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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96_인생철학이 담긴 스님의 수필_바보 산승 이야기_황법명_2014_나무(180814)

by bandiburi 2018. 8. 16.

저자인 황법명 스님은 대한불교 관음종 중앙종회의장, 영축산 법성사 주지,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 대전교도소 교정협의회장, 대전보호사업 마하회 회장, 민주평통자문위원, 옥천문인협회 고문, 옥천 백운사 주지 등으로 책 표지에 소개되어 있다. 

고향 집에 부모님 시골일을 도와드리러 간 '18년 7월에 집안에 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어서 부모님께서는 읽지 않으실 듯해서 가져와 읽게 되었다. 

저자가 주지로 계신 옥천 백운사는 내가 다니던 청산중학교 근처에 있는 절의 이름이었다. 과거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그곳에서 다니면서 백운사란 곳의 존재는 나와 별개였다. 

기독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지만 타종교에 대해 배타적일 필요는 없고 특히나 책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라서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사실 조용한 시골에 있는 절의 주지스님이 지은 책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책을 읽어가면서 이 분의 내공이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정 부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왜곡된 생각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해는 되는 부분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글을 읽거나, 대화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알아가는 방법이 좋다. 그 외의 껍데기들은 오해를 사기 쉬운 것들이다. 그래서 베블런 효과라고 하는 과시욕이 있는 것이다. 껍데기를 그 사람과 동일시하는 우리들의 착각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을 아래에 발췌했다. 

[19] 배가 부르면 본능적으로 인간은 나태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삶과 창조를 위해 촛불을 밝히는 인간에게는 고개가 숙여지는 법이다. 특히 타인을 사랑하고 베푸는 성품을 부처님은 불성이라 하였다. 

 

[21] 베이컨은 이런 말을 했다."황금을 경멸하는 듯 한 태도를 취하는 이를 별로 신용하지 말라. 그런 사람일수록 황금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28] 바로 이것은 물질적 진보와 윤리적 진보의 불균형에서 오는 산업사회의 병폐이기도 합니다. 

 

[32] 소유하고 정복하기보다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자비와 사랑의 실천이 너무나 메마른 현실에서 소외된 이웃을 염려하는 진실한 미소가 차고 넘쳐서 나만 잘되고 잘살려고만 하지 말고, 행복하려고만 하지 말고 행복할 짓을 해야 하겠다. 

 

[37] 이러한 실천 방향의 하나로 삼학을 가르치셨으니 계로써 도덕적 틀을 삼아 생활의 때를 씻고, 정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어 착한 생활을 하고, 혜로써 나와 남을 이롭게 하여 서로 돕고 사는 복된 사회 정토 구현의 길을 가르치셨다. 

 

[49] 문명은 모두 아쉬움에서 비롯된 산물이 아닌가. 아쉬움은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자기에게 물음을 던지고 회의를 품게 한다. 그러므로 아쉬움이 있어 자아 변혁이 온다. 

 

[55] "태어나도 죽기 쉬운데 20년이나 살았으니 이것이 첫째의 행복이요, 불도를 이루지 못했으나 혼란한 세상을 당하여도 이 목숨 잃지 않았으니 이것이 둘째의 행복이며, 영원한 과거 세상으로부터 지금까지 온갖 세계로 돌아다니다가 천만다행으로 불법을 만났으니 이것이 셋째 행복이요, 하루살이가 물거품이나 허깨비 같은 이 몸이라 입을 열어 웃고 사는 사람이 얼마 없는데 우리는 이런 선경에 모여 벌리에 동참하여 담소하고 같이 유락하니 이것이 넷째의 행복이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목을 구비치 못하고 죽은 사람도 많은데 우리는 귀와 눈이 완전하고 또한 남자로서의 형상을 완전히 갖추어 인간의 버림을 받지 않았으니 이것이 다섯째 행복이다.  - 사명대사집 제6권에 기록된 갑회문에서

 

[80]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기에 마음에 장애를 입어,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여유를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문제가 된다. 감정이란 놈이 심성 자리를 해치는 것이다. 

 

[85] 욕심을 줄이는 또 하나의 효과 있는 방법은 자기가 이미 가지고 있는 넉넉한 물건을 덜어내어 남에게 주는 보시이다. 

 

[90] 목표가 높을수록 어려움이 많은 것이 세상일이라 절망과 좌절은 그래서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입니다. 

 

[91]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천만 명의 적과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사람이 최고의 승리자다."

 

[122] 철저히 홀로 남아야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 철저히 외로워야 나 자신하고 만날 수 있다. 남이라는 그림자 때문에 나는 가려서 나는 내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없다. 철저히 고독해져야 나는 내 모습으로 바뀐다. 남과 같이 있으면 나는 여러 가지 탈을 쓴다. 남을 내세워 나는 뒤로 숨는다. 그러므로 홀로 갈 줄 알아야 한다. 

 

[126] 기다림은 인내와 끈기를 요구한다. 오늘의 풍요 뒤에는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옛 어른들의 기다림이 축적돼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은 호곡하듯 노래한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통해 조국의 해방을 기다렸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어지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136] 인간에게 믿음의 극치에서 얻어지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녁 산사를 찾아가는 노인이 보여주는 믿음의 의미, 새벽에 성당을 찾아가는 노인의 믿음의 의미, 모두 우리 곁에 오래오래 남아 있어야 할 믿음의 참모습들입니다. 

 

[138] 하루에도 몇 번씩 꿈처럼 밀려오는 삶의 찌꺼기들이 주위를 역습하고 그것이 마침내 생활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 당황하곤 한다. 지금 우리는 왜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

 

[153]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무슨 사명이 주어진 것이 틀림없다. 천태만상의 일각에 버려진 듯한 미약한 생명일망정 이 우주 안에 유일한 하나의 생명체인 것만은 사실이다. 

 

[162]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야말로 확고한 비전과 목적의식을 가져야 되겠다. 그렇게 될 때 절망이 아닌 희망을, 좌절이 아닌 용기를 소요할 수 있다. 

 

[169] 소유의 과다 그 내용의 여하 간에 소유는 곧 자기 심판인 것을 왜 이리도 우리는 터득하기 힘든 것인가? 해마다 가을은 오는데 그 푸른 하늘 아래 투영되는 자기 모습을 이렇게도 우리는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까

 

[192] 동서양의 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 종교는 정치와 권력을 등에 업고 있을 때가 가장 반종교적으로 타락했고 체제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가장 순수하게 제 기능을 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203] 육신의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무슨 일이건 그것이 삶을 충만히 할 수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그때가 바로 그 인생의 씨 뿌리는 봄일 것이다

 

[208] 불교의 초기경전에는 이러한 구절도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입 안에 도끼를 가지고 나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언행을 함부로 함으로써 그 도끼로 자기 자신을 찍고 만다."

 

[226] 정직한 생활에서 풍기는 향기가 행복의 향기인 것을 모르고 양심을 속이고 만들어내는 쾌락이 행복의 맛인 줄 알고 자기 행복을 위해 사회의 독이 되고, 인명을 살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남이 행복해지면 자신도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할 때가 온 것이다. 

 

[231] 자신의 노여움의 과실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으면 자기를 평화롭게 함이요, 이미 분해하고 원망하지 않는다면 남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남을 평화롭게 함이다. 

 

[234] 교육의 근본 목적은 사람다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육은 기계 같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돼 버렸다. 지식은 있으나 지혜가 없는 교육으로 교육받은 연한이 길면 길수록 순수 인간미가 없어지고 쉽고 편리하게 사는 수단에만 눈뜨는 것 같다. 인륜과 도덕에 대한 인격도야는 뒷전에 밀리고 서구 지향적 뿌리 없는 교육에만 그치고 있는 감이 든다. 

 

[248] 현명한 아내나 남편은 상대방이 나와 같기를 바라면 안 된다. 상대방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이기심이다. 현명한 사람은 내가 상대방을 찾아가 맞춘다. 내가 상대방을 닮도록 행동한다. 상대방이 나를 따라주기를 바라는 것은 독선이다. 

 

[255] 실제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이 잘못된 풍토 때문에 인생을 낭비하며 후회하고 있다. 스스로 선택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들어가 놓고 보자고 해서 대학에 입학해서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차라리 과감히 포기하고 전문대학 전문분야의 기술학원 쪽으로 나가는 것이 진실로 인생을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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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삼국사기>의 '구토설화'가 그 시기의 모습이거니와 조선시대에는 판소리와 소설에 수용됨으로써 '수궁가' 혹은 '별주부전'을 만들어냈다. 

 

[266] 윗사람은 언제나 덕을 갖추어야 한다. 덕이 있어야 사람이 따른다. 덕불고 필유린은 <논어>에 있는 문장이다. 덕 옆에는 많은 사람이 붐빈다는 말이다. 

 

[267] 사람이 사는 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투쟁이다. 

소아와 대아와의 투쟁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기기 위해서 수양하고 심신 단련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한 시도 방심할 수 없는 조심스럽고 어려운 존재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269] <플러그를 뽑는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에모스톨'은 이와 같은 비유를 들고 있다. 

"지금 이 세계는 가속도가 붙은 채 내리막길을 걷잡을 수 없이 달리고 있는 기차와 같다. 사람들 자신이 과연 그쪽으로 가야만 하는지 의심하면서도 안전하게 뛰어내릴 그 방법을 찾지 못해 불안에 떨면서 어쩔 수 없이 앉아 있는 꼴이다."

 

[271] 부자가 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 나름의 삶의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절제의 미덕을 안다. 그들은 밖으로 드러내어 과시하기보다 안으로 맑고 조촐하게 누리려 한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평안을 원한다. 이와 같은 절제의 미덕을 배우려면 적은 것으로도 자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슬기를 익혀야 한다. 삶도 하나의 기술이다. 먼저 우리들의 삶에 무엇이 보다 값있고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 어디에도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그의 삶은 영원히 빈 껍데기가 될 것이다. 

 

[274] 자기 해방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 정성에서 온다. 정성은 일의 구속, 운명의 동아줄, 고통의 목조림을 이겨낼 힘을 만든다. (중략) 정성을 다 하면 새로 탄생하는 일이 된다. 정성은 나와 운명의 합일을 맛보게 한다. 정성스럽게 사는 것은 벌써 그 운명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받아들이게 되고 삶의 갖가지 시련과 일을 받아들이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정성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유유히 인생을 사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275] 웃는 운명에는 밝은 운명이 오고 찡그린 얼굴에는 불운이 온다고 옛 성현은 말씀하셨다. 스스로 기뻐하기 때문에 즐겁고 기쁜 것이다. 

 

[290] 가족이 화목해지면 직장생활에 활기가 솟아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왕따를 안 당합니다. (중략)

<화엄경>에 이르기를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물을 마시면 독이 된다."라고 말씀하셨듯이 선악의 근본을 가리는 슬기로움과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292] 부부가 되려면 남녀가 서로 만나야 하는데 만남에는 정보다는 지성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지성에도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 과식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 과음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술 마시면 알코올 중독자
  • 사음이며
  • 과로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너무 힘들어도)
  • 나태로 게을러도 안 됩니다
  • 짙은 화장을 하는 사람도 안 됩니다. 
[295] 착한 것의 최상은 효도만한 것이 없고 악한 것의 최상은 불효만한 것이 없습니다. 가정이 살면 노인문제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자녀문제도 안 생깁니다. 부지런히 기도하고 부지런히 부처님께 의지하면 진정 효를 실천하는 불자가 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바깥의 흐름과 그 흐름에 묻어 있는 소음 속에 나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외부의 소음은 나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300] 따지고 보면 분명히 내가 살고 있음에도 나 자신의 의지보다는 보이지 않는 바깥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바깥의 흐름과 그 흐름에 묻어 있는 소음 속에 나 자신을 내던지고 있다. 외부의 소음은 나 자신의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308] 강산은 본래 주인이 따로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바로 강산의 주인입니다. 
관심을 안으로 기울이면 우리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 무수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눈을 밖으로만 팔기 때문에 외부 상황의 덫에 걸려 삶을 진실하게 파악하지 못합니다. 
 
[312] 우리가 인간은 평등하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그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이 무엇을 하고자 할 때 모든 기회와 조건을 똑같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지 그 결과도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337] 모든 제소자들을 분류 심의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과 심리학이다. 모든 것은 과학적 토대 위에서 재소자를 관리한다지만 한 차원 높은 철학이나 심리학으로 다스리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올바른 세상의 길로 인도하는 길이다. 
 
[360] 주자님 십회시는 거의 모두가 때를 놓치지 말라는 경구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이 바로 결연히 그 일을 결행할 날이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첫째, 소이불학 노후회다. 젊어서 공부하지 않고 늙어서야 후회한다는 말이다. 
둘째, 춘이불경 추이회다. 봄에 씨뿌려 갈지 않고 가을에야 하회한다는 말이다. 
셋째, 불사부모 사후회다. 부모를 섬기지 않다가 죽은 후에야 후회한다.
넷째, 부이불약 빈이회다. 여유 있을 때 아끼지 않다가 가난해진 뒤에 후회한다는 말이다.
다섯째, 불친가족 소후회다. 친척이나 가족들과 친절하게 지내지 않다가 멀어진 뒤에 후회한다는 말이다. 
여섯째, 취중광언 성후회다. 술 취해 망언을 해놓고 술 깬 후 후회한다. 

 
[362] 백거이(772-846) 선생이 지은 술을 마주하고[대주對酒]란 시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癡人

대강의 뜻은 달팽이 뿔 같은 인생이 무엇을 다투랴. 부딪쳐 생겨나는 불꽃 같은 짧은 인생을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즐겁게 살아야 된다. 입이 있으면서도 웃음이 없는 사람이야말로 바보로구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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