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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문학]30_의사 지바고 Doctor Zhivago_파스테르나크_1994_어문각(180223)

by bandiburi 2018. 2. 24.

닥터 지바고란 소설과 영화에 대해 많이 듣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관심을 가지고 본 적은 없었다. 학창 시절 TV에서 영화로 상영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의사 지바고와 같은 사람 운운하며 인용하는 문구를 접하고는 도대체 의사 지바고는 누구인가라는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영화가 아닌 책으로 접한 '닥터 지바고'는 상당히 철학적이다. 그래서 집중하지 않으면 읽고는 있지만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나기 쉽다. 주인공 지바고와 라라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마치 작가의 생각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제일 마지막 페이지에 짧게 설명된 저자 '파스테르나크'의 삶의 이력을 살펴보고 책의 내용이 더 와 닿았다. 

저자는 1890년에 모스크바에서 유대인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겪고, 스탈린 1인 독재 체제하에서 예술에 대한 탄압을 경험하게 된다. 

두 번의 전쟁이 1956년의 소설 닥터 지바고의 스토리에 녹아져 있다. 

소설의 내용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래에 발췌해서 적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1900년대 두 번의 전쟁을 통해 평범했던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죽음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삶에서 바로 옆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마지막으로 광활한 대지를 배경으로 당시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평범하게 자신의 꿈을 찾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다. 우리도 모르게 경쟁에 내몰리며 그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었으니 이제 1965년에 만들어진 영화로 닥터지바고를 봐야겠다. 

 

[13] 이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개별적으로 하나하나 보았을 때 계획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총체적으로 보면 그러한 움직임들을 합쳐 버린 인생의 큰 흐름 속에 모두가 저절로 취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하고 싸우며, 저마다 개인적인 걱정거리가 되는 메커니즘의 움직임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낙천성이라는 고상하고도 근본적인 감정에 의해 늘 조정되고 있지 않다면, 그 메커니즘들은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89] 예술은 항상 죽음을 상상하며 또 이것으로 항상 삶을 창조하는 것이다. 모든 위대하고 참된 예술은 요한 묵시록과 같은 것이며, 그것을 이어받은 데 지나지 않는다.

[135] 혁명은 싫든 좋든 일어나고야 말았습니다. 너무나 긴 세월을 한숨만으로 살아왔으니까. 지금은 모든 사람이 소생하고 재생하고 변신해 버렸어요. 우린 모두 다 두 개의 혁명을 경험했어요. 그 하나는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인 혁명인 거예요. 제가 보기엔 사회주의는 바다와 같으며 개인적인 개개의 혁명이 그 바다로 흘러들고 있어요. 그 바다란 인생의 바다, 독창성의 바다예요.

 

[166] 혁명 시기에는 전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인생이 정지되며 개인적인 것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고, 죽이고 죽는 것 외에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있지 않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남아서 이 시기의 기록이나 회고록을 읽을 수 있다며, 남들이 1세기에 걸쳐서 경험하였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우리가 이 5년이나 10년 동안에 경험했다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175] 그들은 이른바 부르주아 족속이나 싸구려 정부 채권 따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중산층을 잘 알고 있었다. 털끝만큼 동정하는 기색도 없이 조소하듯 미소를 지으면서 마치 범죄 현장에서 붙잡은 좀도둑을 다루는 말투였다. 그들은 계획에 따라서 모든 것을 뜯어고치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회사나 기업들은 점차 볼셰비키 체제로 변모되고 있었다.

[190] 혁명에 눈을 떴을 때, 농민들은 옛날부터 지녀 온 오랜 꿈이 실현된다고 생각했지요. 그 꿈이란 그들이 완전히 독립되어 누구에게도 의무를 지지 않고 자기 땅에서 자기 손으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낡은 국가의 박해를 새 국가의 박해로 바꾸어 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게 되었어요. 혁명적 초국가라는 훨씬 더 가혹한 멍에가 씌워졌단 말입니다.

 

[227] 두 손이 심한 육체 노동에 바삐 움직이며 마음이 육체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때, 기쁨과 성공을 가져올 일을 우리에게 맡겼을 때, 생명을 불어넣어 준 하늘에 몸을 불태우면서 여섯 시간 동안이나 쉬지 않고 땅을 파거나 마차에 뒤흔들릴 때 새로운 사상이 구름처럼 머릿속에 끓어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잠시 동안의 생각, 직관, 추측 따위를 종이에 적어 두지 않고 잊어버린다는 것은 손해보다는 이득이 되는 것이다. 독한 블랙 커피나 담배 연기에 신경과 상상력을 쥐어짜는 도시의 은둔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잘 듣는 약-그것은 건강과 진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232] 예술은 하나의 이념 곧 생명에 관한 발언, 날개의 말로써 나눌 수 없는 포괄적인 발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작품에도 여러 잡다한 것 가운데 예술의 한 조각이 섞여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을 눌러 버리고 그 조각이 작품의 알맹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328] 요컨데 인간관계라는 것은, 성격의 일치나 애정의 유무 따위는 전혀 문제가 아니에요. 전통적으로 자리잡힌 모든 것, 일상 생활과 인간의 보금자리와 질서에 관계되는 모든 것이 사회 전체의 변혁이나 개조와 함께 무너져 버렸어요. 모든 생활 양식이 송두리째 뒤집히고 파괴되어 버린 거예요.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홀랑 벗긴 벌거숭이의 인간 영혼만이 남았어요. 그 영혼에겐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그것은 언제나 추위에 오그라져 떨면서 벌거숭이가 된 바로 곁의 다른 고독한 영혼에게 몸을 의지하는 법이니까요.

[330] 그리하여 우리 러시아 땅은 허위가 휩쓸기 시작했어요. 불행의 근본은, 다시 말해서 그 후의 모든 악의 근원은, 개인적인 의사를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데 있어요.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시대는 이미 과거의 유물로 되어 버렸어요. 이제는 남들이 노래하는 데 맞춰 함께 노래를 불러야 하고, 외부에서 강요하는 관념에 보조를 맞춰 살아나가야 한다고 모두들 생각한 거예요. 판에 박은 화려한 구호가 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제정주의의 구호가, 다음엔 혁명의 구호가 말이에요.

 

[347] 그런데 실은 지금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있어요. 불길한 말이지만 죽음의 사자가 우리의 문을 노크하고 있다는 말이오. 우리들의 생명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소. 그 짧은 기간을 될 수 있는 한 보람 있게 보내야 하지 않겠소. 그 기간은 인생에 이별을 고하는 데 보냅시다. 영원한 이별을 앞둔 마지막 밀회로. 우리가 귀중하게 여겨 온 모든 것에 이별을 고하고, 우리에게 생활의 꿈을 주게 하고 양심을 가르쳐 준 사상에 이별을 고하고, 희망에 이별을 고하고, 우리 서로 이별의 말을 주고받읍시다.

[402] 꽃은 향기를 뿜으며 피어났다가 향기가 사라지며 시들어 가면서, 있는 힘을 모조리 불사르고 무언가 이룩하려는 듯 서두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식물계는 유계의 가까운 이웃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 푸른 대지, 나무 사이에 있는 묘지, 그리고 땅 속에서 돋아나는 꽃의 새싹에 우리를 번뇌시키는 비밀과 생명의 수수께끼가 응결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426] 역사에는 간혹 있을 수 있는 일이네만, 지나치게 고상한 이상이 타락해서 정신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지. 그래서 그리스가 로마에 굴복했고, 러시아의 계몽 운동이 혁명으로 변하게 된 걸세. 블로크의 시에 우린 러시아의 암흑시대의 아이들이란 구절이 있지. 아이들이란 어린아이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손과 젊은 세대, 그리고 인텔리겐치아를 말하는 거지. 또 암흑이란 섭리나 계시를 말하는 걸세. 말하자면 아주 차원이 다른 이야길세. 그런데 지금은 비유적인 것이 다 없어지고 말았어. 아이들은 어린이를 말하고, 암흑은 그대로 어두운 상태를 말하고 있어. 여기에 시대의 차이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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