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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121_역사와 철학과 심리를 관통하는 지혜를 배우다_자유로부터의 도피_에리히 프롬_2012_휴머니스트(181028)

by bandiburi 2018. 10. 28.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지나치면서 우연히 서가에서 눈에 들어온 낯익은 제목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였습니다. 많이 들어보긴 했지만 직접 읽어보진 않았던 책, 왠지 어려울 것 같은 책이었는데 이 기회에 인연이다 싶어 빌려보았습니다.

 난해한 철학책이 아닐까 걱정을 했는데 막상 한 페이지씩 읽어가며 아주 흥미로운 책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전반부에 소개하는 중세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하위 중산층들에게 주어진 '자유'를 설명하는 부분은 역사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장에서 소개한 '도피의 메커니즘'에서는 심리학자로서 그리고 정신분석학자로서 저사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이 부분에 인용된 간단한 꿈의 해석에 대한 사례는 대학시절 읽어봤던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서 받은 감동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추천도서로 매년 인용되는 책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아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적극 추천합니다.

이하 책에서 인용했습니다. 

16) 근대인은 개인에게 안전을 보장해주는 동시에 개인을 속박하던 전(前) 개인주의 사회의 굴레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개인적 자아의 실현, 즉 개인의 지적, 감정적, 감각적 잠재력의 표현이라는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성과 합리성을 가져다주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개인을 고립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개인을 불안하고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 고립은 참기 어려운 것이다. 개인이 고립에서 벗어나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다시 의존과 복종으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인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인 자유를 완전히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38) 인간의 본성은 인간 진화의 산물이지만, 어떤 고유한 메커니즘과 법칙도 갖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는 고정 불변의 요소들이 있는데, 생리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할 필요성, 고립과 정신적 고독을 피해야 할 필요성이 그것이다. 

42) 열 살 된 아이가 자신의 개성을 갑자기 깨닫는 과정을 리처드 휴스는 <자메이카에 부는 모진 바람>에서 놀랄 만큼 예리하게 묘사했다. ~

47) '인간 존재와 자유는 처음부터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여기서 자유는 '무엇을 위한 자유'라는 적극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소극적인 의미, '자기 행동이 본능적으로 결정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의미로 쓰였다. 

59) 중유럽과 서유럽보다 이탈리아에서 먼저 중세 사회가 무너진 데에는 많은 경제적, 정치적 원인이 있었는데, 지중해가 유럽의 중요한 교역로였던 시대에 이탈리아의 지리적 위치와 거기에서 비롯된 상업적 이익, 교황과 황제가 싸우는 바람에 독자적인 정치 단체가 많이 생긴 일, 동양과 가까웠기 때문에 견직물 같은 산업이 발달하는 데 중요한 기술이 유럽의 다른 지역보다 먼저 이탈리아에 전해진 일 등이 그 원인이었다. 

60) 르네상스는 새로운 경제력의 폭풍이 일으킨 파도의 물마루에 올라가 있던 부유하고 유력한 상류계급의 문화였다. 지배 집단의 부와 권력을 나누어 갖지 못한 일반 대중은 과거의 지위에서 누렸던 안전 보장을 잃고, 때로는 아첨을 받고 때로는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항상 권력자에게 조종당하고 착취당하는 형체 없는 대중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전제정치가 새로운 개인주의와 나란히 등장했다. 

63)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 두 문화의 주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 시대는 상업 자본주의와 산업 자본주의가 비교적 고도로 발달한 시대였다. 르네상스 사회는 부유하고 강력한 개인들로 이루어진 소규모 집단이 지배한 사회였고, 그들이 이 문화의 정신을 표현한 철학자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사회적 기반을 이루었다. 한편 종교개혁은 본질적으로 도시의 중산층 및 하층계급과 농민의 종교였다. ~ 막스 베버가 입증했듯이, 서양에서 근대 자본주의 발달의 중추가 된 것은 도시의 중산층이었다. 

66) 성 안토니오가 말했듯이, 부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인간이 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경제적 이익이 진지한 일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처에 제한과 제약과 경고가 존재한다. 인간이 자신의 지위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부를 추구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더 많은 부를 추구하는 것은 진취성이 아니라 탐욕이고, 탐욕은 용서할 수 없는 죄다.

70) 경제적인 자본주의의 발달과 함께 '심리적 분위기'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중세가 끝날 무렵 근면 정신이 생활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근대적 의미의 시간 개념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귀중해졌다. 사람들이 이처럼 시간을 새롭게 의식하게 된 징후는 16세기부터 뉘른베르크에서 시계가 15분마다 시각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이다. 

71) 능률이라는 관념이 최고의 도덕적 가치의 역할을 맡았다. 그와 동시에 부와 물질적 성공을 얻고 싶은 욕망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열정이 되었다. 목사인 마르틴 부처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가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래와 직업을 쫓아다닌다. 예술과 과학에 대한 연구는 가장 비천한 육체노동으로 취급되어 옆으로 밀려났다. 신으로부터 더 고귀한 연구에 종사할 재능을 부여받은 뛰어난 사람들도 모두 상업에 열중해 있다. 오늘날 상업은 부정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고결한 사람이라면 절대 종사하면 안 될 직업이다."

 

 

73) 자본주의가 개인을 해방시켰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협동조합 체제의 통제에서 인간을 해방시켰다. 자본주의는 인간이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자신의 운을 시험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었고, 위험도 이익도 모두 그의 것이었다. 

92) 그가 종교적인 관점에서 그리는 인간상은 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발전이 초래한 개인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루터는 신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묘사했지만, 중산층은 새로운 경제 세력 앞에서 신 앞에 선 인간만큼이나 무력했다. 

100) 칼뱅주의자들은 순진하게도 자신들은 신에게 선택을 받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신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믿음이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깊은 경멸과 증오를 나타낸 것은 분명하다. 

104) 내적 충동은 어떤 외적 강제보다도 효과적으로 모든 에너지를 일에 묶어놓을 수 있었다. 외적 강제에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 저항은 일의 효과를 제한하거나, 사람들에게 지성과 창의성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차별화된 일을 시키지 못하게 만든다. 일하려는 충동은 사람을 자신의 노예 감독으로 만들어버리지만, 그 내적 충동은 지성과 창의성과 책임감 같은 자질들을 제한하지 않았다. 인간이 자기 에너지의 대부분을 일에 쏟지 않았다면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못했을 것은 분명하다. 노예가 아닌 자유민들이 일이라는 하나의 목적에 이토록 철저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은 시대는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107) '양심'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앉혀놓은 노예 감독에 불과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 소망이나 목표에 따라 행동하도록 몰아세우지만, 사실 그 소망이나 목표는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내면화한 것이다. 양심은 가혹하고 잔인하게 인간을 몰아붙이고, 쾌락과 행복을 금지하고, 이해할 수 없는 죄를 속죄하는 데 평생을 바치게 한다. 또한 양심은 초기 칼뱅주의와 후기 청교도주의의 특징인 '내면세계의 금욕주의'의 토대이기도 하다. 

110) 그렇게 함으로써 프로테스탄티즘은 유대-기독교 전통의 기초가 되었던 요소들을 버리고 만 것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교리가 제시한 개인과 신과 세계의 모습에서는, 개인이 느끼는 무의미함과 무력감은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에서 유래한 것이므로 '마땅히' 그렇게 느껴야 한다는 믿음으로 그 느낌을 정당화했다. 

111) 자신의 무력함과 본성의 사악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애를 그 죗값으로 여기고, 극도로 자신을 비하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회의와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 또한 신에게 완전히 복종하면 신의 사람을 받을 수 있고, 적어도 신이 구원하기로 결정한 사람들 가운데 자기도 속해 있을 거라는 희망은 가질 수 있다고 가르쳤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겁먹고 뿌리째 뽑혀 고립된 개인, 새로운 세계와 관계를 맺고 거기에 적응해야 하는 개인의 인간적 욕구에 대한 해답이었다. 

119) 자본주의는 개인에 대한 긍정을 유발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트 정신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자기부정과 금욕주의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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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자아를 뒷받침하는 다른 요소는 명성과 권력이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재산 소유의 결과이고, 부분적으로는 경쟁 분야에서 거둔 성공의 결과였다. 재산의 뒷받침에 덧붙여 남들에게 존경받고 남들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면, 그것들이 불안정한 개인의 자아를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142) 개인의 무력함이라는 주제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예컨대 <성>에서 카프카는 어떤 성의 신비로운 주민들과 접촉하고 싶어 하는 남자를 그리고 있는데, 주민들은 그가 해야 할 일을 말해주고 세상에서 그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려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는 그들과 접촉하려는 노력에 모든 삶을 바치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그에게 남은 것은 극심한 허무감과 무력감뿐이다. 

160) 이 상황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뛰어난 서술을 인용하면, "인간이라는 불운한 동물은 자유라는 타고난 선물을 되도록 빨리 넘겨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고 싶은 욕구보다 더 긴급한 욕구를 갖고 있지 않다."

161) 두려움에 사로잡힌 개인은 자신의 자아를 붙들어맬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찾는다. 그는 자신의 개체적 자아로 존재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자아를 제거하고 이 부담에서 벗어나 다시 안전감을 느끼려고 미친 듯이 애쓴다. 피학증은 이런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길이다. 

179) 운명은 철학적으로는 '자연법'이나 '인간의 숙명'으로 합리화될 수 있고, 종교적으로는 '신의 섭리'로 합리화될 수 있고, 윤리적으로는 '의무'로 합리화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성격자에게 운명은 언제나 개인 밖에 있는 더 우월한, 개인은 복종할 수밖에 없는 힘이다. 

 

■ 저자: 에리히 프롬

 1900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1918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1919년에 하이델바르크 대학으로 옮기면서 전공을 사회학으로 바꾸었고, 1922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0년대 중반에는 프리다 라이히만의 정신분석 치료소에서 정신분석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을 받았으며, 1930년에는 베를린에서 자신의 진료소를 개업했다. 1930년에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에 들어갔으나, 이 연구소가 나치 정권에 의해 폐쇄당하자, 1933년에 시카고 정신분석연구소의 초청을 받고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이듬해에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 사회연구소가 부설되자 뉴욕으로 옮겼다. 

 1938년에 컬럼비아 대학에 사표를 낸 뒤, 1943년에 워싱턴 정신병리학교의 뉴욕 분교 설립에 이바지했고, 1946년에는 정신 병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구하는 화이트 연구소 설립에 참여했다. 1941년부터 1949년까지 베닝턴 대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그 후 멕시코 시티로 이주하여 멕시코 국립 자치대학(UNAM) 교수가 되었고, 이 대학 의학부에 정신분석과를 개설했다. 1957년부터 1961년까지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쳤고, 1962년 이후에는 뉴욕대학의 예술과학대학원에서 객원교수를 지냈으며, 1965년에 은퇴할 때까지는 UNAM에서 가르쳤다. 그 후 멕시코 정신분석연구소에 재직하다가 1974년에 스위스의 무랄토로 이주한 뒤, 1980년에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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