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가급적 어떤 것도 특정하지 않으려는 듯, 이들의 출신 국가도 종교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중동으로 보이는 회교권 어느 도시로 짐작할 뿐이다. <서쪽으로>라는 제목은 그렇다면(물론 서구의 시각에서 본) 동쪽이 이들의 고향 나라임을 어느 정도 알려주는 실마리일까. 이들은 그리스의 미코노스, 런던, 그리고 샌프란시스코로, 미지의 국가에서 점점 서쪽으로, 또는 서구로, 그야말로 칠흑 같은 네모난 어둠인 ‘문’을 빠져나간다. 고향의 뿌리를 잘라 내고 떨쳐 나온 난민이 되어 점차 서쪽으로 갈수록, 사랑도 함께 움직인다. 연인의 열정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동행자에 대한 애증이자 의리로 변해 간다. (255)
양이 많지 않은 소설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생각해야 하는 소설이었다. 사이드와 나디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반군과 정부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어느 도시에서 점차 위급해지는 상황에서 사이드는 어머니를 잃는다. 아버지의 요청으로 나디아와 둘이서 문을 통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이야기의 진행에 따라 어느 나라인지 어느 도시인지 알고 싶지만 작가는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나디아의 몸을 둘러싼 검은 옷과 불안정한 정국으로 미루어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어디가 아닐까 추정하게 된다. 이야기는 그리스, 런던, 샌프란시스코 등으로 장소를 이동하며 전개된다. 주인공을 따라 이동한 장소는 난민을 수용하는 지역이다. 부모와 함께 살던 지역을 피해 찾아간 난민들의 공간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고, 돈이 없으면 곤경에 처하게 된다.
장소는 점차 서쪽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 나디아와 사이드의 관계는 점차 애정이 변해 의리가 되고 결국에는 관계마저 소멸한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더 나은 삶을 찾아 어두운 문을 용기를 가지고 통과한다. 그 문의 뒤쪽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이곳보다 더 나은 곳이라는 보장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이 너무나 절박하기에 문을 향한다. 그렇게 떠난 서쪽으로의 여정이 이 책의 제목이다.
나디아는 세상의 편견과 규율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검은 옷과 스카프로 온몸을 가리는 것으로 맞섰다. 그녀는 반군으로 피폐해진 땅을 떠난 것이지만 그것은 동질감과 소속감을 느낄 공동체를 향한 여정이기도 했다. 자의든 타의든 뿌리가 있는 땅을 떠나 사는 사람들,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서 내가 작게나마 공감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이겠다. (263)
이 책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사이드와 나디아가 서쪽의 어느 나라에 정착해서 행복한 부부의 삶을 살 것이라는 해피엔딩을 기대했다. 하지만 서쪽으로 장소가 바뀔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난민으로서의 정체성도 그대로다. 독자에서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에 대해 연민 compassion을 가지라는 의도라고 본다. 역자 권상미가 마지막 부분에 언급한 내용을 보며 조금은 공감하게 되었다.
이제는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깨끗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치안이 안정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난민은 가끔 뉴스에서나 접하는 사람들이다. 불안정한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은 개개인의 당장의 걱정이나 관심으로 가려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서쪽으로>를 일고 나니 투치족과 후투족의 내전이 있었던 르완다 국민들이 떠오르고, 중동의 시리아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에서 가난을 피해 미국으로 향하는 난민 행렬이 떠오른다. 전 세계에 68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정착할 곳을 찾고 유랑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나라들이 난민에 대한 문호를 열어 이들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저자: 모신 하미드 Moshin Hamid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대학 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국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생활했으며,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뉴욕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며 첫 소설 <나방 연기 Moth Smoke>를 집필했다.
2000년에 발표한 <나방 연기>는 발간 직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파키스탄과 인도 등지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2001년 <베티 트래스크상> 수상, <PEN/해밍웨이 재단 문학상> 최종 후보 등의 성과를 거뒀다.
(…) 2013년 발표한 세 번째 소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How to Get Filthy Rich in Rising Asia>은 <뉴욕 타임스>, <가디언> 등 15곳 매체의 ‘올해의 책’, 아마존의 ‘2015 가장 좋은 소설’로 선정되었으며 <티시아노 테르사니 국제 문학상>을 수상했다.
2017년 네 번째 소설 <서쪽으로>를 발표해 “한 세대의 가장 창의적이고 재능 있는 작가’라는 평을 받으며 2017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18년 <LA 타임스 북 프라이즈>, <에스펀 워즈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라호르에 살면서 뉴욕, 런던, 그 외 지중해 지역 등지를 오가며 글을 집필하고 <타임>,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 북 리뷰>, <뉴요커> 등의 매체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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