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519]장미의 이름(상)_14세기 중세 수도원 생활 그리고 교황과 황제 관계

by bandiburi 2022. 1. 23.

<장미의 이름>은 수도원의 배치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1일 차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다양한 언어에 대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이해를 넉넉하게 보여주듯 페이지마다 글이 빼곡하다. 줄간 간격에 여유가 없어 중세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글자와 내용에 압도된다.

2022년 1월에 중국 당나라 시대의 역사 추리소설 <잠중록>을 읽었기에 의문의 죽음과 이를 밝히려는 주인공의 탐색이 익숙했다. <잠중록>에서는 젊은 여인 황재하가 천재적인 기억력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여러 사건의 범인을 찾아간다. <장미의 이름>에서는 윌리엄 수도사가 멜크 수도원에 도착하자마자 잃어버린 말을 찾아주는 사건을 통해 비범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1327년 11월에 7일간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과 이에 대한 추리를 해가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그리고 황제파와 교황파로 나뉘었던 시대적인 상황을 등장인물의 대화로 표현한다. '아드소'라는 윌리엄 수도사의 제자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중세시대에 대한 지식과 수도원이라는 곳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장미의 이름>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반대로 보자면 이 소설을 통해 수도원이란 곳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고, 조금 더 확대하자면 수도회도 여러 파로 나뉘고 황제와 교황 간의 갈등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된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역사에 대한 배경지식도 필요하겠고, 성경을 읽어본다면 좋을 것이다. 살인사건이 이어지면서 이를 '요한계시록'의 내용과 연계하면서 해석하려는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의 노력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권에서는 수도원의 배치 그리고 주요 인물에 대한 이해가 주를 이루고 오래된 책을 보관한 서고를 둘러싼 사람들의 의문의 죽음이 시작된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체스코 수도회, 베네딕트 수도회의 특징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고 면죄부와 같이 돈을 주고 죄를 사함 받고 돈을 주고 죄를 지은 자가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시대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수도원이라는 곳이 수도원장을 중심으로 수도사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수도원은 수도사들이 필사나 기도 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들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불목하니와 같은 사람들이 공존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무를 하고, 음식을 하고, 돼지나 소를 잡고, 말을 돌봐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상권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도입부다. 수도원에 대한 개략도에 이어서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수도사들의 일정이 미리 제공된다. 수도사들의 생활이 이러했구나 놀라게 된다. 새벽 2시 30분부터 일과가 시작되어 저녁 7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기도하고 찬양하고 필사와 같은 자신의 일을 하는 일의 반복이다. 전기가 없는 시절 등잔불을 켜고 유지하는 것도 비용이었을 것이다. 일출과 일몰에 맞춰서 일과가 진행되는 자연의 섭리에 맞춘 생활이 가장 적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하권이 기대된다.


 
조과(朝課) : 성무 일과의 시작. 새벽 2:30~3:00(아드소는 고풍스러운 표현으로 경야(經夜)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찬과(讚課) : 오전 5:00~6:00. 날이 새기 전에 끝난다 (옛날에는 <새벽 기도>, 혹은 조과로 불리기도 했다).
1시과   7:30 (해뜨기 직전)
3시과   9:00 전후
6시과   정오 (수도사들이 일을 하지 않는 수도원의 경우, 이 시간은 겨울철 점심시간이다).
9시와   오후 2:00~3:00.
만과(晩課) : 해질녘인 오후 4:30(회칙은, 해지기 전에 저녁 식사를 마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종과(終課) : 오후 6:00 전후(수도사들은 7:00 전에 잠자리에 든다). (22페이지)

 

사부님은 대답했다. "이것 보아라, 아드소. 여행 내내 내 너에게 뭐라고 가르치더냐? 세상이 위대한 책을 통해 우리에게 펼쳐 보이는 사물의 정황을 유심히 관찰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느냐? 일찍이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는 이렇게 노래하셨느니라.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그분은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끝없는 영생의 상징 속을 거니셨느니라. 하나 우주는 알라누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수다스럽다. (42~43)

 

장 뷔리당은 프랑스의 철학자. 중력의 성질, 낙하 물체의 가속도에 대한 이론을 통하여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 같은 위대한 르네상스 시대 과학자들의 선구자 노릇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자유 의지에 관한 주장을 예증하는 우화인 이른바 <뷔리당의 나귀>로 유명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질과 양이 동일한 두 무더기의 건초 사이에 놓인 나귀는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지만 결국 이 때문에 선택을 망설이다가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는 굶어 죽고 만다. 그는 이 우화를 통하여, 동일한 상황에 놓일 경우 인간은 자유 의지를 통하여 이 딜레마를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44)

 

(출처: flickr)

 

내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말을 상상하면서 이용한 것이 순수 기호라는 것이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과 남은 흔적은 <말>이라고 하는 동물을 나타내는 기호였다는 말이지. 기호, 그리고 기호의 기호는 우리가 사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야.(49~50)

 

생빅토르의 위고가 일렀듯이, 직유법이 상이한 것을 유사한 것으로 묶을수록, 진리가 끔찍하고 상식을 벗어난 모습으로 드러날수록 인간의 상상력은 세속적인 재미를 누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괴한 형상에 깃든 비밀은 체득이 빠른 법입니다. (117)

 

하느님 백성이라고 해서 모두 이 어마어마한 비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닌 데다, 이러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악마와 결탁한 요술쟁이로 오해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런 지식을 남과 더불어 나누겠다고 한 이유로 목숨을 잃은 적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126)

 

나의 추론에 따르면, 베네딕트회 수도원장이, 황제가 파견한 윌리엄 수도사의 손을 잡고 프란체스코 수도회와 교황청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하려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즈음, 교회의 통일을 위협하는 와중에서, 교황 요한으로부터 누차 아비뇽으로 소환 명령을 받은 바 있는 체세나의 미켈레도 결국은 그 소환에 응하여 출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자기가 총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프란체스코 교단과 교황청의 결정적인 결정적인 충돌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

 

그들에게는 지적인 해갈에의 유혹인 있었고, 지적인 긍지가 있었다. 이런 사람들이 교단을 세운 분들이 상상했던 필사사 수도사들과 같을 수가 있겠는가. 필사사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뜻에 갇혀 의미도 모르는 채 그저 베끼고, 기도하듯이 쓰고, 쓰는 듯이 기도했을 뿐이다. (248)

 

국왕이 이 대목에서 유대인들을 비호하고 나선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국왕은 파스투로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는 사태가 걱정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당시 무력에 큰 몫을 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의 원망 받이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260)

 

미켈레 수도사를 화형에 처하게 하고 소형제파가 박해당한 것은 분명 바로 그 대목들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성직자들인 심문관들과 속권인 형리들이, 청빈 속에서 살며 그리스도에게 세속적 재산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왜 그렇게 모질게 다루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이 두려워할 사람들은 오히려 호위호식을 탐하고, 남의 재물을 탐하여 죄악과 성직 매매로 교회를 더럽히는 자들이 아니겠느냐고 자문했다. ((316)

독서습관519_장미의 이름(상)_움베르토 에코_2009_열린책들(220125)


■ 저자: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1932년 이탈리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움베르토 에코는, 오늘날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며 동시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현대의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았고, 전 세계 수십여 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하는 지독한 <공부벌레>이자 <언어의 천재>이다. 50세가 되었을 무렵, 에코는 현대 사회의 세기말적 위기를 소설로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출판사에 근무하던 여자 친구로부터 추리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년 반에 걸쳐 <장미의 이름>을 썼다.

중세의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이탈리아에서 출간 1년 만에 50만 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다음 해 프랑스와 미국으로 소개되면서 수백만 독자들에게 읽혔고, 소설에 관한 해설서는 일본에서만도 10여 권이 넘게 출간되었다. 현재 이 작품은 모든 유럽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2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당대의 유명론 논쟁에, 에코 자신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 있는 생생한 지적 보고이며, 이는 고전 문학 입문서로서 가히 만 권의 책이 집약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에코의 다른 저서로는 소설 <푸코의 진자>(1988), <전날의 섬>(1994), <바우돌리노>(2000),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2004),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1992), <하버드에서 한 문학 강의>(1994),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2002) 등이 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