement>는 키리 나이틀리, 제임스 매커보이 주연의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진실, 오해, 속죄, 문학의 본질 등 여러 실타래를 촘촘히 짜넣은 작품이지만(중략) -212페이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정의감이 아니다. 오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다.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감이야말로 가장 냉혹한 범죄자일 수 있다. -219페이지
법관이 내리는 판결에 따라 피의자의 범인이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판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 추정이 아니라 건조하게 사실만을 가지고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판으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억울하게 형을 살기도 한다. 그래서 저자는 지나친 정의감으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경계한다.
'미래에 우리는 무슨 일을 하지?'라는 질문만 하지 말고 '그런데 우리는 꼭 일을 해야 되냐? 그런데 일이라는 게 뭐지?'라는 질문도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왜 기계에게 일을 빼앗기는 상상만 할 뿐 기계에게 일을 시키고 우리는 노는 상상은 하지 못할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시대에 우리가 '일'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과거 시대 사람들 눈에는 그냥 쓸데없는 놀이나 미친 짓일 뿐일 거다.-228페이지
미래를 바꾸는 방법은 현재의 사회부터 바꾸는 것이다. 미래의 사회가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쓸모'가 없어진 인간을 어떻게 대우할지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 구조를 보면 된다. -229페이지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현재의 일이 미래에도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므로 과학의 발달에 따라 사라지는 일자리에 집중하지 말고 새롭게 생길 일자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를 바람직한 사회로 만들고 싶으면 당장 지금을 바라보라고 한다. 코로나로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어려운 살림의 사람들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에 이들에 대한 처우는 기본적인 생활조차도 힘든 상황이다.
그때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에서 읽은 구절들을 불현듯 떠올렸다. "근대화가 우리 머릿속에 새긴 집단적 무의식인지 또는 자본주의의 의식화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게 있다. 노는 것은 항상 죄악시됐다."-234페이지
우리는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놀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렵게 취업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일을 하기 위해 사는 모양이 된다. 종종 자신의 삶의 바라봐야 한다. 일을 위해 살고 있는지 놀이를 위해 살고 있는지 우리를 바라보고 점검해야 한다.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책 <이동진 독서법>을 읽다가 깊이 공감하는 구절을 만났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라는 구절이다. -252페이지
나 역시도 이 구절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의 삶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냐에 따라 중요하다. 행복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 행복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한 구절이지만 이 속에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마지막에 소개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1920년생으로 100세가 넘었음에도 건강하다고 한다. 그 비결은 우선 '부지런함'이라고 하고 두 번째는 '거리 두기'라고 한다. 총장이나 장관과 같은 감투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읽고, 책을 쓰며 살고 있다. 노년에 건강하게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기를 누구나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하고 감투에 대해 초연해야 한다는 사실로 책은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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