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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278]고도를 기다리며_자유와 평화를 위한 기다림의 책

by bandiburi 2020. 9. 28.

매월 있는 회사 강의에서 도입부에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책에서 인용된 부분이 나왔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란 책이 뭘까? '고도'란 것이 높은 곳인가? 외로운 섬? 사람 이름인가? 궁금했습니다. 뭐길래 막연한 이상향처럼 제목에 붙여놓은 것일까? 한자어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막상 책의 해설을 보니 Godot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역을 '고도'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비대면으로 빌린 책 <고도를 기다리며>를 펼친 순간 익숙하지 않은 연극 대본 형식입니다. 등장인물도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둘입니다. 중간에 포조와 럭키가 잠깐 등장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단조로움, 기다림, 외로움, 망각, 반복적인 언어로 인한 권태 등입니다. 소년이 등장해 고도는 내일 올 거라고 하지만 내일은 또 다른 내일로 이어집니다. 

고도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작가가 2차 대전 당시에 피신 생활을 경험하며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고도란 전쟁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을까, 평화, 안정된 환경 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짧은 책이지만 작가가 처했던 1940년대를 상상해 봅니다. 짧기에 더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인터넷에 책에 대해 조회하다보니 이 작품을 캘리포니아의 한 교도소에서 연극으로 공연했더니 당초에는 폭동이 날까 봐 우려했는데 많은 수감자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어렵고 따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왜 수감자들에게는 감동을 줬을까요? 그들도 자신들만의 고도(자유)를 기다리고 있기에 충분히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심정을 이해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늘 떠나자고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그들, 한 그루의 나무에 목을 매자고 하지만 살아있는 그들입니다. 

또한 기다림 속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정말 우리는 생각하므로 존재하기도 하지만 말함으로써 존재합니다. 어려운 책이지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라서 좋습니다.

다음은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블라디미르 :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자고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잠에서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말하게 될지?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렸다고 말하게 될까? 포조가 그의 짐꾼을 데리고 가다가 우리에게 얘기를 했다고 말하게 될까? 아마 그렇겠지. 하지만 이 모든 게 어느 정도나 사실일까? (151)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중립국 국민이라는 안전한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돕는 한편 비점령 지역인 남프랑스 보클루즈의 농가에 피신해 작품 집필을 계속한다. 그때 쓴 소설이 그의 두 번째 소설 <와트>였으며, 당시의 피신 생활 경험은 <고도>의 밑그림이 된다. 그는 보클루즈에 숨어 살며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 속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한 것이다.(162)

 미국에서의 초연 때 연출자 알랭 슈나이더가 베케트에게 고도가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베케트는 <내가 그걸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작가 자신이 그와 같은 대답을 한 이상 관객들 사이에 물음이 끊이지 않았고, 그 해답 역시 물음만큼이나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고도는 신이다, 자유다, 빵이다, 희망이다.... 고도 Godot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의 Dieu를 하나로 압축한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어쨌건 고도에 대한 정의는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 각자에게 맡겨진 셈이다. (164)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말이다. 말은 동작을 유발하고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것이 말해질 때 비로소 구원이 된다. 이 혼돈과 불모의 세계에서 나날이 함몰되어 가는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기다림을 죽이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생각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말함으로써 존재한다. (168)


독서습관278_고도를 기다리며_사뮈엘 베케트_2002_민음사(200927)


■ 저자 : 사뮤엘 베케트(1906_1989)

1906년 아일랜드 폭스로크의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남
1927년 트리니티 칼리지 졸업.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전공. 제임스 조이스와 교류 시작
1930년 첫 시집 <호로스코프> 출간
1931년 <프루스트 론>을 발표하고 대학 강단에 섬
1933년 부친 사망. 자신의 건강 악화로 여행과 집필에만 전념
1938년 첫 소설 <머피> 출간
1939년 2차 대전 중 프랑스에서 레지스탕스에 참여
1942년 나치를 피해 남프랑스 보클루즈의 농가에 피신하여 작품 구상 및 집필
1952년 파리에서 <고도를 기다리며>출간
1953년 바빌론 소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초연
1969년 <고도를 기다리며>로 노벨 문학상 수상. 수상식 참가를 비롯하여 일체의 인터뷰 거부
1982년 소련 독재 체제에 항거하다 투옥된 전 체코 대통령 하벨에게 <파국> 헌정
1989년 부인이 사망한 지 5개월 후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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