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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에는 아궁이가 하나 남아 있다. 어머니가 아궁이속의 재를 치우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 사진으로 남긴다. 무너진 집터에서 가져온 목재를 태우니 남은 것은 가벼운 재와 못이다. 논밭에 버려지면 위험한 쇠못은 자석을 이용해 가려내고 재만 두엄밭에 버린다.
반세기 전에 시집오셔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직접 지은 사랑채에 온기를 불어 넣어주던 아궁이다. 추운 겨울에 가마솥에 목욕물을 데우고 방안 아랫목을 뜨끈하게 달군다.
눈내리는 밤에 그 아랫목에서 수다를 떨고, 놀이를 하고, 홍시와 고구마를 먹고, 여섯 가족이 옹기종기 잠을 잤다. 이불 속은 봄이요 이불 밖은 입김이 하얗게 생기는 겨울이다. 단열이 되지않는 흙집이어서 윗풍이 차다.
아궁이는 소들에게 따뜻한 여물을 줄 수 있는 수단이다. 김이 모럭모락 나는 뜨거운 물을 여물 위에 부으면 소들이 맛있게 먹는다. 소를 네 마리 키울 때는 아버지의 시간이 소들의 식사시간에 맞춰진다. 여행도 거의 못간다. 인간의 소외라고나 할까.
가족을 위한 두부를 만들 때도 아궁이가 요긴하게 쓰인다. 콩을 맷돌에 갈아 콩국물을 솥에 넣어 끓이고 짠 뒤 간수를 넣어 순두부를 만든다. 그리고 다시 두부로 탄생한다. 막 만들어낸 두부는 양념간장을 듬뿍 찍어 먹으면 입에서 녹는다. 할머니가 계실 때 일 년에 몇 번씩 직접 만들어 먹던 기억이 아득하다.
잔칫날이면 아궁이도 바빠진다. 돼지를 마을 청년들이 잡는다. 솥에 커다란 고깃덩이를 넣고 끓인다. 마을 사람들이 모처럼 실컷 고기를 먹는 날이다.
그리고 아궁이와 단짝이던 솥뚜껑이 잠시 마당으로 나오기도 한다. 뒤집어진 채로 마을 아녀자들이 부침거리를 만드는 도구로 변신한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멀리 마을 밖까지 퍼진다. 뛰놀다 배고파진 아이들은 자기 엄마를 찾아간다. 어미는 몰래 지짐을 새끼 입에 넣어준다.
마치 꿈같이 지나가버린 과거의 아궁이의 자랑거리들은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의 기억속에 잠겨져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시골집을 방문할 때면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어떤 추억으로 기억할까 궁금하다. 그네들에게 아궁이는 역할이 없는 단순한 놀이가 아닐까. 과거에 아궁이는 삶 자체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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