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소설 <성>은 바로 전에 읽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부바르와 페퀴셰>에 비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플로베르는 수많은 정보를 소설 속에 심어 놓아 독자로 하여금 계속 생각하게 만든다. 쉽게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성>은 서사 중심으로 등장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을 상상하며 따라가면 된다. 그래서 600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몰입할 수 있다.
<성>의 주인공은 K다. K가 어떤 인물인지 관심이 없다. 다만 측량 기사라는 직업만을 언급할 뿐이다. K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측량 기사로 일하기 위해 새로운 마을에 도착한다. 하지만 멀리서 바라본 성과 그 아래에 위치한 마을은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 측량 기사로 왔지만 일을 주는 사람도, 급여를 지급하는 조직도 없다. K는 자신의 직업을 통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성에 있는 사무국과 소통하고자 하지만 허락되지 않은 사람은 갈 수 없다.
내 말 좀 들어 보세요. 측량 기사님! 클람은 성 양반이에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러니까 그분의 지위 같은 건 도외시하고 생각하더라도 대단히 귀한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대체 당신은 뭐죠? 여기서 겸손한 태도로 굽실거리면서 결혼 승낙이나 얻고자 하는 당신은 성 사람도 아니고, 마을 사람도 아니며, 요컨대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그 무엇이기는 해요. 즉 당신은 타향 사람이고, 예상 밖의 사람이어서 어디를 가거나 방해되는 사람이에요. (107)
(...) 당신은 당신 말대로 측량 기사로 채용되었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측량 기사를 원하고 있던 것은 아니오. 측량 기사가 할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우리가 지금 관리하고 있는 작은 영토는 말뚝으로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제대로 기록되어 있소. 소유지의 변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경계에 대한 사소한 사건은 우리 스스로가 조정해서 해결하고 있지요. 그러니 우리로서는 무엇 때문에 측량 기사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는 일이오. (125~126)
제가 재미있다고 한 것은 면장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하찮은 착오가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의 생활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34)
나로서는 당신의 머릿속에서나마 이 사람에 대한 나쁜 인상이나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소. 대체로 과오가 생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계산에 넣지 않는 것이 관청 사무의 원칙이니까요. 전체 조직이 잘 되어 있으면 이 원칙은 정당한 것으로 통해요. (135)
설사 일의 규모가 문제 된다고 하더라도 당신의 경우는 아주 사소한 일에 불과해요. 보통의 일, 즉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소위 과오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지만 훨씬 힘들어요. (139)
면장님은 무엇이든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제 속까지 들여다보시는군요. 이제 저를 이곳에 붙들어 매고 있는 몇 가지 이유에 대해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고향을 떠나올 때 제가 바친 희생과 길고 길었던 고생스러운 여행, 이곳에 채용될 것을 전제로 해서 가슴에 품었던 여러 가지의 희망과 기대, 잃어버린 재산, 이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면 다른 적당한 일을 구할 수 없다는 것 등등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제 약혼자 때문입니다. (152~153)
K라는 한 개인과 성에 있는 사무국이라는 조직의 힘의 차이를 시종일관 보여준다. 성에 사는 사람들과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는 크다.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는 성 사람들이다. 반면에 마을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지정된 방식으로 살아간다. 클람이 대표적인 성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일하는 비서와 하인들이 있다. 성과 마을을 오가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들이 있다. 성은 커다란 조직이다.
K는 면장과 면담을 하며 자신이 측량 기사로서 정당한 초청을 받았고 정당한 일과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직의 일부에 속하는 면장은 측량 기사가 필요 없고 관청 사무의 원칙은 과오가 생길 수 없다며 항변한다. 새로운 장소에 대한 희망을 품고 모든 것을 뒤로 두고 고향을 떠난 K에게 면장과의 대화는 절망을 준다. 특히 면장이 마지막 부분에서 학교 소사 직업을 제안한 것은 K의 처지를 말해준다.
K가 프라다와 결혼을 약속하며 당장의 생계를 위해 학교 선생들의 멸시를 받으며 소사의 역할을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바르바나스를 통해 성에서 클람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계속한다. 측량 기사로서의 직업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는 율법으로 둘러싸인 위에 있는 성의 세력권은 K처럼 아래에 낮은 신분의 사람들이 깨뜨릴 수도 없는 것이었으며 순간적으로만 눈에 띌 뿐이었다. K는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것들은 모두 클람과 독수리의 공통된 요소였다. (232)
관청과 K와의 힘의 차이는 유감스럽게도 굉장히 큰 것이어서, K가 아무리 거짓말을 하고 모략을 쓴다고 해도 사실 이 어마어마한 차이를 K에게 유리하도록 단축시킬 수는 없다. (325)
그런데 바르나바스는 왜 그곳에서 클람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관리가 정말로 클람인지 의심을 품고 있을까요? (341~342)
물론 그는 사무국의 출입을 허락받고 있는 몸이에요. 그러나 그곳은 사무국이 아니고 사무국의 옆방이라고나 할까요. 아니, 그것도 아닐 거예요. 진짜 사무국에 들어가는 허락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두는 그런 방일지도 몰라요. 물론 그는 클람과 이야기해요. 그러나 그것이 과연 진짜 클람일까요? (353)
우리의 인격이나 소유물은 모두 예외 없이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렸어요. (408)
관청과 같은 조직은 보이지 않는 자체의 율법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조직의 율법은 너무나 커서 K와 같은 개인이 합리성이라는 이유로 비난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르나바스가 심부름을 위해 성을 출입하며 클람을 만나려고 하지만 그의 누이인 올가는 그가 클람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심을 품는다.
올가가 K에게 풀어내는 가족사에 대한 기구한 사연도 인상적이다. 올가, 아말리아, 바르나바스 삼남매와 유명한 소방대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마을에서 사람들의 신망을 얻으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말리아가 성 사람의 편지를 찢어버리는 사건으로 심부름꾼을 모욕했다며 조직과 마을로부터 일가족이 배척당한다. 그리고 부모는 건강을 잃고 삼 남매는 가난 속에서 살아간다. 가족사를 통해 기존의 율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혹한 대우를 보여주는 것일까. 카프카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 부분이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지치는 일이 없고, 아니 실은 누구나가 다 지쳐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인해 일을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을 촉진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고 보면 이 피로는 좀 독특한 것이고, 따라서 K의 피로와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서는 좋은 일을 하는 중에도 피로가 존재했다. 밖으로 나타나는 것을 피로처럼 보였는데, 사실 그것은 파괴할 수 없는 안식이며 파괴할 수 없는 평화였다. 만약 낮에도 사람이 지친 듯 보인다면 그것은 하루가 행복하고 순조롭게 진행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518)
대체 왜 밤에 심문을 실시하는지 모르는가? 밤에 심문을 하는 이유는 - 여기서 K는 새삼스럽게 그 뜻을 다시 한 번 들어야 했다 - 성 안 사람들이 낮에 진정인들을 보면 못 견뎌하니까 밤에 인공적인 불빛 아래서 빨리 심문을 끝내고 모든 추악한 것을 잠자면서 잊으려고 하는 것이다. (530~531)
카프카는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은 한창 젊은 나이다. 법률을 전공했고 보험협회라는 조직에서 14년간 일했던 경험이 그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카프카의 작품세계는 주인공을 알파벳으로 표기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밀란 쿤데라처럼 체코에서 태어났지만 결국은 프랑스나 독일로 이민 갔다는 공통점도 있다.
카프카는 집안에서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남처럼 살았다고 고백했다. 프라하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거대한 조직에서 일하며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는 이방인처럼 살았고 이 점이 그에게 큰 괴로움을 줬다고 한다. 책의 말미에 있는 카프카에 대한 설명을 보며 그의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다.
법률가 카프카는 14년 동안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협회'에 근무했는데, 저녁부터 밤까지 '갈겨쓰기'를 '유일의 염원'으로 하며 살았다. 이 프라하 유대인이 '근무 시간 외'에 쓴 작품은 근래 50여년 사이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593)
<아버지에게 띄우는 편지>에서는 "나는 우리 집안에서 남보다 더 남처럼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여러 가지 세계에 조금씩 속하면서 그 어느 것에도 완전하게 소속되지 않은, 즉 나면서부터 이방인, 아니면 파리아(Paria)였다. 이것이 그의 삶의 숙명적인 성좌였으며, 그는 평생 동안 이 상처로 인해 괴로움을 겪었다. (598)
여기서 카프카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까다로운 관료 기관 - 가령 <심판>의 재판소나 <성>의 사무국 등 - 의 의미가 밝혀진다. 이것은 이방인의 눈에 강제 명령 체계로 비쳐지는 세계 율법의 모습이다. 이방인은 합리적 이해라는 길을 통해 법에 다가가려고 하지만 그 세계에 통용되는 습관적 약속인 율법은 결코 합리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방인의 합리주의'는 그것을 불합리한 체계로 볼 수밖에 없다. (599~600)
독서습관697_성_프란츠 카프카_2016_신원문화사(230218)
■ 저자: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1924)
20세기 독일 문학의 거장 프란츠 카프카는 1883년 체코의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잡화상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항상 의견이 엇갈려 평생을 아버지와의 갈등 속에서 살았다. 1901년 프라하대학 법대에 입학하여 1906년에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시절의 카프카는 대학공부 외에 연극관람이나 강연회, 문학작품 낭독회 등에 참석하였다. 그때 친구 브르트를 알게 됐다. 그 무렵에 발병한 결핵으로 요양소 생활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1908년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협회'라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얻은 체험이 작품에 나타나는 복잡 기괴한 관료기구의 바탕이 되었다.
1912년에는 직장에 다니면서 <아메리카>를 집필하고 <사형선고>와 <변신>을 탈고했다. 그 뒤로는 창작활동이 부진했는데 이 시기에 펠리체(F.B)와 사귀어 약혼했으나 얼마 후 파혼한다. 카프카는 펠리체 외에 두어 명의 여자와 교제를 하였으나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1914년에 다시 창작 활동이 활발해져 <심판>을 집필하였다. 1924년부터 병세가 극도록 악화되어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6월 3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는 소수의 단편밖에 발표되지 않았으나 그의 사후 친구 브르트가 그의 뜻을 어기고 유고를 발표하여 그의 작품은 전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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