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으로 내려와 혼자서 생활하면서 생긴 습관이 있다. 회사 식당에서 19시 30분경 저녁식사를 하고 20시부터 21시까지 운동을 한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10분 거리에 있는 회사 숙소로 걷는다. 이 때가 가족들과 통화하는 시간이다. 주로 아내에게 전화한다.
5월이라 밤공기가 시원해서 아내는 아파트 작은 운동장에서 워킹을 하며 전화를 받는다. 다이어트의 목표도 있다. 5월 7일 오늘밤에는 큰아들이 화제가 되었다. 고3이 된 큰아들의 진로는 부부의 화제 1순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큰아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일요일에 아빠가 고쳐준 자전거를 타고 구리로 농구하러 갔다고 한다.
운동을 좋아하고 건강한 신체와 부모와 주변 사람들과 유쾌하게 식사하며 농담도 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 준 것에 고맙게 생각한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갈등을 빚으며 스스로 하겠다는 아이를 기다려줬다. 어느새 고3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기다린다. 아이를 둘러싼 많은 시간들이 손에 쥐어지지 않는 공기와 같이 걸러지지 않은 채 흘러가 버린다. 아이의 손에서, 아이의 발에서, 아이의 입에서, 아이의 몸에서, 아이의 귀에서 그 시간들이 구체적인 경험으로 변화되길 기다린다.
아이는 아직까지 힘들어 한다. 한 가지를 오랜 시간 집중하기를 어려워 한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고 세세한 변화를 눈치 채는 것이 느린 편이다. 대부분의 사내아이들처럼 정리하는 것을 쉬 잊어 버린다. 자신만의 배우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한 듯 보인다.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의 기회가 많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쇠귀에 경읽기다. 나는 아들에게서 느끼는 바를 적는다.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 적지 않은 것은 모두 장점이고 자랑이다. 잘 생긴 외모부터 선한 양심, 그리고 부모를 사랑하는 것 까지.
아내와 아이의 대학진학 문제로 다퉜다. 한동대를 가고 싶어 하는데 교육부 재평가 대상에 한동대가 들러가서 걱정이란다. 교육부는 정시를 30%가까이 늘이고자 하니 수시 위주의 한동대는 국가 지원 재평가 대상이 되는 게 이 나라에선 당연하다. 보수나 진보나 길들이기는 똑같다. 아내는 지방대학이 갈수록 어려워 진다는데 국가 지원을 못받아 한동대도 문을 닫는 것 아니냐며 잘못된 선택 가능성에 대해 걱정한다.
부모로서 아이의 진로를 걱정하고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학생이 움직이지 않고 도와달라 헬프를 외치지 않는다면 먼저 돕기 전에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얘기했더니 아내는 무슨 아빠가 남의 얘기하듯 하냐며 늘 그렇듯 화를 낸다. 아내에게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것 같다. 아니면 자식으로 인한 쪽팔림은 면하자는 내면의 자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의 눈으로 살고 싶지 않다. 아이가 지금은 대학에 대한 절실함이 없어서 설렁설렁 살고 있지만 내 아들에게도 맹렬한 힘으로 뜨거운 열정으로 자신의 시간을 성숙한 모습으로 채워갈 때가 곧 온다. 나는 확신한다. 그 때 도움을 청하면 부모로서 인생 선배로서 기꺼이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부어 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에게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래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오늘도 아내와 언쟁을 했다. 늘 정없는 아빠로 낙인찍힌 채 꾸중을 듣는다. 서울과 포항에서 천 리를 떨어져 지내면서도 가족이라고 전화를 한다. 서로에게 하루를 보내며 지쳤을 어깻죽지를 말로라도 위로하고 위로받기 위해 전화를 한다. 그러나 오늘처럼 아내도 나도 서로에 대한 잘잘못이 아닌 아들의 진로에 대한 다른 접근방식에 대해 비판하다 통화가 끝나고나면 어깻죽지는 털썩 내려앉는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베낭은 무거워지고 숙소로 향하던 발걸음은 집 주변을 뱅뱅 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곳 적막하고 어두운 포항 외각지역에 서 있는가. 실존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다.
회사생활 20년을 막 지났다. 아이들이 고3, 고2, 중3이 되었다. 주말에 남양주 집으로 가서 토요일과 일요일 낮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체로 소중하다. 나에게 주어진 절대시간 주말은 오로지 나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사용하고 싶다. 늘 다니던 교회활동도 부질없어 보인다. 주말의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4년 정도가 남았다. 4년 후에는 회사에 더 이상 얽메이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가고 싶다. 그렇다고 감정에 치우쳐서 안락한 캐시카우인 대기업을 준비없이 나서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아이들에게도 도전의식과 안일한 코쿤생활을 떠난 다이나믹한 두근거림을 주고 싶다.
그래서 기운이 빠지는 밤시간이지만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40분이 넘도록 엄지족 흔적을 남긴다. 이런 저런 생각을 적다보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4년이란 시간을 꼭꼭 채우기 위해 지금부터 건강을 지키고 블로그를 활용한 변화하는 모습을 기록해본다.
아이들의 인생이 잘 되기를 바라지만 실패와 좌절의 과정이 없기를 바라진 않는다. 나 자신이 비교적 순탄한 이력을 가져왔다. 운이 좋은 시대에 태어났고 큰 리스크를 지지않는 길을 택했었다. 보수적으로 두드리며 다리를 건너려고 했다. 남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좋다는 방법을 나도 채용해서 일부는 덕을 봤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자립해야할 시기가 온다.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비상해야 한다. 부모의 집 근처를 빙빙 돌면서 도전하지 않는 아이는 제대로 된 성인이 아니라고 본다. 나는 내 세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하고 실천하길 기대한다. 금전적으로도 자립을 선언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의 호주머니를 바라보고 지갑을 욕심낸다면 일단은 실패작이다. 작은 돈이라도 스스로 벌려구 노력해야 한다. 아르바이트라도 해봐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20대에는 자신의 꿈을 위해 필요한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지식이 필요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통틀어서 얻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의 발달로 충분히 마음만 있으면 이룰 수 있다. 주변에 널려 있는 도서관은 정보의 창고로 우리의 빙문을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
고3 아들 진로에 대한 언쟁으로 비롯된 아내와의 감정소모는 이렇게 글로 승화시켰다. 이제 기러기 아빠가 잠을 청할 시간이다. 밤 11시!
다음에는 기러기 아빠의 집을 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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