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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아무튼 예능_예능인과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성찰

by bandiburi 2023. 2. 12.

텔레비전 프로그램, 연예인, 예능 프로 등 평소에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한 책 <아무튼, 예능>을 봤다. 텔레비전을 마음껏 보고 싶은 마음에 피디가 되고 싶었지만 막상 방송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은 보지 않는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기획을 하고 촬영한 뒤에 다시 편집을 하며 시청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이 고단한 일일 것이다. 동일한 노력을 들여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1박 2일'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푹 빠져든 적도 있었다.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난무하고 그만큼 많은 연예인들이 등장하고 사라졌다. 이 책은 전문가의 입장에서 연예 프로그램과 예능인들에 대한 의견을 담고 있다. 나영석 피디와 같은 유명한 피디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연예인들이 평가의 잣대 위에 있다. 유재석, 강호동, 박미선, 송은이, 김신영, 이영자 등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예능 프로그램이나 연예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른 사람의 일과 소일거리에 불과한 프로그램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을 통해 한동안 잊고 지냈던 연예계의 소식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느낌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방 자체가 소외나 박탈감을 느끼기 쉬운 공간이지만, 미디어의 극단적인 서울 중심주의는 서울에 대한 지방의 식민성을 확대하고 불만을 부추기는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서울에 가야 저런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빠지기 쉬운 착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방 청년들에겐 그렇게 조성된 미디어의 환경 자체가 삶의 어떤 한계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다. (33)

한국 예능은 결혼을 종용하고 권하기만 하다가 이제는 결혼만이 인생의 선택지가 아니라는 것,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혼으로 살기 위한 결심, 그리고 비혼 가구가 겪는 문제점을 다룰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결혼 여부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그것이 다시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시대의 결혼 예능이 궁금하다. (55)

중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느꼈다. 학교에서 권하는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가치는 '안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상정된 사회는 한국이었고, 이곳에서 안정을 획득하는 방법은 학업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개인의 각성과 노력이 먼저였다. 그것 외에는 없는 것 같았다. 학습에 재능이 있거나 부족한 재능을 뒷받침해 줄 환경이 되는 극소수 아이들이 그 가치를 향해 조금씩 성취해가고 있을 때, 학교는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순응이나 포기 외에는 어떤 가치도 가르칠 예정이 없었다. 분명히 나와 내 친구들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고 있었다. 벌써부터 누군가는 안정이 보장된 사회에 발을 들이고 있었고, 그걸 모두가 알았다. (61)

멋있는 할머니, 내가 수없이 번민이 빠지는 것도 결국 이게 되고 싶어서다. 모든 것에 초연해지는 때에 진짜 멋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궁극적 목표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그것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여자는 늙을수록 친구와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는데 정말 그럴까. 나는 돈이 없고 친구들이랑도 전부 싸웠는데, 어디서 뭐부터 포기해야 하는 거지. 불안보다는 이미 글렀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64)

한 해의 마지막을 모든 방송사가 시상식으로 때우고 마는 것도 그만큼 한국이 연예인에 미친 나라라는 방증이다. (79)

그러나 나는 정말 리얼리티 예능에서만큼은 그 사람이 존중받고 있다는 연출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미가 불분명한 가사가 반복되더라도 분명 사람이 만든 음악이다. 아직 어리고 보호를 받아야 할 연령대를 대상으로 삼고 싶다면 그들에게 '거친 세계'임을 주지시켜 개개인에게 통제력을 기르라고 종용하기보다는 그들을 컨트롤하는 회사는 윤리적 고민을 거듭하고, 제작사는 시청자들에게 기본적인 안전거리를 보장해야 할 것이다. (117~118)

남성 연예인들은 대개 커리어의 성공과 함께 '거물'에 준하는 이미지를 쉽게 얻는다. 이 거물이 과거가 특별히 문제될 게 없고 사생활을 탈 없이 유지하고 정치적 의견이나 사회 담론에 대한 소신을 최대한 잘 숨기고 참으면 '하느님'으로 격상된다. 한국의 유명인 중 그런 절대적 의미의 신은 유재석 한 명뿐이다. (126)

30년 경력의 코미디언답게 그의 어록은 무궁무진한데 그중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이 말이다. "개그맨은 나의 직업이고, 영화는 나의 꿈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마다 꿈을 가지고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영원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고 밝힌 중년 남성의 말은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135~136)

이 이상한 현상에서 경상도 남자들에겐 옵션이 더 붙는다. 개개인이 제5공화국의 권력자라 생각하는 일종의 역할극이다. 이걸 듣고 웃지 않는 사람은 당사자뿐일 것이다. 70년대 산업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에 살고 군사정권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찬양하면서도, 왜인지 그들의 정신만큼은 중세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들은 약간 계급이 높고 충심 가득한 신하다. 그러나 5백 년 조선 역사를 속성으로 배운 탓인지 어느 조선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웃음 포인트다. (151)

미디어는 섹스를 방송의 수단 중 하나로만 삼았고 그런 태도를 방치했다. 이제 그렇게 조장된 사건에 책임지지 않으려 했던 과거를 인식했고, 반성의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진짜 이야기해야 할 것을 말하고, 하면 안 될 것에는 분명한 신호를 보내는 자리가 필요하다. 진짜 천재라면, 그런 자리를 마련하고 보전해야 하는 것 같다. (167)

현재 한국 미디어 흥행의 3요소는 여행, 음식 그리고 나영석이 사랑하는 남자다. (174)

이제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내 오기가 전해진다고 해서 몇 십 년 다져온 세계의 판도가 바뀔 리 없다. 잘 안다. 그러나 꾸준히 뿌리내린 남성 중심적 시청 담론에 대항해 많은 여성 시청자가 여성으로서의 시청 권력을 활발하게 행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전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겠다는 결의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도 비장한 톤으로 말하고 싶어졌다. (181)

자신이 선택한 방향이 분명해졌을 때 나는 박미선이 업계에서 버티면서 쌓아온 화려한 경력이 어떤 식으로 빛을 보게 될지 궁금하다. 다시 아줌마 예능을 맡아도 좋겠다. 그 수많은 아줌마 예능을 지금의 박미선이라는 인물로 다시 엮어 해석한다면 훌륭한 여성 코미디로 다가오지 않을까. (195)

이영자는 거물이다. '알고 보면 여린 여자', '소녀 감성' 이딴 수식어 없어도 그만이다. 앞으로 누가 그런 말을 이영자에게 붙여도 붙인 사람만 우스워질 것이다. 그는 후배 여성 예능인들의 모델만이 아니라 모든 여성이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인물이다. 그가 가진 재능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한 시간들, 질곡 많은 사연들, 그것을 담아내는 그의 몸에 대한 설전까지 모두,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들의 저항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201~202)

셀럽파이브에서 김신영은 에이스이자 센터다. 김신영은 말의 재능뿐 아니라 신체적 표현에도 강하다. 어떤 제스처를 어떻게 구사해야 하는지 기가 막히게 안다. 그 액션에는 늘 에너지와 기합이 배어 있다. 어떻게 보면 강호동의 에너지와 같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에너지가 권력으로 작용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모두 풍자적으로 느껴진다. (206~207)

물론 송은이에게 이런 영웅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송은이가 어렵게 바꿔놓은 세상의 룰은 그렇게 한 사람이 무게를 지탱하며 권력을 지키고자 서열을 만들고 서로 헐뜯으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빼도 괜찮고, 불필요한 대결이나 견제를 하지 않아도, 명예를 좇지 않아도, 세력을 만들거나 다수가 선택한 삶의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괜찮은 곳. 나는 송은이의 세상에 살고 있다. (218~219)


독서습관694_아무튼, 예능_복길_2020_코난북스(230212)


■ 저자: 복길

'복길'은 트위터 계정 이름이다.

한 반에 대여섯은 있었던 PD가 장래희망인 사람이었으나, PD는 방송을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란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PD가 아닌 다른 일로 방송국에 취직했는데 '방송국 다니면 텔레비전 싫어져'라는 말을 들었다. 방송국에 다녀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싫어지긴 싫어졌다. 웃기려고 만든 방송을 보면서 화가 나고 슬펐고, 어떻게 내가 어릴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지 궁금했다.

지금은 장래희망이라면 TV를 끄거나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대신, 죽기 직전까지도 한국 방송의 가장 열렬한 시청자가 되는 것인데, 지금 일고 있는 작은 변화들이 그래서 반갑고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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