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영국 문단의 거장으로 60년에 걸친 문단생활에서 간결하고 유려한 필치로 25편의 희곡, 30편의 장편, 125편의 단편, 그밖에 수많은 수필, 평론집이란 기록적인 다작을 남겼다. 1874년 1월 파리에서 출생한 모옴은 그의 어린 시절을 그의 자전적 소설 <인간의 굴레>에 표현되고 있듯이 백부 집에서 쓸쓸하고 고독하게 보냈다. 1891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의 유학생활 동안 모옴은 그곳의 철학적 무드에 젖어 비교적 자유분방한 젊음을 구가하고 문학적 개안을 촉진하여 작가로서의 포부를 안았다. 1892년 의과대학에 입학한 모옴은 학과 공부는 등한시한 채 문학수업에 정진, 첫 시발탄으로 1897년에 장편 <램버스의 라이자>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당시 문단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작가라는 지위를 확고히 해주었다. 이후 1907년 모옴으로서는 일대 전환기를 갖게 되는 희곡 <프레더릭 부인>을 발표하고 이의 성공에 힘입어 14편의 희곡을 써냈다. <프레더릭 부인>은 전대미문의 인기를 얻어 이로써 극작가 모옴의 이름은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게 되었다. <과자와 맥주> <달과 6펜스> <인간의 굴레> <비> <어머니> 등 수많은 장단편의 글을 써낸 모옴은 1965년 12월 92회의 생일을 앞두고 남프랑스 니스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대학시절 샀던 것으로 고향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을 아이들이 읽어보면 좋겠다 싶어 집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추천해줘도 아직 손을 대지는 않네요. 어떤 내용인지 기억에 없어 다시 읽어봤습니다. 밑줄은 그어져 있는데 처음 읽는 책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모처럼 소설을 읽어서인지 금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달과 6펜스> 외에도 몇 편의 단편이 함께 엮인 책으로 왜 ‘달과 6펜스’란 제목일까라는 궁금함이 있었습니다. 인터넷을 조회해 보니 http://topa.co.kr/archives/145 사이트에서 명쾌하게 잘 정리를 해놓으셨습니다.
달은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예술의 세계’, 6펜스는 ‘물질과 실용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속의 현실 세계’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제목을 이렇게 정하게 된 이유는 이전 작품인 <인간의 굴레 Of Human Bondage>에 대해 타임지 문학 논평에서 주인공 필립 캐리어가 ‘달을 동경하기에 바빠 발밑에 떨어진 6펜스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를 읽은 서머셋 몸이 다음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두 자녀를 두고 평안한 삶을 살고 있던 가장이 어느 날 갑자기 파리로 사라져 버립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따라 돈과, 명예, 가족, 음식 등 세속적 가치를 버리고 오직 예술에 대한 가치를 따라갑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지막에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태평양의 외딴섬 타히티에서 현지인 아내 아다의 간호 아래 문둥병으로 몸이 문드러져 죽어가면서도 위대한 벽화를 남기고 죽어가는 모습은 장엄한 영화의 장면을 상상하게 합니다. 어떤 화가의 실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남양으로 간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소설로 각색한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부동산과 주식에 대한 뉴스가 난무하고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 세상적인 가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는 시대에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고전입니다.
이하 책에서 발췌했습니다.
14) 누구인지 이름은 잊었으나 사람은 영혼의 안정을 구하기 위해 매일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을 두 가지씩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어쨌든 현인의 말이었으므로 나도 이 교훈을 잘 지켜 오고 있다.
15) 그것을 속삭이는 자들에게 그렇게도 신선하게 들린 그 달콤한 사랑의 말도 사실은 악센트 하나 틀리지 않게 이미 몇백 번이고 되풀이되어 온 말인 것이다. 역사의 추는 다만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며, 인간은 같은 궤도 위를 계속 오가고 있을 뿐이다.
67) 내가 보기엔 양심이란, 사회가 기성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낸 법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속에서 계속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파수병 같은 것이다. 즉 각자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위법 행위를 감시하고 있는 경찰이나 자아라는 성채 깊숙이 잠입해 있는 스파이 같은 것이다. 인간은 남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욕심에서 비난받는 일을 극도로 두려워하므로 저도 모르게 적을 성문 안으로 끌어들이고 마는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의 주인이 조금이라도 사회에서 이탈해 나가려는 기미를 보이면 미연에 그 싹을 꺾어 버리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감시의 눈을 번뜩이고 있다.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의 이익을 자기의 이익보다 앞세우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개인을 사회에 묶어 놓는 튼튼한 사슬인 것이다. 이리하여 인간은 그 자신의 이익보다 크다고 믿고 있는 사회의 이익에 봉사하고, 자진해서 가혹한 주인을 섬기는 노예와 같이 된다.
75) 그런데 그렇게 착한 여성의 마음속에 그처럼 무서운 집념이 숨어 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던 것이다. 하나의 인격이 얼마나 잡다한 성질로 이루어졌는가를 나는 아직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마음 속에, 인색한 마음과 넓은 도량,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 이렇게 서로 상반된 것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 나는 잘 알고 있다.
80) 고생이 사람의 성격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행복은 어쩌다 그런 작용을 하는 수도 있지만, 불행은 대개 사람을 인색하고 집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이 고작이다.
91) 어쨌든 미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인 만큼, 그냥 지나가다 힘 안 들이고 주울 수 있는 해변가의 조약돌 같은 건 아니야. 그것은 예술가가 이 혼돈된 세계에서 고심에 고심을 해서 만들어 낸 것이야. 그러나 그 미를 판별해 낼 만한 힘이 만인에게 다 주어진 것은 아닐세. 미를 인식하기 위해선 예술가가 맛본 괴로움을 이쪽에서도 거듭 맛봐야 하는 거야. 즉 미는 예술가가 노래하는 아름다운 멜로디와 같은 것일 것. 그러므로 이쪽에서 마음의 귀로 그것을 그대로 판별해 들으려면 이쪽에서도 그만한 지식과 감수성과 상상력이 필요하게 되는 걸세.
100) 나는 과거를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영원한 현재일 뿐이오.
226) 그리고 아침 해와 파랗게 갠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 그의 마음에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청천벽력이라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 오히려 계시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고 그는 말했다.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그의 마음을 꽉 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그는 격렬한 기쁨을 느꼈는데 그것은 힘껏 고함을 치고 싶어 지는 해방감이었다. 양쪽 날개를 쫙 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서 당장 알렉산드리아에 영주 하기로 결심했다.
229) 나로선 과연 에이브러햄이 일생을 망친 것인지 의심스럽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행하고 자기 기분에 꼭 맞는 환경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 일생을 망친 것이 될까? 연수입 1만 파운드의 유명한 의사가 되어 미인 마누라를 얻어 산다는 것이 과연 성공일까? 요컨대 그것은 자기가 인생의 의미를 어떻게 보느냐로 결정되는 일이며, 사회가 자기에 대한 요구를 어느 정도 인정하느냐 또는 자기가 무엇을 요구하느냐에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242) 세상에는 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이 필연적으로 결정할 뿐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그는 동그란 구멍 속에 박힌 네모난 못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어떤 형태의 구멍이든 다 있어서 못이 맞지 않는 경우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곳에 와서 고분고분해진 것도 아니고 이기적인 면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잔인성이 적어진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에게 있어 환경이 좋아졌을 뿐이다.
245) 우리는 섬에서 충분히 즐거운 생활을 보내고 있어요.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쏟아 그것을 완성하는 기쁨이란 그렇게 흔히 맛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우리 생활은 검소하고 순수하답니다. 지나친 야심에 괴로와할 필요도 없고 우리의 자랑이라면 우리 손으로 완성한 일을 생각하는 것뿐이니까요. 남의 악의에 고민하는 일도 없고, 남을 시기할 일도 없어요. 정말이지 흔히 사람들이 입에 담는 노동의 기쁨이란 것도 실은 무의미한 말이어요. 그러나 나는 그 절실한 의미를 아주 잘 안답니다. 나는 복받은 사람이어요.
305)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 중
그땐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읽었지. 난 대화에서 나 자신의 견해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읽었고, 또 가르치기 위해 읽었네. 하지만 여기서 난 취미로 책을 읽는 것을 배웠어. 난 말하는 것을 배웠네. 자넨 대화가 삶에 있어 가장 큰 쾌락의 하나라는 걸 아나? 하지만 그것을 즐기자면 한가할 필요가 있어. 전엔 항상 너무도 분주했어. 그렇게 되기 전에는 그렇게 중요하게 보이던 온갖 생활이 차츰 하잘것없고 천하게만 보이더군, 이 모든 소란과 끊임없는 분발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309) 에바는 지금의 나를 사랑하지 미래의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난 생각하네. 내가 어떻게 되든 그 여자는 실망하지 않을 거야. 그 여자야말로 나에게 적합한 여자야.
428) <모옴의 생애와 작품세계>에서
장편 <인간의 굴레>는 그의 반자서전으로 제목이 시사해 주고 있는 것처럼 한 개체적 인간이 생의 노정을 걸어가면서 얽매어지는 굴레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탈피하며 어떻게 굴종하고 있는지를 모옴은 여실히 그려내고 있다. <램버스의 라이자>는 그의 의사 수업시대를 소재로 삼은 것이며, <애신든>은 제1차 세계대전 때 그의 정보활동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고 <달과 6펜스>는 남양으로 간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소설로 각색한 것인데, 이들은 모두 그가 소재를 찾아 얻은 작품의 좋은 예이다. 단편 <비> 역시 그의 남양 여행 시에 그 소재가 얻어진 것이다.
429) 그는 19세기 미국 작가 포우의 단편 소설론에 동조하여, 단편소설이란 형식으로나 내용으로나 동일한 사건을 취급한 한 가닥의 허구인 것이며, 앉은자리에서 읽어 넘길 수 있는 창의적인 것이라야 한다고 했다. 단편 소설은 불꽃을 튀겨야 하며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효과 또는 인상의 단일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직선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소설을 쓴다는 것을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지능을 필요로 하는 데다 형식에 대한 센스와 상당한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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