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소설가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다.
책의 표지를 넘기면 바로 세 개의 유명한 그림이 등장한다. 저자는 왜 이곳에 그림들을 배치했을까. 소설 내용과 관련이 있겠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세 개의 그림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다비드의 그림은 프랑스 자코뱅의 거두 '마라'의 죽음, 클림트의 그림은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죽음 그리고 마지막 들라크루아의 그림은 아시리아의 폭군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다. 책의 제목에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라는 것은 나의 생명의 마지막을 의미한다.
책은 그림에 대한 소개와 함께 등장인물들이 교차한다.
형제인 C와 K, 클림트의 그림에서 유디트를 닮았다고 하는 유디트, 행위예술가 미미, 그리고 나를 파괴할 권리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화자가 있다. 자살을 방조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클림트와 미미에게 적용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명기되어 있어 염려가 되는 면도 있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075
등장인물들은 삶에 대한 희망이나 바람이 없어 보인다.
주어진 삶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몸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지만 뭔가 삶에 대한 의욕이 부족하다. 화자가 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다. 그리고 접근해서 실천을 돕는다.
행복한 삶은 돈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김정운 교수가 말했다.
돈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금액의 액수로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 누구나 손쉽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길은 자신만의 생산 혹은 창작을 하는 길이라고 한다. 책에서도 주인공이 얘기한다.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 두 가지 길이 있는데 하나가 창작이다. 다른 하나는 언급하지 않겠다.
좋은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하고
자신만의 글로 창작하는 활동도 좋고, 자신만의 그림으로 표현해도 좋겠다. 우리에게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더라도 행복을 더욱 키우고 자신을 성장할 권리를 행사하길 바란다.
책 뒷부분에 있는 '자살의 윤리학'이라는 해설 부분은 무슨 말인지 따라가기가 어려워 읽다가 포기했다. 문학평론가의 길이 험난하겠다 싶었다. 이렇게 어려운 글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고객과의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의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을 하는 길. (17)
이런 게 인생일까. K는 생각한다. 어차피 패는 처음에 정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패는 아마도 세 끗쯤 되는 별 볼 일 없는 것이었으리라. 세 껏이 광땡을 이길 가능성은 애당초 없다. 억세게 운이 좋아서 적당히 좋은 패를 가진 자들이 허세에 놀라 죽어주거나 아니면 두 끗이나 한 끗짜리만 있는 판에 끼게 되거나. 그 둘 중의 하나뿐이다. (32)
"갑자기 신이 나는 거 있죠. 내게 인생이란 제멋대로인 그런 거였어요. 언제나 내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내가 가 있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미세하게 들뜬 유디트를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더이상 입에 츄파춥스를 물고 있지 않았다. (85)
미미는 멋지게 떠났다. 유디트는 편안하게 갔다.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그녀들이 그립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글도 완성되었고 이제 이 글은 그들의 무덤 위에 놓일 아름다운 조화가 될 것이다. (160~161)
독서습관 790_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_김영하_2009_문학동네(231005)
■ 저자: 김영하
1968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95년 계간 <리뷰>에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제1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오빠가 돌아왔다>, 장편소설 <아랑은 왜> <검은 꽃> <빛의 제국> <퀴즈쇼>, 산문집 <포스트잇> <랄랄라 하우스>, 영화산문집 <굴비낚시> <김영하 이우일의 영화이야기>, 여행산문집 <김영하의 여행자 - 하이델베르크> <김영하 여행자 도쿄>가 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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