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립박물관에 남양주와 관련된 조선 시대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었는데 일부 흐리게 나온 것들이 있습니다. 잘 모르는 분들도 있어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남재는 동생 남은과 함께 1392년 7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우는데 기여했습니다. 이성계가 '재'라는 이름을 하사했습니다. 정도전과 동생인 남은과 같은 급진적인 개혁정책에 염증을 느껴 거리를 두었는데 이것이 1차 왕자의 난에서 살아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생인 남은은 정도전 등과 함께 살해되었습니다.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단한 분이었네요.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에 묘소가 있습니다.
조말생의 묘소는 원래 금곡동에 있었는데 고종의 홍릉 천장으로 인해 수석동으로 이장했습니다. 한강을 따라 자전거 도로를 따라가다 수석동 고개를 넘다보면 정상 부근에서 왼쪽으로 조말생 묘소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천문학자로 독자적인 역법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는 과학이나 기술을 하는 것을 낮게 보던 시기인데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는 것을 그 자체로 대단한 결단입니다. 이순지 선생의 묘소는 남양주시 화도읍 차산리에 있습니다. <칠정산>이란 운동하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역서입니다. <칠정산>에서 논하는 일곱 개의 천체는 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이라고 합니다.
<하피첩>이란 서첩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810년에 저술했으니 신유박해(1801) 때 정약용이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 후에 고향인 경기도 마현에 있는 두 아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글을 남긴 것입니다. 정약용의 부인이 홍 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낡은 치마를 유배지로 보냈고 이를 잘라서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마음을 담은 글을 남겼습니다. 스스로 <하피첩>이라 이름 지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가보로 이어져내려오던 것이었는데
한국전쟁 시기에 분실되었다가 2006년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졌고 2015년에 국가에 귀속되었다고 합니다.
정확히 어느 시기에 찍은 사진인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1970년대 이전으로 보입니다. 짧은 시간에 오늘의 대한민국에 이르렀습니다. 위의 사진과 같은 궁핍한 시기를 경험하지 않은 저를 포함한 세대들은 과거를 반추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양주시 다산신도시가 들어서기 전에 도농역 앞에 있는 부영아파트가 신축되기 전에 기초공사를 하는 사진입니다. 현재는 아파트와 주택으로 여유공간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시만 해도 멀리 산이 보일 정도로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으로 아파트와 건물로 채워지며 확대되는 수도권을 보면 과거의 모습이 그립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말이면 자연을 찾아 산으로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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