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빈슨경의 TED 18분 강의는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이며 들었는데 그가 쓴 '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혁명'은 전문가로서 교육에 대해 접근한 것이라서 공감은 하면서도 다소 낯선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2018년도 대한민국의 부모로서, 교육에 대한 비전문가로서 배움에 대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방향 제시를 해주는 좋은 책이었다.
사교육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투자를 하고 있는 우리 부모들은 투자 대비 효율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투자대비 효율을 따지듯이 정밀한 분석을 할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부모의 입장에서 가장 안전한 투자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이라도 하자는 것일 게다.
아이들에 쉬는 시간에는 생기가 넘치다가도 수업시간만 되면 졸음이 오고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수업에 호기심, 관심, 열정이 솟아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기존 교육시스템을 벗어난 방법으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능동적인 참여를 통해 동일한 시간에 원하는 학습효과를 거둔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많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커리큘럼과 학습시간으로 짜여진 틀에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를 향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설렘을 가져본 경험이 있다. 1시간, 2시간을 해도 1분처럼 금세 지나가는 몰입의 경험을 해본 적이 있다. 어떤 경우인가? 우리가 해보고 싶은 것,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 잘하는 것을 즐길 때 그렇지 않은가?
중2가 되는 막내가 다른 것은 즐기면서 하는데 수학에 대해서는 힘들어 한다. 수학 문제집을 마주 대하고 있을 때면 초반 몇 분은 푸는 듯하다가 조금만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짜증을 내곤 한다. 엄마의 입장에서는 수학이 중요하다고 하고 수학을 포기하면 진로를 정할 때 선택의 폭이 줄어들 것 같아 강요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학교혁명의 저자는 아이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아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한다. 마지못해 하는 것은 얼마나 소모적인 일인가. 차라리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권해본다.
이하 책의 명문장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2부에 걸쳐 인용한다.
[12] 내가 말하는 학교(school)는 으레 아이들과 십대들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는 전통적 시설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서로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공동체라면 뭐든 학교다. 즉 이 책에서 학교란 홈스쿨링, 언스쿨링(집이나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 직접적 대면 형태나 온라인 형태의 비공식적 모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49] 일부 직업의 경우엔 학위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또한 모든 것을 고려하면 여전히 대학 졸업자들이 대학 미졸업자들보다 평생의 소득이 더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분야를 막론하고 학위 소지는 더 이상 취업의 보증수표가 아니며 일부 분야에서는 괜히 돈만 들어가는 쓸데없는 껍데기다.
물론 대학 진학자들 가운데는 학문적 연구를 펼치고 싶다는 열의에 따라 대학에 들어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학생 가운데 학위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비율이 40퍼센트가 넘는다. 이런 낮은 졸업률로 미뤄보건데 상당수는 대학 진학이 고등학교 졸업 후의 수순이라는 이유에 떠밀려 억지로 고등교육과정에 들어선 것으로 짐작된다. 수많은 진학자가 특별한 목적의식 없이 대학에 들어가고 또 수많은 진학자가 졸업을 못하고 조기에 그만둔다. 그런가 하면 졸업 후의 계획에 대한 확실한 구상 없이 졸업을 하는 이들도 있다. 또한 수많은 대학 진학자가 빚을 짊어진다.
[79] 사람은 누구나 독특한 존재다. 우리는 모두 신체, 재능, 성격, 관심사가 저마다 다르다. 획일성이라는 편협한 관점을 들이대면 필연적으로 제도로부터 퇴짜 맞거나 구제 대상자로 낙인찍히는 비순응자들이 다수 양산되게 마련이다. 제도의 틀에 부응하는 사람은 잘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낮아진다.
이것은 교육에서 엄격한 획일성 문화를 촉진함으로써 일어나는 주요 문제점이 하나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행동의 표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도록 하고 대안적으로 참신한 답을 찾으며 자신의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장려하는 것과 그 방법에 대한 문제다. 엄격한 획일성은 상품의 제조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사람의 경우엔 다른다.
[92] 최근에는 학교가 '21세기형 역량'을 촉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19개 주와 33개 기업 파트너로 구성된 'P21(Partnership for 21st Century Skills)'에서는 커리큘럼에 대해 폭넓게 접근할 것과 학습에 다음의 부문을 포함시킬 것을 권장하고 있다.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 걸치는 이 분야 통합 주제
- 국제적 의식
- 금융, 경제, 비즈니스적 기업가 관련 상식
- 시민으로서의 상식
- 건강 상식
- 환경 상식
학습 역량
- 창의성과 혁신성
- 비판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
- 소통과 협력
삶과 직업 관련 역량
- 유연성과 적응력
- 진취성과 자기주도성
- 사회적 역량과 다문화적 역량
- 생산성과 책임감
- 리더십과 신뢰성
[94] 문화적 목적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게 이끌어야 한다.
[97] 사회적 목적
교육은 청소년이 능동적이고 온정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줘야 한다.
[100] 개인적 목적
교육은 청소년이 주변의 세계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도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
전통적인 학문 중심 커리큘럼은 초점을 거의 완전히 우리 주변 세계에만 맞추면서 내면의 세계를 경시한다. 우리는 그로 인한 결과를 지루함, 일탈, 스트레스, 왕따, 불안, 우울증, 중도 포기 등을 통해서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107]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는 일에는 뭔가 심오함이 배어 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을 대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심오함이에요. 이제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를 물어봅니다. 아이들도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모든 것에 '아니요'라고 말하며 삶을 철저히 비워낸 다음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방법이에요. 해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127]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 가지 법칙>에서 나는 연극 연출가 피터 브룩의 저서를 인용한 적이 있다. 그는 평생 작품 활동을 펼치며 연극을 최대한 혁신적인 체험이 되도록 연출해왔다. 그는 많은 연극이 이런 식의 효과를 갖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어쨌든 흘러가는 시간을 때워주는 용이라는 것이다. 그는 효과를 높이려면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전형적 연극에서 제거해도 여전히 연극으로 남을 만한 요소가 무엇인지 묻는다고 한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의상과 함께 커튼과 조명은 빼도 괜찮다. 이것들은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본도 뺄 수 있다. 대본이 없는 연극도 많으니까. 감독도 빼도 되고 무대, 스태프, 건물 역시 없어도 된다. 예나 지금이나 많은 연극이 이런 것들 없이도 공연돼왔다.
없어서는 안 되는 유일한 요소는 배우와 관객뿐이다. (중략) 연극은 전적으로 관객과 극 사이의 관계다. 연극이 가장 혁신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 관계에 집중해 최대한 설득력 있게 연출해야 한다.
(중략) 교육의 근본 목적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것이다. 그것이 교사의 역할이다.
[138] 명제적 지식은 때때로 노잉 댓(knowing that)이라고 일컬어지며 절차적 지식인 노잉 하우(knowing how)와 구별된다. 절차적 지식은 뭔가를 만들고 실질적 일을 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미술사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음악 이론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는 있다. 미술 활동이나 음악 활동도 사실상 공부해야 할 부분이 있으므로,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절차적 지식은 공학에서부터 의학과 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용적 분야에서 필수적이다.
[145] 에버튼 프리스쿨을 비롯해 우리가 살펴봤던 그 외의 모든 프리스쿨은 두 가지 중대한 핵심을 증명해주고 있다. 첫째, 모든 학생이 천성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 둘째, 모든 학생들을 발전시키기 위한 열쇠는 형식주의와 획일성의 좁은 경계를 넘어서 학생 각자의 진정한 재능에 맞춰주는 제도로 나아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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