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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68]우리 지금 이태원이야_생존자와 유가족이 증언하는 10·29 이태원 참사 현장

by bandiburi 2024. 4. 8.

2014년 세월호 사건은 국민들에게 상당한 상실감과 슬픔을 가져왔다. 그 유가족들의 슬픔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2024년 4월 16일이 꼭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난 이태원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증언을 담은 책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는 세월호 이후에도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 시스템이 여전히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생존자의 가족들, 그 장소에 함께 있었던 친구나 연인들, 그리고 이태원에서 살고 있는 주민의 입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전해주는 책이다. 언론이나 유튜브를 통해 전해지는 뉴스로 접한 것보다 다양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현장의 상황이 전해져 훨씬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회가 건전하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생각이 다른 것은 인정하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기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어 유가족에게 아무 말이나 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에 동조하는 유튜브나 언론이 있었다. 이런 말들이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증언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증언을 보며 책을 아주 잘 정리했다고 본다.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있고, 당시 상황을 잘 모르는 일반 독자들에게 오해 없이 온전하게 정황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모두 열네편으로 반복되며 강조되는 내용을 몇 개로 정리해서 포스팅한다. 

이 책에 담긴 열네 편의 글은 재난으로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이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치열하게 버텨온 시간에 대한 증언이며, 사회를 향해 던지는 질문입니다. (9)

 

첫째, 유가족들이 서로 만났을 때 위로를 받았다. 

평상시처럼 가족들에게 다녀오라고 보냈는데, 함께 그곳에 있었지만 인파에 밀려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국가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고 고립된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은 눈물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야 하는 상실감은 크다고 한다. 그럴수록 공감할 수 있는 유가족들과의 만남의 장을 만들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 직후에 정부의 대응은 이런 측면에서 많이 미흡했다. 사망자들을 여러 병원 영안실로 분산 배치하면서 유족들에게 설명이 없었고, 이후에도 유족들의 모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정보를 적시에 공개하지 않음으로 도리어 방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아쉬운 부분이다. 

우리 말고 다른 누군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크게 위로받았어요. 유가족을 만나야겠다는 것을 최초로 느낀 날이었어요. (73)

그렇게 처음으로 유가족들을 만났는데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공감이 되는 거예요.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났다는 게 제게 굉장히 큰 의미였어요. 유가족협의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183)

오히려 제 친구들 중 한 명이 다 필요 없고 나는 너를 그냥 지지한다고 해준, 그 얘기가 되게 크게 힘이 됐어요. 누가 뭐라고 하든 난 너를 지지한다. 그 말을 듣고 조금 있던 두려움이 사라졌어요. (87)

 

둘째, 정부의 대응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증언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다. 그리고 이런 사고가 났을 때 정부의 대응 시스템의 부재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태원 참사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왜 알려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시간만 흐른다. 2024년 1월에는 유가족들이 그렇게 원했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대해서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되었다. 

이 책의 증언을 보며 가볍게 하나의 사고로 간주하고 잊어버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유가족과 생존자의 입장에 깊이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공감하면 할수록 당시 정부의 대응에 화가 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왜 경찰이 배치되지 않았는지, 사고접수가 초저녁부터 되었고 반복돼서 전화를 했는데 왜 늑장대응으로 사고를 만들었는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부분이다. 하물며 당사자들의 실망감, 허탈감, 국가에 대한 배신감은 얼마나 컸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슬픔이 일어난다. 

사실 저는 정부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위에 있는 사람들, 정부나 공직자들은 사실관계를 모르지 않는데도 외면하는 사람들인거니까. 그건 악하거나 사고력이 낮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기대가 안 되는 거예요. (39)

올해 1월에 국회 국정조사에서 공청회가 열렸는데 증언할 사람을 구한다고 해서 또 제가 하겠다고 했죠.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함부로 이야기하니까요. 제가 그날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정부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니까. 정말 무대응 그 자체인 게 너무 화나고 속상하고...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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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이후 이토록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았구나 싶고, 바뀐 게 있다면 정부는 그때 한번 경험을 해서 그런지 더 영악하고 교묘해진 것 같고요. 여전히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 전혀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이게 그저 공감의 문제일까 싶어요. (84)

또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에 참사의 원인이 된 정책적 허점이나 참사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의 사연에 되게 집착하더라고요. 기자들이 장례식장까지 쫓아와서 한마디라도 해달라고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이 나라에서는 죽음이 결국 그냥 한번 소비되고 마는 이슈거리에 불과하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202~203)

나는 피해자인데, 누구보다 지금 이 나라에서 가장 큰 피해자같은데 내가 왜 범죄자처럼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국민들을 지키는 일에는 기동대 한 명도 배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듯에 불응하는 곳에는 몇천 몇백 명을 이렇게 쉽게 배치하고 쓰는 거지? 이 사람들은 지금도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결국에는 헌법재판소도 이 사람들의 편을 들어줬고. 우리는 계속 외로운 싸움을 해나가고 있고. (241)

저희가 알고 싶은 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예요. 왜 어디서도 대처를 안 했나, 동생은 어디에 있었을까, 왜 병원을 계속 옮겨 다녔을까, 왜 아무도 가족들한테 연락 한 번을 해주지 않았을까... 알고 싶은 건 너무 많은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요. (256)

세월호 때의 청해진해운이나 유병언처럼, 이 정부도 시민들이 명확히 욕할 수 있는 대상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토끼 머리띠'라든가 최초 신고받은 경찰이라든가 보고서를 조작한 경찰이라든가. 그런데 사람들이 더 이상 그들에게만 분노하지 않죠. 사람들도 안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의 문제임을요. 이태원 참사는 이것도 이상하고 저것도 이상하고 다 이상하거든요. 진짜 말도 안 되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국가에 나의 안전을 맡기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인정해야 되는 일이잖아요. (332)

 

셋째, 희생자들을 기억해 달라. 책임자가 누구인가 

유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는 바는 우리의 가족이, 친구가 갑작스럽게 서울 한복판에서 숨져갔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점이다. 함께 식사하며 이야기하고 싸우고 웃었던 가족이, 당연히 밤에 집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던 자녀가 사망했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유가족이나 생존자들의 입장에서 갑작스럽게 떠나보내야 하는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모두가 하나 되어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배려해야 한다. 누구나 유가족의 입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출처: flickr)

참사 발생 49일째 되던 2022년 12월 16일 이태원역 앞 도로에서 시민추모제가 열렸다. 이 자리에 모인 유가족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희생자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었다. (104)

유진씨는 참사 희생자들의 미래를 앗아가고, 유가족들로 하여금 미래를 꿈꾸기 어렵게 만들고, 나아가 우리 사회 모든 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할 가능성을 박탈해 버린 이태원 참사의 책임자들을 향해 오늘도 연신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190)

 

마지막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자들 속에 유가족들은 살기 위해 외친다. 

유가족들이 '뭐라도 해야 살 것 같으니까'라고 하는 부분이 마음을 울린다.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눈물만 나고 슬픔에 잠겨 있어야 하지만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외치는 가운데 삶의 희망을 잡고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더라도 외쳐야 했다. 

녹사평역에서 분향소를 차렸을 때 유가족들의 가까이에서 훼방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을 할 때 그 앞에서 음식을 먹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일까. 인간적인 가치를 상실하고 이념과 돈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간주된다. 자신의 동생이, 아들, 딸, 친구가 그 대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할까 궁금하다. 

특히 당시 우연히 그 주변을 들렸다고 빠져나오지 못하고 희생된 사람들의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놀러 갔다 그랬는데 누굴 탓하냐'며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태원 할로윈 축제라는 말로 인해 그런 오해를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희생된 상황에서 우리는 상황을 더 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잘 모르면 희생자와 유가족의 입장에서 얘기할 일이다. 

분향소 앞에서 마이크에다 대고 그렇게 얘기해도 듣는 사람은 우리뿐이에요. 그렇지만 해야죠. 왜냐하면 아무도 안 들어도 이거라도 해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그건 희망 같은 게 생기는 것 같아요. 뭐라도 해야 하니까. 해야 살 것 같으니까. (208)

제일 화났던 말들은 자기들이 놀러 가서 죽었는데 "누굴 탓해"였어요. "놀러 갔는데 누구한테 책임 떠넘기냐?" 같은 말들이 정말 속상했어요. 좀 놀면 어때? 왜 이렇게 못살게 굴지? 왜 죽어서까지도 못살게 굴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진저리가 나서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287)


독서습관 868_우리 지금 이태원이야_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_2023_창비(240407)


■ 작가: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각각의 자리에서 10·29 이태원 참사를 겪은 한 사람으로서 활동가, 변호사, 작가들이 모였다. 부채감, 이해할 수 없음, 기묘함, 슬픔, 무기력 등 각자의 마음속에 담긴 감정의 모습도 생각도 다르지만, 재난참사를 지속적으로 겪으며 살라가야 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작은 가능성만이라도 찾고자 하는 심정으로 서로의 곁에서 함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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