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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990]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_20세기 관점에서 보는 그리스 신화

by bandiburi 2024. 12. 23.

다른 책에서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등장인물 중에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이 결혼에 대해 알고 싶어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이란 제목의 책을 골랐다.
책의 목차를 보니 여러 그리스신화 이야기를 담고 있고,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은 제말 마지막에 위치했다.

등장인물은 역시나 제우스, 헤라클레스, 헬레나, 오디세우스 등 대부분이 익숙하다.
동일한 신화라도 어떻게 다시 쓰느냐에 따라 독자에게 전달되는 느낌은 다르다.

페이지를 넘기며 저자의 박식함에 놀란다.
산재되어 있는 신화에 관한 정보를 서로 연결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냈다.
그리스신화에 대한 것이지만 내용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먼저 저자인 로베르토 칼라소에 대한 설명을 읽었다. 천재였구나 생각했다.
그는 이탈리에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전 작품을 13세이 읽었다.
독일어로 괴테의 전 작품을 14세이 읽었다.
칼라소는 언어의 재능과 문학에 대한 재능을 겸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내공을 바탕으로 이 책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을 썼다.
풍성한 내용을 담고 있어 일부는 독자가 감당하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짧은 시간에 읽기보다는 전체적으로 읽고 기회가 있을 때 찾아보면 좋겠다.

좋은 책은 몇 번을 반복해서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은 몇 번을 반복해서 볼 때 그리스신화를 자기 것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져올 수 있겠다.


테베에서 벌어진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식 연회처럼 신과 인간이 한 자리에 모이는 때도 있다. 신과 인간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때로는 제우스와 카드모스처럼 함께 모험을 하기도 했다. 그 모험에서 오히려 인간 카드모스가 신에게 귀중한 도움을 주었다. 우주에서의 역할이 이미 나누어져 있으므로 신과 인간은 몫을 다투지 않았다. 그들은 축제 때에만 함께 모이며 축제가 끝나면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71)

신화를 보며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신들과 연약해 보이는 인간의 상호작용이 이어진다. 컴퓨터도, 오늘날 같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없던 시절에 오직 구전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신이 되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담겨 있는 이야기가 신화라고 생각한다. 

헤라클레스에게 여자는 고통받아야 할 운명의 일부였다. 그는 아우게에게 했던 것처럼 여자들을 겁탈할 수 도 있다. 테스피오스의 딸들에게 했듯이 하룻밤에 오십 명의 여자를 수태시킬 수도 있다. 옴팔레에게 했던 것처럼 노예가 되어 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여자들의 지혜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못했다. 자신에게는 없는 지혜가 그녀들에게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자기 생각에 빠진 그에게는 여자들에 대한 무서운 의심만이 있다. (82)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 헤라클레스가 육체적으로 강하지만 여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지 못했다. 다만 의심했다. 그 결과는 희생되는 것이다.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 (출처: flickr)

그리스 인들이 뛰어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었던 사람은 영웅들뿐이었다. 바로 영웅이었기 때문에 그 일을 하기에 적합했다. 장애물이란 다름 아니라 에라스테스erastes와 에로메노스eromenos, 즉 사랑주는 남자와 사랑받는 남자 사이의 엄격한 역할 분리와 완강한 불균형이었다. 엄격한 규율 때문에 사랑하는 두 남자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애정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다. 바로 이게 가장 잔인했던 제약이다. 에라스테스에게는 신속하고 격렬한 쾌락이 허락된 반면 에로메노스에게는 성적인 기쁨이 금지되어 있었다. 에로메노스는 마지못해 몸을 허락해야 했는데, 이것은 18세기 부르주아가 부인에게 요구했던 것과 약간 비슷한 면이 있다. (93)

에라스테스와 에로메노스라는 남자간의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가 있었다는 것은 들었지만 용어는 처음 알게 되었다. 

헤로도토스가 말한 '어제'란 그보다 4세기 전에 살았던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시대를 의미했다. 그에 따르면 "각자의 신에게 이름을 부여하고, 그들에게 각각의 능력과 영광을 부여하고, 신들의 모습을 명확히 보여준" 사람은 바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였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헤시오도스에게서 우주가 개벽될 때의 노고와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아주 느리게 분리되는 신의 형상들을 감지할 수 있다. (115)

불을 나르는 프로메테우스 (출처: PICRYL)

최초의 화관은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러니까 화관은 신들이 가장 의심하는 인간에게 위협과 구원의 의미가 담긴 선물이었던 것이다. 이 화관은 제우스 자신이 오랫동안 프로메테우스를 결박시켰던 족쇄의 형벌을 보상해 주는 것이었다. 이제 몸을 조이는 차가운 금속은 아이스퀼로스가 "최고의 족쇄"라고 불렀던, 나뭇가지와 꽃으로 둥글게 엮인 화관으로 변형되었다. (139)

화관이 그리스 신화에서 의심하는 인간에게 주는 일종의 족쇄였다니 재미있는 이야기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와 테티스 사이에 아들이 테어난다면 그 아들이 제우스의 권력을 빼앗을 것이라는 비밀을 제우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상을 받아 마땅했다. 처음에는 신을 속였던 프로메테우스가 이제 신을 구해 준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알려주었고 그 뒤 또 다시 새로운 비밀인 화관을 알려 줌으로써 인간들 속에 남아 있게 되었다. (140)

인간에게 불을 알려준 프로메테우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화관의 비밀에 대한 게 추가되었다. 인간들 속에 남아 있는 게 당연해 보인다. 

아가멤논에게 교환의 시작은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침으로써 분명해진다. 교환의 메커니즘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 예를 들어 유일한 자신의 딸까지도 포기해야만 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신관인 크뤼세스가 자기의 딸 크뤼세이스를 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아가멤논이 크뤼세이스를 대신하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브리세이스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을 때 교환의 메커니즘을 통제하는 아가멤논에게 아킬레우스의 유일성이 반기를 든다. (146)

동물로 변신해서 이루어진 두 번의 해상 강간은, 그 강간에서 탄생된 고독한 자식들인 헬레네와 아킬레우스가 눈에 두드러지듯이, 수많은 사랑 이야기 중에서도 유일하게 두드러져 보인다. 헬레네는 신들의 사생아가 우글거리는 땅 위에 유일하게 존재한 제우스의 딸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진짜 유일한 아들을 대신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일했다. (170)

그리스 신화를 보면 남신들이 여신이나 인간에게 다가오는 경우는 사랑을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자식을 낳았고 이름은 무엇이다라는 식이다. 그 시대로 돌아가서 상상해 본다. 그들에게 재미와 흥미란 이런 것이었을까.  

델포이 신탁과 퓌티아 (출처: flickr)

델포이에서는 신탁을 받아 보는 무녀를 퓌티아Phthia라고 불렀다. 오십세가 훨씬 넘어서야 퓌티아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옛날에는 델포이의 수많은 처녀 중에서 어린 소녀를 선택했다. (...) 어느 날 테살리아 사람 에케크라테스가 이 처녀를 보고 열정에 사로잡혀 그녀를 납치하여 겁탈해 버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무녀의 나이를 제한하게 되었다. (177)

무녀인 퓌티아가 원래는 어린 소녀였는데 겁탈을 막기 위해 무녀의 나이를 제한했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펠롭스 혈통의 이야기는 이중적이다. 하나는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잔인함을 키워 나가면서 그 속에 휘감기고 마는 후손들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리 없이 전해지면서 인간들의 운명을 지탱해 주는 부적들의 이야기다. 최초의 부적은 펠롭스의 상아 어깨였다. 그 후의 부적으로는 펠롭스가 아들 아트레우스에게 물려준 홀笏도 있다. 아트레우스와 튀에스테스를 다투게 만든 황금 양이 있다. (...) (224)

펠롭스란 이름은 처음 접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역시 신화라는 생각이 든다. 

제우스는 승낙했다.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삼 형제가 맨 처음 전리품들을 분배할 때 제우스는 운이 좋았다. 운명은 그에게 빛 속에서의 삶을 안겨 주었다. 포세이돈은 파도 속으로 하데스는 지하로 은둔했다. (241~242)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이 삼 형제였다니, 그리고 전리품을 나누는 중에 자신이 위치할 곳이 정해졌다니 신화라지만 너무 쉽게 정해지는 것 같다. 

수소의 씨로 수태한 데메테르에게서 한 처녀가 태어났고 뱀으로 변신한 제우스의 씨를 받은 페르세포네에게서는 수소가 태어났다. 우주는 뱀과 수소 사이에서 고동친다. 수소 제우스의 맥박이 뱀인 '노년이 - 없는 - 시간'을 뒤쫓을 때까지 아주 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수소 제우스가 뱀으로 다시 고동칠 여자 페르세포네를 데메테르에게서 낳기까지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다. 어린 페르세포내가 처녀가 되어 아버지인 자신과 성교를 하고 수소인 자그레우스, 최초의 디오니소스를 낳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음을 발견할 때까지 아주 짧은 시간, 겨우 욕망에 불을 지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이 흘렀다. (251~252)

그리스 신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인간의 시각이 아닌 신의 시각으로 봐야 한다. 근친의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태어났을 때 무엇인가를 움켜쥐는 대신 그것을 떼어 내려 했던 유일한 존재였다. 여신이 제우스의 머리에서 나왔을 때 헬리오스의 전차는 하늘에 서 있었다. (...) 아테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자기 무기들을 벗어 놓았다. (274)

<티마이오스>에 등장하는 입법자는 세계를 구성하고 조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뤼쿠르고스는 다른 세계를 배제한 세계인 스파르타라는 사회를 구성한 최초의 인물이다. (306)

이미 소크라테스는 죽기 얼마 전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명확히 했다. 우리가 위험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신화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신화는 그 순간 우리 스스로를 움직일 수 있게 해 주는 마법이다.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우리를 조여 주는 마술적 끈이다. 영혼이 스스로에게 사용하는 주문이다. (336)

신화와 마법와 주문의 관계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잘 설명해 주었다. 

신이 되기보다는 바젤의 교수로 있고 싶어했던 니체처럼, 이아손은 자기 집에서 중산층으로 살고 싶어했다. "나는 펠리아스의 동의를 얻어 내 고향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오"라고 이아손은 휩시퓔레에게 말했다. (...) 영웅에게 동화의 행복한 결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그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씌어졌고 모험은 그보다 먼저 존재했다. 모험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파도로 그에게 다가왔다. (399)

오이디푸스는 그의 가슴을 지켜줄 고르곤이 없고 그의 피부를 덮어 줄 맹수의 가죽이 없었고 손에 쥐어야 할 부적이 없기 때문에 눈이 멀고 거지가 된다. 언어는 껍질을 남기지 않는 너무 깨끗한 승리를 가져다 준다. 하지만 바로 그 껍질 속에 힘이 숨겨져 있다. 언어는 다른 무기를 모두 사용해서도 승리를 거둘 수 없었던 바로 그곳에서 승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승리를 한 후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고독한 상태로 남게 된다. (413)

가장 지성적인 영혼을 지닌 오뒤세우스와 오이디푸스는 실수로 살인을 저질렀고 실수로 살해당했다. 오뒤세우스는 아들 텔레고노스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텔레고노스는 그가 아버지인 줄도 몰랐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살해했다. 두 경우 모두 쓸데없는 말다툼 때문이었다. (419~420)

두 사람의 허무한 죽음이다. 어떤 인간에게도 이런 운명은 순식간에 찾아올 수 있다. 

제우스는 근심이 가득했고 패배와 조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늙은 아버지 크로노스의 장난기 섞인 시끄러운 폭소 때문에 우주가 돌연한 침묵 속에서 벗어날까 봐 두려워했다. 그리고 또 그의 이야기들을 모두 다시 뒤섞어 놓을 수도 있고 자신이 즐겼던 달콤한 통치권의 별명들을 튀폰에게 옮겨 줄 수도 있는 "신화의 어머니, 헬라스"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455~456)

제우스에게도 근심이 있고 두려움이 있었다니. 그는 신이다. 하지만 인간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그리스 신화가 당시의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재미있게 들렸을 지도 모른다.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Cadmus and Harmonia (출처: Wikimedia Commons)

그렇게 해서 엘렉트라는 아프로디테와 아레스의 불륜의 사랑으로 태어난 하르모니아를 처음 보게 되었다. 지금 아기의 어머니인 아프로디테는 아기를 올림포스에서 빼내 그녀에게 맡기고 싶어하는 것이었다. 엘렉트라는 하르모니아를 가슴에 안고 그 순간부터 그녀를 친딸처럼 키웠다. 하지만 "하늘에서 온 그 처녀는" 어느 날 갑자기 땅에 나타났듯이 다시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다. (457~458)

아프로디테의 딸 하르모니아를 친딸처럼 키운 것은 엘렉트라였다. 생모보다 양육한 사람이 부모가 되는 법인데 떠나야 할 운명이라니 너무나 인간적이다. 

카드모스는 제우스를 구해 주었지만 그 일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에서 구원을 받지는 못했다. 그는 누이 에우로페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하르모니아를 얻었다. 에우로페에 대해서는 한 여행객이 크레타의 여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려주었다. (466~467)

카드모스는 누이를 찾아 나섰다가 아내가 될 하르모니아를 만났고 결혼했다. 이 책의 제목이 되는 영광까지 누리는 두 인물이다. 


독서습관 990_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_1999_동연(241226)


■ 저자: 로베르토 칼라소

로베르토 칼라소는 1941년 피렌체에서 태어나서, 로마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으며, 마리오 프라즈 교수의 지도하에 <The hieroglyphs of Sir Thomas Browne>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3세에 프루스트의 전 작품을 읽었고, 14세에 괴테의 전 작품을 독일어로 읽었다. 고등학교 졸업시험에서 <그리스 비극에 있어서의 역사와 신화>를 주제로 쓴 글이 너무나 훌륭해서 시험관들이 그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험관들을 감탄하게 했다고 한다. 

칼라소는 오늘날 이탈리아 문학계를 이끌어 가는 몇 안 되는 대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는 현재 밀라노에 살고 있고, 1962년 아델피 출판사 설립 때부터 몸을 담아, 현재 편집장을 맡고 있다.(1999년 당시) 이 출판사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문학성이 높은 책을 출간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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