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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630_시인이 선별한 작가들의 좋은 글과 감동_뭉클_신경림_2017_책읽는섬(220923)

by bandiburi 2022. 9. 22.
신경림 작가가 가슴 뭉클하게 읽었던 산문들을 모아놓은 책 <뭉클>이다. 제목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해준다. 1935년생인 작가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기에 읽었을 법한 1950년대 이전의 작가들이 많다. 나와는 1.5세대 정도 시간적인 거리가 있다. 하지만 신경림 씨가 선정한 대부분의 작가들이 친숙하고, 사회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내용이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연탄재를 치우듯 어머니의 흰머리를 줍다가, 그래서 결국, 인간은 한 장의 연탄임을 나는 깨닫는다. 우리는 누구나 한 장의 연탄이다. 나의 삶도, 그 누구의 삶도 실은 누군가의 연소 끝에 이어진 연명이다. 그래서다. 해서 잠든 어머니와 잠든 아들의 얼굴을 번갈아 오가며, 나는 나의 삶 - 이들 사이에 낀 한 장의 묵빛 연탄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 <우리는 누구나 한 장의 연탄이다> 중 박민규 (37페이지)

수연! 그 이름처럼 그는 자기 둘레를 항상 맑게 씻어주었다. 평상심이 도임을 행동으로 보였다. 그가 성내는 일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는 한 말로 해서 자비의 화신이었다. 그를 생각할 때마다 사람은 오래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문제로 떠오른다. - <잊을 수 없는 사람>중 법정 (54~54)

경제나 사회에 관한 건조한 책들과는 달리 산문집은 개별 작가의 생각에 쉽게 동화되어 짧지만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가족이나 연인 그리고 자연에 대한 글과 글에서 풍기는 느낌은 우리에게 정서적인 만족감을 준다. 가난으로 인한 죽음과 이별을 글로 극복하려 하는 모습 속에서 현재의 한국 사회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겨울 기나긴 밤, 청춘도 가고 월태화용(月態花容)도 시들어 하루아침에 시체로 변하고 보면, 임자 없는 화류계 여자로 '줄무지'의 신세를 질 것을 생각하고 베갯모를 적시며 소리 없이 울었을 그를... - <연가> 중 박용구 (70)

창밖에선 여전히 눈이 싸르르 싸르르 내리고 있다. 저 적막한 거리 거리에 내가 버리고 온 발자국들이 흰 눈으로 덮여 없어질 것을 생각하며 나는 가만히 눕는다. 회색과 분홍빛으로 된 천정을 격해놓고 이 밤에 쥐는 나무를 깎고 나는 가슴을 깎는다. - <설야 산책> 중 노천명 (105)


모든 있는 것은 없어질 것이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슬프기도 하거니와 또 아름답기도 한 것이다. 이 꽃이 피기 전에, 이 꾀꼬리 소리가 끊이기 전에 이 청춘 몸과 정열이 가시기 전에 보자, 듣자, 살자 할 것이다. - <꾀꼬리 소리>중 이광수 (122)

젊은 시절 읽었던 책은 한 사람의 일생에 큰 영향을 주고 깊이 남는다고 한다. 신경림 작가도 여러 사람들의 글을 통해 자신을 채워갔고, 채운 뒤에 글을 써서 책으로 흔적을 남겼다. 일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스마트폰에 대부분의 시간이 잠식되는 시대다. 폰으로 책을 볼 수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책을 봐야 한다. 글을 머리로 상상하고 작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늘 기대가 된다.  

평생을 서서 살았다 - 라는 구절은 지나온 나의 인생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이며,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으로 나는 지나치게 분주하게 살아온 것이다. 하잘것없는 사업이나 생계를 위하여 나는 그날의 문제에 과도하게 사로잡히고, 눈코 뜰 사이 없이 열중한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뿐만 아닐 것이다. 대체로 우리 주변에는 지나치도록 분주하게 사는 사람으로 충만해 있다. 하지만 분주한 생활 그것이 과연 얼마나 인생의 참된 보람을 우리에게 베푸는 것일까. 겨우 그것에서 얻어지는 것은 몇 푼 되지 않는 물질적인 대가나 아니면 허황된 명성이나 한 줌의 권력이나 하루아침에 무너질 물거품 같은 것들이다. 그것을 위하여 우리는 열을 올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 자신의 참된 자기를 망각하고 전혀 눈길이 외부로 향하여 허황하게 부푼 정열에 들뜬 생활이라는 뜻이다. - <평생 나는 서서 살았다> 중 박목월 (159~160)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돈이 없어 죽겠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돈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무한한 유일의 재산이며, 영원한 당신의 것이올시다. - <사랑하는 나의 정숙이에게>중 박인환 (216)

책에서 가슴 뭉클했거나 깊이 공감하는 부분을 파란색으로 인용했다. 특히 함민복 씨의 <눈물은 왜 짠가>는 평범한 듯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이 잔상으로 남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어 전문을 담았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국물을 그만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만 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수,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며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왜 짠가>중 함민복 (177~178)

■ 저자: 신경림

1935년 충북 충주에 태어나 충주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갈대> 등이 추천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농무> <새재> <가난한 사랑노래> <길> <쓰러진 자의 꿈>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 <낙타> <사진관집 이층> 등과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산문집 <민요기행> <시인을 찾아서 1, 2> 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단재문학상, 대산문학상, 시카다상, 만해대상,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동국대 석좌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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