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에 따뜻한 프랑스 남부 여행을 다녀왔다.
영국사람인 피터 메일이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자리 잡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프로방스에서의 25년>이 여행 가이드이자 동행자였다.
<프로방스에서의 25년>은 도시인이 귀촌해서 사람과 환경에 적응해 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이웃주민, 자연, 음식, 문화에 대한 피터 메일의 관찰과 디테일한 표현이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끔 고민한다.
낯선 환경으로의 도전도 하나의 선택지다.
그 적응해가는 과정을 나만의 역사로 흔적을 남길 수도 있다.
프로방스에서 제2의 삶을 책으로 남긴 피터 메일처럼 쓰고 싶다.
자연스럽게 읽히는 글, 주변 사물에 대한 상세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글, 생각과 느낌을 전하는 다양한 표현을 담은 글이면 행복하겠다.
피터 메일의 글이 그렇다.
책을 덮으며 남은 인상 몇 가지다.
첫째, 고흐의 해바라기를 떠오르는 프로방스다.
저자와 함께 프로방스에 정착하고, 이웃과 소통하고 행사에 참여했다.
매년 300일 이상이 맑은 날이지만, 연간 강수량은 영국보다 많은 곳이다.
맑은 날이 많은 만큼 누구나 마음도 밝아지겠다.
둘째, 프랑스 음식 부야베스와 브레사올라를 만났다.
두 음식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시식해 보고 싶은 마음이다.
2015년에 두 아들과 함께 그리스를 여행했다.
당시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기로스'를 많이 먹었다.
빠르고 가볍게 먹을 수 있고, 저렴했다.
직접 체험했기에 여전히 기억에 또렷이 맛과 분위기가 남아있다.
피터 메일에게도 부야베스와 브레사올라가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셋째, 트러플은 초콜릿이 아니라 비싼 버섯이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특이한 모양이다.
가격이 비싸다고 하니 맛도 궁금해진다.
트러플을 채취하기 위해 개나 돼지 같은 동물을 이용하는데 동물학대 논란도 있다고 한다.
사람의 욕심은 한도가 없다.
마지막으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저자 피터 메일이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은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제정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 자신이 그 훈장을 받았다는 겸손한 자랑으로 끝을 맺는다.
이 추운 겨울에 따뜻한 프로방스로 여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몇 개의 문장을 인용했다.
부야베스의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다에서 힘든 하루를 보내고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육지로 돌아온 마르세유의 어부들은 뭐든 먹어야 했다. 그날 잡은 것 중에 가장 비싼 고기는 시장에 팔아야 하니 따로 빼놓고, 레스토랑에서 팔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우럭, 조개, 살보다 뼈가 많은 생선 따위로 무언가를 만들어 먹어야 했다. 어부들은 커다란 무쇠솥에다가 이런 잡어들을 한꺼번에 넣고 마늘과 회향을 넣어 끓이기 시작했다. (...) 어떻게 먹든 부야베스는 다 맛있고, 다 지저분하다. 여분의 셔츠를 꼭 준비하시길. (104~105)
브레사올라 한 점을 입에 넣는 순간 미각 세포가 일제히 되살아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브레사올라만큼 소고기의 섬세한 맛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은 없는 것 같다. (106)
(...) 이날만큼은 보통 비밀 유지에 철저한 트러플 채취꾼들이 저만의 비법을 아주 살짝 공개하곤 한다. (111)
타자기 앞에서 알파벳과 씨름하던 중에 이런 방문을 받으면 나는 잠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손때 묻은 책 한 권 또는 두 권에 사인을 해준 뒤에 뿌듯한 마음으로 돌아와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족한 독자보다 최고의 찬사는 없다. (120)
지금 이 순간만큼은 프로방스에서만이라도, 프랑스의 다른 시골 동네에서만이라도 이런 전통적인 카페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적인 삶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다른 수많은 전통처럼 이 유일무이한 즐거움마저 사라진다면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38)
짧은 기간에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이다.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현대적인 삶을 추구하며 지나온 시간 속에 소중한 우리의 전통들이 사라졌다. 그 속에서 찾을 수 있었던 즐거움도 함께 사라졌다. 우리가 느끼는 이런 아쉬움이 저자의 글에 절절하게 담겨있다.
그때 퀘벡에 근거지를 둔 미라(MIRA)라는 비영리 단체가 출범했다. 1981년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시작한 이 단체는 1991년에는 세계 최초로 시각장애 아동을 위한 안내견 학교를 설립할 만큼 성장했다. (164)
이 업적은 바로 1802년 나폴레옹이 기업가, 장군, 시인 등 분야를 막론하고 뛰어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고자 제정한 레지옹 도뇌르(Legion d'Honneur) 국가 훈장이다. (192)
독서습관 998_프로방스에서의 25년_피터 메일_2019_M31(250121)
■ 저자: 피터 메일
영국인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나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서 자란 피터 메일은 '프랑스인보다 프랑스를 더 사랑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한때 광고업계에서 15년간 활동하며 카피라이터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 남부 지방을 여행하다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아내와 함께 정착을 결심하게 된다. 그 누구보다 프로방스를 사랑한 피터 메일은 《프로방스에서의 일 년(1989)》을 발표해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 책은 전 세계 25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고 천만 권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기행문'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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