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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919]신의 가면 2부 동양 신화_인도 중국 일본 신

by bandiburi 2024. 8. 16.

조지프 캠벨의 <신의 가면> 4권에 도전 중입니다. 1편인 '원시 신화'에서 에너지가 상당히 소진되었습니다. 내용의 깊이와 용어의 생소함으로 소설처럼 읽을 수가 없습니다. 연속으로 두 번째인 '동양 신화'에 도전했습니다. 집중력이 바닥으로 내려갑니다. 가까스로 '동양 신화'를 읽었습니다. 익숙한 부분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내용은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분야에 대한 신선한 지식의 흡수로 만족합니다. 이런 소소한 지식들의 점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듯이 때와 장소에 맞는 지혜로 발현되리라 생각합니다. 

 

제1부 동양과 서양의 분리

1부에 대해 인용한 문장을 중심으로 요약 정리합니다. 조로아스터교란 들어보긴 했지만 뭐냐고 답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제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조로아스터는 최초의 우주 회복 신화의 예언자로,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 간의 선악 투쟁을 다룬 사상 체계를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우주 회복 신화의 최초의 예언자는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임에 틀림없다. 그가 활동한 연대는 확실하게 입증되지 않았다. 기원전 1200년경에서 550년경 사이의 여러 연대가 제시되어 왔다. 따라서 그도 호머(조로아스터와 거의 동일한 시기에 속한다)처럼 특정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어떤 하나의 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의 이름과 관련된 사상 체계는 현명한 군주인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와 독립적인 악의 원리인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사이의 투쟁 관념에 기초해 있다. (15~16)

고전기 인도에서는 사랑과 쾌락(카마), 권력(아르타), 도덕(다르마), 해방(목샤)이라는 네 가지 인간 목표가 있으며, 성인의 경우 이 욕구들은 도덕적 법칙에 의해 억제됩니다.

고전기 인도에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4가지의 목적을 제시하는 교리가 있었다. 그 목적들은 카마라고 불리는 사랑과 쾌락, 아르타(artha)라고 불리는 권력과 성공, 다르마라고 불리는 법적 질서와 도덕적 안목, 마지막으로 목샤(moksa)라고 불리는 미몽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앞의 2가지는 프로이트가 "쾌락 원칙"이라고 부른 것이며, 인간의 자연적인 근원적 욕구이다. (...) 동양적 관점에 따르면 성인의 경우에는 이러한 욕구들이 다르마 원칙에 의해서 억압되고 통제되어야 하고, 고전기 인도의 경우에는 이러한 원칙들이 각자의 카스트 규율에 의해서 개인적으로 내면화된다. (31)

양과 음의 조화와 상호작용을 통한 우주의 신비는 기하학적 상징으로 표현되며, 인도와 일본의 깨달음(목샤) 개념은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지향합니다. 

이 도형이 기하학적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은 하나의 원주가 둘이 되고 마침내는 만물을 낳게 되는 신비이다. 이러한 신비의 또 다른 측면인 이름지을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측면은 원으로 표상될 뿐이다. 만물에는 양과 음이 깃들어 있다. 음과 양은 서로 분리될 수 없으며 도덕적 측면에서 선이나 악으로 규정될 수 없다. 이 둘은 영속적인 상호 작용을 통하여 함께 기능하며, 상황에 따라 그중 어느 하나가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35)

인도가 환희의 날을 파도의 물결 안에서 즐겼고 극동이 심연의 노래 소리에 귀를 곧추세우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 두 지역은 각각 "모든 것은 환상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가게 하라"와 "모든 것은 질서 속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오게 하라"로 특징지어진다. 인도의 깨달음은 눈을 감은 깨달음(사마디이고, 일본의 깨달음은 눈을 뜬 깨달음(사토리)이다. 이처럼 해방을 의미하는 목샤라는 말은 두 지역에 모두 적용되었지만 서로 같은 것은 아니다. (40~41)

종교적 경험의 근원은 신비적 성스러움(누미누스)에 대한 감지에서 비롯되며, 나르메르 팔레트의 출현은 이집트 문명에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루돌프 오토를 따라, 나는 종교만이 아니라 신화의 뿌리는 누미누스(the numinous, 종교 경험의 원초적 형태이며, 성스러움에 압도되는 감정/역주)에 대한 감지라고 가정하고자 한다. (58)

나르메르 팔레트의 출현은 이집트 역사에서 결정적인 계기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이때 문화 유기체가 다섯 살의 나이에 도달한 것이다. 어떤 일이 분명히 일어났던 것이다. 보다 깊고, 보다 인간적이고, 보다 우주적이고, 6천 명의 적에 대한 정치적 도살이나 새로운 제국의 출현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일어났다. (72)

이집트와 서남아시아 고대 문명은 각각 순수성과 지도력을 유지했으며, 자연과 인간 질서의 단절은 불안과 죄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인류는 신화적 의존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완전한 합리적 판단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의 인도에서처럼 고대 이집트에서도 이처럼 가공할 만하고, 명백하게 지각이 없으며, 매우 잔인한 수티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상고대의 중국에서도 발견된다. 메소포타미아의 우르 왕릉에서도 발견되며, 유럽에도 그러한 증거들이 있다. (78)

제3왕조의 출현(기원전 2650-2600년경)과 함께 북쪽의 멤피스로 정치적 중심이 결정적으로 이동하고, 아비도스에서 행해져 온 일련의 잔인한 순장 무덤의 건축이 정지되고, 기원전 2630년경 사카라의 멤피스 공동묘지에서 파라오 조세르(Zoser)의 전설적인 계단 피라미드가 출현하였다. (110)

람세스 2세(기원전 1301-1234년경)에 의하여 세워진 바위를 깍아서 만든 아부 심벨의 동굴 사원은, 기술적 측면만이 아니라 모든 관념, 건축상의 기본 계획, 외관상의 조직, 내부 장식의 개념에 있어서도, 인도의 엘로라와 그 외의 지역에 있는 바위를 깎아서 만든 시바 사원 및 붓다 사원을 1천5백 년 이상 앞서고 있다. (120~121)

그러므로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되는 나일 강 계곡의 오아시스에 위치한 아프리카의 고대 문명은 기원전 2850년경부터 기독교 시대가 동틀 때까지 그 문명의 행태를 본질적인 순수성으로 유지한 반면, 기원전 4500년경에 이미 수준 높은 신석기 문화 형태를 출현시키고, 그로부터 천 년 뒤에는 최초의 중요한 도시 국가를 등장시킨 서남아시아의 고대 문명은 정확하게 기원전 331년 - (...) - 까지 그것의 형태를 유지한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서 발전한 모든 문명의 최고 수준을 그 지도력으로서 관장하였다. (123~124)

<피네건의 경야>에서처럼 "인간은 광대"이고 "신은 각본을 가지고 있다." (131)

우리는 어떤 시기에 거기에서 어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물어야 한다. 현재의 경우에는 초기의 비인격적 법칙의 신화로부터 후대의 보다 신인 동형론적인 신의 의지의 신화로 변화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146)

신화의 단절로 인하여 자연과 인간의 질서는 분리되었으나, 인간은 그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행하는 용기의 단계로 완전히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불안의 파토스가 발전하였다. 이러한 파토스 속에서는 부모의 사랑을 얻으려고 애쓰는 육아실 어린이의 모든 고통이 신화적 의존이라는 우주론적 악몽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러한 악몽은 번갈아 나타나는 신적 지지의 획득과 상실, 그리고 마침내 쥐의 이빨처럼 신랄한 인간 고유의 죄의식으로 나타났다. (155)

 

제2부 인도의 신화

조지프 캠벨의 2부에서는 인도의 신화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후기 인도의 신화는 주로 드라비다 신화에서 기원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아리아인들은 동화 과정을 겪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후기 인도의 신화가 본질적으로 베다 신화가 아니라 주로 인더스의 청동기 지대에서 나온 드라비다 신화임을 의미할 뿐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아리아인들은 동화 과정을 겪었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황소는 동화되지 않았지만) (213)

인도에서 사제 계급은 베다 주문을 통해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며 귀족층을 지배했고, 신보다 주문의 힘이 더 크다는 믿음이 형성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사제 계급이 귀족층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한 수단은 경외감이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었지만 매우 확실하고 확고하게 진행되었다. 그드은 베다의 주문을 읊고 그것이 지닌 분명한 힘으로 주위에 있는 모든 것에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신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로 신들을 불러낼 수 있으므로 주문을 행하는 의례의 힘이 신의 힘보다 더 위대하다는 사유가 등장하였다. 이제 신들은 더 이상 간청의 대상이 아니고 오히려 그들의 축복을 전사 계급에게 제공해야만 하였다. 따라서 강력한 주문을 아는 브라민의 주술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219)

붓다와 그의 경쟁자 마하비라는 브라민이 아닌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금욕적 삶을 통해 해방(목샤)을 추구했습니다. 붓다는 중도의 길을, 마하비라는 극단적인 길을 따랐습니다. 

그들이 가장 추앙하는 스승인 마하비라(Mahavira)는 기원전 485년경에 죽었는데, 그는 붓다와 동시대인이자 그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두 사람 모두 우리가 숲 속 성자의 고전적 성지라고 부른 베나레스의 밑에 있는 갠지즈 강 하류의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둘 다 브라민이 아니라 크샤트리야 출신이었으며, 결혼 후에는 속세를 떠나 금욕을 추구하는 제자의 무리를 이끄는 방랑하는 구세주가 되었다. 둘 다 욕망(카마)과 죽음(마라)으로부터의 해방(목샤)이라는 교의를 가르쳤는데, 이때의 해방은 단계적으로 나아가는 서원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붓다의 방법이 전적으로 중도의 길이었음에 반하여 마하비라의 길은 보다 극단적이었다. (252)

그리스인이 사용한 "코스모스(cosmos)"라는 용어는 공간과 힘의 장이 아니라, 잘 정의되고 유클리드적이고 측정 가능하고 지각 가능하고 조화로운 질서를 지닌 신체의 총합을 가리켰다. 유클리드의 숫자는 경계를 정의하는 것이었다. (270)

서양 영웅은 필멸성의 고뇌와 연관된 인격적 존재인 반면, 동양 영웅은 영원성과 관련된 비물질적 존재입니다. 

서양의 전형적 영웅은 하나의 인격이다. 그는 시간성의 고뇌와 신비에 심각하게 연루되는 운명을 지닌,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존재이다. 이와 달리 동양의 영웅은 영혼(monad)이다. 그 영혼은 본질적으로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단지 영원성의 이미지일 뿐이다. 영원성은 필멸적 영역의 망상에 연루되지 않으며, 그 망상을 성공적으로 던져버린다. (281)

미륵은 고타마 사후 5천 년이 지나 태어날 미래불로, 불교 승단에 속한 승려들과 함께 지상에 내려올 것으로 기대됩니다. 자이나교, 상캬, 불교의 수행 방법은 각각 다르지만 모두 육체와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하며, 이를 "위대한 반전"이라는 신화적 범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이 두번째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자가 아니라 미래불인 미륵에게 보낸 것이다. 미륵은 고타마 사후 5천 년이 지난 후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행복한 신들의 천계(兜率天)"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며, 수많은 신 및 보살들과 함께 초전 법륜에 참가하기 위해서 내려왔던 것이다. (324)

그러므로 물질 세계로부터 벗어나 육체적 고립을 달성하려는 자이나교도, 심리학적 고립 상태를 달성하려는 상캬, 그리고 심리학적 무(無)의 상태를 실현하려는 불교도의 목적이 실제적인 요가 수행자들에게 중요한 차이를 제공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 3가지의 구도 방식을 모두 "위대한 반전(Great Reversal)"이라는 단일한 신화적 범주의 파생물로 분류해야 한다. (326)

니체는 <자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가 "정신의 3가지 변형"이라고 부른 것, 곧 낙타, 사자, 어린이를 기술하고 있다. (329)

찬드라굽타의 손자가 위대한 아쇼카였다. 그는 기원전 268-232년경 사이에 통치를 하였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한 아쇼카는 오리사에서 마드라스에 이르는 인도의 동쪽 해안 전체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승리가 초래한 고통, 비참함, 죽음의 황폐함을 보았을 때, 그는 깊은 번뇌로 가득 찼으며(젊은 왕자 고타마처럼), 세계의 본질에 대하여 성찰한 후 한 사람의 재가 신자로서 불교 승단에 귀의하였다. 그래서 최초의 불교도 왕이 되었다. (334)

아쇼카 왕은 전쟁의 고통을 목도한 후 불교에 귀의해 최초의 불교 왕이 되었습니다. 인도 사회 질서는 우주 질서와 동일시되며, 각 계층은 태어난 본성에 따라 신성한 질서를 따르는 것이 인도의 사회적 규범으로 여겨집니다. 

정토는 비교 신화학자에게 매우 흥미있는 대승 불교의 발명품이다. 그것은 서양의 낙원 개념과 매우 비슷하지만, 영적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 마지막의 바로 전 단계에 해당한다. 그것은 열반을 향한 일종의 출발점이다. 거대한 해안을 따라 많은 항구가 발견되듯이 공(空)이라는 대양의 해안을 따라 수많은 정토가 건설되어 있다. 우리는 아미타의 정토만이 아니라 미륵, 바이로차나(법신불), 그리고 고타마의 정토에 대해서도 듣는다. 적어도 이론적 측면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낙원도 하나의 정토로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350)

"(...) 이교도의 사원은 조직적으로 폐쇄되고 파괴되었으며, 그들의 희생제의는 처형의 위협 하에서 억압되었고, 사제들은 추방되거나 살해되었다." 고에츠 박사가 지적하듯이, "피난민들은 피난처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고", "그렇나 땅은 지중해와 오래된 교역 관계를 지닌 인도였다." 

그러므로 찬드라굽타 2세가 통치하던 관용적 분위기의 인도(378-414년, 이 시기는 테오도시우스 1세의 시기를 포함하고 그 이후까지 지속된다는 사실을 뒤에서 보게 될 것이다)에서는 건축과 조각을 비롯하여 문학적, 사회적, 종교적, 철학적 형식에서 참으로 놀라운 재편이 갑자기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는 이전의 인도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며 수백 가지 측면에서 후기 로마와 관계를 맺고 있다. (372)

인도 황금 시대의 중요한 신화적 자료는 서사시 <마하바라타>이다. 이 자료의 대부분은 기원전 400년경 이전의 것인만큼 무척 오래되었지만, 그것의 최종적인 양식과 음조(音調)는 기원후 400년경 혹은 그 이후의 것이다. 그 작품은 모든 종류의 신화적, 의례적, 도덕적, 계보적 지식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최종적인 빙퇴석(氷堆石)으로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해놓은 것의 8배나 된다. (374~375)

오늘날의 인도는 종교의 나라입니다. 다양한 종교와 언어, 인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갈등도 있지만 포용하는 인정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인종이 뒤섞이며 한 나라의 정체성을 가진 대한민국입니다. 어쩌면 지배층의 강요된 학습에 의한 단일민족 정서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인도와 대척점에 있는 나라입니다. 인도 신화를 보며 다시 한번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힌두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우주 질서를 신적인 것으로 긍정한다. 그리고 사회는 우주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인도의 사회 질서는 이와 똑같이 신성한 것으로 긍정된다. 더구나 자연의 질서가 영원하듯이 전통 사회의 질서도 영원하다. 사회적 장에서는 인간의 자유나 창조성에 대한 관용이 결여되어 있다. 진보적인 그리스나 로마 혹은 근대 서구에서와는 달리, 거기서는 사회를 지성과 변화에 따라 인간에 의해서 진화되어 온 질서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의 법칙은 자연적인 것이지 결코 제안되거나 향상되거나 창조되는 것이 아니다. 태양, 달, 식물, 동물이 각자의 본성에 깃든 법칙을 따르듯이, 각 개인도 그들 자신의 출생의 본성, 곧 브라민, 크샤트리야, 바이샤, 수드라, 혹은 파리아(천민)가 본성을 따라야 한다. (388~389)

 

제3부 극동의 신화

후대의 역사서인 서경(書經)에서 중국의 초기 신화적 인류 역사는 무시되며, 문명은 요순 시대로부터 시작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시기에 공공은 무능력하여 추방된 인물로 변형되어 등장합니다.

후대의 역사서인 <서경(書經)>은 중국 고전 사상의 기본 서적 가운데 하나인데, 거기에서는 이러한 최초 인간의 시대가 완전히 무시되어 있다. 좋은 일은 모두 요순 황금기와 더불어 시작한다. 공공은 고의적으로 그 시대로 옮겨진 다음, 무능력하다는 이유 때문에 추방된 인물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435)

슈팽글러의 논의에 따르면, 중국과 인도는 문명과 사유의 방식에서 차이가 뚜렷합니다. 중국은 정치적 성취와 운명을 중시하며, 인도는 영원한 진리와 불변의 법칙을 강조합니다. 중국은 조상 숭배와 역사의식을, 인도는 초월적 의식을 지배적 요소로 삼습니다. 인도와 중국은 인구도 비슷하고 면적도 넓습니다. 두 나라의 문화적 차이를 잘 정리했습니다. 

슈팽글러가 사유와 행위의 양식에 관하여 언급한 주요 내용들 속에서 중국과 인도를 대비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문명에 서명을 하는 자가 중국에서는 정치가였고, 인도에서는 사제였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정치적 성취를 목적으로 변화하는 운명, 즉 도(道)를 탐구하는 점복을 매우 강조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영원한 진리로 간주되는 지식의 공식 안에 응축되어 있는 불변하는 법칙의 체계, 즉 다르마(dharma)를 강조한다. 한쪽에서는 역사의식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떠한 역사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조상 숭배(시간 안의 방향)가 지배적이고 인도에서는 땅과 대기와 하늘의 신(공간의 장)이 지배적이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최고 목적이 의미 있는 참여 의식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초탈 의식이다. (463)

중국의 사상가들인 공자, 묵자, 도가는 신화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며, 공자의 사상은 그가 직접 기록한 것이 아니라 후대에 재구성된 것으로, 공자의 가르침보다는 유교의 틀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공자의 전기는 그가 살던 시기와는 오랜 시간적 간극이 있으며, 이는 붓다의 생애와 그의 가르침이 기록된 경전 사이의 간격과 유사합니다.

(...)공자, 묵자, 그리고 도가의 견해가 그것이다. 이들은 서로 구별되지만 중국의 전형적인 관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 관점은 신화를 우주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본다. (470)

그 성인에 대한 최초의 방대한 전기는 <사기(史記)> 제47장에 나타난다. 이 책은 중국 최초의 왕조 연대기로서, 기원전 86년에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공자가 실제로 살던 시대(기원전 551-478년)와 그에 관한 최초의 전기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붓다의 생애(기원전 563-483년)와 그의 가르침을 최초로 기록한 방대한 팔리 경전(기원전 80년경) 사이의 간격과 같다. (471)

공자의 사상을 알려주는 핵심 저작인 <논어>도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 그의 가르침을 이해하려고 할 경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공자가 아니라 유교라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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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신의 가면 1부 원시 신화 ①_신화의 심리학과 원시 농경인의 신화

조지프 캠벨의 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조지프 캠벨의 4권짜리 책인 에 도전하기로 하고 1권인 '원시 신화'편을 읽었습니다. 보다 더 심도 있는 내용으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 곳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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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919_신의 가면 2 동양 신화_조지프 캠벨_2005_까치(240817)


■ 저자: 조지프 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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