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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단상

비오는 날 뇌종양 남편의 퇴원길을 동행하는 여인을 돕다

by bandiburi 2023. 4. 5.
(출처: Wallpaper Flare)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수요일 오후 3시경이다. 울산 현대자동차를 방문하고 나와 횡단보도를 향했다. 우산도 없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중년부부를 봤다. 아마도 방금 시내버스에서 내려 우산 없이 집으로 갈 요량이었던 것 같다.

멀리서 보기에 남편은 초등학생처럼 왜소하다. 아내가 몇 개의 짐을 모두 들고 있다. 잠시라도 우산을 함께 써야겠다 싶어 가까이 갔다. 부부에게서 짧은 몇 분의 시간이었지만 대화를 나누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연은 이렇다.

아내는 남편에게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남편은 뇌종양으로 입원 중이었다. 오늘이 수술하기로 한 날이었다. 깊은 사연은 모르겠지만 남자는 뇌종양 수술을 거부했다. 당장 퇴원하겠다 고집을 부린다. 여자는 화가 났지만 남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짐을 바리바리 싸서 버스를 타고 집 앞 정거장에 도착했다. 우산도 펴지 않고 터벅터벅 무거운 걸음으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부부의 모습 속에 죽음 앞에 연약한 인간이 보인다.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려는 자와 발버둥이라도 치자는 자가 갈등한다. 사랑하기에 부부의 연으로 몇 십 년을 살았을 게다. 함께 건강하게 해로하자고 늘 다짐했을 게다. 그러나 뇌종양이란 질병은 그들의 바람을 산산조각 냈다.

내가 우산으로 비를 가려주는 동안 여자는 가방에서 우산을 꺼낸다. 남편은 아내의 짐을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다. 남자가 어려움으로부터 여자를 가려주었을 텐데 이제는 여자가 가려주려 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의 우산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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