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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02]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물고기와 스트리크닌 그리고 우생학

by bandiburi 2025. 2. 2.

다른 책에서 추천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Why fish don't exist》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추천하니 이미 잘 알고 있다. 다만 읽지 않았을 뿐이라고...

저자인 룰루 밀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다운되어 있을 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알게 되어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그의 삶을 존경해서 찾아가는 이야기다. 저자의 이야기와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후반부에서 양성애자인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책으로 박제되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의 분위기에서 여전히 망설임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소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쉽고 재미있다. 루이 아가시라는 박물학자, 릴리언 스탠퍼드와 제인 스탠퍼드라는 스탠퍼드 대학교 설립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주인공 모두가 생소하다.

전반부는 데이비드에 대한 긍정적인 설명이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독살의 피의자가 되고 우생학에 집착하며 인간을 바라보는 삶은 환멸의 대상이 된다. 그의 삶에 가해지는 핵펀치는 평생을 연구해 온 어류라는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 내용이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과 함께 짧은 소감을 포스팅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가시는 자신이 '퇴화'라 부른 개념이 들어설 여지를 만들기 위해 종들의 순서가 고정되어 있다는 생각을 아주 살짝 느슨하게 풀어놓았다. 그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피조물들조차 조심하지 않으면 그 위치에서 떨어질 수 있으며, 나쁜 습관들이 어떻게든 한 종을 육체적으로도 지적으로도 쇠퇴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렇게 아가시는 자연을 하나의 종교적 텍스트로 제시했다. 가장 둔한 민달팽이나 민들레조차 그것들을 들여다볼 만큼 호기심이 충분한 인간에게는 영적·도덕적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다. (46)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 루이 아가시에 대한 이야기다. 루이 아가시가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면도 보여주는 한편 위의 문장은 그의 한계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객관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아가시는 자신의 생각을 덧입혔다. 자연이 종교가 되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 (출처: PICRYL)

나의 희망을 꺾는 침묵이 점점 더 강력하게 내 귓가를 울려대는 동안, 열역학 제2법칙은 그 가늠할 수 없는 꼬리를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 애썼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우연히 어떤 비법을, 무정한 세상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어떤 처방을 발견한 게 아닐까 궁금했다. (65~66)

저자인 룰루 밀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우울증을 경험한다. 그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을 통해 희망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 책은 조던의 행적을 찾아나간다. 조던의 물고기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연구성과는 놀라울 정도다. 그에 대한 해피엔딩의 결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행적은 기행에 가까워진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론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아, 이 문장 때문에 내가 그를 얼마나 흠모하게 되었던가. 이 문장을 본 나는 두 팔로 그를 안고 볼에 입을 맞춰주고 싶었다. (68)

저자 룰루 밀러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존경이 글로 드러난다. 

(...) 벼락으로 전선을 때려 데이비드의 연구실 아래층 사무실로 불꽃을 날렸다. 1883년의 일이었다. (...) 기자는 《블루밍턴 텔레폰Bloomington Telephone》지에 "한 시간 동안 타오른 불길이 그가 평생 해온 일을 거의 다 수포로 돌려놓았다"라고 썼다. (77)

화재로 인해 평생 만들어 놓은 결과가 소실되었을 때 얼마나 낙심했을까.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릴리언 스탠퍼드 (출처: PICRYL)

릴런드 스탠퍼드는 악덕 자본가로 널리 알려진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그의 아내 제인은 정규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으며, 죽은 아들과 만나려고 영매들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 결국 그는 1891년 스탠퍼드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나이 갓 마흔 살이 되었을 때다. (81)

미국의 명문 사학인 스탠포드 대학교의 창립자가 악덕 자본가인 릴런드 스탠퍼드였고, 초대 학장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얻게 된 재미있는 상식이다. 릴리언 스탠퍼드가 갑자기 사망하자 그의 아내인 제인 스탠퍼드가 그 역할을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과 제인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출처: flickr)

1906년 4월 18일 오전 5시 12분, 지구가 어깨를 들썩였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산들이 아무도 가늠할 수 없는 깊이로 갈라져 열렸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닫혔다!" 이 말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지질학적 감각으로 이해해보고자 한 시도다. (109)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다시 한 번 큰 피해를 입는다. 

( 출처: Wikimedia Commons)
(출처: flickr)

그가 자신의 선지자에게 안내를 구하려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왔을 때 데이비드는 보고 말았다. 그 지진이 루이 아가시의 조각상을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부터 메어꽂은 광경을. 우스꽝스러운 장면, 급소를 찌르는 한 방이었다. 아가시의 두 발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었고, 대리석으로 된 그의 작은 손은 아직도 과학책을 꼭 쥐고 있었다. 질서에 이르는 경로의 지도를 만들어줄 거라 믿었던 그 텍스트는 마침내 그를 피할 수 없는 절망으로 이끌었고, 그의 머리를  (콘크리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과 함께 섞어야 하는) 모래에 파묻어버렸다. (112)

아가시의 동상이 거꾸로 땅에 메어꽂인 장면은 그의 사상에 대한 절망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루서 스피어는 이렇게 썼다. "조던의 재능 중 특히 양날을 지닌 재능은 자기가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고, 그런 다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다. (...) 그는 자신의 관용과 관대함을 자랑스러워했다. (...) 하지만 조던은 파리 한 마리를 잡는 데 대포알을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151)

조던의 장점과 단점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득해서 추진하는 능력은 양날의 검과 같다.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되면 희망을 주지만 반대로 사용되면 절망으로 이끌 수도 있다.

나는 데이비즈 스타 조던에 대한 나의 괴상한 애착과, 그가 내게 살아가는 방법을, 내가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내 인생을 되돌려놓을 방법을 가르쳐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에게는 내가 존경할 만한 많은 면들이 있었다. 그의 냉소. "숨어 있는 보잘것 없는" 꽃들에 대한 그의 몰두. 내 아버지의 쇠솔로 된 밀대 빗자루를 연상시키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팔자수염. 그의 강철 같은 근성. 그 어떤 불운이 자기 앞에 닥쳐와도 주저앉기를 거부하던 그 투지 넘치는 결연함. (171)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을 만나 자신의 삶을 올바른 방향으로 갈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에게 희망을 가졌고, 존경심을 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강철 같은 투지가 그에게 있었다. 

스트리크닌을 포함한 마전자馬錢子 (출처: rawpixel)

그러다가 430페이지에서, 나는 그것을 보았다. "물고기를 확보하는 방법"이라는 섹션에서, 그는 거기까지 자신을 따라온 대담한 독자들에게 한 가지 비밀을 누설했다. 조수웅덩이 틈새로 쏜살같이 들어가버리는 탓에 좀처럼 잡히지 않는 가장 성가신 물고기를 잡을 때 그가 가장 즐겨 쓰는 방법은 뭘까? 바로 독이다. 구체적으로 그가 추천한 종류는? 언젠가 그가 "세상에서 가장 쓴 것이라고 묘사했던 위험하고 강력한 물질, 바로 스트리크닌이다. (175)

제인 스탠포드는 스트리크닌에 의해 독살된다. 처음의 독살 시도는 그녀가 토해냄으로 모면했지만 두 번째는 피하지 못했다. 스트리크닌은 마전자에 포함된 성분으로 인간을 짧은 시간에 마비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성분이다. 제인의 죽음과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물고기를 수집하기 위해 추천했던 스트리크닌에 대한 자료는 저자에게 큰 충격을 준다. 

아오스타는 정신적 ·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 같은 도시였다. 수세기에 걸쳐 가톨릭교회는 장애 때문에 가족에게 거부당한 사람들을 아오스타로 불러들여 주거와 음식을 제공하고 돌보아왔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결국에는 밭이나 부엌의 능숙한 일꾼들이 되었고, 그중 많은 이들이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자녀를 낳았다. 그 결과 일종의 거꾸로 뒤집힌 마을이 만들어졌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인 곳, 사회에서 무능력자 취급을 받던 사람들이 지원을 받아 번성하는 곳으로 말이다. (179~180)

스위스 아오스타라는 지역에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멸시받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안식처가 있었다. 가족조차도 거부당한 사람들이 갈 곳은 없었다. 우생학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열등한 인간으로 도태돼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강제로 불임을 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한 사람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생명을 살리려는 가톨릭교회의 노력과, 우생학 지지자들의 상반된 노력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공감의 능력, 역지사지의 태도, 삶이란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사는가에 대한 철학이 결여될 때 인간은 히틀러가 될 수 있다. 

프랜시스 골턴 (출처: Look and Learn)

무엇보다 이견의 핵심은 《종의 기원》에 있었다. 어째선지 데이비드와 프랜시스 골턴은 둘 다 그 결정적인 사실을 흘려버렸다. 한 종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 종이 미래까지 지속하게 해주며, 혼돈이 홍수, 가뭄, 해수면 상승, 기온 급변, 경쟁자, 약탈자, 해충의 침략 등 가장 강력한 형태의 타격을 가해올 때도 그 종이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다윈은 무엇을 꼽았을까? 바로 변이다. 행동과 신체의 특징에 변화를 일으키는, 유전자에 생긴 변이 말이다. (187)

데이비드와 골턴은 《종의 기원》이 주장하는 바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우생학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다.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변이가 있어야 한다. '변이'가 중요하다. 우생학의 주장과 같이 소위 좋은 유전자만 남는다면 멸종에 이르기 쉽다는 사실을 놓쳤다. 

바로 이것이다. 과거와 다르지 않은 사고방식, 골턴의 어리석음, 가난과 고통과 범죄가 혈통의 문제이며 칼로 잘라 사회에서 제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 이 나라에서 우생학 이데올로기는 결코 죽지 않았다. 우리는 우생학에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는 나라다. (196)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적으로 건전한 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가정, 지역사회, 학교 등에서 주는 환경이 중요하다. 우생학자들은 혈통이 중요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졌다. 우생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대한민국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 공동체가 와해되고 개개인의 각자도생을 조장하는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생학과 접목되면 위험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죽는 날까지 열광적인 우생학자로 남았다. 마지막 순간의 깨달음이나 회한을 보여주는 증거는 전혀 없다. 자기 노력의 결과로 칼질을 당하고 흉터와 수치만 남은 수천 명에 대해서도, 자기 권력을 놓지 않으려 투쟁하는 와중에 짓밟힌 사람들 - 제인 스탠퍼드, 그에게 명예가 훼손된 의사들, 그가 해고한 스파이, 그에게 성도착자 소리를 들은 사서 - 에 대해서도. (201)

룰루 밀러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게 가졌던 존경심이 사라졌다. 물고기를 수집하고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데 열정을 보이던 과거의 데이비드는 사라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우생학에 집착하며 자기 주변 사람들을 짓밟았다. 존경은 환멸로 바뀌었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227)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소중하다.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현재의 균형을 만들었다. 그래서 생물에게 지위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말이 아름답게 들린다. 

그는 왜 평화주의라는 인기 없는 대의에 그토록 전념했을까? 데이비드가 판단하기에 전쟁은 한 국가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 루퍼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좋은 자질을 지닌 남자들이 싸우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233)

데이비드가 평화주의를 지지하는 이유는 우생학이 연결되어 있다. 전쟁으로 우수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 사망하면 남아 있는 열등한 사람들이 더욱 번식하고 확장될 것을 두려워했다. 이런 생각을 죽을 때까지 간직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불쌍한 존재다. 자신이 평생을 살며 만들어낸 사고의 틀이 한쪽에 치우쳐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에 이름붙이기 (출처: 정약용도서관)

나는 이 어리둥절하게 들리는 개념을 캐럴 계숙 윤Carol Kaesuk Yoon의 경이로운 책 《자연에 이름 붙이기 Naming Nature》에서 처음 접했다. 나는 분류학 분야에 관해 좀 더 공부해볼 생각이었고, 그때 그 주제에 관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 그런데 이 책에서 발견한 사실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윤의 개인사는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어류의 죽음"과 충돌한 역사였다. (236)

한국계로 보이는 이름을 가진 캐럴 계숙 윤이 지은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는 저자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가 무슨 의미인지 독자들이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242)

데이비드는 평생을 전세계를 다니며 어류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어류'란 범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의 평생의 연구성과의 밑동을 자르는 것과 유사하다. 존재하지 않는 범주를 향해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류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분기학을 통해 새롭게 분류되었다.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 전체를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서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252)

큰언니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저자는 기억한다. 그런 언니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고, 연연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성숙했고,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의식하고 상처받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야겠다. 

과학자의 딸인 나로서는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물고기를 포기할 때 나는 과학 자체에도 오류가 있음을 깨닫는다. 과학은 늘 내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진실을 비춰주는 횃불이 아니라, 도중에 파괴도 많이 일으킬 수 있는 무딘 도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267)

과학은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될 때 인류에 공헌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과 함께 (출처: Amazon.com)

추천할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하나는 페니키스 섬의 소년원에서 교사로 일한 시간을 담은 대니얼 롭의 회고록 《그 물을 건너다Crossing the Water》입니다. 그의 글은 페니키스 섬처럼 황량하면서도 벅차고, 때로는 연약하고 때로는 강경합니다. 격리와 고된 노동의 가치에 대해, 장소가 사람의 영혼을 바꿀 수 있는가에 관해 그가 제기한 의문들이 계속 나의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또 한 권은 제니퍼 마이클 헥트의 《살아야 할 이유Stay: A History of Suicide and the Philosophies Against It》(열린책들, 2014)로, 자살에 반대하는 훌륭한 비종교적 주장들을 펼쳐놓았습니다. (275)

두 권의 추천도서를 보고 싶어 도서관에 검색했지만 없다. 재미있겠는데 원서를 구매할 지 고민이다. 


독서습관 1002_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_룰루 밀러_2022_곰출판(250201)


■ 저자: 룰루 밀러 Lulu Miller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Peabody Awards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로, 15년 넘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NPR에서 일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NPR <인비저빌리아Invisibilia>의 공동 기획자이고, 뉴욕 공영 라디오 방송국WNYC <라디오램Radiolab>에도 자주 참여하고 있으며, 《뉴요커》,《VQR》,《오리온》,《일렉트릭 리터러처Electric Literature》,《캐터펄트Catapult》 등에 꾸준히 글을 기고해 왔다. 지구에서 가장 좋아하는 지점은 험프백락Humpback Rocks (블루리지산맥의 험프백산 정상 부근에 있는 녹암 노두)이다.

룰루 밀러는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으로,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삶에 관한 우화처럼 읽히는 경이로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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