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저자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으로 장소나 사람의 현재 가치를 간직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장소에 간직된 소중한 역사를 파헤치는 작업을 즐기는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처음으로 접하게 된 올림푸스 카메라는 신기한 물건이었습니다. 내가 렌즈를 통해 본 장면이 사진으로 인화되어 남았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동생들을 대상으로 시골 마을 아래 위로 다니며 찍었습니다. 무엇에 홀린 듯이 지낸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변해가는 사람과 장소를 과거의 정해진 시간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묘한 매력을 느끼게 된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변해가는 모습을 그저 발전하는 것으로 살기 좋아지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무심코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이 책 <서울 선언>을 보며 나와 비슷한 시기를 살아간 저자는 그 변화를 포착해서 기록으로 남기고 자신의 소회를 적어서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부러움을 느낍니다.
조그만 관심들이 쌓이고 쌓여서 책이 된 것이지요. 책 속에는 서울에 살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곳에 눈에 띄지 않던 곳들이 담겨 있습니다. 늘 다니던 곳만 지나고, 늘 보는 장면만 보다보니 이 넓은 서울에 숨겨진 히스토리를 모르고 지냈습니다.
서울이란 곳이 조선시대로부터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확대되어 온 역사도 흥미로왔습니다. 서울을 남북으로 동서로 걸으며 그곳의 변화를 알려주는 이 책은 우리 마음속에 걷고 싶은 마음을 품게 합니다.
이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28) 1960~1970년대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구와바라 시세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다큐멘터리 사진에 있어서는 그와 같은 비유는 무의미하다. 지나가 버린 하나의 사실과 영상은 영원히 두 번 다시 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52) 왜 사대문 안의 대기만 우선적인 배려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사대문 밖 서울 시민의 소외감은 커집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인 것처럼, 내가 사는 서울의 주인공은 나입니다. 지배층의 역사와 문화만 좇다가 나의 일생을 아깝게 마칠 수는 없습니다.
98) 이윽고 그들은 <여공문학>, 즉 여성 공장 노동자의 문학이라는 장르를 만들어 냈고, 그 장르의 마지막에 신경숙 작가의 소설 <외딴방>이 자리합니다.
151) 안내하시는 분은 환경 역사 분야를 연구하는 분이었습니다. 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자원봉사로 안내를 하신다고 하더군요. 연구하는 사람은 자기가 연구하는 현장을 늘 가까이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자원봉사를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연구자가 필드워크가 없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그분의 신념에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205) 용산 철도 병원 건물을 지나면 국군 복지단과 트럼프 월드, 그리고 경의 중앙선 철로 사이의 삼각형 공간에 마을이 존재합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 <치즈 케이크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을 떠오르게 하는 삼각형 공간입니다.
295) 당시 명수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한강 신사였습니다. 나도향의 소설 <어머니>를 보면, 주인공 남녀가 배를 타고 한강을 유람하다가 한강 신사를 올려 보는 대목이 나옵니다.
372) 그곳에서 자라고 생활한 분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추억과 관점을 만들어 낼 터입니다. 그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실 것을 기다립니다. 2017년에 출판된 정헌목 선생의 <가치 있는 아파트 만들기 - 재건축 열풍에서 아파트 민주주의까지, 인류학자의 아파트 답사기>와 같은 책은 그러한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예감케 합니다.
■ 저자: 김시덕
저자 김시덕은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학부와 석사를 거쳐, 일본의 국립 문헌학 연구소인 국문학 연구 자료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에서 출간한 첫 저서 <이국 정벌 전기의 세계, 2010>로 30년 넘는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일본 고전 문학 학술상>을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일본의 대외 전쟁> (열린책들, 2016)으로 번역 출간되었고 2017년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전쟁 담론 형성의 도구로서 문헌의 역할을 조명한 후속작 <전쟁의 문헌학>(열린책들, 2017) 또한 2017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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