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아돌프 히틀러라는 독재자의 잘못된 판단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음과 상실의 고통을 초래했다. 가족과 사별하는 고통은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나치 치하에서 처형당한 한스 숄과 조피 숄, 두 동생의 활동을 기록한 잉게 숄의 작품이다.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의 지도자의 역할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는 시기에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국가의 자원을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제대로 사용하도록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선출했다. 국가를 잘 이끌어서 살기 좋은 행복한 나라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지도자가 히틀러처럼 국민보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국가를 이용한다면 그 끝은 암담하다. 이 나라의 2024년 12월 현재의 모습도 히틀러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모양이다.
한스 숄과 조피 숄은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재에 맞서 싸웠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저항했다. 이를 위해 한스 숄과 친구들은 '백장미'단을 만들었다. 뮌헨대학교를 시작으로 주요 지역을 돌며 자신들의 의견이 담긴 선전물을 비밀리에 배포했다. 선전물에 담긴 내용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유효한 내용이다. 마치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선전물을 연상시킨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스로 옳은 길이라고 생각하는 고난의 길을 걷다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은 한스 숄과 조피 숄, 그리고 함께 처형당한 의인들의 위대함을 되새긴다. 잉게 숄의 입장이 되어 가슴 먹먹하게 읽게 되는 책이다. 그녀의 가슴속 한을 느낄 수 있다. 그녀는 이 모든 감정을 글로 승화했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아래에 인용했다.
감동적인 장문의 시가 있어 별도로 포스팅하고 링크를 걸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한스 숄, 조피 숄 남매와 그들의 뮌헨 대학교 학우들이 펼친 정치적 '저항 운동'으로부터 독자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인간'은 그 어떤 이유로도 특정한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에서 수확할 수 있는 가장 큰 정신적 열매가 아닐까? (195~196)
그때까지 한 점의 불꽃처럼 미미했던 의심이 마침내 깊은 슬픔으로 변하더니 결국 분노의 불길로 타오르고야 말았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순수한 믿음의 세계가 산산이 부서져 조각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조국을 이런 모습으로 망가뜨렸단 말인가요? 자유도 거짓, 번영의 삶도 거짓, 조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발전과 행복도 거짓이었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의 문에 빗장을 걸어 모든 것을 거대한 감옥에 가둬 놓듯 봉쇄해 버린 것입니다. (25)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발전과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에게 있는가. 자연스럽게 성찰로 이어지는 문장이다.
그들의 손에서는 책이 떠나는 날이 없었습니다. 책은 그들에게 내면세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넓혀주고 바깥세상의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릴케, 슈테판 게오르게, 노자, 헤르만 헤세의 작품집과 로마 시대의 영웅 이야기 같은 책들을 읽었습니다. (31)
독서의 장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나치에 맞서는 '백장미' 조직의 저항 행위들은 슈릭과 한스의 연합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확신은 변함없습니다. (47)
한스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러더니 작은 서류 가방 속에서 타자기로 기록된 종이 한 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673
언제쯤이면 그날이 올까요? 평범하게 살아가는 수백만 시민들의 작은 행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이 나라는 언제쯤 깨닫게 될까요? 언제쯤이면 이 나라가 모든 사람의 인생과 소박한 일상을 망각해버리는 이념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요? 눈에 띄진 않는다고 해도 개인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평화를 수호하려는 노력의 발걸음이 무력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임을 이 나라는 언제쯤 알게 될까요? (90)
소박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전쟁의 승리보다 한 사람의 자유와 행복이 소중하지 않은가. 개인의 가치를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끔찍하고 역겨운 시대는 모든 것을 질식시키고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는 생존을 위한 투쟁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102)
그리고 다시 한 번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아주 뚜렷이 구체적으로 기록해두어야 할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옹호해야만 하는 것과 지켜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깨어 있는 정신에 의해 움직이는 독립적인 사람들, 자유로운 사람들이다."라는 사실입니다. (117)
너무나 아름다운 문장이다. 아래의 문장들도 유사한 내용을 주장한다. 전쟁과 폭력의 시대는 암울하다.
독일 국민의 정신은 가장 깊은 근본에서부터 타락하고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역사의 굽이마다 '합법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많았지만 그 '합법성'의 실체가 불확실하고 의심스러운 것임에도 덮어놓고 쉽사리 믿어버리면서 인간만이 갖고 있는 가장 숭고한 가치를,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드높여 주는 그 숭고한 가치를, 즉 인간의 자유와 자유의지를 희생시켰기 때문입니다. (158)
지금의 독일은 천천히 목을 죄어오는 폭력, 사람을 기만하는 폭력,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폭력으로 각 개인을 자유롭지 못한 정신적 감옥 속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자유를 폭력의 사슬에 결박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불행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159)
국가의 토대는 '정의'이며 국가의 지고한 법칙은 만인의 유익이 되어야만 합니다. 국가는 하느님의 질서와 닮은 것을 표현해야 합니다. 모든 유토피아의 지고한 가치인 '신국神國'은 국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모범상입니다. (...) 인간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공동생활과 협력 관계를 이루어 가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과 자신의 일상적 행복을 자주적이고 자발적으로 성취하고자 힘써야만 합니다. (175)
우리는 전쟁이 끝난 뒤의 세월을 살아갈 미래 세대의 가슴에 엄연한 사실의 증표를 사랑의 마음으로 새겨주어야 합니다. 나치가 통치하던 그 시절에는 털끝만큼의 기쁨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187~188)
우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묻게 된다. 털끝만큼의 기쁨이 없었던 나치 통치 시기로는 절대 다시 돌아가지 말아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독서습관 988_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_잉게 숄_2012_평단문화사(241221)
■ 저자: 잉게 숄 Inge Aicher - Scholl (1917~1988)
잉게 숄은 1917년 독일의 '잉거스하임-알텐뮌스터'에서 로베르트 숄의 맏딸로 태어났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의 폭압 정치에 맞서 저항 운동을 펼쳤던 대학생 저항 단체 '백장미'단의 리더 한스 숄의 누나이자 조피 숄의 언니이다.
뮌헨 대학교의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룬 '백장미' 단은 유대인들에 대한 나치의 집단 학살과 비인간적인 전쟁의 죄악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던 중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뮌헨의 '슈타델하임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국민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형에 처해졌다. '국가반역죄'를 지은 자들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잉게 숄과 막냇동생 베르너 숄 그리고 부모 또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나 전쟁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소설가, 교육가, 문화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잉게 숄은 1946년부터 1978년까지 독일의 '울름 시민대학'을 설립하였다. 잉게 숄은 20세기 후반의 인생을 '평화 운동'에 바쳤던 소설가이다. 1998년 8월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잉게 숄은 '백장미' 단에 관한 수많은 책을 썼다. 그중 실명소설 <백장미>는 대표적 작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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