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지수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의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 1부를 읽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처음 봤을 때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에 압도되었다. 그래도 도전해 보자며 대출했다.
이 책은 번역에 아쉬움이 많다. 책의 내용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독자를 힘들게 하는 부분은 번역이다. 프랑스어를 할 수 있다면 원서로 보는 편이 좋겠다. 한국어 번역을 할 때 보통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 많다. 저자의 내용도 따라가기 바쁜데 한국어 용어까지 고민해야 했다. 번역된 문장도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책의 분량이 많고 내용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 인사이트를 주는 문장이 많아 책의 목차에 따라 4부로 나눠서 포스팅한다.
1부는 '역사에서의 불평등주의체제들'다. 프랑스가 사제, 귀족, 제3계급으로 구분되는 계급사회에서 벨에포크 시대를 거치며 얼마나 가졌는지가 중요한 사회로 진행된다. 사회 경제적으로 변화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중에서 두 가지를 정리해 본다.
첫째, 누진세는 불평등 감소에 기여한다. 상속에 대한 누진세를 몇 십 퍼센트로 올렸던 2차 세계 대전 시기부터 레이건이 감세를 시작했던 1980년대까지 부의 불평등이 감소했고, 중산층이 성장했다. 이는 사회의 역동성을 가져왔다.
우리 사회도 자본소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노동소득에 의지하는 사람들에 비해 부의 측면에서 유리한 사회다. 부의 대물림이 이어지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녀와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녀가 정해진다. 건전한 사회는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상승할 수 있는 계층 사다리가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사다리가 무척이나 희소해졌다. 어쩌면 부러져서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노력해서 잘 살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이 최소한의 삶에 대한 보장이 돼야 하며, 자신의 노력이 아닌 부모의 노력으로 무위도식하는 자녀가 없어야 한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적절한 조세제도가 보완돼야 한다. 저항이 있겠지만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둘째, 소득수준이 혼인가능성을 결정한다. 19세기 소유자사회의 모습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벨에포크 시대를 21세기 초의 현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모두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대다. 100파운드를 버는 사람과 4000파운드의 수입을 가진 사람의 결혼 가능성이 다르다. 저자는 <이성과 감성>의 등장인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니 이해가 잘되었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비교하게 된다. 결혼을 위해서는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돼야 한다. 하지만 경제적인 조건을 갖춘다는 것이 부모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다. 국가나 사회가 이런 청년들에게 각자도생 하라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지원을 통해 청년들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한다면 개인의 경제적인 자립을 도모할 수 있고 국가적으로도 활력을 갖게 될 것이다. 결국은 모든 청년들이 일을 가지고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면 결혼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한 번의 독서로 책의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저자 피케티 교수의 생각을 따라가며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이해의 폭을 넓히며 몇 가지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충분히 유용한 독서다. 2부로 이어진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이데올로기 개념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다시 말해 사회란 어떻게 구조화되어야 하는가를 진술하기 위한 일군의 그럴듯한 선험적 관념 및 담론을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식으로 이 개념을 사용하겠다. 이데올로기는 사회적 차원, 경제적 차원, 정치적 차원을 지니고 있음을 고찰할 것이다. (15)
우리는 정치체제 문제아 소유체제 문제가 불가분의 관계로 실제로 부단히 연결되어왔음을 볼 것이다. 구래의 삼원사회와 노예제사회에서 현대 포스트식민사회와 하이퍼자본주의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에는 소유자사회와, 소유자사회가 야기한 불평등 및 정체성 위기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공산주의사회 및 사회민주주의사회가 있다. (18)
명백히, 반세기 동안 적용된 80%를 상회하는 이 세율은 미국 자본주의의 파괴로 이어졌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이 강력한 누진세는 대체로 20세기 불평등 감소에 기여했다. (49)
미국과 영국에서의 생산성 증가는 1990~2020년에 있었던 것보다 1950~1990년에 실제로 뚜렷이 더 높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강조해야 한다. 이는 최고세율 인하가 지닌 역동적인 힘에 대해 심각한 의구심을 드리우는 것이다. (50)
많은 나라에서, 예컨대 유럽사회 내부에서, 1960~1970년 이전에는 출신 대륙과 종교가 서로 다른 주민들 사이에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이러한 접촉이 새로운 규모로 시작되었던 것은 포스트식민적인 이민 물결을 통해서인데, 이는 유럽에서의 선거와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갈등구조 진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63)
현대의 불평등의 이러한 중심적 차원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삼원사회와 이들의 변화를 연구하고, 이 사회가 18세기부터 소유자사회(여기서 신분 또는 종교적-인종적 차이는 주로 지워지지만 화폐와 자산에서의 불평등은 예상 밖의 비율을 점할 수 있다)와 노예제사회, 식민 및 포스트식민 사회(여기서는 신분 또는 종교적-인종적 차이가 도리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화폐와 자산 면에서 상당한 불평등과 연관된다)와 복잡하게 뒤얽히며 점차 진화해온 방식을 연구하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87~88)
그 시대 기독교 사회의 안정 욕구를, 특히 반란에 대한 공포를 확실히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회적 위계를 정당화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라보라토레스(Laboratores: 노동하는 자들, 그리고 대개는 경작하는 자들, 요컨대 제3신분)로 하여금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하고, 자신들의 선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존재는 현세에서의 삼원 신분에 대한 존중은 물론 사제와 귀족의 권위를 요청한다는 점을 이해시키는 것이다. (91)
그가 강조하는 것은 유익한 생산적 협업이 발전하도록 하는 구체적인 제도들(휴경지, 십일조, 시장, 방앗간)인데, 이 협업이 가능해진 것은 삼원사회의 여러 계급 간의 새로운 동맹 덕이다. (이 고생스러운 혁명에 대해 침묵하는 진짜 장인들인) 경작자와 (사제에게 내는 십일조 덕에 동네 곳간과 초등학교와 빈민구제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교회조직과 (주로 물레방아의 발전과 규제 및 경작지 확장에 관여하는) 영주계급이 동시에 관여된 새로운 동맹 말이다. (94)
자신의 추산에 따르면 제3신분이 왕국의 총인구 중 98%에서 99%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가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50%의 투표권에 만족해볼 요량이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사건의 불길 속에서 제3신분의 대표자들이 1789년 6월에 다른 두 신분을 향해 자신들에게 합류하여 '국민의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은 바로 시에예스의 발의에 따른 것이다. (96)
시에예스에게는 지배적인 두 신분의 부당한 특권들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가능하며 바람직한 일이었을 게 분명하다. (97)
1789년에 삼부회 소집은, 조세재정을 상세히 재검토할 수 있도록 해주어 결국 앙시앵레짐에 치명적일 재정적 도덕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해줄 마지막 해법수단으로 여겨졌다. 이 최후의 소집 이전에 있었던 마지막 회합은 1614년이다. (99)
17세기 중반부터는, 1660~1670년대에 루이 14세와 재상 콜베르가 주도한 귀족 및 사제에 관한 대대적인 조사들, 그리고 특히 (타유세taille와는 반대로) 1965년에 제정되어 귀족에게 타격을 준 세금인 인두세 capitation 데이터에 의거할 수 있다. (102)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 왕국은 서양에서 단연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고, 이로써 계몽시대에 프랑스어의 국제적 역할과 유럽사와 인근 국가들에 프랑스혁명이 끼쳤을 엄청난 반향이 아마 설명될 것도 같다. 가장 강력한 군주제가 무너진다면, 이는 구세계 및 삼기능 질서 전반이 침몰 직전에 있다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104~105)
17세기말 18세기 초에, 프랑스 군주정은 귀족 인원을 제한하고자 다각도로 시도한다. 그 동기는 정치적인 것인 동시에(중요한 건 형성 중인 중앙집권국가로서 하는 일 없이 수만 많은 귀족이 불필요함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예산과 관련된 것이기도 한데, 귀족 숫자를 줄이면 그만큼 면세도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08)
국가장치로서의 사법체계 전체가 1815년에서 1848년 사이에, 특히 대혁명 동안에 실행된 재분배로 인해 야기된 숱한 소송들에서 매우 명확하게 친귀족 성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치적 연보에서 보다시피 구래의 삼원사회에서 소유자사회로의 전환은, 전체 유럽사회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다수의 돌발 사태들을 따라가며 이루어졌다. (115~116)
이 사회들은 기능과 조직 면에서 현격히 구분되며 정당성을 갖춘 두 계급인 사제계급과 귀족계급이 각자 엄청난 비율의 자원과 재산을 (대략 두 집단 각자가 소유의 4분의 1에서 3분의 1 사이를, 두 집단을 합쳐서 보자면 절반에서 3분의 2 사이를...) 관리하는 사회로, 이로써 두 계급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지배적인 사회정치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게 했다는 점이다. (119~120)
1789~1790년 논의에서는, 로가 (영주세가 아닌) 국세여야 한다는 것과, 토지대장을 작성해 소유를 보호하는 임무가 국가의 책임이 되어야만 한다는 데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137)
프랑스혁명기에, 재분배에 대해 가장 야심에 차 있던 그 기간에, 다시 말해 1793~1794년에, 소유에 관한 논쟁들은 부역과 부과조, 로와 권리 매입 문제에 집중되었다. (...) 소유 불평등과 개별 자산 보유의 규모 문제에 정녕 확고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접근하진 못했다. (142)
사실상 이는, 사다리 맨 위에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이데올로기다. 부유한 개인들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자신의 지위를 정당화해 줄 근거를 이 이데올로기에서 발견한다. 자신의 노력과 능력, 그리고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될 안정 욕구를 내세워서 말이다. (157)
우리는 소유의 이러한 탈집중이 혁신과 경제성장에 해를 끼치기는커녕 정반대였다는 사실을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 '중위계급'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적 유동성은 더 활발해졌고, 경제성장은 20세기 중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더, 특히 1914년 이전보다 더 높아졌으니 말이다. (...) 자산의 이러한 탈집중이 1차 대전 이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이다. (163)
1880~1914년의 세계는, 진정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같았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은 수십 년에 걸쳐 자동차, 전기, 대서양을 횡단하는 정기여객선, 전신, 라디오를 발명했다. 이것들의 사회경제적 효과는 페이스북, 아마존, 우버의 창안만큼이나 중요한 혁신들이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1914년 이전의 극단적인 불평등사회가 오늘의 세계와 무관한, 낡고 폐기된 어떤 세계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벨에포크 시기와 21세기 초의 세계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171)
1800년과 1914년 사이의 상속에 대한 과세는 고액재산 축적과 상속 절차에 부수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그러나 1901년 법은 누진세를 도입함으로써 상속에 관한 조세철학의 본질적 변화를 나타낸다. 누진세 도입의 효과는 전간기(1차 세계 대전 종결부터 2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1918~1939)부터 충분히 감지되었다. (177)
실제로 토지세가 '네 늙은이'(1790~1791년에 혁명기 입법자들이 만든 네 가지 직접세)의 세수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선거권이 대체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토지 및 부동산 소유자 1%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 조세 규범이 안정적인 축적을 촉진했고, 동시에 언제나 그렇듯 이를 보장해 주는 정치 규범을 확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소유주의적인 불평등주의체제가 이토록 명료하게 연출된 적은 없었다. (180)
1860년대 초에는 하원 의석의 대략 75%를 늘 귀족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귀족 수는 당시 영국 인구의 0.5% 이하였다. 하원 의석에는 전통적으로 영국 귀족계급 내의 주요한 세 구성원의 대표자들이 있었다. 명문귀족, 작위를 수여받은 귀족(명문귀족을 제외한 임명귀족), 젠트리(작위 없는 귀족). (202~203)
실제로 재산 총액이 그 구성요소나 재산의 출처보다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다양한 인물을 만나고 혼인가능성을 결정짓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보유한 자본으로 벌어들인 소득수준이다. 연간 100파운드를 버는가(그 시대 평균 소득의 3배가량), 1000파운드를 버는가(평균소득의 30배), 4000파운드를 버는가(100배 이상) 하는 것이 바로 핵심 문제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유자사회는 삼기능사회보다 더 복합적이고 섬세한 논리들을 따른다. 삼기능질서에서는 역할과 기질이 명확하게 분담되며, 이 질서의 거대서사는 세 계급의 동맹 서사다. 종교계급과 전사계급과 노동계급은 사회를 구조화하고 사회의 영속성과 안정성을 가능케 하기 위해, (...) 서로 구분되면서도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208)
1911년 이후, 영국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것은 투표함과 하원에서 표현된 다수의 의지이며, 상원은 순전한 자문 역할, 그마저도 대개 의전적인 역할만을 갖는다. 수세기 동안 영국을 통치해 왔던 영국 상원은, 18세기와 19세기 내내 최초의 식민주의적이고 산업적인 제국 형성 및 그 운명을 관장해 왔던 정치제도 결정의 심금으로서 존재하기를 실제로 멈췄다. (217~218)
1527년부터 1865년까지 스웨덴 군주정은 리크스다그Riksdag라는 의회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었고, 의회는 당시 왕국을 이루던 네 신분인 귀족, 사제, 도시 부르주아, 농민 토지소유자의 대표자들로 구성되었다. (...) 네 신분 각각은 자기 신분 고유의 규범에 따라 대표자를 지명한다. 실제로는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가장 부유한 부르조아 농민 구성원이 선거권을 가졌다. (...) 영국과 프랑스에 비교해, 스웨덴 군주정은 대단히 조숙한 방식으로 체계적인 인구조사를 시행했다는 사실에서 중요한 차이가 나온다. (225)
스웨덴과 독일을 위시한 많은 나라가 주주의 의결권을 줄이고, 그만큼 노동자들과 그들의 대표자들의 의결권을 늘렸다(이사회 의결권의 3분의 1에서 절반 사이). 이 문제들은 애초에 이런 흐름을 따르지 않던 여러 나라(특히 프랑스 영국 미국)에서 현재 허다한 논의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러한 논의를 통해 이 나라들은 미래의 새로운 혁신을 향해 확실하게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232)
독서습관703_자본과 이데올로기_토마 피케티_2020_문학동네(230303)
■ 저자: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
현 파리경제대 및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교수
자본주의에 내재한 경제적 불평등의 동향을 분석하고, 글로벌 자본세를 그 대안으로 제시한 책 <21세기 자본>으로 일약 전 세계 경제학계의 슈퍼스타로 떠올랐다. 2013년에는 이론과 응용 연구 측면에서 유럽 경제 연구에 탁월한 기여를 한 45세 이하 경제학자에게 수여하는 이리외 얀손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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