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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79]미국의 목가①_스위드 가족으로 보는 미국 현대사와 딸 메리의 실종

by bandiburi 2024. 4. 24.

필립 로스의 1998년 퓰리처상 수상작품인 <미국의 목가>는 스위드 가족을 중심으로 미국의 현대사를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보이는 미국이란 국가 단위가 아닌 가족이나 개인 단위까지 내려가 그들이 성장하며 역사와 상호작용하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비춘다. 

다른 책에서 소개된 <미국의 목가, American Pastoral>은 처음 접하는 소설 제목이었다. 이런 책이 있었나 싶었다. 내용이 뭐기에 상을 수상했지? 책을 읽으며 '왜'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 작가는 소설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번역본은 1권과 2권으로 나눠졌는데, 1권에서 딸 메리가 폭발물로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현대사를 살아오며 미국인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잊힌 과거를 되새기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스위드'라는 주인공 이름으로 시작한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는 스위드의 동생인 제리의 친구, 네이선이다. 

 

사실 장갑 사업으로 돈을 벌기는 어렵습니다. 너무 노동집약적이거든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과정이고, 많은 작업이 협업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갑 사업은 대부분 가족 사업이었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거죠. 아주 전통적인 사업입니다. (201)

스위드는 190센티미터의 키에 잘 생기고, 농구, 야구, 미식축구 등 만능 운동선수로 모두의 부러움을 받는 존재다. 프로 운동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지만 가업으로 이어져온 장갑을 만드는 사업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예쁜 아내를 만나 결혼한다. 딸 메리와 함께 세 가족은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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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훈훈한 기념행사 뒤에도 곧바로 연속성과 일상이라는 눈가리개를 다시 쓰고 이전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이제 쉽지 않다. (...) 하지만 예순둘에는, 암수술을 하고 나서 겨우 일 년이 지난 뒤에는 그런 행사에 아무렇지 않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77)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항의하려고 오십 달러씩이나 내고 고등학교 졸업 45주년 동창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 그날 오후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그저 나 자신이 아직은 '추모' 페이지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92)

나는 앞서 식사가 끝날 무렵 사회자( 어윈 러빈, 자 43, 41, 38, 31. 손 9, 8, 3, 1, 6주)가 나를 마이크 앞에 불러세웠을 때나 나름으로 이 행사의 분위기를 파악했기 때문에 이렇게만 말했다. "네이선 주커먼입니다. (...)" (102)

1995년 동창회에서 만난 70세가 넘은 친구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며 각자의 과거를 회상한다. 공통점은 모두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사망한 친구들도 적지 않다. 동창회에서 친구들의 회상 장면에서는 작가의 의도가 이런 식으로 독자에게 잊힌 과거 미국인들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폭동이 끝난 후 메리는 그냥 미쳤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짓을 했다. 뉴어크 폭동, 그다음에는 베트남전쟁, 하나의 도시, 그다음에는 전국. 결국 그것이 아케이디힐 로드의 시모어 레보브 가족을 끝장내버렸다. 첫번째 사건으로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었는데, 일곱 달 뒤인 1968년 2월에 두 번째 사건이 일어나면서 완전히 박살이 났다. 포위 공격을 당한 공장, 달아난 딸. 결국 그것이 그들의 미래를 끝장내버렸다. (249)

잃어버린 딸에 대한 광적인 소유욕, 부모로서 나서고 싶은 마음, 강박적인 사랑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데는 성공할 수 없었다. (...) 스위드는 삶이 가르쳐줄 수 있는 최악의 교훈을 배웠다. 삶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을 배우게 되면 행복은 두 번 다시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없다. (132)

 

사실 케네디는 스위드보다 불과 열 살 위였다. 스위드와 마찬가지로 행운을 타고나 특권을 누린 아들이었고, 미국의 의미를 발산하던 매력적인 남자였고, 스위드의 딸이 케네디-존슨의 전쟁에 폭력적으로 저항하여 아버지의 인생을 폭파시키기 불과 오 년 전, 사십 대 중반의 한창때 암살을 당했다. (135)

미국 독립전쟁 이후로 현지 주민의 일상적 삶을 한 번도 침범한 적 없는 역사가 이 은둔한 듯한 구릉지에까지 구불구불 기어들어와, 믿을 수 없게도, 그 모든 예측 가능한 예측 불가능성으로 시모어 레보브의 질서정연한 가족 안에 무질서하게 난입했다. 그리고 그곳을 유혈이 낭자한 곳으로 만들어놓았다. (141)

1968년 사랑하는 딸 메리가 잡화점에 폭발물을 설치해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며 스위드의 삶에 격변이 일어난다. 그전에 가업인 장갑 사업이 인건비 부담으로 사양산업이 되어 해외로 일부 공장을 이전한다. 미국에 있던 공장은 계속해서 운영은 하지만 폭동으로 급격히 어려워진다. 과거의 장갑을 만들던 장인들이 사라지며 기술력이 떨어진다. 

그것이 그들이 뉴역에 관해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스위드는 인내심을 발휘했고 합리적으로 행동했고 단호했고, 그래서 효과가 있었다. 그가 아는 한 메리는 다시 뉴욕에 가지 않았다.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향에 머물렀다. (180)

나는 그런 유치하고 상투적인 말은 단 이 분도 관심을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 코언 양은 공장이 뭔지 몰라. 제조업이 뭔지를 몰라. 자본이 뭔지를 몰라. 일이 뭔지를 몰라. 고용되는 게 뭔지 실업자가 되는 게 뭔지 조금도 몰라. 일이 뭔지도 몰라. 평생 취직은 해본 적도 없어. 설사 취직을 한다 해도 하루도 못 버틸 거야. 노동자로건, 관리자로건, 소유자로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됐어. 내 딸이 어디 있는지나 말해줘. (209)

딸 메리와는 연락이 두절된다. 연방수사국의 감시를 피해 숨어산다. 딸이 사라진 이후로 스위디의 삶도 망가졌다. 그리고 코언이라는 여인이 등장하며 딸의 존재에 대해 알려준다. 스위디는 그녀를 통해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갖는다. 코언은 돈을 요구하고, 성적인 유혹을 하며 스위디의 타락을 유도하지만 실패한다. 코언이란 여인의 자본가에 대한 비판 논리에 대해 한탄하며 코언이란 여인이 현실 경험 없는 상투적인 말을 하고 있다며 반박한다. 

 

(...)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그 빵을 입안 가득 계속 밀어넣으며 허겁지겁 먹다보면, "작은 마들렌의 맛"을 기억하는 순간 마르셀에게서 사라졌다고 프루스트가 말한 것, 즉 죽음의 불안이 나 네이선에게서도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79)

이 문장을 보니 '작은 마들렌의 맛'에 대한 프루스트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어떤 의미로 쓴 것일까. 현실에서 마들렌은 출출할 때 커피와 함께 먹으면 맛있는 간식일 뿐이다. 

메리는 일주일 동안 자기 방에서 혼자 자지 못했다. 스위드는 그 승려가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메리에게 설명해주려고 신문들을 꼼꼼히 읽었다. 그것은 남베트남 대통령 디엠 장군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고, 불교 자체의 어떤 점과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237~238)

메리는 스위드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간다. 말을 더듬지만 자신의 일에 몰두할 때는 더듬지 않는다. 메리는 반전주의자가 되었다. 베트남 국민들을 생각하며 반전 활동을 한다. 스위드는 만능 운동선수이면서 2차 대전 당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해병대 훈련을 마쳤지만 전쟁이 종료되며 참전하지는 못했다. 그런 아버지 스위드에게 전쟁 경험이 없는 딸 메리의 현실인식은 부녀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얼마나 많이 하든, 얼마나 자주 피아노를 언급하든 소용이 없었다. 아무도 그녀 말을 믿지 않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나아 보이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는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그냥 하이힐에 수영복 차림으로 애틀랜틱시티를 돌아다니는 것 말고도 장학금을 탈 방법은 많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293)

이 책은 주인공이 수시로 바뀐다. 스위드의 입장에서, 동생 제리의 관점에서, 아내 돈의 각도에서, 딸 메리의 시각에서 그리고 여러 동창과 주변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상황을 볼 수 있다. 위의 문장은 돈을 벌기 위해 미인대회에 참가했을 뿐이지 주변인들의 생각과 다르다고 얘기하고 있다. 

모든 것이 그를 압박할 때도, 공장에서 사람들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때도, 집에서 가족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줄 때도 - 공급업자가 망친 일, 노동조합의 부당한 요구, 구매자의 불만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불확실한 시장과 해외의 모든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고, 말 더듬는 아이, 독립적인 정신의 아내, 말로만 은퇴한 쉽게 화를 내는 아버지가 끈덕지게 조르는 일로 그 즉시 처리할 때도 - 이렇게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비인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언젠가 그를 완전히 지치게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304)

스위드는 육체적인 여러 매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정신적으로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인다. 사업가로서, 부모로서, 자녀로서, 일인다역을 수행한다. 여러 압박으로 지칠 수도 있지만 견디어낸다. 

 

아버지가 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설명하는 즉시 곧바로 무시무시한 전격전을 벌일 아이를 자신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11)

콘론 부인은 말했다. "레보브 씨 부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비극의 희생자예요.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비록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가족으로서 살아남을 거라는 점이에요.(...) " (325)

딸 메리로 인해 사망한 콘론 씨의 부인의 말은 감동적이다. 레보브 부부를 원망할 수도 있었지만, 그들도 비극의 희생자라며 품어준다. 현실에서 과연 그럴만한 부모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독자에게 감동을 준다. 

아이는 그의 가슴에 몸을 던지고,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얼굴 아래쪽에 쓴 베일, 입과 턱을 가린 베일, 낡은 나일론 스타킹에서 잘라낸 30센티미터짜리 너덜너덜한 얇은 베일 밑에서, 아이는 결국은 싫어하게 되었던 남자를 향해 말했다. "아빠! 아빠!" (346)

1권의 마지막에 딸과의 만남이 성사된다. 그리고 1권을 마무리된다. 딸의 망신창이가 된 노숙자와 같은 모습은 스위드에게 충격이다. 2권으로 이어진다. 


독서습관 879_미국의 목가 ①_필립 로스_2014_문학동네(240422)


■ 저자: 필립 로스

필립 로스는 1998년 <미국의 목가>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해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국가예술훈장을 받았고, 2002년에는 존 더 스페서스, 윌리엄 포크너, 솔 벨로 등의 작가가 수상한 바 있는, 미국 예술문학아카데미 최고 권위의 상인 골드 메달을 받았다. 필립 로스는 전미도서상과 전미도서비평협회상을 각각 두 번, 펜/포크너 상을 세 번 수상했다. 2005년에는 "2003~2004년 미국을 테마로 한 뛰어난 역사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미국을 노린 음모>로 미국 역사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또한 최근에는 펜 상 중 가장 명망 있는 두 개의 상을 수상했다. 2006년에는 "불멸의 독창성과 뛰어난 솜씨를 지닌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나보코프 상을 받았고, 2007년에는 "지속적인 작업과 한결같은 성취로 미국 문학계에 큰 족적을 남긴" 작가에게 수여되는 펜/솔 벨로 상을 받았다. 

로스는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최초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 (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완전 결정판(총 9권)을 출간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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