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례 집회를 경험하며 동학도들의 위세에 잠시 놀랐지만 고부 군수 조병갑은 동학도를 잡아들일 궁리를 한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해서 신도들을 압박하고 동학 두령들의 움직임을 알기 위해 첩자를 심으려 한다. 탐관오리들은 돈과 연줄을 이용해서 자리를 차지하고 백성들을 쥐어짜서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집회 후에 감사에게 이런 행위를 엄벌한다는 영을 내렸지만 백성들의 삶을 여전하다.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서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없고, 권세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구분이 없고, 죽어서 천당과 지옥을 운운하는 불교와 천주교와는 달리 살아있는 지금 사람이 하늘이라는 인내천의 동학사상은 점차 백성들 사이에 퍼진다. 양반도 하늘이고, 백정도 하늘이다. 서로가 하늘이기에 차별이 없다. 경천동지 할 사상이다. 수운 최제우가 종의 신분인 두 여인을 양녀와 며느리로 삼았다는 내용도 언급된다. 인내천을 몸소 실천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감화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만득이와 유월례가 부부의 연을 맺었음에도 종이라서 호방은 돈과 권력을 이용해 만득이를 멀리 북쪽으로 보내고 유월례를 첩으로 두고자 한다. 조선시대 여자 종은 주인이 원하면 성적인 노예와도 같은 낮은 위치였음을 알 수 있다. 다행히 달주와 용배 무리의 도움으로 위태로운 상황을 면한 만득이 부부는 월공 스님의 지략으로 안전한 장소로 피할 수 있었다.
"(...) 자네가 순녀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글래 우리 내외가 여러 가지로 그쪽 부모들한테 자네 말을 했었네. 그런디 그쪽에서는 별로 마음이 없는 것 같네. 요새 세상에는 돈이 질 아닌가? 사람이 아무리 잘 나도 돈 없으면 사람 축에 못 드는 것이 요새 세상인심이네. 돈이 양반이고 돈이 사람이여." (317)
130여 년이 지난 현재를 생각한다. 1890년대에도 돈이 있는 자,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백성들 위에 군림했다.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지금도 돈과 권력은 힘을 발휘한다. 조선시대 권문세가의 자녀들이 부모의 힘을 믿고 우쭐대는 사람이 있었듯이 지금도 부모의 재력과 권력을 이용해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날에는 부모와 조부모가 앞서서 자신의 자녀들의 편안한 삶을 위해 온갖 제도를 이용한다. 국가적인 복리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의 안위가 우선이다. 비슷한 위치의 사람들이 유유상종이라고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기에 열심이다. 최근의 장관 청문회를 보며 시대를 불문하고 돈과 명예 앞에 사람이 얼마나 나약한지 깨닫게 된다.
"아까 그 스님이 며느리보고 돌아보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 것은 또 무슨 이친 줄 아는가? 내가 처음에 이 소리를 하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구만.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 며느리처럼 새 세상, 동학에서 말하는 선천의 세상에서 후천의 새 세상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는 선천의 세상 즉 그 시아버지가 주장하던 세상에 대한 인정이나 인연이나 정분 같은 것을 칼로 베듯 끊어버리라는 소릴세. 팔 베어버리고 달아난다는 소리가 있잖은가? 손을 잡으면 제 팔이라도 베어버리고 달아나거라. 그때는 선천 세상과 맺어진 온갖 끈을 인정사정 두지 말고 잘라버리라는 소리여. 앞으로 후천의 새 세상이 온다, 오는데 그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 (295)
이 문장을 보며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는 롯의 가족이 떠올랐다. 특히 뒤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가 녹두장군에서 뒤돌아보고 바위가 된 며느리와 유사했다. 대홍수에 대한 이야기도 세계 여러 지역에서 민간설화로 등장한다. 그런 면에서 성경에 있는 구약 부분은 그 지역의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일부 흡수된 것은 아닐까 생각을 확장해본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476
독서습관564_만득이 부부의 탈출과 조병갑의 동학도에 대한 반격_녹두장군③_송기숙_1989_창작과비평사(22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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