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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51]선택_조선 중기 정부인 장씨의 부득이한 선택과 현대 여인에 대한 의견

by bandiburi 2024. 3. 14.

거기다가 이 작품의 모델이 되는 실존 인물 정부인(貞夫人) 장씨(張氏)가 내게 직계 조상이 된다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자칫하면 타성(他姓)들에게는 집안 자랑, 양반 자랑으로 오해받고 문중 사람들에게는 불경의 죄를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225)

조선시대의 실존 인물이었던 정부인 장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조선시대 여인의 삶과 현대 여인의 삶을 오가는 특이한 구성의 소설 <선택>이다.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 이문열이 고백한 것으로 보아 정부인 장씨는 작가의 직계 조상이다. 

나는 조선 왕조 선조 연간에 태어나 숙종 연간에 이 세상을 떠난 한 이름없는 여인의 넋이다. 이 세상에서 나를 특정하는 유일한 기호는 아버지의 핏줄을 드러내는 장(張)이라는 성씨와 훌륭한 아들을 기려 나라에서 내린 정부인(貞夫人)이란 봉작(封爵)뿐이다. (7)

이 작품을 첫회 발표 때부터 반페미니즘적인 것으로 몰아간 것은 시비 붙이기를 좋아하는 대중 매체의 선동과 뭔가 요란스러운 일에 편승하기 좋아하는 얼치기 논객들의 합작이다. (224)

소설의 시작에서 시대와 주인공에 대해 밝히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 초반부터 여인의 삶에 대한 입장이 현대인에게 반감을 준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언급한다. 충분히 그럴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조선 시대의 여인의 입장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에 대한 비판에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심하고 보기에 민망스런 것은 젊은이들과의 어림없는 경쟁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수술로 주름을 감추고 날마다 우유에 목욕을 한들 찬물에 씻는 젊은이의 살결을 어찌 당하며, 비싼 천에 솜씨 좋은 재단사를 불러 울긋불긋 차려입은들 허름한 면바지 차림의 젊음을 무슨 수로 이겨낼 것이랴. (199~200)

첫째,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이들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성형을 하고 우유 목욕을 하는 등의 태도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외모에 대한 것보다도 내면의 성숙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이는 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중년, 노년의 길에 들어서서도 동안을 가진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언행이 적절하지 않으면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는 선택 중에 상황이나 여건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선택이란 게 과연 있던가. 더군다나 그 어떤 세상이 온들 남녀가 서로를 보살피고 다독이며 조화롭게 세상을 유지하고 그 자녀들을 통해 보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일보다 더 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나는 그때 바로 그 일을 새로운 선택으로 껴안았다. (62)

세계는 오직 비극의 무대이고 삶은 고통일 뿐이라고 믿는다면 자녀의 생산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것은 세계관의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철학의 문제이다. 인생의 실상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확증이 없는 이상 그 믿음과 거기 따른 선택은 시비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149)

권력과 명성과 부는 저잣거리의 사람들이 가장 몸달아 뒤쫓는 가치이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세상에 명성이 무슨 자랑이 되며 다스릴 사람이 없는데 권력이 무슨 뜻을 가지겠는가. 재물도 그렇다. 사람이 없으면 억만금을 쌓아놓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람이 곧 세상이다. (158)

둘째, 현대 사회에서 자녀의 수가 감소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이 부분은 정책의 문제이고, 정치의 영역이다. 오늘날 인구 정책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이 1997년인데 이미 그 당시에 출산율에 대한 언급이 소설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고 출산율은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녀를 두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모든 세대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다. 

그런데 요즘의 젊은 어머니들을 보면 그 둘 모두를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존귀한 것이 있음을 가르치는 것이 아이의 기를 죽이는 것으로 잘못 알아 겁나는 것이 없는 아이를 길러놓는다. 아이의 욕구를 믿어 절제할 줄 모르고 참을성 없는 심성을 부추긴다. (...) 기껏 나쁜 버릇만 길러놓고 기상을 길렀다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165)

셋째,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하는 것에 대해 현대 젊은 여인들에게 하는 당부다. 아이의 자존감이 중요하듯이 사회 속에서 공존하기 위해 지켜야할 규칙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부분은 현대의 젊은 부부들이 유념하면 좋겠다. 

나는 일찍이 성취가 있었던 학문과 재예를 스스로 버리고 부녀의 길을 선택했다. 그 부녀의 길에서 가장 큰 것은 어머니의 길이고 그 성취는 자식으로 드러난다. (196)

주인공이 남성이었다면 당시에 시험과 벼슬의 길로 나갈 수 있었지만 여자였기에 부녀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선택'이었을까.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시집을 갈 수밖에 없었지만 선택이라고 한다. 가부장적인 시대에 여인의 선택권은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에서 제목을 '선택'이라고 한 것의 이면에는 부득이한 선택을 강조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 본다.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풀어주었으나 그 뒤로는 구태여 내가 듣고 배워 아는 것이나 느낀 바 정의(情意)를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말과 글로 드러난 내 성취를 추적해본 이들은 잘 알고 있듯이, 내가 다시 서책을 펴고 붓과 종이를 가까이하는 것도 그 무렵부터가 된다. 그것으로 나는 가사(家事)와 핏줄의 작은 어미 됨에서 벗어나 보다 큰 어머니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 셈이다. (202)

나는 여섯 아들과 두 딸을 낳았고 일곱 아들과 네 딸을 길렀다. 광산 김씨 소생인 한 아들과 두 딸은 태교를 베풀 겨를이 없었으나 어김없이 내 자식이며 가르침과 기름에도 분별을 둔 적이 없다. (163)

주인공은 오늘날 생각할 수도 없는 11명의 자녀를 키웠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들처럼 학문을 익혔지만 결혼 후에는 가족을 위해 학문을 접었다.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다시 붓과 종이를 가까이한다. 그녀의 글이 일부 오늘날까지 전해져 소설 <선택>으로 이어졌다. 


독서습관 851_선택_이문열_2007_민음사(240315)


■ 저자: 이문열

1948년 경북 영양 출생.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수학.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으로 등단. 
장편소설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영웅시대> <시인> <오디세이아 서울> <황제를 위하여> <아가> 등. 
중단편소설 <이문열 중단편 전집>(전5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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