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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부바르와 페퀴셰②_인간의 본질 앞에 무력한 학문

by bandiburi 2023. 2. 16.

<부바르와 페퀴셰>는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삶의 마지막을 보내며 남긴 작품이다. 마무리를 하지 못한 미완의 작품이다. 플로베르가 이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부바르와 페퀴셰의 호기심을 소설 속에 녹여넣기 위해 천 권이 넘는 책을 탐독했다고 한다. 현실성을 추구하는 작가의 세심함을 보여준다. 식이요법에서 만족을 얻은 부바르와 페퀴셰는 체조를 통해 체질을 개선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모로스의 개론서를 구해서 화보를 훑어보았다. (317) 이 일에 성공하자, 부바르와 페퀴셰는 대담해졌다. 그래서 대담하게 의료 행위를 하며, 늑골의 통증을 호소하는 성당지기 샹베를랑, (...) 반신불수 환자 등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다.(328)

심령술은 인류의 필연적인 진보를 신조로 삼고 있다. 땅은 언젠가는 하늘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학교 선생은 그 이론에 매력을 느꼈다. 가톨릭적인 것이 아니면서도 그 이론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루이를 원용하고 있다. (341)


2권에서는 부바르와 페퀴셰의 호기심 탐험 여행이 마무리된다. 농업부터 두 아이를 양육하는 교육까지 다양한 체험을 한 결과 그들은 싫증을 느끼고 다시 한 가지를 생각한다. 바로 필경사의 길이다. 시작점도 필경이었고, 마지막도 필경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세계의 넓이는 과거와 현재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난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체험하고,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다시 필경사의 길로 돌아왔다. 그래서 동일한 필경사의 일을 하지만 전혀 다른 인물의 입장에서 일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마술사가 되나? 부바르와 페퀴셰는 처음에는 이러한 생각이 미친 짓으로 보였으나, 자꾸 생각이 나서 마음이 흔들렸다. 결국 그들은 장난삼아 하는 체하며 마술사가 되어 보기로 했다. (344)

마비 상태는 물질적인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면 물질이란 무엇인가? 정신이란 무엇인가? 물질과 정신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이러한 것을 이해하기 위해 부바르와 페퀴셰는 볼테르, 보쉬에, 페늘롱을 연구했다. (353~354)

그러나 철학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스스로를 더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전에 농업이나 문학이나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던 자신들의 모습을 딱하게 여기고 있었다. (362)


두 사람은 어리석을 정도로 자신들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한다. 돈키호테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모든 것을 기존의 지식에만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요즘은 챗 GPT라는 인공지능이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인간이 축적한 인터넷 세상의 데이터들을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분해하고 재조립해서 인간이 요구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인공지능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지식과 흔적들을 모아서 재조립하는 수준을 넘어설 수 있을까.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것을 조금씩 짜깁기 해서 내놓는 것에 불과한 것인데 인간은 감히 할 수 없기에 환호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스마트폰처럼 새로운 장이 열릴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의 호기심은 새로운 환경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낸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오늘을 산다면 인공지능 세계를 향해 떠날 것 같다.

그는 다른 의자 위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멈추면서 말했다. "그런데... 우리 유서를 쓰지 않았잖아?"(...) 그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성당으로 갔다. (387)

그들을 죽음의 길에서 돌려놓은 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부바르는 감상에 젖어 있었고, 페퀴셰는 첫 영성체를 회상해 보았다. 그들은 자기들을 주관하는 권능과 신을 전적으로 인정하면서, 성서를 읽어볼 생각을 했다. (390~391) 집으로 들어서면서 그들은 계단 밑의 성모상 아래에서 마르셀이 무릎을 꿇고 열성적으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눈을 반쯤 감고 언청이 입을 벌리고 있는 그의 모습은 황홀경에 빠진 고행자처럼 보였다. (449)

부바르와 페퀴셰는 교육에 관한 저서를 몇 권 구해서 자신들의 방법을 결정했다. 형이상학적인 모든 관념은 제거시켜야 한다. 실험적인 방법을 따르면 본성이 발달하게 된다. 두 아이들은 틀림없이 배운 것을 잊어버릴 테니까 조금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451) 부바르와 페퀴셰는 측량쇠줄, 측각기, 연통관식 수준기와 나침반을 구비하여 다른 연구를 시작했다. (500)

그러나 그들은 곧 지루해졌다. 그들의 정신은 일을 필요로 하고, 그들의 존재는 목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실패한 게 어떻다는 건가? 아이들에 대해서는 실패했지만, 어른들에 대해서는 좀 쉬울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어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기로 했다. (504)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는 더 이상 인생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각각 남모르게 좋은 생각을 품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 감추고 있다. 이따금 그들은 그 생각을 하면서 미소 짓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동시에 서로 그 생각을 털어놓는다. 필경을 하자. 대가 두 개 달린 사무용 책상을 만든다. (512)


아래는 번역자가 대화 형식으로 정리한 작품해설이다. 문학작품을 읽으며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어렵다. 하지만 해설을 보면서 전체적인 윤곽을 잡고 저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역자가 정리한 내용 중 저자와 소설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을 인용한다.

이 작품은 나와 동시대인들에게 느낀 혐오감과 분노를 송두리째 토해놓는 구토와도 같은 작품이니까요. 그것이 아무리 쓰라린 작업이어도, 제 마음을 가득 채우며 짓누르고 있던 모든 것을 비워내야만 했어요. 목에까지 차올라서 터져버릴 지경이었으니까요. 조르주 상드에게 이 작품은 내 마지막 유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부라르와 페퀴셰>는 저의 모든 경험과 인간 그리고 인간의 사업에 대한 판단이 집약된 유작입니다. (519)

저는 <부바르와 페퀴셰>를 통해 인간의 지성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인간의 본질 앞에서 과학은 근본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을 폭로하고 싶었습니다. (522)

사실 절대적인 진리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마치 신과 같은 태도로 모든 것을 설명하면서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았지요. 제가 평생을 두고 그렇게도 못 견뎌했던 인간의 어리석음 말입니다.

<부라르와 페퀴셰>에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매번 상반되는 이론이 동시에 제시됩니다. 2장에서부터 10장에 이르기까지 두 주인공은 원예, 농업, 화학, 의학, 지질학, 고고학, 역사, 문학, 철학, 종교, 교육 등 온갖 분야의 학문을 두루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마다 매번 전문서적을 탐독하고 절대적인 진실을 추구하며 과학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노력하지만 늘 실패하고 맙니다.

서로 모순되는 이론들이 대립적인 평행 관계를 이루며 제시되기 때문에, 비교해보아도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진위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523)

그러니까 부바르와 페퀴셰의 어리석음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샤비놀 주민의 어리석음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서, 끊임없이 그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확언을 잘 하고 도식화하기를 좋아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샤비뇰 주민이 지닌 어리석음의 속성이라면, 부바르와 페퀴셰의 어리석음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확실한 것을 의심하고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어지럽히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샤비뇰 주민의 어리석음은 도식적으로 굳어진 것으로서 타성적인 힘을 행사하지만, 두 인물의 어리석음은 능동적이고 파괴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들은 이 세계 안에서 능숙하게 처신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이 세상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을 밝혀내고 폭로하는 역할을 합니다. (527)

플로베르는 그 해(1880년) 5월 8일 파리 여행을 준비하던 중에 크루아세에서 뇌일혈로 사망해 11일에 루앙에 묻혔다. 그가 죽은 지 약 1년 후인 1881년 3월, 그가 평생 동안 꿈꾸다가 유작으로 남기고 간 <부바르와 페퀴셰>가 출판되었다. (541)


독서습관696_부바르와 페퀴셰②_귀스타브 플로베르_2006_책세상(230215)


 

■ 저자: 귀스타브 플로베르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1821년 12월, 노르망디의 루앙 시립병원에서 수석 외과 의사인 아버지 아실 클레오파 플로베르와 어머니 쥐스틴 카롤린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 탓에 자연과학과 매우 친숙한 분위기에서 자랐지만 어려서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낭만적인 문학 작품들을 탐독했다.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했지만 여전히 문학에 대한 소양과 관심을 잃지 않았던 그느 1836년까지 여러 소품들을 쓰기도 했다.

1844년 거리에서 신경성 발작을 일으켜 마차에서 떨어진 후로 적성에 맞지 않는 법학 공부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창자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 활동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1845년에 <감정 교육>을 집필하고 1849년에 <성 앙투안의 유혹>을 탈고하지만 주위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그를 단번에 유명작가로 만들어준 작품은 1856년에 발표한 <보바리 부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유명해진 계기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대중적이고 종교적인 도덕과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기소된 것이었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오히려 그것이 대중의 관심을 끌게 되면서 보바리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플로베르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현지 답사하는 것은 물론, 작품과 관련된 전문 서적을 수천여 권 탐독할 정도였는데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실제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그만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예술적인 '미'였다. 그리하여 지나치게 현실만을 강조하면서 독창적인 예술 작품으로서의 미를 무시한 당대의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다양한 색조의 작품들을 발표했다.

말년에 건강 악화와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은 그는 1880년 5월 뇌일혈로 사망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살람보>, <부바르와 페퀴셰>, <세 가지 이야기>, <통상 관념 사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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