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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재수하는 아들의 국어 기출문제 지문을 봤는데 인문 철학 법 경제 기술 과학 너무 어렵네요 (210117)

by bandiburi 2021. 1. 17.

 

 

아들이 재수를 결심하고 집 근처에 있는 독서실을 다니며 열심히 재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되 일주일에 하루는 쉬면서 재충전을 하라고 권합니다. 한 주간 학습한 것에 대해 들어주며 되짚어 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겠다 싶어 일요일 오전에는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국어 기출문제의 지문을 보고 놀랐습니다. 30년 전에 풀었던 국어지문과는 달리 지문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일반인이 보기에도 그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관심이 있어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분야도 인문/철학, 법/경제, 기술/과학으로 나뉘어 있네요. 공대 출신이지만 지문 중에 생명과학과 관련된 내용은 무슨 말인지 한참을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취지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독서활동을 통해 인문, 철학, 법, 경제, 기술, 과학 등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들을 것과 볼 것이 많은 시대에 아이들에게 어렵겠지요. 각각의 지문에 나와 있는 사례들은 특정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지문도 짧지 않고 집중해서 읽어야지 문맥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적지 않은 아이들에게 '독서'에 해당하는 이런 지문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됐습니다. 마치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들처럼 말입니다. 

아들과 함께 본 지문의 내용에 대해 간단히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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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근대 도시의 삶의 양식이라고 요약한 지문을 봤습니다. 생산학파로서 미셸 푸코가 한 말과, 소비학파로서 콜린 캠벨의 주장이 대립되어 나타나고 양쪽을 통합해서 발터 벤야민의 주장이 언급됩니다. 특히 18세기 중반에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의 소외'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조회해 봤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으로 소외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소외'란 인간이 만든 생산물이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어 낯설고 대립적인 존재가 되고, 인간을 억압하고 종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해서 인간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상실하게 하는 현상을 말한다고 합니다. 어렵지요. 종류로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와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외' 등이 있다고 합니다. 

대학교 시절 사회과학 서적을 어렵게 생각했는데 지금도 어렵기는 마찬가집니다.

 

(from Wikimedia Commons)

 

두 번째는 조선후기 18세기 이익과 19세기 최한기가 서양의학을 어떤 식으로 수용했는지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18세기 정조시대 북학파가 청나라의 앞선 과학을 배우고자 활발하게 활동하다 정조가 갑자기 사망하며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며 북학파는 위축되었습니다. 그래도 서학이란 것이 19세기에도 지속되어 의학분야에서도 수용되고 있었다는 점은 처음 접했습니다. 어디에서 인용한 글인지 역사에 관심 있는 아이들은 쉽게 이해될 것이지만 한국사에 관심이 적은 아이들은 무슨 말인가 싶은 역시 어려운 글이었습니다. 

세 번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과 후기의 평가에 대한 지문이었습니다. 목적론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과 이를 옹호하는 글인데 일견 당연해 보이는데 이를 글로 길게 써놓은 것을 보니 글쓴이가 대단해 보였습니다. 이런 글이 대입시험 지문으로 쓰였으니 이후로 많은 학교, 학원, 교재에서 비슷한 류의 철학 지문이 인용되었겠습니다. 

네 번째는 채권과 CDS 프리미엄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요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해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은행과 기업, 신용등급, 채권 보증에 대한 CDS(Credit Default Swap) 프리미엄 비용을 통해 시중에서 채권과 돈의 흐름에 대해 알 수 있는 지문이었지요.

다섯 번째는 정부의 정책수단의 4가지 특성과 오버슈팅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분들이 잘 아는 글이겠습니다. 강제성, 직접성, 자동성, 가시성이 있다고 하는데 대략 이해는 되는데 이런 분야도 있구나 싶습니다. 오버슈팅에서는 환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외국인이 금리에 따라 빠져나가고 들어오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런 내용은 아들이 잘 이해하길 바랍니다. 경제를 알아야 생활이 편해지니까요. 

여섯 번째는 주사터널링현미경(STM: Scanning Tunneling Micrometer)에 대한 작동원리였습니다. 기기 자체도 생소한데 이 장치의 작동원리를 설명한 글이었습니다. 원자에 대한 부분, 자기장에서의 전자의 이동, 전기의 흐름, 기체 분자의 전차로 인한 분해 등 기본적인 물리적 현상을 이해하고 있으면 좋은 부분입니다. 마지막에 그림과 함께 스퍼터 이온펌프를 이용한 진공도를 높이는 원리가 나옵니다.

 

(from Wikimedia Commons)

 

일곱 번째는 항원 항체 반응을 이용한 LFIA키트에 대한 부분입니다. 요즘 코로나 검사 키트를 많이 들어서 혹시나 관련이 있을까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어렵습니다. 

우리말인데도 해석하기 어려운 이런 지문을 시간내에 풀기 위해 아이들이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제 생각은 기본적인 책부터 읽는 습관을 가지는 게 긴 인생을 생각했을 때 좋은 시작입니다.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만 호기심을 가지고 한 걸음씩 이해의 폭을 넓혀 가다 보면 조금씩 익숙해질 겁니다. 이런 어려운 지문은 변별력을 키우기 위한 글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과 독서를 깊이 있게 하고 있는 극히 일부의 학생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학생들이 최상위 수준의 문제를 풀기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독서활동을 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그 시간에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즐겁게 배우고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 사회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무엇을 하든 똑같이 잘할 수는 없습니다. 획일적인 것보다는 다양성이 필요합니다. 독서를 좋아하는 아이,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 예술을 좋아하는 아이 등이 사회를 풍요롭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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