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란 번역된 책을 추천받아 읽고 싶었다. 앱으로 남양주 여러 도서관에 소장된 책을 조회했다. 번역서들은 모두 예약 대기 상태다. 원서가 진접도서관에서 대출가능했다. 상호대차를 신청했다. 100퍼센트는 이해하진 못해도 책의 맥락은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고 디테일한 부분은 추정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고, 소개된 작품을 구글로 찾아보며 따라가는 즐거움이 컸다. 서양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한국어 책도 많이 있지만 화가의 이름이나 설명에 있어서는 원서도 유익한 면이 있다.
저자는 《뉴요커》에서 편집을 하다가 형의 죽음을 경험하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을 시작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시작한 미술관 경비원의 일은 어느새 10년이 되었고 그 과정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All the Beauty in the World』에 고스란히 담겼다.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미술이나 고고학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깊이 있게 작품을 해설하지 않는다. 형의 죽음을 맞을 때까지의 이야기 등 개인적인 일상이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다. 역시 주된 이야기는 아주 넓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서의 경험이다. 경험이란 것도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경비원이라는 일 자체에 대한 이야기, 다른 하나는 경비원이지만 눈에 보이는 작품들에 대한 감상이다.
개인적인 일상, 경비원의 일 그리고 작품에 대한 감상이 교차되어 구성된 책이다. 너무 무겁지 않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잡지사의 편집을 했었고 기본적인 작품에 대한 상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인상이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는 시대에 이런 책 한 권을 통해 자신의 교양을 업그레이드해보면 어떨까.
미술관에서 있었던 작품 도난 사건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애인을 위해 작품을 훔친 남자는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을까. 이런 남자는 일찌감치 헤어지는 편을 권한다.
큰 마음을 먹어야 미국으로 여행을 갈 수 있고, 여행을 가더라도 많은 곳을 보고 싶어 미술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그래서 미술관 경비원을 10년 동안 하면서 여러 구역의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러웠다. 경비원을 선발하는 기준은 다른 전문직처럼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여행을 좋아한다면 그 나라의 경비원이 되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겠다.
아래는 책에서 인상적인 문장을 인용했다. 원문과 구글번역을 동시에 포스팅한다.
When in June of 2008, Tom died, I applied for the most straightforward job I could think of in the most beautiful place I knew. This time, I arrive at the Met with no thought of moving forward. My heart is full, my heart is breaking, and I badly want to stand still awhile. (12)
(구글 번역) 2008년 6월, 톰이 죽었을 때, 나는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일자리에 지원했습니다.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갈 생각 없이 MET에 도착했습니다. 내 마음은 가득 차고, 내 마음은 아프고, 나는 잠시 멈춰 서고 싶습니다.
Ultramarine from Afghanistan, azurite from Egypt, vermilion from Spain... Even the name Venice relates to the Latin venetus meaning sea blue. The greatest Venetian of the sixteenth century was Tiziano Vecellio, called Titian, and he enveloped his scenes in rose-tinted atmosphere, as though he mixed his pigments in puddle water and red wine.(18)
(구글번역) 아프가니스탄의 군청색, 이집트의 청금석, 스페인의 주홍색... 베니스라는 이름조차 바다의 파란색을 뜻하는 라틴어 venetus와 관련이 있습니다. 16세기의 가장 위대한 베네치아 화가는 티치아노 베첼리오로, 티티안이라고 불렸고, 마치 물웅덩이 물과 붉은 와인에 안료를 섞은 것처럼 장면을 장미빛 분위기로 감쌌습니다.
When we lament, we see the wisdom of the ancient adage "Life is suffering." A great painting can look like a slab of sheer bedrock, a piece of reality too stark and direct and poignant for words. (33)
(구글번역) 우리가 애도할 때, 우리는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고대 속담의 지혜를 봅니다. 위대한 그림은 깎아지른 듯한 암반, 너무나 삭막하고 직접적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현실의 한 조각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On and off, I have been reading a book about Egyptian history, and I am reminded again how different are the experiences of reading books and looking at art. The book's information has pushed my knowledge of Egypt forward. By contrast, coming into contact with an actual fragment of Egypt seems mostly to hang me up. This is an essential aspect of a work of art. (44)
(구글번역) 가끔씩 이집트 역사에 대한 책을 읽었는데, 책을 읽는 것과 예술을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책의 정보는 이집트에 대한 제 지식을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실제 이집트 조각과 마주하게 되면 대부분 저를 붙잡아두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예술 작품의 필수적인 측면입니다.
The first step in any encounter with art is to do nothing, to just watch, giving your eye a chance to absorb all that's there. We shouldn't think "This is good," or "This is bad," or "This is a Baroque picture which means X, Y, and Z." Ideally, for the first minute we shouldn't think at all. Art needs time to perform its work on us. (59)
(구글번역) 예술과의 모든 만남에서 첫 번째 단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면서, 눈에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게 좋다", "이게 나쁘다", "이건 X, Y, Z를 의미하는 바로크 그림이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상적으로는, 첫 순간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술은 우리에게 작용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So at last my man is beaten but as he turns to go, he has to have the last word. He turns to his son and says, 'Small people, small power.... It's life.' I don't get the laugh that I expect. The line lands heavy, occasioning grave head shakes and a "Fuck me..." as the group contemplates this level of moral rot. We've all had moments when we've been treated like gum on the bottom of somebody's shoe. (126)
(구글번역) 그래서 마침내 내 남자는 패배했지만 그가 가려고 돌아설 때 그는 마지막 말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작은 사람들, 작은 힘... 인생이잖아.' 저는 기대했던 웃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대사는 무겁게 울려 퍼지고, 엄숙한 고개 흔들기와 "나를 엿먹어..."라는 소리를 냈고, 그 무리는 이 수준의 도덕적 부패를 숙고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신발 밑창에 붙은 껌처럼 취급받는 순간을 겪었습니다.
Cassatt's picture isn't lovely, it is bathed-in-sunlight beautiful - bold and easy and colorful and right, more robust somehow than "fine art." It isn't fair to the poor copyist, who works carefully and doggedly, while Cassatt soared on the wings of her hard-won mastery. This was her style; this was her subject; and she made a thousand choices with quick, inspired intelligence that can't be replicated, only woodenly mimicked. To sum up, I can neither believe nor stand how good her picture is, and for the first time in a long time, I simply adore. (141~142)
(구글번역) 카사트의 그림은 사랑스럽지 않고, 햇빛에 비친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대담하고, 쉽고, 화려하고, 옳고, 어떻게 보면 "미술"보다 더 강인합니다. 카사트가 힘들게 얻은 숙련도의 날개에 올라타 있는 동안 조심스럽고 끈기 있게 작업하는 불쌍한 카피스트에게 공평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스타일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의 주제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모방할 수 없는, 나무처럼 흉내 낼 수 있는 빠르고 영감을 받은 지성으로 수천 가지 선택을 했습니다. 요약하자면, 나는 그녀의 그림이 얼마나 좋은지 믿을 수도, 참을 수도 없고, 오랜만에 나는 단순히 그것을 좋아합니다.
I look again at the drawings, which express love, piety, and exhaustion. I think about an old man bent over a white sheet, struggling to make his hand perform what his mind and heart require. What made Michelangelo Michelangelo came in the next step. After completing his study, he got up and worked to make the thing real. He was hammering a chisel against obdurate marble just days before his death. (161)
(구글번역) 나는 다시 사랑, 경건함, 피로를 표현한 그림을 본다. 나는 흰 시트 위에 몸을 숙인 노인이 자신의 마음과 마음이 요구하는 것을 손으로 해내려고 애쓰는 모습을 생각한다. 미켈란젤로를 만든 것은 다음 단계에서 나왔다. 그는 연구를 마친 후 일어나서 그 물건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죽기 며칠 전에 딱딱한 대리석에 끌을 두드리고 있었다.
It was Lucy T.'s version of a giornata. Her quilt from 1955 is the only pictorial one in the show, and it depicts Gee's Bend. On one side a blue stripe represents the Alabama River, which runs between red strips of fabric, its' muddy banks. On the other side, cotton fields are rendered with patterned calico. (...) Lucy T. Pettway learned from her mother and great-aunt, who in turn learned from older women in a tradition that predates Emancipation and likely owes something to textile practice in West Africa. (163)
(구글번역) 그것은 루시 T. 의 giornata 버전이었습니다. 1955년 그녀의 퀼트는 이 쇼에서 유일한 그림으로, Gee's Bend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파란색 줄무늬가 빨간색 천 조각 사이로 흐르는 앨라배마 강을 나타내며, 진흙 투성이의 강둑을 나타냅니다. 다른 쪽에는 면화 밭이 무늬가 있는 옥양목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루시 T. 페트웨이는 어머니와 고모에게서 배웠고, 고모는 해방 이전부터 이어져 온 전통을 가진 연장자 여성에게서 배웠으며, 서아프리카의 직물 관행에 어느 정도 빚을 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But I also now have perspective enough to see that my life stretch beyond its present horizons. That it will lurch and grind and ramble forward, and I had better steer its progress. In short, I have come to understand that my life will consist of chapters, which raises the possibility of bringing my current chapter to a close. (167)
(구글번역) 하지만 저는 또한 이제 제 인생이 현재의 지평을 넘어 뻗어 있다는 것을 볼 만큼의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비틀거리고, 갈리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저는 그 진행을 더 잘 조종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저는 제 인생이 여러 장으로 구성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이는 제 현재 장을 마무리할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The most moving thing I've ever read about art is and account of Vincent van Gogh's visit to the Rijksmuseum in 1884. Apparently, he was one of these museumgoers who chronically slow down their companions, in this case his friend, artist Anton Kerssemakers. "He spent the longest time in front of 'The Jewish Bride' by Rembrandt, " Kerssemakers writes. (172~173)
(구글번역) 제가 예술에 대해 읽은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1884년 빈센트 반 고흐가 라이크스 박물관을 방문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동료, 이 경우 그의 친구이자 예술가인 안톤 케르세메이커스의 속도를 늦추는 박물관 관람객 중 한 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렘브란트의 '유대인 신부' 앞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케르세메이커스가 썼습니다.
I could not tear him away from the spot; he wend and sat down there at hise ease, while I myselt went on to look at some other things. "Youwill find me here when you come back, " he told me. When I came back after a pretty long while and asked him whether we should not get a move on, he gave me a surprised look and said, "Would you believe it - and I honestly meadn what I say - I should be happy to give ten years of my life it I could go on sitting here in front of this picture for a fortnight, with only a crust of dry bread for food?" At last he got up, "Well, never mind, " he said, "we can't stay here forever, can we?"
(구글번역) 나는 그를 그 자리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그는 돌아가서 그 자리에 편안하게 앉았고, 나는 다른 것들을 보기 위해 계속 나아갔다. "돌아오면 나를 여기서 볼 수 있을 거야." 그가 나에게 말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돌아와서 우리가 움직이지 않을지 물었을 때, 그는 나를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믿을 수 있겠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이 그림 앞에 앉아서 2주 동안 먹을 건 마른 빵 한 조각뿐이라면, 내 인생 10년을 기꺼이 바칠 거야." 마침내 그는 일어났다. "음, 괜찮아." 그가 말했다. "우리가 영원히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
In the old master wing, I decide the picture I need the most is a Crucifixion by Fra Angelico, a fifteenth-century Italian friar. (...) I like that the picture makes me think of Tom, however painful that may be. Christ's body looks like it's been nailed to the mast of some sotrm-tossed ship. It's the center around which the rest of the world seems to rock and wheel. A graceful, broken body, it reminds us again of the obvious: that we're mortal, that we suffer, that bravery in suffering is beautiful, that loss inspires love and lamentation. This part of the painting performs the work of sacred art, putting us in direct touch with something we know intimately yet remains beyond our comprehension. (174)
(구글번역) 오래된 마스터 윙에서, 제가 가장 필요한 그림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인 프라 안젤리코의 십자가형이라고 결정했습니다. (...) 그 그림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톰을 생각나게 한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마치 어떤 폭풍우에 휩쓸린 배의 돛대에 못 박힌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나머지가 흔들리고 회전하는 중심입니다. 우아하고 부서진 몸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당연한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필멸자이며, 고통받고, 고통 속에서의 용기가 아름답고, 상실은 사랑과 애도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그림의 이 부분은 신성한 예술의 작업을 수행하여 우리가 친밀하게 알고 있지만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과 직접 접촉하게 합니다.
독서습관1001_All the Beauty in the World_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_2023_Simon & Schuster(250202)
■ 저자: Patrick Bring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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