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에 카페에 앉아 시원한 에어컨 바람 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여유 있게 마시는 것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작고 페이지마다 여백이 충분히 있어서 반나절이면 쉽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는 과정을 잘 표현했다고 다른 책에서 추천을 받은 책이라서 기대감도 컸다.
결론적으로 글은 많지 않았지만 저자 김여진과 함께 30대의 나이에 피아노를 배우며 그녀의 삶에 대한 성찰에 동참하는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몇 가지로 소감을 정리해보자.
첫째,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나이 불문하고 언제든 가능하다.
저자는 피아노를 중학교 1학년 때까지 배웠고, 이후로도 클래식 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즐기는 사람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피아노로 쳐보고 싶다는 마음과 마침 일하는 카페 근처에서 피아노 학원을 만났다. 과감하게 6개월의 피아노 레슨과 연습과정에 도전했다.
특히 피아노 악보에 나오는 문구나 곡명에 대한 기초적인 설명은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가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진다. 유튜브로 '세상의 모든 음악'을 즐겨 듣는데 유명 작곡가들의 곡을 소개하며 작품번호 등을 언급하는데 무슨 의민지 모르고 지냈다.
특히 모차르트의 작품번호가 100번이 넘는 경우 25로 나누고 더하기 10을 하면 모차르트가 그 곡을 작곡한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는 부분은 흥미로웠다.
블로그에 1000권의 독서후기를 올리겠다는 목표를 실천하며 수많은 국내외 저자들의 삶을 만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이미 하나의 중장기 도전의 길을 걷고 있다. 엔지니어로 살아온 20여 년에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도전을 추가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다.
둘째,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우리를 도전하게 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 대부분이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자신의 관심보다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친구들을 따라 학원을 다닌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에 실증을 느끼고 고학년이 되면 반항하며 그만둔다.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세 아이들을 보더라도 6년을 넘기지 못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이 축적되고, 주변 환경에 대한 성찰이 이어지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커진다. 그리고 현실과 욕구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단계가 온다. 그때 과감하게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이유로, 나이에 맞지 않는다는 선입견으로 우리는 도전을 쉽게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한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후회한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묘비명처럼 말이다.
셋째, 자신의 도전 과정과 일상을 글로 쓰는 일을 지속하며 꿈을 향해 간다.
문예창작과에 가서 작가가 되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삼수 후에 포기하고 밥벌이의 길로 들어선다. 하지만 작가를 향한 여정은 계속했다. 일기를 쓰며 일상을 기록하고, 다른 작가의 글을 필사하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피아노 도전기를 기록하고 이렇게 책으로 엮어냈다.
독서활동을 하며 소감을 정리하며 늘 생각을 문자로 풀어내는 능력의 한계를 실감한다. 그럴 때마다 짧게라도 일기를 쓰며 하루의 기억을 요약해서 기록해보자는 다짐을 하는데 계속 미루고 있다. 되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다. 뛰어 들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대학에 실패하고 일을 했지만 이후에 관심분야를 찾아 대학에서 배움을 이어간다.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하면 대학을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지배적이다. 그 시기에 대학을 가지 않으면 루저요 뒤처진 듯한 인상을 갖는다. 학업에 대한 관심이 오는 시기가 사람마다 다르다.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면서, 또는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여행이나 책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이 넓어지면서 해보고 싶은 일이 추가된다. 그리고 진지하게 배우고 싶은 분야가 생긴다.
그러면 그때 사이버대학이든 오프라인 대학이든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면 된다. 평생학습의 시대이고 평생직업의 시대다. 산업화 시대와 같이 한 직장에서 퇴직까지 일하는 평생직장의 개념은 일찌감치 깨졌다.
MZ세대가 다르다고 한다. 지금은 Z세대가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눈높이가 다르다. 의무교육의 틀에 맞춰진 학습의 결과물로 학생의 미래를 제단 하는 시기가 아니다. 언제든지 해보고 싶은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세상이다.
김여진 저자의 책은 짧지만 성찰이 있고, 전해주는 정보도 있어 좋았다. 고3의 진통을 겪고 있는 막내와 군대 제대를 앞둔 첫째에게 권해주고 싶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Op’란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오푸스 OPUS’의 약자로 작품번호를 일컫는다. 당대 악보를 출판하던 출판업자들이 작곡가들의 수많은 작품을 혼동하지 않도록 편의상 붙인 게 대부분인지라 ‘출판일련번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33)
Op.post: Opus postumus의 준말로 유작이란 뜻
BWV: (…) 1120개 바흐의 작품 고유번호
Hob: (…) 하이든의 750여 곡을 장르별로 분류해 연대순으로 붙인 고유번호
K 또는 KV: 쾨헬 번호. (…) 작곡 순서에 따른 모차르트 작품 고유번호
D: 도이치 번호. (…) 998개의 슈베르트 작품 고유번호
L: (…) 드뷔시 작품 고유번호 (34~35)
2018년 1월 한 국 영화 기대작으로 꼽힌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진태 역을 맡은 배우 박정민 분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뇌기능 장애로 인해 사회성은 떨어지지만 피아노만은 천재적으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진태. 그는 진태가 되기 위해 난생처음 피아노를 배웠다고 말했다. (41)
그렇지만 중요한 건요, 단 한 곡을 치더라도 그 곡과 곡을 만든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감정을 불어넣어 칠 수 있느냐예요. (55)
무조건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좋아해서 곁에 두니까, 마침내 되는 거다. (60)
인생은 나이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계속 배워야 해. 신기한 건 아무리 배워도 배울 수 있는 게 자꾸 생긴다는 거야. (98)
(…) 이 곡은 프랑스 오페레타 OPERETTA(보통 희극적인 주제의 짧은 오페라)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오펜바흐가 작곡한 곡으로 그의 작품 목록에는 올라 있지 않은 미발표 곡이었다. (…) (122)
삼수까지 하다가 내 휴대폰 통신료는 스스로 납부해야겠다 싶어 입시 공부를 아예 관두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140)
기록을 하는 이유는 언제라도 그 찰나를 소환하고 싶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록해둔 순간과 현재 내가 머무는 순간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147)
흥미로운 건 100번 이후의 작품번호를 25로 나누고 거기에 10을 더하면 작품을 쓸 당시 모차르트의 나이를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177)
내 삶이 나를 혼낸 적은 있어도 나를 버린 적은 없는 것 같아. (195)
피아노를 칠 때마다 나무의 나이에 귀를 기울인다. (198)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 A단조 KV. 310을 처음 들은 건 2014년에 방영된 드라마 <밀회>에서였다. 성공을 위해 앞만 달려온 예술재단 기획실장 혜원과 음악에 재능이 있으나 지원이 필요했던 청년 선재가 피아노를 통해 교감하고 사랑을 키워간다는 본격 섹시 치정 멜로. 안 볼 이유가 없었다. (266)
기약도 없이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그러는 동안 딴 길로 새든, 정말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에 품고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포기는 하지 않은 거라 믿는다. 당장 행동하지 않아도 괜찮다. 행동에 옮길 막연한 언젠가의 방향으로 몸만 틀고만 있으면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거기에 가 닿아 있을지 누가 알겠나. (291)
■저자: 김여진
거의 매일 같은 길로만 다니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때마다 낯선 나라에 이끌려 어디로든 떠나기도 합니다. 유약하지만 혼자 일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쉽게 부서지지만 부서진 입자들은 더 이상 부서질 수 없이 견고하기에 말랑하면서 단단한 이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지은 책으로 <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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