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저자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내용이 풍성하고 다양한 책과 영화를 인용하면서 국가의 미래를 위한 현실 진단과 가야 할 길을 제시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평등, 정치와 검찰, 검찰과 미디어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저자의 박식함에 놀랍니다. 특히 독일에 대해서는 자신의 베를린 주재 경험을, 일본은 시계열 순으로 책을 인용해서 딜레마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의 저자 박태웅이 조선희의 남편인 것을 알고, 글쓰는 데는 부창부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의 책에서 모두 대한민국의 현재의 모습을 진단하고 부족한 부분을 드러냅니다. <상식의 재구성>에서 등장한 책과 영화들 중에서 향후 봐야겠다는 것들은 접하는 족족 정약용 도서관 사이트에 폰으로 접속해 '읽어야 할 도서목록'에 저장해 두었는데 몇 20여 권은 족히 넘습니다.
좋은 책은 지식의 외연을 넓히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좋은 책이라고 권합니다.
아래는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을 인용합니다.
3만 불이라는 통계의 디테일을 KBS 경제부 기자 김원장의 2019년 3월 26일자 페이스북에서 발췌해본다. 포스팅의 제목은 '누가 소득이 늘고 있다고 말하는가.'
소득 3만 달러 시대다. 진짜 그런가 보다. 지난해 상반기, 10억 원이 넘는 정기예금 계좌는 4만 1천 개로 늘었다. 1년 만에 또 3000개(7.9%)나 늘었다. 부자고객을 위한 은행들의 자산관리(WM) 시장이 자꾸 커진다. 보통예금이 30억 이상 고객들이다. 지난해 시중 4대 은행이 WM시장에서 번 수수료는 1조 원이 넘는다. (...) 지난해 10억 원을 초과하는 저축성예금의 잔액은 마침내 600조 원을 넘어섰다. 5년 전에는 320조 정도였다. 이 뭉칫돈 예금 안에는 물론 가계뿐 아니라 기업의 돈도 들어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시장에서 누군가는 진짜 돈을 많이 번다는 것이다.
그 '치우친 부'가 1인당 GDP를 끌어올린다. 그 '흐뭇한' 통계는 우리 사회 벌어지는 격차를 가린다. 그게 핵심이다.
사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는 도통 체감이 안 된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면, 3300만 원이 넘는다. 4인 가구라면 1년 소득이 평균 1억 3천만 원 정도 된다는 뜻이다. 외벌이 가정에서 남편 연봉이 1억 3천만 원이라도 해도 평균밖에 안 된다. 말이 안 된다. 전혀 체감이 안 된다. 이유는 국민소득을 계산할 때 ① 가계뿐 아니라 ② 기업소득과 ③ 정부소득(세수)을 함께 계산한다. 그러니 가계소득이 오르지 않아도, 기업이나 정부의 소득만 커져도 GDP는 올라간다. GDP는 국민의 실제 주머니 상황을 잘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우리는 GDP에서 기업이나 정부 비중이 높고, 유독 가계 비중이 낮은 나라다.(74~75)
진보 내부의 진보 비판으로 강준만의 강남좌파론은 신랄하나 설득력 있다. "정책결정을 하는 집단에 가장 필요한 건 계급적 다양성이다."(80)
과거엔 며칠 뉴스에 나오다 말았을 '의혹 사건'을 '게이트'로 키워 1~2년 동안 미디어를 뒤덮는 건 검찰이다. 검찰이 정치행위를 한 것이다. '검찰이 왜 그랬을까'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명백한 것은 '함량 미달의 게이트'들로 국민 대중을 과도하게 흥분시킨 것은 미디어들이라는 사실이다. (93)
2017년 영화 <재심>은 약촌오거리 택시강도 사건을 다룬다. 경찰은 우연히 현장을 지나던 10대 소년을 장발에 오토바이를 타고 몸에 문신이 있고 학교를 중퇴하고 다방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범인으로 단정한 다음엔 모든 반대 증거들을 무시하고 심지어 진범이 잡혔는데도 묵살하고 소년을 10년간 감옥살이하게 만드는데, 역시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109)
일본의 진보정치가 보수 카르텔의 콘크리트를 뚫고 뿌리내리는 데 실패한 것이다. 한국 역시 진보정치를 튕겨내고 협공하는 보수 카르텔, 미디어와 공권력의 관성은 공고하다. 투표율이 떨어지면 진보 후보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오는 건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마찬가지다.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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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탈환한 권력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기득권을 한꺼번에 복구하겠다는, 권력을 도로 내주지 않겠다는 욕망이 민주주의 룰에 대한 일련의 반칙을 가져왔다. 내각을 새로 구성하는 데서 나아가 정부 산하 기관장들을 임기 무시하고 교체한 것이 첫 번째 반칙이었다. 공공기관장은 원래 퇴역 장군과 여당 정치인들 몫이었는데 김대중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기관장들을 공체로 뽑고 임기를 보장하도록 했다. 대통령 임기는 5년, 기관장 임기는 대개 3년이라 서로 겹치면서 엇갈리게 돼 있고, 대통령이 바뀌어도 기관장의 남은 임기를 기다려주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163~164)
2000년 이후 언론 지형이 보수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것은 전두환 정권 이래 거대 기업체가 된 조선, 중앙, 동아가 여전히 메이저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김대중 정권 때 언론사 세무조사로 사주들이 구속됐던 일과 언론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적대적 태도가 이들을 강경 보수의 카르텔로 뭉치게 했다. 각종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세제혜택을 누리며 비대해진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 미디어산업의 변화와 함께 폭증한 언론 매체들의 취재 난맥상에 대한 거친 대응은 나름 이유는 있었지만 보수 매체들과 진보 정권 사이의 악연을 추가했다. 이명박 정부 아래서 3대 메이저 조선, 중앙, 동아가 종합편성 TV채널을 갖게 됨으로써 진보 정권에게 미디어 환경은 한층 열악해졌다. (170)
정치평론가 박성민은 '나는 비토크라시를 고발한다'는 글에서 "대통령의 힘은 빠지고 국회, 관료, 사법부의 권한은 커진 '과두'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파워 집단 간 키가 비슷해졌다. 그 누구도 어떤 일을 결정할 힘을 갖지 못하고 상대의 정책과 의도는 모조리 거부할 수 있는 '비토크라시의 늪'에 빠져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위기의 핵심적 문제다. 누구도 일을 못되게 할 수는 있으나 누구도 일을 해낼 수는 없다"면서 '노후화한 1987년 체제'의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175)
비대한 검찰권력을 개혁하겠다는 것이 정치인들이지만, 검찰 권력을 비대하게 만드는 게 정치인 자신들이라는 얘기다. 정치 양극화, 양당과 양 진영 사이의 대립이 심해지면 고소고발전도 가열된다. 검찰로 달려가는 정치인들이 검찰 정치의 판을 깔아준다. 정치의 공이 검찰과 법조로 넘어가면, 대립하는 양 진영 사이에서 그들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다. 사건의 선택과 수사의 방향, 판결의 내용에 따라 얼마든지 정치 상황을 주무를 수 있으니, '검찰 패권' '법조 패권'이라는 용어가 유행한다. (177)
검찰 정치의 시대에는 검찰총장 개인의 캐릭터가 문제가 된다. 검찰처럼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 시험에 계속 떨어져 남보다 9년 늦게 검사가 된 사람이 조직의 영웅이 되려는 소영웅주의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짐작 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조직이 존재론적 위기에 놓여 있을 때야말로 영웅주의가 활극을 펼칠 최적의 무대가 된다. 대통령이 법무부장관을 지명하자 압수수색을 개시하고 국회 청문회 날 부인을 기소한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에 개입한 명백한 반칙행위다. 적폐 수사 끝나고 특수부를 축소한다니 토사구팽이라거나 하는 무슨 반론이 나와도 그것이 반칙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178~179)
장군 출신으로 가장 성공적인 정치인은 터키의 무스타파 케마 아타튀르크, 일명 케말 파샤일 것이다. 터키의 국부,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고 지금 터키의 모든 지폐에 들어 있는 얼굴이다. 그는 1차 대전의 여러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리스 등 이웃나라의 침공을 막아내 '파샤(지도자)' 칭호를 얻은 전쟁영웅이었고, 1908년 스물여덟 살 때 청년투르크당 소속의 군 사령관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새로운 술탄을 앉히면서 의회를 구성하고 입헌군주제를 도입했으며, 1923년 500년 술탄의 제국을 종식시키고 공화정을 수립해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91~192)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아프리카의 영국, 프랑스 식민지들이 모두 독립했지만 남아공은 예외였다. 아프리카의 북쪽 끝과 남쪽 끝은 온대기후라 유럽인들에겐 매력적이었고 특히 알제리에서 프랑스는 피비린내 나는 해방전쟁을 치르고야 손을 뗐는데 남아공은 그런 해방 전쟁도 없었다. 영국인과 네덜란드인들은 그곳을 식민지가 아니라 자기 땅, 자기 나라로 간주했다.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한 건 금광과도 관련 있다. 무진장한 금과 다이아몬드를 깔고 앉은 고급진 땅이 결정적으로 침략자들에겐 부를, 원주민들에겐 불행을 가져다준 것이다. 참고로, 루이보스차의 원료인 아스파라사스 리네아리스라는 식물은 오직 남아공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 (222~223)
백인 이주민 정권은 흑인 원주민을 '국내 식민지'로 다뤘고, 흑인들은 알제리 민족운동가 프란츠 파농의 말처럼 '자기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었다. (223)
몽플레 시나리오 워크숍에선 몇 가지 대화의 원칙이 있었다. '어떻게 돼야 한다' 또는 '어떻게 돼선 안 된다'고 말해선 안 된다. 자신의 입장, 또는 소속 집단의 입장을 말하면 안 된다. 다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건 안 돼'라고 평가하면 안 되고 단지 물어야 한다. '왜 그런가, 그다음엔 또 어떻게 될까.' 그런 대화가 가능했던 건 워크숍 참석자가 모두 젊은 세대였고 자기 소속 집단에서 기득권이 공고한 기성세대는 베제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27)
1976년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있는 보이텔스바허라는 작은 마을에 한 무리의 지식인들이 모였다. 긴 토론 끝에 정치교육의 원칙에 합의했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보이텔스바허협약'이라 불린다. 그 세 가지 원칙의 요지.
첫째, 주입식 교육 금지. 정치적 견해 강요 금지. 독립적 능동적 판단을 방해하지 말 것.
둘째, 논쟁성 유지. 논쟁이 되는 사안은 서로 다른 입장을 그대로 전달할 것.
셋째, 자신의 이해관계, 삶의 경험에서 출발해 정치적 입장을 발전시키도록 할 것. (252~253)
베를린 시내 오래된 아파트 대문 앞 보도에서는 흔히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 걸림돌)'이라 불리는 손바닥 크기의 네모난 동판을 볼 수 있다. 나치 치하에 바로 그 집에서 잡혀간 사람들의 기록이다. 대개는 유대인이지만 동성애자, 집시도 있었다. 어느 거리에선 한 아파트 앞에 열세 개의 슈톨퍼슈타인을 본 적도 있다. (259)
독일은 출산율이 1.5명이고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베를린 거리에는 아이들이 많고 유모차를 밀고 가는 엄마들도 자주 만난다. 젊은 여성들이 아이를 낳아도 되겠다는 마음을 먹을 만큼 심리적,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이다. (296)
'뉴라이트'가 본격적인 우익 브랜드가 된 건 2005년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창립되면서부터다. 이 단체를 주도한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는 1970년대 유신 체제에서 도시빈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했던, 역시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는 단체의 목적을 정권교체, "이명박 장로의 대통령 만들기"라고 공헌했다. 이후 1년 동안 뉴라이트 의사연합, 뉴라이트기업인연합, 뉴라이트학부모연합, 뉴라이트여성연합 등 산하단체들이 잇달아 생겨났고 2007년 대선을 향한 공동투쟁의 전열을 갖췄다. (322)
유럽과 미국의 극우는 주로 인종주의나 자국중심주의로 뭉치는데, 한국의 극우는 진보 정권과 북한에 대한 혐오로 결집한다. 한국은 우익 내지 극우에 해당하는 극단적인 반공주의의 30년을 거쳤고, 구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렸던 집단의 상실감이 민주화 이후 극우세력의 정서적 바탕이 되었다. 그 시대의 주류였던 이들이 민주화 부적응 세대가 되어 은퇴 후의 소일거리를 극우 활동에서 찾아냈고, 그것이 거리의 '태극기 부대'가 대체로 연로한 이유이기도 하다. (325)
성장하는 노동자계급의 동요에 불안을 느낀 유럽 나라들은 비스마르크의 사회복지 모델을 도입했다. '베버리지제도'로 불리는 영국의 복지제도를 설계한 윌리엄 베버리지는 1907년 독일을 견학했고 처칠 정부에서 <사회보험과 관련 혜택에 대한 보고서>, 일명 '베버리지 보고서'를 만들었다. "궁핍, 질병, 무지, 불결, 그리고 나태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무기가 사회보험이라는 것이다. (331)
우리는 양대 정당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착시다. 한국의 정치 지형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남북 대치 상황과 오랜 군사정권이 만들어놓은 보수편향이다. (339)
불공정 감수성은 조국과 삼성에 불균질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당도 언론도 각기 삼성을 다루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 있다. 언론 매체에게 광고주이고 국회의원에게 스폰서인 삼성의 비리를 말해서 득 될 게 없다.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지만 삼성 오너는 영원하다. (345)
'편향성이야 말로 남는 장사'라면, 정부비방과 이념공세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고, 증오와 분노를 자극하는 것은 수익을 극대화하는 상술이다. 극우 유튜버들은, 정치 양극화가 최소한 전체 인구 10%의 극우를 결집시켜주고 있으며 정치 갈등이 계속되는 한 500만의 안정적인 시장이 받쳐준다고 믿고 있다. (354)
한국에서 개신교의 성장세가 1990년대 이후 눈에 띄게 둔화된 것이 기독교계가 정치 일선에 나선 배경이다.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2014)에 실린 '한국 개신교 반공주의와 증오의 정치학'의 필자 김진호 목사는 신자들은 점점 줄어가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교회 징세 등이 거론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던 한기총이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을 타도하자는 "공격적 반공주의" 전략으로 교세 확장에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두면서 "신자들에게 목표의식과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라고 했다. (358)
역사학자 박은식의 1915년 <한국통사>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대원군의 쇄국 정책으로 한국이 '중흥의 기회'를 잃어 통사, 즉 고통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했지만, 해방 3년의 시간을 잘못 쓴 것은 새로운 통사의 시작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 현대사 100년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366)
이리저리 휩쓸리는 혼돈 가운데서 중심을 잡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스크바3상회의 결의문이 발표되고 반탁과 찬탁의 유혈충돌이 막 시작됐을 때 해방공간에서 중도좌파의 대표 정치인 여운형은 기자회견을 청해 "우리 같은 지도자층이 없었던들 조선의 통일은 벌써 성공하였을 것이다. (...) '탁치'라는 문제는 정확히 파악치 못하고 대중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큰 과오다"라고 했다. (369)
공산권 해체를 본 다음 이영희 선생은 평론집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에서 한국 사회에서 진보 보수의 균형과 국제 사회에서 세력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했다. "진실은 균형 잡힌 감각과 시각으로만 인식될 수 있다. 균형은 새의 두 날개처럼 좌와 우의 날개가 같은 기능을 다할 때의 상태이다. "(375)
<단군론>과 <불함문화론>까지는 좋았는데 최남선이 1928년 일제 역사원정의 총사령부이자 식민사관의 생산기지인 조선사편수회에 들어가자 지식인 사회의 배신감은 어마어마했다. (436)
일제강점과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서 '조국 근대화'라는 이름의 산업화, 도시화, 서구화 과정을 모범적으로 이수한 1990년대의 한국은 100년 전의 한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472)
청년세대의 불안감과 박탈감은 우리 사회의 문제만도 아니다. 미국 여성 언론인 안나 카메네츠의 책 <채무세대 Generation Debt>(2006)는 '우리의 미래는 학자금 대출, 나쁜 일자리, 이윤율 저하, 부자 감세로 인해 어떻게 고갈돼버렸나'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우리는 엄청난 부의 세기에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 국민 중 35세 이하에겐 미래가 없다"고 했다. (498)
식민지 시대와 저개발 시대에 우리를 주눅 들게 한 '가스라이팅'의 독성은 해독에 시간이 걸린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인데도 옆집에 공부를 더 잘하는 아이가 있으면 주눅 들고 집에서 구박받기 쉽다. 이른바 엄친아 현상이 셈이다. (527)
불신 사회, 혐오 사회는 정치와 미디어에 투사되는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정치와 미디어가 달구어진 프라이팬처럼 이슈들을 튀겨내면 갈등과 불신의 파편들이 튕겨 나가 일상생활 속에 쌓인 '신뢰 자본'을 잠식한다. (537)
"나는 <즐거운 사라> 사건으로 어이없게 검사한테 신문받고 판사한테 재판받고 옥살이까지 한 후, 법을 다루는 사람들을 하나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과 부정은 도대체 누가 심판해주나 하는 의문이 생김과 동시에 '법대로 하자'는 말을 정의의 목소리라도 되는 듯 뇌까려대는 정치가나 법조인들이 얄미워지기까지 했다. (541)
정치학자 김영민은 <공부란 무엇인가>(2020)에서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 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 아닌가'라고 했다. (545)
핀란드 사회가 우울한 날씨와 싸울 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책, 다시 말해 도서관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CEO 기준을 언급하자면, 핀란드는 인구 대비 도서관 수 1위, 국민 1인당 도서관 장서 1위, 공공도서관 이용률 1위다. 그 중심에 헬싱키 중앙도서관 '오디(Oodi)'가 있다. (548)
■ 저자: 조선희
1960년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여고와 고려대학교를 다녔다. 1982년 연합통신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고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했으며 1995년 영화주간지 <씨네21> 창간부터 5년간 편집장으로 일했다. 2000년 기자 일을 접고 에세이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 장편소설 <열정과 불안>, 단편집 <햇빛 찬란한 나날>을 냈다. 한국영상자료원 원장(2006~2009)과 서울문화재단 대표(2012~2016)로 일했다. 한국 고전영화에 관한 책 <클래식중독>을 냈고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 여성혁명가들 이야기인 장편소설 <세 여자>로 허균문학작가상 등 문학상들을 받았다. 2019년 10월에서 2020년 4월까지 베를린자유대학의 방문학자로 베를린에 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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