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독서습관458_청년 연암 박지원이 청년들에게 주는 조언_조선에서 백수로 살기_고미숙_2018_프런티어(211017)

by bandiburi 2021. 10. 17.

이제 20대를 살아가야 할 세 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글로 풀어놓은 책이다. 대부분의 부모라면 자식의 안정되고 편안하 삶이 펼쳐지길 바란다. 그래서 고등학교 이전에는 대학입시에 통 큰 투자를 하고, 대학생이 돼서도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란다.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그 길을 향해 입시지옥을 벗어나서도 스스로 아싸도 감수하며 도서관과 학원으로 향한다.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해 살지 않는다. 어떤 가치, 어떤 목적도 삶보다 더 고귀할 수 없다. 살다 보니 사랑도 하고 돈도 벌고 애국도 하는 것이지, 사랑을 위해, 노동을 위해, 국가를 위해 산다는 건 모두 망상이다. 하물며 화폐를 위해서랴? 성공한 다음엔 공황장애, 성공하지 못하면 우울증. 이 얼빠진 궤도 자체가 망상 중의 망상이다. 그러니 제발, 망상을 타파하자.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청춘의 생동하는 얼굴과 마주하게 될 터이니.(20~21페이지)

이른바 금수저는 그런 애티튜드나 철학이 부재한 채 오직 돈의 양으로만 규정되는 경우다. 그럼 그들은 어떤 삶을 살까? 몹시 불안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돈이 삶을 압도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면서 자유롭고 평화롭기는 불가능, 아니 제로에 가깝다. 일단 돈이 모이면 사방에서 약탈자가 모여든다. 왜? 그 돈 자체가 약탈의 산물이니까. 아무도 존중해주지 않는다. 그럼 다시 전쟁이다. 형제간에,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동업자 혹은 라이벌 간에, 기타 등등(35)

 

특별히 재능이 아닌 평범한 활동으로도 얼마든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고전여행가, 지식 매니저, 유튜버, 인문학 래퍼 등등. 비현실적이라고?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르다. 어차피 일자리는 더더욱 줄어들 것이고, 대부분의 노동을 기계가 대체한다면,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맞는 '경제활동'을 하면 된다. 임금노동이 아닌 경제활동! 예측컨데,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영역에서 많은 직업이 탄생할 것이다. 특별한 재능보다는 평범한 활동이 더 요구되는 이유다. 또 두세 달 정도의 수입만 있어도 절대 불안하지 않다. 어차피 10년 뒤, 20년 뒤라는 개념은 추상이다.(46)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라는 인식론적 질문을 진지하게 할 필요가 있고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백수로 산다는 것이 오히려 정규직으로 사는 것보다 타임 리치한 점을 활용해서 유의미하게 살 수 있으니 주위의 시선에 연연하는 자의식을 가지지 말라고 조언한다. 

 

백수는 노동의 소외에서 벗어난 존재다. 백수의 경제는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활동의 산물이다. 당연히 소비와 부채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동시에 투기 자본에도 포획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철학이다. 돈과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 그게 바로 백수의 생명 주권이다. 청년들이 이 원칙만 잘 수호해도 세상의 부조리와 모순은 상당 부분 타파될 것이다.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69)

정규직이 타임 푸어라면 백수는 타임 리치다. 청년 백수는 그야말로 타임 '슈퍼 리치'다. 모두가 바쁘다고 동동거릴 때 한없이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몹시 '고귀한' 존재다. 시간이 많다는 건 삶의 스텝을 세밀하게 클로즈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컨대, 계절의 변화를 깊이 음미한다거나 도시의 곳곳을 탐사한다거나 마음의 흐름을 잘 살핀다거나 하는 일들. 가족이건 친구건 관계에서 오는 다양한 변화들을 깊이 되새겨볼 수도 있다. (74)

 

백수에게 필요한 건 자립이다. 자립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재배치해야 한다. 노동에서 활동으로! 직업을 얻은 다음부터, 돈을 번 다음부터 잘 살겠다는 건 인생을 유예시키는 것이다. 고로, 바보짓이다. 잘 살고 싶으면 지금 당장! 잘 살아야 한다. 지금 당장 일상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자립이 필수다. 자립은 의식주의 기본을 내가 직접 꾸리는 데서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에게서 독립하고, 부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심은 화폐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화폐의 증식에 골몰할 게 아니라 화폐를 어떻게 운용할까를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소비 충동, 나아가 한탕주의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마디로 '자기 삶의 매니저'가 되는 것이다.(80~81)

요즘 청년들은 대부분 '솔로'다. 신입생 때부터 서클실이 있는 학생회관이 아니라 취업 준비를 위해 도서관으로 간다. 시험공부는 고독한 여정이다. 남을 이기기 위한 공부니 함께 한다는 설정이 영 어색하다. 취업과 고독. 이것이 대학생의 풍경이다. 그러니 혼자 밥을 먹을 수밖에.(95)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은 청년들에게 돈을 벌어서 부모로부터 자립할 생각을 하지 말고 먼저 자립을 하라는 것이다. 자립을 해야 한 끼 식사를 스스로 챙겨 먹는 번거로움을 깨닫고,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게 되고, 움직이게 되고, 배고파서 일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이 돼서도 주체적인 성인으로 서지 못하고 부모의 뒷바라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상황이다. 군에 가 있는 첫째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자립을 하겠다고 생각하면 의식주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것이고 이때부터 진정한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도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정신적 성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산다는 건 생각과 말과 발의 삼중주다. 생각의 흐름, 말의 길, 발의 동선, 이 세 가지가 오늘 나의 삶을 결정짓는다. 외부의 힘을 받아서 내적으로 변용시키는 것이 핵심인데,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다음이 말이다. 언어도 숨 쉬고 배설하는 것 못지않은 생명 활동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말의 행로, 생각의 전제가 바뀌기 어렵다. 생각과 말이 제자리를 맴돌면 동선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혼공은 혼밥만큼이나 위험하다. 정말 박학다식한데, 그럼에도 도무지 사람들과 소통이 안 되는 지식인이 적지 않다. 지식이 자기 안에서 맴돌다 고인 탓이다. 그러니 대학생이 혼밥에 혼공을 한다면, 그 지식은 그야말로 '늪'이 될 확률이 높다. (100)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그전에 먼저 내가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또 좋은 스승을 만나려면 배움으로 충만한 신체가 되어야 한다. 어렵다고? 천만에! 아주 쉽다. 취준생과 혼밥의 고독한 길보다, 쇼핑과 게임, 비트코인의 중독된 코스보다 훠얼씬!(140~141)

우리도 조만간 일본처럼 도시가 공동화될 것이다. 집이 애물단지가 되는 시대가 온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집을 사다니, 바보 아냐?" 집의 기능이 최소화되고 집이 도처에 넘친다면 유목민처럼 6개월 혹은 1년씩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니어가 된 다음에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청년기부터 그렇게 할 수 있다. 너무 불안정하지 않느냐고? '불안정'한 게 아니라 '다이내믹'한 거다. (150~151)

부모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자. 청년이 된 자식이 백수다. 이것도 걱정거리인데 그 자식이 하루 종일 골방에서 낮밤을 바꿔 살면서 컴퓨터만 붙들고 있다면, 그건 정말 부모에 대한 정신적 테러다. 취업을 한 다음에, 돈을 번 다음에 효도도 하고 제대로 살겠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금 당장의 삶을 유예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렇게 미루다간 한순간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다. 가족에게든 자신에게든 최고의 선물은 지금 당장 잘 사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침에 나가 밤에 돌아오면 된다. 백수지만 기죽지 않고 명랑하게 살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157)

 

또한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에 열광하고, 소비와 부채에 빠지는 젊음이 아니라 독서를 하고 내적인 성장을 충분히 하는 청춘이길 요구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를 논하며 부러워하지 말고 집안에만 있지 말고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걸으라고 한다. 적게 쓰고 적게 벌며 생태학적으로도 바람직한 삶을 살면 화폐에 연연하지 않게 된다. 풍부한 시간의 유리한 점을 이용해 노동을 하지 말고 활동을 하라고 한다. 정규직으로 20년 이상을 살면서 가족을 위해 노동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고 관성적인 삶을 살고 있는 현재의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동의 소외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활동이 백수와 같은 청춘의 장점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나이에 문득 청나라 황제(건륭제)의 만수절(70세 생일 파티) 축하 사절단에 합류하게 된 것이다. 압록강을 넘어 요동으로, 요동 벌판을 지나 산해관으로, 산해관을 통과하여 마침내 연경으로, 하지만 연경이 끝이 아니었다. 연경에서 다시 열하로! 총 2,700여 리에 해당하는 거리를 경쾌하게 관통하게 되었으니,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백수가 되기로 작정한 순간부터 연암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162~163)

사건은 변화의 포인트다. 아주 낯선 나를 발견하는 것, 전혀 예기치 않은 생각과 말의 회로가 생성되는 것. 사건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그 과정을 생동감 있게 구성하면 그게 바로 스토리다. (183)

진정으로 삶의 주역이 되고 싶다면 사건을 겪고 이야기를 창조하라! 여행은 그것을 위한 최상의 배움터다. (184)

관찰과 기록은 특정 감각이 아니라 몸 전체를 써야 한다. 몸을 쓰려면 마음을 내야 한다. 몸과 마음의 어울림과 맞섬! 그 리듬을 타는 것이 감응이다. 감응한다는 건 나를 비워 타자를 들이는 행위다. 신체가 열리고 마음이 오가면서 오장육부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감응이다. 그걸 어떻게 감지하느냐고? 간단하다. 대상과 나 사이에 '케미'가 일어나면 그 순간 뇌의 회로가 바뀐다. 생각의 길이 바뀐다는 뜻이다. 또 뇌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침샘이 자극되는 것. 그 순간, 언어의 회로가 열린다. 그때 유머와 역설이 터져 나온다. 타자와 접속하면 서사가 탄생한다고 했다. 서사에는 윤활유가 필요하다. 자동차가 달리려면 엔진을 움직이는 기름이 필요하듯이. 그게 바로 유머와 역설이다. (189)

 

이 책은 연암 박지원의 삶을 기반으로 현재의 청춘들에게 고하는 고미숙 저자의 글이다. 노론의 금수저 자녀로 태어났지만 부유하지 않았고, 과거를 통해 요직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당파가 나뉘어 싸우는 진흙탕에 들어가기 싫어 다른 길을 걸었다. 책에서 박지원에 대한 여러 가지 책이 인용됐는데 18세기 그의 삶을 알고 싶은 호기심이 커져 조만간 '연암 박지원 알아가기' 단계가 시작될 것 같다. 

 

728x90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삶은 한층 더 두려움에 휩싸인다. 두려움과 충동은 나란히 함께 간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건 바로 이 회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방법은 오직 하나,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는 수밖엔 없다. 본성과 욕망, 식욕과 성욕에 대하여, 화폐와 성, 권력과 충동에 대하여. 부디 명심하라, 무지가 모든 번뇌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은 훗날로 미룰 일이 아니다. 인생의 첫발을 내디디는 청년기에 바로 시작해야 한다. 취업보다, 성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226)

백수가 되는 순간, 백 권의 고전에 도전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해보라. 그럼, 눈뜨면 바로 동네 도서관, 지역 박물관, 아니면 북 카페 등등으로 뛰쳐나가게 될 것이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배가 고프게 되고, 그때 먹는 밥은 꿀맛이다. 밥을 먹으면 걷고 싶어 진다. 그러면 그날 읽은 책을 음미하면서 산책을 하라. 그리고 다시 독서! 그렇게 하루를 보내면 몸과 마음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런 시간을 쭉 이어나가려면 당연히 벗이 필요하다. (231)

 

젊은이들에게 이 책을 강하게 추천하고 싶고, 저자와 청춘 공동체가 운영하는 '강감찬 TV' 유튜브 채널도 구독하며 일반적인 길을 가지 않고 더 나은 길을 모색하는 그들의 삶을 응원한다. 

 

한편 글쓰기는 양생적으로도 몹시 중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몸의 정기신을 안으로 수렴하는 활동이기도 하다. 양생의 핵심이 발산과 수렴의 조화라고 한다면, 현대인은 심할 정도로 발산에 쏠려 있다. 사방에 빛이 명멸하다 보니 눈과 귀가 외부로 향해 있을뿐더러 욕망 역시 늘 위를 향해 솟구친다. 불면증이나 우울증, 이명, 공황장애 같은 병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핵심은 발산하는 기운을 안으로 거두는 것인 바, 글쓰기는 기운을 수렴하는 데 있어 아주 유효하다. 글쓰기는 '업!' 되거나 들뜬상태로는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잡아야 할 뿐 아니라 정신이 투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법적 코드와 낱말의 흐름에서 이탈해버리기 십상이다. (240~241)

 

태어나는 것도 그 어느 '오늘'이고, 죽는 것도 그 어느 '오늘'이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느냐가 인생 전체를 가늠하는 지렛대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우주의 리듬이 사계절이라면 인생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중략) 인생의 압축 파일, 오늘 하루! 결국 오늘 하루의 리듬이 인생 전체를 좌우한다. 좋은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오늘 하루에 온전히 집중하라! 오늘 하루를 멋지게 살라! 그 하루들이 모여 일생이 된다. (262)



★ 감이당에서 실제 청년들이 선택한 목록 중 일부

1. 샤론 베글리, <달리이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
2. 스티븐 핑거,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3. 유원수 역, <몽골비사>
4. 체게바라, <체게바라 자서전>
5. 마르코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6. 스탕달, <적과 흑>
7. 레비스트로스, <야생의 사고>
8. 레비스트로스, <우리는 모두 신인종이다>
9.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10.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1. 나카자와 신이치, <곰에서 왕으로>
12. 나카자와 신이치, <대칭성 인류학>
13. 보들레르, <악의 꽃>
14. <법구경>
15.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16.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
17. 카렌 암스트롱,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18.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 저자 : 고미숙

본 투 비 백수. 20대에는 청년 백수, 30대 중반엔 박사학위를 받고도 중년 백수가 되었다. 해서,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혼자는 너무 심심하고 외로워서 공부 공동체를 꾸렸다. 우여곡절을 거쳐 현재는 '감이당(&남산 강학원)'이 본거지다. 2080세대가 함께 꾸려가는 대중지성 네트워크라 생각하면 된다. 주요 활동은 '읽고 쓰고 말하기'. 그것으로 밥벌이도 하고 수많은 벗들을 만나고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하다. 이 행운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