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원 산대놀이에 대해 소개하는 구역이 있는데 처음 듣는 놀이라서 자세히 들여다봤습니다. 벽에는 여러 가지 가면이 이름과 함께 붙여져 있고, 아래로는 구경꾼들과 어우러져 산대놀이를 하는 모습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남양주문화원 사이트에 소개된 퇴계원 산대놀이에 대한 내용을 요약해서 정리했습니다.
산대놀이는 한양을 중심으로 수도권 중부지방에서 발달한 가면극을 지칭하는데 가면을 쓰고 민중의식을 담은 극적인 갈등을 전개합니다.
조선 광해군 때 산대도감이 설치된 바 있는데 '산대'란 '산과 같이 높은 무대'라는 뜻으로 주로 외국 사신을 영접할 때나 왕실의 각종 행사 때 국가적 차원에서 행한 여흥 행사였지만,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왕실에서 폐지하자 공연하는 사람들이 호구지책으로 사대문 밖 장터에서 공연하면서 민간에 확산되었습니다. 이때 퇴계원의 산대놀이도 시작되었습니다.
남양주 퇴계원은 조선시대에 강원도와 함경도에서 한양의 동대문으로 들어가는 직통로여서 한양으로 공급되는 숯, 장작,곡식, 채소 등이 이곳을 거쳐 갔습니다. 그래서 퇴계원은 전국을 도는 마행상인들의 상업적인 근거지가 되어 여관, 음식점, 푸줏간 등이 왕숙천을 끼고 자리 잡았습니다. 우시장도 번성했습니다. 이렇게 교통의 요충지가 되다 보니 문화가 번성한 시장터가 되어 산대놀이와 같은 가면극이 발달했습니다.
근래 들어 전통문화를 복원하자는 취지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퇴계원산대놀이 보존회'를 구성하여 복원작업과 전승 공연을 활발하게 하고 있습니다.
퇴계원 산대놀이는 일반 가면극과 같이 앞놀이, 본놀이, 뒷놀이의 3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앞놀이는 마을 전체의 구성원들에게 놀이가 있음을 알리고 거기에 정서적 동참과 호응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본놀이는 12마당으로 이뤄지는데 대체로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눠집니다. 첫째는 노장 이하 중들의 타락을 풍자하는 과장이고 두 번째는 양반과 말뚝이의 대결을 통해 상층과 하층의 계급 문제를 풍자하고, 세 번째는 산할아비와 미얄할미의 갈등을 통해서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심각한 도전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대놀이가 민중의 의식을 표출하는 연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뒷놀이는 일명 뒷풀이로 놀이꾼과 구경꾼이 하나가 되어 신명을 풀고 크게 화합하는 잔치의 성격입니다.
상좌란 불도를 닦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가면극에서 대사 없이 놀이판을 정화하는 종교적 기원을 담아 놀이를 시작하는 의식무를 추는 역할을 담당하는 대사가 없는 등장인물을 의미합니다. 아래 탈은 첫째상좌의 탈을 보여줍니다.
옴중은 속세에 내려와 부정한 짓을 했기에 피부병(옴)에 걸린 승려를 가리킵니다. 그래서인지 아래 탈은 얼굴에 뭐가 나고 피부색도 어둡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옴병에 걸린 옴중은 신성한 승려가 아니라 세속에 찌들어 더럽게 살다 옴병에 걸려 모든 사람들의 야유를 받는 천덕꾸러기로 추락한 존재입니다.
형상은 중이되 실제 행위는 중이 아닌 비승비속의 이중성을 지닌 존재로 스승인 노장을 희롱하는 인물입니다. 먹중은 중부지역의 탈춤과 산대놀이에서만 나타나고 경상도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의 성격에서 벗어나 풍류와 성적 쾌락을 즐기는 인물로도 묘사됩니다.
퇴계원 산대놀이 제4과장에서 등장하는 연잎탈입니다. 연잎과 눈끔적이가 옴중과 먹중 등 파계승을 몰아내는 내용입니다.
애사당은 어린 사당을 말하며 왜장녀의 딸입니다. 산대놀이에서 먹중의 시중을 드는 무언의 인물입니다. 왜장녀는 허우대가 크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여자를 뜻하며 이들은 주막의 주모나 나이 많은 기생과 같이 돈을 받고 몸과 술을 파는 천한 신분의 여자입니다. 왜장녀는 엉덩춤과 맨살의 허리를 드러냅니다.
노장은 오랫동안 불도를 닦았지만 파계를 해서 세속화하는 모든 승려를 총칭합니다. 젊은 여인에게 미혹되어 파계하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산대놀이의 샌님 관련 부분에서 샌님의 젊은 소실인 소무를 유혹하면서 샌님과 대립하는 젊고 힘이 있는 무인적 성격의 인물입니다. 이후에 포도부장이 소무를 빼앗습니다.
산대놀이에서 양반의 하인으로 등장하는 말뚝입니다.
취발이는 술 취한 중을 의미한다고 추정하고 있으며 주로 노장을 쫓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으로 변한 노장 앞에 등장해서 계집을 둘씩이나 데리고 논다고 나무라며 싸움을 합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취발이가 승리합니다. 노장은 큰 소무만 데리고 도망하고 취발이는 남은 소무와 살림을 차립니다.
우연히 박물관에서 접한 '퇴계원 산대놀이'는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 중에 하나로 최근에 복원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시골에서 때마다 꽹과리, 장구, 북 등을 치며 어른들이 놀이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마을회관에 놀이기구는 있지만 젊었던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80대 노인이 되셨습니다. 꽹과리 소리가 사라진 지 20년 이상이 되었습니다.
산대놀이에 대해 정리를 하며 다양한 탈의 역할을 정리하다보니 이제는 산대놀이를 즐길 수 있겠습니다. 뭐든 배경과 내용을 이해하면 공감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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