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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1046]이처럼 사소한 것들_아일랜드 막달레나 세탁소의 여성 착취 바탕 소설

by bandiburi 2025. 4. 27.

 

혹독한 시기였지만 그럴수록 펄롱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 딸들이 잘 커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괜찮은 여학교인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도록 뒷바라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24)

펄롱을 포함한 이웃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나지 않게 현실에 적응하며 가족들의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삶이다. 
2025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소시민적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

집과 일터를 왕복하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펄롱은 의문을 제기한다. 
바쁘게 살고 있지만 늘 제자리에 있는 삶에 대한 의미를 찾으려 한다. 
질문을 던질 때 삶에 변화가 찾아온다. 
삶에 변화가 있을 때 개인과 사회의 발전이 시작된다. 
현대 사회의 속도에 맞춰 살기에 바쁜 현대인들에게 질문은 어디를 향하는가

 

바닥에서 기어다니며 걸레질을 해서 마루에 윤을 내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모습이 계속 생각났다. 또 수녀를 따라 경당에서 나올 때 과수원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문이 안쪽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는 사실, 수녀원과 그 옆 세인트마거릿 학교 사이에 있는 높은 담벼락 꼭대기에 깨진 유리 조각이 죽 박혀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53)

펄롱은 수녀원에 배달을 갔다가 우연히 노예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성모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 수녀원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장면이다. 
수녀가 하는 행동과 아이들이 다니는 세인트마거릿 학교를 구분 짓는 담벼락의 깨진 유리들도 작은 충격을 남겼다. 
펄롱의 기억 속에서 반복되며 아이들의 모습이 재생되며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57)

펄롱은 자신의 어머니를 보살펴 주어 현재의 자신을 만든 미시즈 윌슨을 떠올린다. 
미시즈 윌슨이 어머니를 거두지 않았다면 수녀원에 갇혀 학대받는 사람들처럼 되었고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펄롱에게 수녀원의 현실은 남의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자신의 일이었다. 

 

좋은 사람들이 있지, 펄롱은 차를 몰고 시내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주고받는 것을 적절하게 맞추어 균형 잡을 줄 알아야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사람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단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특권임을 알았고 왜 어떤 집에서 받은 사탕 따위 선물을 다른 더 가난한 집 사람들에게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러듯 크리스마스는 사람들한테서 가장 좋은 면과 가장 나쁜 면 둘 다를 끌어냈다. (102~103)

현실과 타협하며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 수 있다. 
펄롱은 생각을 더욱 발전시켰다.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체가 특권이다.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선물이 필요하고 그들에게 응당 주어져야 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의 삶을 애써 외면하려 하지 말고 직시하고 작은 도움이라도 줘야 한다. 
이런 생각이 확장되어 사회 구성원 간에 신뢰가 쌓인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신뢰 사회가 곧 선진국이다. 
물질적인 선진국이 아니라 정신적인 선진국이다. 

 

(...) 펄롱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네드가 심히 힘들어했던 것, 어머니와 네드가 늘 같이 미사에 가고 같이 식사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것을 생각하며 그게 무슨 의미일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펄롱으로 하여금 자기가 더 나은 혈통 출신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서, 그 세월 내내 펄롱의 곁에서 변함 없이 지켜보았던 네드의 행동이, 바로 나날의 은총이 아니었나. 펄롱의 구두를 닦아주고 구두끈을 매주고 첫 면도기를 사주고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사람이다. 왜 가장 가까이 있는 게 가장 보기 어려운 걸까? (110~111)

펄롱은 늘 가까이에서 소소한 작은 일까지 자신을 도와주었던 네드의 존재를 다시 돌아본다. 
펄롱과 네드 가 닮았다는 한 마디에 자신의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떠올린다. 
네드가 자신의 아버지였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사랑과 보살핌, 도움을 다시 바라보자. 
또한 나는 그들에게 어떤 존재인지도...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119~120)

펄롱이 수녀원에서 추위에 떨며 방치된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 맞선다. 
그의 일상과 가족의 행복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는 용기를 내어 어려운 아이를 돕는 것이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점을 깨달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던 펄롱은 당당한 행동 속에서 샘솟는 기쁨을 맛본다. 
사랑을 강조하며 종교인 행세를 하며 물질과 권력을 추구하는 자들이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펄롱에 비하면 그런 사람들은 종교인이 아니라 사기꾼이자 겁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도, 어쩌면 이렇듯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120쪽)의 이야기이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있는 무언가의 존재를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소설의 언어가 정교하고 조심스러운 구조물인 것처럼 소설 속에 묘사된 세계도 평화로운 듯 보이지만 위태롭다. 1985년 아일랜드 작은 도시에 사는 빌 펄롱 같은 사람들은 "계속 버티고 조용히 엎드려 지내면서 사람들과 척지지 않고"(24쪽) 살아야지,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22쪽). 하루 벌어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면 다행이고, 조금이라도 남겨서 앞날의 재앙에 대비할 수 있으면 기적이다. 다른 사람에게 동전 한 닢, 마음 한 켠이라도 내주는 것도 사치인지 모른다. (130) 

책의 내용을 잘 요약했기에 인용했다. 

막달레나 세탁소Magdalene asylums (출처: picryl)

199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이 시설에서 은폐·감금·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적게 잡으면 만 명이고, 3만 명이 더 정확한 수치일 것입니다. (123)

이 소설에 나오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같은 이름과 명분의 여러 시설 가운데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으나, 성매매 여성, 혼외 임신을 한 여성, 고아, 학대 피해자, 정신이상자, 성적으로 방종하다는 평판이 있는 여성, 심지어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까지 마구잡이로 이곳에 수용했고 교회의 묵인하에 착취했다. 동네 사람들은 세탁소의 실체에 대해 짐작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높은 담 안에서 저질러지는 학대에는 눈을 돌린다. (130~131)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있었던 여성들에 대한 학대에 관한 소설이다.
실체에 대해 짐작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동네 사람들과 달리 펄롱은 행동한다.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면서 정부에서 지원을 받는 시설에서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에서도 아이들을 돌본다면서 국가의 지원 속에서 학대한 시설들이 있었다. 
소설 『도가니』가 떠올랐다. 
소설이나 영화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오는 힘이 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50

 

도가니 (170929)

'도가니'라는 책은 제일 친한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 쓴 책이기도 해서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청각장애인들의 힘든 삶을 청각장애인들의 시각으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1046_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_클레어 키건_2024_다산북스(250427)


■ 저자: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고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1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2021년 출간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2022년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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