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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47]엄마를 부탁해_엄마란 존재와 그녀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작별

by bandiburi 2024. 3. 6.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가슴 뭉클한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그녀의 소설 <외딴방>과 같이 '너'라고 호칭하며 일인칭으로 진행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마지막에 엄마가 세상과 작별을 고하는 부분에서는 엄마를 일인칭으로 하여 진행된다. 

소설은 모두 네 개의 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장은 큰딸, 큰아들, 그리고 아버지가 고해의 주체다. 그런데 그 고해는 '나는'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들은 '너 ' '그' 그리고 '당신'으로 호명되며 엄마의 실종, 그 부재의 자리에서 간단없이 솟구치는 엄마의 기억과 고통스럽게 대면한다. (...) 마지막 4장은 사라진 엄마가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여 둘째딸의 집, 평생 숨겨온 마음의 의지처인 곰소의 그 남자 집, 남편과 아이들 고모가 있는 고향집,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태어나 자랐던 '엄마'의 집을 차례로 돌며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되어 있다. (285)

엄마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와 자식으로서 늘 '엄마'로 존재했다. 그래서 자식을 돌보는 엄마의 역할을 기대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소설은 생일잔치를 위해 자식들이 있는 서울로 상경해 지하철에서 아버지를 뒤따르던 엄마가 타지 못하고 이별하며 실종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 인간의 기억은 어디까지일까. 엄마에 대한 기억은? (17)

너는 도시로 나가면 오빠들에게 엄마의 두통을 알리고 엄마를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움직일 만해지자 너에게 돌아가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너는 언제부턴가 엄마 집에 가도 서너 시간 머물다가 곧 도시로 돌아오곤 했다. 너는 다음날 그와의 약속을 떠올렸지만 엄마에게 오늘은 자고 갈 거야, 라고 대답했다. 그때 엄마의 입가에 번지던 미소. (37)

아들에게, 딸에게, 남편에게 엄마의 존재는 그림자와 같았다. 그녀는 항상 있었고 그녀의 역할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하지 못했다. 엄마의 부존재는 자식들에게 남편에게 그녀와의 삶에 대해 돌이켜보게 한다. 왜 평소에 아내에게, 엄마에게 신경을 더 쓰지 못했는지 후회한다. 더 자주 방문하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픈 육신에 대해 보살피지 못했는지 일상에 매몰되어 살았던 무심한 자신을 돌아본다. 

빈손으로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기다리는 서울역에서 엄마의 고단한 모습은 그에게 늘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했다. 어서 돈을 벌어 방 두개 있는 곳으로 옮겨야지. 전셋집을 얻어야지. 이 도시에 어서 집을 가져야지. 그래서 저 여인이 편히 자고 갈 수 있는 방을 마련해야지. (128)

언젠가 아내는 논 세 마지기를 자기 명의로 해달라고 한 때가 있었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인생이 허망해서 그런다고 했다. 자식들이 다 제 갈길을 가고 나니 쓸모없는 인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143)

소설 속에서 작가는 1970년대 이후 산업화 되며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자식들이 도시로 떠나고, 부모들만 단 둘이 지방에 남겨진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상황 묘사가 많다.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부모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자아낸다. 

나는 알고 있었재. 내가 어느날인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러기 전에 내가 쓰던 것들을 내가 처리하고 싶었재. 남기고 가기도 싫었고. (242)

엄마는 상식적으로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온 인생이 아니야. 엄마는 엄마가 할 수 없는 일까지도 다 해내며 살았던 것 같아. 그러느라 엄마는 텅텅 비어갔던 거야. 종내엔 자식들의 집 하나도 찾을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된 거야. (260)

엄마도 결혼하기 전에 한 소녀로서, 한 처녀로서 꿈이 있었을 거라는 부분은 독자에게 부모를 넘어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를 보게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초월한 엄마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요구한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은 자신의 삶을 챙기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에게 잠시 시간을 내서 부모를 방문하고, 연락하고, 관심을 가지기를 촉구한다. 

내가 엄마로 살면서도 이렇게 내 꿈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나의 어린 시절을, 나의 소녀시절을, 나의 처녀시절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데 왜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꿈을 펼쳐볼 기회도 없이 시대가 엄마 손에 쥐여준 가난하고 슬프고 혼자서 모든 것과 맞서고, 그리고 꼭 이겨나갈밖에 다른 길이 없는 아주 나쁜 패를 들고서도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몸과 마음을 바친 일생이었는데, 난 어떻게 엄마의 꿈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을까. (261~262)


독서습관 847_엄마를 부탁해_신경숙_2009_창비(240309)


■ 저자: 신경숙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5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 <겨울 우화>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존재의 내면을 파고드는 섬세한 문체와 살므이 시련과 고통에서 길어낸 정교하고 감동적인 서사로 평단의 주목과 독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소설집으로 <강물이 될 때까지>, <풍금이 있던 자리>, <감자 먹는 사람들>, <딸기밭>, <종소리> 등과 장편소설로는 <깊은 슬픔>, <외딴방>,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바이올렛> <리진> 등이 있다.

짧은소설집 <J이야기>,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자거라, 내 슬픔아>와 한일 양국을 오간 왕복 서간집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오영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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