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나무는 수백 년을 삽니다. 그런데 왜 수백만 년을 사는 나무는 없을까요? 수백만 년이 지난 이후에는 유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태계에 유용하지 않으면 생태계가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도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불멸이 되기 위해서는 영원히 유용해야 합니다. 그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단순히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의지와 에너지를 갖는 일뿐만 아니라, 생태계에 유용할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물론 이건 상상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236)
EBS 다큐프라임 영상을 보지 않고 책을 먼저 봤다. 평소에 다큐멘터리나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유튜브를 통해 즐겨 보는 편인데 <4차 인간>은 모르고 있었다. 책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글로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문장을 읽으며 상상하고 책에 있는 사진을 보며 다시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그래서 책을 먼저 읽고 영상을 보면 상상했던 부분이 실제 어떤 것이지 맞춰보는 즐거움도 있다.
우리는 과학을 통해 무병장수와 편리하고 즐거운 삶이 도래하길 기대한다. 이 책을 통해서 이런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는 세계적인 학자들의 동향을 볼 수 있다. 책의 가장 마지막에 인용된 케빈 캘리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생태계에 유용할 경우에 삶이 지속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인상 깊었던 사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세바스찬 승 교수는 뇌 속 뉴런 간의 연결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커넥토믹스Connectomics란 용어도 탄생시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뇌신경세포 연결망을 완벽하게 구현할 뇌지도를 만들고 있을까?
커넥톰을 찾는 방식을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뇌 조각을 얇게 썰고 사진을 모아서 분석하여 3차원 이미지로 완성하는 것이다. 승 교수는 뇌를 해체하고, 얇게 저며서, 파괴한다고 표현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각 과정은 지난하기 이를 데 없다.(83~84)
인간의 뇌지도를 만드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나온다. 미국에서 세바스찬 승 교수가 하는 방법이 있고 유럽에서 진행 중인 방식이 있는데 완전히 다른 접근방식이다. 우리의 뇌에서 세포 간에 주고받는 3차원 지도가 완성된다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뇌를 통해 신체를 통제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주변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 더욱 완벽한 인간이 될 수 있을까. 모두가 완벽해진다면 무엇이 완벽일까라는 궁금증도 생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뇌를 이해하고 이를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어서 질병으나 사고로 고통받는 환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이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상당한 진보라고 생각된다.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에 대한 어떤 숭배도 원치 않았기에 사후에 반드시 화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1955년 아인슈타인이 사망하자 유언대로 그의 몸은 화장되었지만, 뇌는 비밀리에 적출된 뒤였다.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부검을 맡았던 병리학자 토머스 하비 Thomas Harvey가 화장 전에 아인슈타인의 뇌를 들어내 포름알데히드 병에 담은 뒤 몰래 보관했다. 그러나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된 아인슈타인의 아들은 분노했으나, 오로지 과학 논문을 통해 모든 연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뇌 연구를 허락해주었다.
하비는 아인슈타인의 뇌를 240개 조각으로 나누었고,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다시 수천 개의 얇은 표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은 두 개의 큰 병에 담아 자신의 집 지하실에 보관했다. (중략) 원하는 연구자들에게 뇌의 조각을 우편으로 보내주었는데,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독일, 일본 등 세계 각지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 응답이 없었고, 그나마 돌아온 답장에서는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99~100)
아인슈타인의 뇌가 어떻게 적출되어 현재까지 우리에게 언급되고 있는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망자의 유언과는 달리 인간(들?)의 호기심에 의해 적출되었고 이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보내 특이한 점을 찾고자 했으나 찾지 못했다는 부분이다. 아인슈타인이 과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은 맞지만 아인슈타인이 특별한 존재였냐고 하면 그와 비슷한 과학자들은 얼마든지 있었다고 본다. 그래서 그의 뇌를 연구해서 평범한 사람들과 비교해 특이점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은 호기심 수준 이상은 아니라고 본다.
두 번째 체험은 경두개 자극기를 착용한 뒤 이루어졌다. DARPA의 신경과학자는 애디에게 자극기를 장착하게 했는데, 자극기는 관자놀이에 양극(+) 전선을, 왼팔에 음극(-) 전선을 연결한 것이었다. (중략) 샐리 애디는 경두개 자극기를 착용한 뒤 다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라진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적들이 다가오자 침착하게 총을 준비하고 목표물을 조준했어요. 적들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게 느껴졌죠.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적부터 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걸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어요. 천천히 적들을 모두 쏜 뒤, 그다음 적들이 나타나길 기다렸죠. 그런데 나타나지 않았어요. 실망하고 있었는데 문이 열렸죠."
처음과 똑같은 20분짜리 시뮬레이션이었지만, 경두개 자극기를 장착하고 난 뒤 진행한 두 번째 체험은 3분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경두개 자극기는 애디를 007 영화에 나오는 제임스 본드처럼 최고의 사격술을 지닌 요원으로 만들었다. (120~121)
경두개 자극기를 기자가 직접 체험해 보고 느낌을 적은 글이지만 사람이 이런 장치를 통해 평범한 여성이 겁을 먹지 않고 침착한 군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면에서 긍정과 부정을 모두 보게 된다. 우리의 뇌라는 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회로에 따라 주변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어느 정도 세팅된 값에 따라 부모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자극기를 통해 특정 부위에 자극을 줌으로써 사람의 성격과 반응 양태를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부분 역시 세상을 살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 활용된다면 긍정적인 면이 부각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를 파괴하는데 활용된다면 부정적인 세상으로 이끌 수도 있다.
에두아르도 미란다 교수의 연구진과 환자, 연주자들이 함께 준비한 음악회는 성황리에 끝났다. 작곡자인 환자도 연주자도 청중도 모두가 인간의 존엄을 되돌아본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좋아하던 음악은 물론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던 환자들에게는 다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기억의 소환Activating Memory'이라는 연주회 이름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다. 이들의 연주회는, 우리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이한다 해도 본디 과학이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너무도 자명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145)
이 부분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례다. 과거에 음악을 연주했지만 사고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하지만 뇌는 살아서 과거의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작곡을 할 수 있기에 과거의 연주자들이 작곡한 곡을 현재의 연주자들이 음악으로 되살리는 연주회다. 육체적인 기능을 상실해서 연주는 할 수 없지만 뇌는 살아있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의 삶에 큰 의미를 준다고 본다.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데 궁극적으로 나가야 할 부분은 사람을 위한 과학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초지능을 둘러싼 논란과 위험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현재 우리가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게 생산적인 논의라고 말한다.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하고 시험하는 과정에 대한 전문적인 개발 기준을 마련한다거나 잠재적인 위험을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미래에 대한 준비라고 본다. (167)
독서습관455_4차 인간_이미솔&신현주_2020_한빛비즈(211010)
■ 저자 1: 이미솔
현 EBS 프로듀서. 과학의 영역에서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찾는 다큐멘터리스트. 다큐멘터리 <아틀라스>, <리얼타임>, <기적의 달리기>, 다큐프라임 <시험>, <4차 인간> <뇌로 보는 인간> 등을 연출했다. 다큐프라임 시험으로 삼성언론상 어젠다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앞으로도 재미있는 과학 다큐멘터리를 만들 예정이다.
■ 저자 2: 신현주
방송작가. 대학에서 행정학을, 대학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전공했다. 인문학과 과학을 잇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으며, 과학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은 바람이 있다. 과학 프로그램 <사이틴 Sci-teen> <한 컷의 과학>과 다큐멘터리 <아인슈타인과 블랙홀> <당신의 과학> <기억력의 비밀> <과학다큐 비욘드 4부작: 인공지능> <4차 인간> <뇌로 보는 인간> 등을 구성하고 글을 썼다. <아인슈타인> <테마 세계문화-남아메리카 편> <10대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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