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마치 오래된 작품 같은 인상을 주는 내용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설이었다. 주인공 한영덕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한반도의 전쟁과 전후 암울했던 시대사를 보여준다.
평양에서 의사로 살던 한영덕은 고지식할 정도로 삶에 대해 원칙주의자다. 의사로서의 사명감,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용기는 평온한 시기에는 커다란 장점이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이 소련과 미국을 대리해서 이념 전쟁을 하는 어수선한 환경에서 그런 성격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신을 굽히지 않아 혹독한 의료환경에서 일해야 했다. 평범한 소녀의 생명을 위해 원장의 지시를 어겨가며 수술을 진행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사형이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3열로 총살을 당했지만 귀에 총상을 입은 것 외에는 상처를 입지 않아 살아났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죽음을 면하지 못했다. 모친과 처자식을 잠시 두고 다녀온다는 것이 휴전으로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그리고 남쪽에서 가정을 꾸리고 의사로서 살아간다.
한국전쟁 이후에 남한 사회는 불법과 비리가 성행했다. 주인공 한영덕은 자신이 도움을 주었지만 돈과 권력에 눈이 먼 박가와 김가에게 불만을 사서 고발을 당한다. 온갖 고문 속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했다가, 전후에는 군부대에서 일하는 기회주의자 민상호가 등장한다. 민상호라는 인물은 수많은 유사한 삶을 살고 있는 친일 했던 기회주의자들을 대표한다.
2024년 현재도 수많은 민상호가 국가의 발전과 행복보다는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전쟁이 끝난 지도 70년이 넘었다. 여전히 휴전상태다. 혼란스러웠던 시대를 지나 정치적 민주화가 이뤄졌고 시기 적절한 산업화 진행으로 국가의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하지만 조금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국가의 미래에 대해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청취하고 최선의 방법을 찾아 국민들을 설득해 모두가 함께 의기투합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후세들이 잘 살 수 있는 국가의 미래가 확립될 수 있다.
민상호와 같은 인물들, 박가와 김가와 같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인물들, 다른 사람들의 고통과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사익만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철저하게 배제되고 응징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게 진행되었다. <한씨연대기>는 짧지만 암울했던 한국전쟁 전후의 시대상황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독서습관 848_한씨연대기_황석영_2020_문학동네(240309)
■ 저자: 황석영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났다. 고교 재학중 단편소설 <입석 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했고,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탑>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을 < 오래된 정원>으로 단재상과 이산문학상을,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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