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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84]지식의 역사 ④_19세기 근대의 서곡 및 1914년의 세계

by bandiburi 2024. 5. 6.

<지식의 역사> 네 번째 포스팅이다. 

19세기로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1914년의 세계를 보여준다.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에 소감을 함께 포스팅한다.


제10장 19세기: 근대의 서곡

따라서 소농들은 자신들이 태어날 때보다 더 가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죽기를 고대했다. 그들은 더 부유해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또한 그들은 본인보다 자녀가 더 부유해지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552)

소농들의 비참한 삶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어두운 문장이다. 영주에게 의탁해서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사는 운명이다. 자식도 동일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다. 봉건시대의 농노와 영주의 관계 속에서 농노의 위치다. 

만약 온 사회가 그 가치에 찬동하는 경우라면, 평화적인 활동을 위해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관한 최상의 사례는 1150년부터 1250년까지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 그 기간에 수십 개의 거대한 성당이 전국에 건립되었으며, 총공사비는 같은 기간의 국민총생산의 4분의 1에 상응할 정도였다. (560)

한 나라의 국민총생산의 25퍼센트를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종교적인 건물을 짓는 데 사용했다. 이는 시대가 얼마나 종교에 집중되어 있었는지 보여준다. 국민 개개인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결정이며 낭비다. 만약 그 만한 자본을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국민을 위한 곳에 사용했다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영국에서는 구체제 시기에도 돈의 승리가 이미 벌어졌으니, 그 시기인 1840년대 중반에 찰스 디킨스(1812~1870)는 <돔비 앤드 선 Dombey and Son>이라는 작품을 썼다. 디킨스 역시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현상에 깜짝 놀랐고, 자신이 일찍이 알았던 세계가 영영 사라졌다는 사실에 마뜩진 않고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567)

산업혁명 시기를 살았던 찰스 디킨스는 돈이 인간 사회에서 어떤 모습을 갖는지 볼 수 있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어깨를 으쓱한다. "그들이 사라졌으면 하고 바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죽이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 해가 뜨면 그 장소는 말끔히 정리되어 사방이 탁 트여 있을 것입니다." 파우스트는 자신이 한 짓을 한탄하지만, 메피스토펠리스는 도리어 그를 질책한다. 오믈렛을 만들려면 반드시 달걀을 깨트려야 하는 법이라고 악마는 말한다. (571)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리스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 설득되는 과정이다. 달걀을 깨트려야 오믈렛을 만든다는 악마의 속사귐은 도덕적 감정과 욕심이 싸우는 내면의 갈등을 부추긴다. 

괴테와 그의 작중인물 파우스트에게 스며들었던 예언의 정신은 괴테의 사망과 파우스트의 시적 신격화와 함께 사라지지 않았다. 그 횃불은 이제 일군의 사상가들 손으로 넘어갔으며, 대부분 젊은이였던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 -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단어였다 - 라고 일컬었으며, 사회 노동에 근거하여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새로운 세계에 관한 유쾌한 비전을 만들어냈다. 이런 새로운 예언자들의 무리 가운데서도 가장 언변이 뛰어나고 영향력 있었던 인물은 바로 카를 마르크스였다. (573)

사회주의자들의 비전을 볼 수 있다. 즉, 사회 노동에 근거하여 정의를 위해 헌신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공산당 선언>이 나올 수 있도록 자극제 노릇을 한 1848년의 혁명은 금세 진압되었고, 그 결과로 자본가가 입은 피해는 어디까지나 제한적이었다. 이보다 더 큰 도전은 1870년, 그러니까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충동적으로 독일에 전쟁을 선언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 전쟁에서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끌던 독일은 불과 3개월 만에 프랑스를 패퇴시켰다. (579)

프랑스의 1848년 혁명과 1870년 독일과의 전쟁 선언과 3개월 만의 패배를 설명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18

 

[883]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_홍세화의 자전적 에세이 속 프랑스 똘레랑스

루브르는 고대부터 1848년까지, 오르쎄는 그후 1914년 일차대전까지 그리고 현대미술관은 그후 지금까지 세 시기로 나누어 진열해놓았지요. (13)빠리의 옛 성주가 살던 곳은 지금은 법원이 자리잡

bandiburi-life.tistory.com

 

1871년 5월 한 달 동안 파리 시내에서는 유혈이 낭자한 전투가 벌어지며 수많은 시신을 남겼다. 5월 28일에는 최후의 '코뮈나르'(communard, 코뮌 지지자)들이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있는 '코뮈나르의 벽' 앞에서 총살당했다. 프랑스 좌파는 프랑스 군인들이 프랑스 노동자들을 이 벽 앞에 줄지어 세워놓고 잔혹하게 죽인 그날을 결코 잊지 않았다. (580)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 '코뮈나르의 벽'을 처음 만났다. <지식의 역사>에서 다시 본 '코뮈나르의 벽'은 더 잔혹해 보인다.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는 <보바리 부인>(1857)에서 부르주아 생활의 사소한 결점들을 아주 세세한 데까지 밝혀내는 한편, 그레첸의 좁은 방의 업데이트된 버전으로, 갇힌 상태에서 더 넓은 세계로 탈출하려는 한 여성의 비극적인 노력을 묘사했다. (617)

다윈과 프로이트, 이 두 사람은 우리가 결코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던 사실, 즉 우리 인간의 본성을 똑바로 바라보라며 강요한 폭로자들이었다. (625)

다윈과 프로이트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고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실 혹은 주장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직시하라며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폭로한다. 

 

제11장 1914년의 세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한 가지 작은 전쟁은 누구도 예상 못 했을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다. 1899년 10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트란스발)과 오렌지 자유국의 네덜란드인 정착민(보어인)들이 남아프리카에서 영국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케이프 식민지에 있는 영국인을 향해 경고한 것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 2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그들의 딱한 처지와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자 전 세계는 경악해 마지않았다. 이 당시의 영국에서 보어 전쟁이란, 반세기 뒤의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이 그랬던 것처럼 큰 논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639)

영국이 식민지에 대해 벌인 '보어 전쟁'의 내막을 알려주는 문장이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과 일으켰던 전쟁과 같이 인도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되는 전쟁이었다. 

1689년에 사람이 아니라 법률에 의거한 통치를 수립하기로 한 영국의 결정, 1776년과 1789년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전체로서의 인민은 어떤 한 사람보다도 더 우월한 법률을 제정할 수 있다고 한 헌법 제정자들의 선언, 그리고 민주주의적 통치의 세 가지 기본적인 목표를 구분한 링컨의 연설, 여러 다른 기간 동안 - 그러나 어떤 기간도 200년은 채 못 되었던 - 나머지 세계가 이해하게 된 민주주의이기도 하다. (666)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군주제를 극복하고 인민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었던 장면들을 정리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에이브러햄 링컨은 옳았다. "여러분은 항상 인민 가운데 일부를 속일 수도 있고, 가끔은 인민 전부를 속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인민 전부를 속일 수는 없습니다." (671)

인상적인 문구다. 오늘날로 보자면 일부 국민을 속일 수는 있지만 전체 국민을 계속해서 속일 수는 없다는 위정자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올바른 행정, 올바른 정치로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 국민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국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 

최종적으로 말하자면, 신정정치는 기껏해야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통치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렇게 통치하는 사람은 다른 통치자에 비해 더 나을 것도 없었으며, 오히려 종종 더 나쁘게 마련이었다. (685~686)

신정정치는 그럴싸한 말이지만 결국은 신의 이름을 빌어 사람이 통치하는 것이다. 사람이 중요하다. 대부분은 그 통치자가 신과 같은 역할을 하며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 

다실 말해서 정치적 평등 그 자체만으로는 민주주의적인 인간을 완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평등의 척도 역시 필요하다. (...) 정말 필요한 것은 보다 공평한 부의 분배 - 모든 사람이 버젓하게 살 수 있을 만큼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 와 거의 절대적인 기회의 평등인 것이다. 절대적인 소유의 평등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반면 기회의 평등은 기꺼이 희생을 바칠 만한 이상이 아닐 수 없다. (689~690)

우리나라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987년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달성이 되었다.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부의 노력 이전에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기회가 부여돼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것도 경제적 기회의 불평등이라고 생각된다. 이는 정부 정책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올바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330

 

[884]지식의 역사 ⑤_20세기의 과학과 기술 및 예술과 미디어

마지막 다섯 번째 포스팅이다. 20세기에 대한 이야기로 익숙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1991년에 출간되어 일부 내용은 40년이 넘은 현재에 보면 어색한 부분도 있다. 마지막에도 책에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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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84_지식의 역사_찰스 밴 도렌_2010_갈라파고스(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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