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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269_면화를 중심으로 세계의 발전을 보여주는 책_면화의 제국_스벤 베커트_2018_휴머니스트(200830)

by bandiburi 2020. 9. 13.

 

■ 저자: 스벤 베커트 Sven Beckert

콜럼비아대학교에서 자본주의의 정치 경제 사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 경제 사회 및 초국가적 관점을 포함한 자본주의의 역사를 중심으로 19세기 미국사를 연구하고 있으며, 미국사와 글로벌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노동사 등을 가르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자본주의 연구 프로그램과 웨더헤드 이니셔티브 글로벌 히스토리 연구팀의 공동 연구 책임 등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자본주의 역사에서도 노동과 민주주의, 경제 엘리트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 <부자 도시: 뉴욕시와 미국 부르주아의 통합, 1850~1896 The Monied Metropolis: New York City and the Consolidation of the American Bourgeoisie, 1850~1896>과 <미국 부르주아: 19세기의 차이와 정체성 The American Bourgeoisie: Distinction and Identity in the Nineteenth Century>이 있으며, '세계 속의 미국 America in the World' 시리즈와 <글로벌한 글로벌 히스토리 Global History, Globally>를 공동 편집했다. 

 

■ 소감

<소득의 미래>에서 추천했던 책 <면화의 제국>을 정약용 도서관에서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신청을 해서 받았습니다. 총 8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이어서 순간 당황했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권씩은 읽으려는데 일주일에 읽을 수 있을까 고민됐습니다. 더구나 지난 일주일은 회사 업무로 바쁜 한 주여서 주중에는 거의 손도 대지 못하고 주말을 이용해 읽었습니다. 

'면화'라는 식물이 세계 역사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디테일한 저자의 설명과 함께 따라가다 보면 마치 박물관에 해설사를 동행해서 따라가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읽어간다면 큰 역사의 틀 안에서 유럽, 미국, 인도, 남미, 아프리카의 역사를 면화의 관점에서 정리하도록 도와줍니다. 

학교에서 시험을 위해 암기 위주로 배웠던 역사보다 훨씬 흥미진진합니다. 저는 특히 미국의 남북전쟁이 면산업의 정점에 있었던 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노예 노동을 통해 면화 플랜테이션을 운영했던 농장주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철도와 철강 등 산업이 발달하고 있는 상황하에서 남부는 유럽에 면화를 수출하는 산업에 머무르고 있었고 남북전쟁을 통해 수출이 막히고 유럽의 면화산업이 직격탄을 맞고, 인도와 브라질 등으로 대체지역이 개발되고, 노예해방이 선언되면서 남부의 플랜테이션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남북전쟁을 링컨과 노예해방으로만 연관 지었던 생각의 폭을 넓혀줬습니다. 

 

면화 제국을 이끌어가던 영국의 리버풀은 이제 박물관으로서 자취만 남았습니다. 노동법으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더 이상 방직 방적 공장의 경쟁력을 갖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중국에서 저렴한 면화와 저가의 노동력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의 주공급처가 되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여전히 소년소녀들에게 면화 채취를 시키고 있고 면화에 공급하기 위한 물을 얻기 위해 아랄해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부분은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용 중에 일본이 19세기 후반부터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에 버금가는 글로벌 플레이어였다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자국의 면화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중국에서, 조선에서 면화를 재배하도록 하고 방적 방직업을 갖추기 위해 다른 나라들의 사례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한반도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비교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현재는 평균적으로 살만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면화의 제국>과 같은 과거의 사례도 알고, 미래를 이끌어갈 산업의 트렌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높여가길 바랍니다. 물론 확장하면 지구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저자의 풍부한 지식이 담겨 있으며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면화 Cotton'이라는 소재로 세계사를 조망하는 기회가 되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책에서 발췌

24페이지) 자본주의를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임금노동자를 떠올린다. 하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자유노동이 아니라 노예노동에 기반했다. 산업자본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계약과 시장을 먼저 떠올리지만 초기 자본주의는 거의 폭력과 신체적 구속에 의지했다. 근대의 자본주의는 재산권을 우선시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특징은 확고한 소유권과 대규모 약탈이었다. 


29) 이 보송보송한 흰 섬유가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식물 자체가 역사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인다면 인도의 방직공, 앨라배마의 노예, 나일강 삼각주 지역 여러 도시의 그리스 상인, 랭커셔의 고도로 조직된 숙련 노동자 등 세계 전역에서 면화와 함께 일생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48) 아프리카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아시아 전역에서 면화의 재배와 면직물 제조기술이 전파되는 데에 이슬람교의 확산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검소함을 주장하는 이슬람의 종교적 요구로 면직물이 "일상적인 의류 품목"이 되었기 때문이다. 


49) 면화는 원대(1271~1368)에 이르러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그 시기에 면화가 모시를 실질적으로 대체했다. 모시는 비단과 함께 옷감을 만드는 섬유로서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의 생활에 널리 이용되었다. 


55) 세금 납부 수단으로 실용적이던 면포는 중국에서는 화폐로도 사용되었다. 그런가하면 면직물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이상적인 교환수단이었다. 면화와 달리 면직물은 장거리를 쉽게 운송할 수도 있고 썩지 않아서 가치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58) 역사가 베벌리 르미르Beverly Lemire의 표현대로, 인도의 면직물은 17세기를 시작으로 사실상 '최초의 글로벌 상품'이 되었다. 


67) 이탈리아 북부 면산업의 성장은 주로 이슬람 세계의 면화와 면직물 제조기술에 대한 접근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의존성은 중요한 취약점이기도 했다. 이탈리아 북부의 면산업은 원료 산지에서 동떨어져 있었고, 면화 재배를 통제할 수 없었다. 


87) 1600년에 종교적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를 떠나온 망명객들이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면직물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면화를 언급한 가장 빠른 사례는 1601년으로~(중략)


106) 사실 인도와 중국, 또는 아스테카와 잉카 제국은 전 지구적 지배에 전혀 다가가지 못했으며, 지구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물건의 생산 방법을 혁신하는 문제에는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무력을 동원한 유럽의 자본가와 풍부한 자본을 보유한 유럽 국가는 16세기를 시작으로 세계 면산업을 재편해나갔다. 


118) 현대 역사가들은 물론이고 동시대의 관찰자들도 그레그의 모험적인 사업뿐 아니라 왜 1780년대에 영국 북부에서 훨씬 더 폭넓은 산업혁명이 '발생'했는지를 설명해주는 여러 이유를 찾아냈다. (중략)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정작 산업혁명의 이야기에 핵심이 되는 부분은 빠져 있다. 바로 산업혁명이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전쟁 자본주의 체제에 기대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126) 그러나 급격히 늘어난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였고, 그 기술들을 중요하게 여긴 영국 정부는 1786년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기술 유출을 범죄행위로 간주했다. 그 후로 기술적 진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증대함으로써 이윤이 창출되었고, 이는 사실상 산업자본주의의 결정적인 특징이 되었다. 


141) 에드워드 베인스에 따르면, 영국은 18세기 말~19세기 초에 대서양에서의 패권을 확고히 하게 된 전쟁을 치르면서 그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무역 수입에 크게 의지했고, 면직물은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다. 


165) 산업혁명에 너무나도 필수적인 공급의 탄력성을 유지하려면 원격지의 토지와 외부 노동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까라서 서양이 우위를 얻게 된 데에는 글로벌 경제의 연결 관계를 재편하고 무력으로 토지와 노동력을 수탈한 유럽의 국가들과 자본가들의 능력이 결정적이었다. 


185) 면화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의 탐욕스러운 요구가 신생 국가의 정치를 지배했다. 그들은 새로운 토지를 획득하고 공지로 만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강제노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에 의지해야 했다. 


220) "유럽의 물질적 번영이 면화 가닥에 달려 있다. 노예제가 갑작스럽게 폐지된다면, 면화 생산은 단번에 6분의 5로 줄어들고 면산업은 완전히 몰락할 것이다."


253) 유럽 대륙의 면산업이 탄생을 앞두고 진통을 겪고 있던 바로 그때, 나폴레옹의 대륙 봉쇄령이 잉글랜드 제조업자들의 파괴적 경쟁으로부터 유럽을 격리시켰다. 그리고 프랑스의 방적 방직 사업은 곧 도약했다. 


272) 이는 뉴잉글랜드 면화 소비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브라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노예 경제가 번성한 탓에 남부에서 면공업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했다. 노예 경제는 자본, 노동, 기업인의 재능을 플랜테이션 농장에 집중시켰고, 시장 규모를 제한했으며, 유럽의 이주민들이 그 지역을 매력 없는 곳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백인 자영농들에게 임금노동을 강요하지 못했다. 


294) 노동자들이 토지에 접근할 수 없게 되고 가내제조업이 쇠퇴하자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는 일이 적잖게 일어났다. 면공업의 산업화는 흔히 국경을 가로지른 거대한 이주를 초래했다. 


311) 노동자들을 프롤레타리아로 만들려고 분투하는 과정에서 산업가들은 국가에 훨씬 더 크게 의지하게 되었고, 이 점은 산업가들이 지닌 힘의 한계를 뚜렷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자본이 영토화하고 산업가들이 국민국가에 의존하면서 국가와 유착이 더 긴밀해진 덕분에 노동자들 역시 노동조건 개선과 임금 향상을 위해 집단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334) 생산의 기계화로 대규모 수요가 지속됨에 따라 필수 원료의 공급 과정이 어느 때보다도 더욱 추상화되었는데, 이로 인해 제조업자들은 가격 변동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들의 완성품 가격을 결정할 수 있었다. 


348) 신용이 없었다면 면화의 제국은 무너졌을 것이다. 사실 도매상의 담보권 행사로 재산을 잃은 플랜테이션 농장주들은 너무 잘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면화의 제국 중심에는 신용이 있었다. 


378) 유럽의 제조업자들과 상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기고 수십만 명의 공장노동자에게는 가혹한 노동 환경을 안긴 면산업은, 미국을 세계 경제의 중심무대로 밀어 올리며 "지금껏 미국에서 계획되거나 실현되었던 것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농산업"을 구축했다. 


400) 유럽의 일부 면제조업자들과 상인들은 남부연합이 연방으로부터 영구 분리되어 국제적으로 공인받고, 그리하여 계속해서 노예들이 면화를 재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그들은 면화의 제국이 노예제에 의지하는 것은 예측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라고 믿었다. 


403) 수어드는 노예해방을 선언하면 유럽이 남부연합을 승인할까봐 염려했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수어드는 미국의 분쟁이 잠재적으로 글로벌 자본주의 안에서 가진 혁명적 함의를 깨달았고 이를 경고했던 것이다. 


406)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남부의 완강한 독립 요구와 노예제에 대한 집착을 세계경제 붕괴의 진정한 원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결국 남부 플랜테이션 농장주 및 그들의 정부와 달리, 면화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은 미국 남부라는 특정 면화 공급처에 투자하지 않았으며, 노예제라는 특정 면화 생산의 체제에도 투자하지 않았다. 


447) 지구 전역의 농촌지역을 재편하려는 이 모든 투쟁을 관통하는 한 가지 공통점은 이제 국가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때는 노예노동에 더없이 중요했던 노예주의 뻔뻔스러운 물리적 폭력이 새로운 형태의 강제력으로, 국가가 나서서 제도화하고 시행한 새로운 형태의 강제력으로 대체되었다. 그렇다고 물리적 폭력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계약과 법, 세금에서 오는 압력에 비해 물리적 폭력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국가는 영토 안에서 새로운 주권을 발전시키면서 노동에 대한 그 주권도 확대했고 제도라는 산업자본주의의 새로운 힘을 증명했다. 


590) 일본 산업개발국의 이노우에 쇼조 역시 1870년 독일 유학 중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는 우리나라를 유럽이나 미국과 대등하게 만들고 싶다. (중략) 나는 현서양 국가들의 부, 군사력, 문명, 계몽의 원천을 찾고자 세계의 역사와 지리에 관련된 것들을 읽으면서 그 원천이 기술력, 산업, 상업, 해외무역에 있음을 깨달았다. 이런 교훈을 적용하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산업에 관해 가르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다양한 상품을 제조하여 수출하고 우리에게 부족한 물품은 수입하면서 해외로부터 부를 축적할 수 있다. 


618) 1905년에 인도 전역의 산업가들이 참가한 제1차 인도산업협회 회의에서는 "해외 상품을 선호하는 인도에서 국내 제조품의 사용을 독려하고 확대하기로" 결의했다. 이러한 요구는 인도의 자급, 특히 면화의 자급을 주장했던 스와데시 Swadeshi 운동과 연결되었고, 면산업계의 기업가들과 신진 정치 엘리트들이 입장을 상징하게 되었다. 


637) 우즈베키스탄의 한 면화 농부는 언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왜 면화를 재배하고 있으며, 그 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더욱이 유전자 변형 면화가 새롭게 등장해 많은 농민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전자 변형 면화는 종자를 구매해 관리하는 비용은 높지만 생산성이 훨씬 높다. 그 때문에 면화의 가격은 낮아지고 영농비용은 높아졌다. 


647) 역사적으로 볼 때, 자본가들의 가장 강력한 힘의 원천은 바로 매우 강력한 국가에 의지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본주의 역사에서 대체로 국가에 대한 의존성은 자본가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었던 통로 역시 국가에 대한 자본가들의 의존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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