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사용되지 않아 관심을 주지 않는 잡초를 '전략가'라고 보는 재미있는 책 <전략가, 잡초>다. 벼나 콩과 같이 인간의 곡물로 사용되기 위해 선택받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잡초들은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을 가진다.
저자가 소개하는 잡초의 현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며 느낀 점을 몇 가지로 포스팅한다.
첫째, 잡초는 경쟁에 약하다.
우리는 늘 밭작물을 중심으로 바라보기에 밭작물 이외의 풀은 잡초로 간주하고 제거한다. 원하는 작물보다 잘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잡초는 경쟁에 우월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손길이 가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토지에서는 잡초는 나무들이 자라기 시작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경쟁에 약한 존재다.
잡초끼리 비교할 때는 경쟁에 약한 잡초나 경쟁에 강한 잡초를 꼽을 수 있지만, 통틀어 보면 잡초는 일반적으로 경쟁에 약한 식물이다. 따라서 경쟁에 강한 나무들이 많이 자라나면 잡초는 결국 없어진다. (39)
잡초를 없앤다는 것은 천이의 진행을 막거나 천이의 흐름을 앞으로 약간 돌리는 일이기도 하다. (40)
사람이 토지를 갈아서 뒤집고, 주기적으로 잡초를 베어주기 때문에 잡초가 생명력이 강해 보이지만 자연의 순환 과정의 일부분만을 보기 때문이다. 맨땅에서는 잡초가 왕성하게 자라지만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 잡초도 자리를 양보해야 한다.
영국의 생태학자 존 필립 그라임은 식물이 성공한 요소를 세 가지로 분류했다. 'CSR 삼각형 이론'이라는 이 이론에서는 식물의 전략을 C타입, S타입, R타입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C타입은 경쟁을 뜻하는 'Competitive'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경쟁형'이라고 한다. (...) S타입은 'Stress tolerance'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스트레스 내성형'이라고 한다. (...) R타입은 'Rudural'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황무지에서 산다는 뜻이며 내란 내성형이라고도 한다. (33~35)
둘째, 잡초는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있다.
잡초는 딴꽃가루받이와 제꽃가루받이를 모두 할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한다. 잡초에 대한 설명에서 지렁이와 달팽이가 왜 암수동체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동물은 암컷과 수컷이 구분되어 있고 이동능력이 있어 원하면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지렁이나 달팽이 모두 느리다. 상대를 만나지 못하고 자손을 남기지도 못한 채 포식자에게 먹힐 수 있다. 그래서 암수동체로 진화했다. 명쾌한 설명이다.
동물 중에도 지렁이나 달팽이처럼 암컷과 수컷이 한 몸인 것이 있다. 지렁이나 달팽이는 이동 능력이 떨어져 너무 먼 곳까지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수컷과 암컷이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어떤 상대를 만나든 자손을 남길 수 있도록 수컷과 암컷 둘 다 가지고 있다. (114)
이렇게 잡초는 딴꽃가루받이를 하면서도 제꽃가루받이라는 보험을 걸어둔다. 그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여러 가지 옵션을 준비해 두는 것이 잡초의 전략이다. (121)
도전하면 실패할 수도 있지만 변할 수도 있다. "도전하면 변화한다." 잡초도 곱게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길가에서 거칠게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봐주기 바란다. (134)
잡초가 우리에게는 쉽게 생존하는 것 같지만 무수한 도전 속에서 변화하고 적응하며 살아남은 것이다. 작가는 그래서 길가에 보이는 잡초가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자세히 그 모습을 보라고 권한다.
셋째, 제초제의 원리를 알 수 있다.
농촌에서는 다양한 제초제를 사용하고 있다. 어떤 제초제는 선택적으로 작물을 해치지 않으면서 잡초만 제거한다. 어떻게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는지 책에서 설명한다.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먼저 식물의 대사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불필요한 식물을 제거하기 위해 적당한 부분을 기능하지 않도록 하는 제초제를 사용한다. 기본적인 원리지만 궁금한 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 제초제가 식물 호르몬의 작용 시스템, 식물의 광합성 시스템, 아미노산이나 지질의 합성 시스템 등 식물 특유의 생리작용에 영향을 주어 식물을 시들게 한다. (161)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무기태 질소에는 질산태 질소(NO3)와 암모니아태 질소(NH4)가 있다. 식물은 주로 흙속에 있는 질산태 질소를 흡수한 뒤 체내에서 질산태 질소를 암모니아태 질소로 변하게 한 다음 아미노산(NH2)을 합성한다. 이 아미노산이 연결되면 식물의 몸을 만드는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164)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에서는 이 무시무시한 왕우렁이를 논에 뿌려 제초를 한다. 한국은 겨울 기온이 낮아서 논에 뿌린 왕우렁이는 모두 추위에 죽고 만다. 그래서 왕우렁이를 제초에 이용하는 것이다. (174)
일반 논에서는 볏모로 모내기를 하므로 잡초벼가 불쑥 싹을 틔웠다 해도 문제가 될 염려는 적다. 그러나 최근에는 모내기 수고를 덜기 위해 논에 직접 씨앗을 뿌리는 곧뿌림(직파) 방법을 이용하는데, 이런 논에서는 뿌린 볍씨에서 나온 싹과 비슷하게 자라나는 잡초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189)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이앙기를 이용해 모내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농법으로 직접 볍씨를 뿌리는 직파를 권한다. 논을 경운 할 필요도 없고, 이앙기를 사용하기 위해 사전작업을 할 필요도 없고 모판을 준비할 필요도 없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잡초벼'란 식물이 문제가 된다고 하니 하나 더 어려운 점이 늘었다.
넷째, 잡초는 아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일 뿐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의 이 말은 처음 문장을 본 순간 마음에 깊이 와닿았다. 인간에게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잡초는 환금성 작물로 재탄생한다. 아직까지 인간이 그 가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잡초라고 통칭해서 부를 뿐이다.
미국의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은 잡초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다."
잡초는 아무 짝에도 슬모없는 훼방꾼이라고 깊이 인식되어 있을 때 비로소 '잡초'가 된다. (...) 그저 그런 잡초일 수 있지만 이것이 곧 이제껏 본 적이 없는 가치를 지닌 식물일지도 모른다. 잡초인지 아닌지는 우리 마음이 정하는 것이다. (193)
식물이 생존하기 위해 넘버원이 될 수 있는 분야, 즉 '온리원'을 찾는 전략을 구사한다.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가 선호하는 분야에서 넘버원이 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개성이 있다. 그 개성을 살려서 온리원의 분야에서 넘버원이 되는 전략을 잡초에게 배울 수 있다.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온리원을 찾는다는 생물세계의 전략은 빡빡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204)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다. 자신의 가치를 갈고닦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과 은퇴한 노년층이 떠오른다. 비록 아직까지 인정받지 못해 잡초와 같은 인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가치가 빛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언젠가는 자신만의 온리원의 분야에서 넘버원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저자는 권한다.
나만의 개성이라는 종목에서 당신을 이길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나만의 개성을 갈고닦아 점점 더 끌어올리는 것이 넘버원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일 것이다. 남과 비교하는 것이 가장 쓸모없는 일이다. (207)
인생은 길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잡초는 선택지를 좁히지 않고 많은 옵션을 준비해서 미래를 대비한다. 어제오늘 일로 끙끙 앓을 필요가 없다.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224~225)
독서습관 820_전략가 잡초_이나가키 히데히로_2021_더숲(231229)
■ 저자: 이나가키 히데히로
일본의 대표적인 식물학자이자 농학박사이며 가장 인기 있는 대중 과학 저술가 중 한 사람이다. 1968년 시즈오카현에서 태어나 오카야마대학 대학원 농학 연구과에서 잡초생태학을 전공했다. 그 후 농림수산성과 시즈오카현 농림기술연구소 등을 거쳐 시즈오카대학 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농업 연구에 종사하는 한편, 친숙한 생물에 관한 저술이나 강연을 하는데, 특히 잡초에 대한 애정이 깊다. 대학에서 작물학을 전공할 당시에는 작물보다 그 옆에 피어난 잡초에 더 끌릴 정도였다. 대학원에 진학할 당시 잡초학 연구실이 신설되어 그때부터 마음껏 잡초를 연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잡초의 특성은 우리의 인생관과 통한다는 것, 잡초는 아직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식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것은 그 후 인생의 중심축이 되었다.
이 책에서 그는 친절한 설명으로 잡초의 생태를 밝히고, 뛰어난 통찰력으로 잡초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알려줌과 동시에 그동안 잡초를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잡초의 진짜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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