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 하권에서는 오래된 서고인 장서관을 배경으로 의문의 사건이 이어진다. 그리고 장서관의 배치도와 사서로 있었던 사람들이 죽게 되는 이유가 드러난다. 안타까운 것은 기독교 세계뿐만 아니라 아랍어로 쓰인 역사적 기록물도 보관되어 있었던 장서관이 불꽃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당시에 면죄부 판매와 같은 엉터리 같은 사기도 있었고, 성직의 자리를 두고 서로를 비난하고 고발하는 행위, 그리고 교회나 수도원에서 예수와 마리아와 관련된 거짓 유품을 자랑하는 일이 있었다는 점을 작가는 윌리엄 수도사나 수도사들의 대화를 통해 드러낸다. 또한 수도원은 엄격한 금욕생활을 요구하지만 남색이 있었고, 수도원 밖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성거래를 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그리고 밖에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수도원에서 은거하는 사람도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정치, 사회, 경제, 종교 등 각 분야에서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특히 정신적인 위로를 줘야 할 종교단체에서 신도를 이용하는 일은 더 큰 충격을 준다.
거룩한 종교에 몸담을 자들이 물질적인 욕심과 육체적인 욕망에 굴복하는 경우가 보도된다. 도박과 음주가무를 즐기는 사찰의 중들, 기업 오너처럼 부를 누리고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하는 목사들과 신도를 성적인 희생양으로 삼는 목사들 마리아를 섬긴다며 아이들을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수녀들이다.
사람의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중세 시대나 현대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배워야 하고 시행착오를 줄여서 사회가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해야 한다.
<장미의 이름>은 어렵지만 작가의 언어적 풍부함을 통해 언어를 확장하고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소설이다.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쳐 서책끼리의 음울한 속삭임이 계속되는 곳,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살아 있는 막강한 권력자, 만든 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을 무한한 비밀의 보고인 셈이었다. (377)
교황청이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감으로써 아비뇽이 기독교의 중심이 된 것은 1309년의 일. 교황 요한 22세가 교황에 선임된 것은 1316년의 일. (387)
괴물과 허위만이 난무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 기독교인들이 마땅히 읽고 배워야 할 과학의 논문도 있다. 장서관이 세워질 당시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겠지? (417)
이 장서관의 각 소장실은, 당시 기독교 세계에 알려져 있던 이른 바 TO 지도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작가 에코는 중세의 지도와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소설 <바벨의 도서관>에서 그려 낸 악몽과 같은 미궁을 통하여 이러한 배치도를 착상한 듯하다. 이 장서관의 사서를 지낸 장님 수도사의 이름이 <호르헤>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TO 지도란 세계를, T와 O가 결합된 꼴로 그린 지도를 말한다. (424)
첫 번째는 우박, 이어서 피, 그리고 물... 이번에는 별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처음부터 다시 따져 보아야 한다. 범인이, 집히는 대로 들고 친 것이 아니라 미리 세운 계획에 따라 살인을 저지른 것인데... 그런들, <요한의 묵시록>을 조목조목 외면서 거기에 따라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 이걸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느냐? (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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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교황청,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암투, 고위 성직을 빼앗기 위한 무고(誣告)... 구역질이 다 납니다. 인간이라는 이 별종에 대한 제 믿음은 나날이 엷어져 가고요. 도처에 보이는 것은 음모와 책략뿐이랍니다. 수도원 꼴이 대체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성자들이 거둔 승리의 표상이었던 수도원이 이제 한갓 사술이나 부리는 자들이 난무하는 독사굴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554)
나는 다른 교회나 수도원에서도 거룩한 십자가 조각을 많이 보았다. 모두가 진짜라면 우리 주님은 널빤지 두 개를 걸쳐 만든 십자가 위헤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아주 널찍한 숲 속에서 돌아가신 모양이다. (556)
<키프리아누스의 만찬>에서도 그러하듯, 역전된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실제로는 모두들 원래대로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결국 너는 꿈속에서 너 자신에게, 어느 것이 진짜 세계이고, 어느 것이 가짜 세계이냐, 바로 선다는 것은 무엇이고 거꾸로 선다는 것은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을 것이야. (572~573)
■ 저자: 움베르토 에코 Umberto Eco
1932년 이탈리아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움베르토 에코는, 오늘날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며 동시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현대의 컴퓨터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았고, 전 세계 수십여 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까지 해독하는 지독한 <공부벌레>이자 <언어의 천재>이다. 50세가 되었을 무렵, 에코는 현대 사회의 세기말적 위기를 소설로 그려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출판사에 근무하던 여자 친구로부터 추리 소설을 써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2년 반에 걸쳐 <장미의 이름>을 썼다.
중세의 한 이탈리아 수도원에서 일어난 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은 1980년 이탈리아에서 출간 1년 만에 50만 부가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다음 해 프랑스와 미국으로 소개되면서 수백만 독자들에게 읽혔고, 소설에 관한 해설서는 일본에서만도 10여 권이 넘게 출간되었다. 현재 이 작품은 모든 유럽어로 번역되었으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2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당대의 유명론 논쟁에, 에코 자신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 있는 생생한 지적 보고이며, 이는 고전 문학 입문서로서 가히 만 권의 책이 집약된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에코의 다른 저서로는 소설 <푸코의 진자>(1988), <전날의 섬>(1994), <바우돌리노>(2000),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2004),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1992), <하버드에서 한 문학 강의>(1994), <나는 독자를 위해 글을 쓴다>(200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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