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부모 세대가 되었다. 청년이 된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2030 세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자신의 노력으로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열정 부족으로 돌리며 스스로 채찍질하는 게 당연했다. 국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분야인 정치나 사회 경제적 요인은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다. 국가적으로 여러 세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하지만 기성세대 위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되어버렸다.
김재욱은 픽션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실패를 경험한 베이비붐 세대 이야기는 클리셰지만, 그런 전형성 뒤에는 이렇게 대체될 수 없는 하나하나의 고유한 상처가 있었을 것이다. 50대의 중년이 1년 내내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 '일단 나와서 앉아 있자'라는 심정으로 피자집을 계속하는데 옆집에 더 싼 피자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상황은 IMF 이후 세계의 고단함을 축약한다.
정규직, 사회안전망, 복지의 벽은 높기만 하고, 홀로 벌어 홀로 책임지는 영세 개인사업자가 되는 세계로의 진입 장벽은 지극히 낮은 사회, 노동은 더 고되어지고 휴식의 질은 더 낮아지고 노동자는 소비자가 되는 순간 이 울분을 보상을 받으려는 듯 쩨쩨해지며 결국 대부분의 싸움이 약자와 더 약자 간의 싸움이 되고 마는 사회, 배달 치킨과 피자는 시작하기 가장 쉬운 사업이자 흔히 선택하는 초과노동의 파트너로서, 그 악순환의 어딘가가 나와 너의 혀끝을 반드시 떠도는 우리 시대의 맛이다. (95~96)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2030 젊은이들의 현실과 고민을 알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베이비부머가 사회의 중심축에서 벗어나고 있고, 1990년대 이후 세대가 사회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일곱 명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 학력 차이,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가 개인의 인생과 가족 구성원 사이에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주거 문제가 제일 크니까. 그걸 안정적으로 할 돈을 마련하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건 제가 딱히 자유로운 사람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사회 제도 자체가 잘못된 거 같아요. 그걸, 이 상태로, 시작할 수 있어요?(107)
그중에서 민사고를 졸업한 김괜저 씨의 사례를 통해 학력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자신들의 의지와는 달리 만들어지는지 봤다. 가족과 주변인들의 응원을 받으며 미국 유명 대학을 목표로 달려간다. 하지만 결국 유수의 대학에 합격하고 난 뒤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하고 매진해야 하는데 현실의 벽을 실감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 성적을 잘 내는 것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고 스스로 내린 결정의 시행착오가 누적되며 자신의 정체성이 형성되는 것인데 공부와 성적이란 것으로 대변된 치우친 시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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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주기가 제시하는 단계적 미션을 클리어해나가는 삶의 모델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된 시대, 구국의 엘리트 서사가 '탈조선'으로 굴절되면 해피 엔딩인 시대, 우리는 각자에게 부여된 서사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내가 주인인 이야기를 써나갈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나누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서로를 떠받쳐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31)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좌충우돌 하지만 결국 결혼을 통해 중산층의 삶을 사는 사람, 반골 기질을 가지고 진보적인 학원 선생의 영향으로 정치활동을 하는 사람,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고 장애인 아버지와 살며 스스로의 생존력을 키워온 젊은이, 지방에서 살면서 수도권과 지방도시간의 격차를 실감하며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소개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단지 관찰자들에 의해 사후적으로 의미 부여될 뿐 사실 그들 자신의 삶엔 아무 의미도 없는, 자신의 미래가 이미 어느 정도 정해져 있음을 일찌감치 알기에 학교의 여러 가지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던, <학교와 계급재생산>에 나오는 해머타운의 '싸나이들' 같은 아이들. (중략) 그녀는 나중에 서울에 올라와 이런 경험을 공유한 친구들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고 한다. 계급적으로는 같을지 몰라도 서울이나 서울 주변에서 성장한 경험과 지방도시에서 자라는 경험은 맥락이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337)
거주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질병이 있어도 스스로 움직여서 돈을 벌어야 하는 사회, 결혼이란 것이 자녀양육에 자신의 삶을 양보해야 하는 사회, 부유층 자녀는 노력 없이도 돈에서 자유롭지만,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은 노력만으로도 살아가기 버거운 사회가 대한민국이 아닌가 우려가 된다. 20대 청년이 되어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큰아들에게 일독을 권했다. 모든 세대가 함께 공감하기 위해 좋은 책이다.
돈을 따로 모으지 않는 생활은 앞서 언급한, 결혼을 해서 나의 가족을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이런 시대에 대학 나와 도시 노동자로 살아가는 여성에게 결혼이 얼마나 이점이 없는 일인지, 아니 정반대로 실리 추구의 길이 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혹독한 자아의 '변형'을 요구하는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첫사랑과 많은 계획을 세워놓았다가 그것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하며 얻은 교훈은, 결혼 제도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을 뿌리째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비혼주의는 또한 병이 삶에 미친 영향이기도 했다. "일단은 제가 좀 편해야 하니까요."(366~367)
■ 저자 : 안은별
198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2009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인터넷 뉴스 미디어 <프레시안>에 입사. 국제팀과 서평 섹션 '프레시안 books'를 거쳤다.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 등을 번역했고, <확장도시 인천>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1989-1997> 등을 함께 썼다. 2017년 현재 도쿄대학 대학원 학제정보학부에서 저성장 시대 일본 사회와 지역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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