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교육

다산 정약용과 정약전 정약종 형제 등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210123)

by bandiburi 2021. 1. 23.

다산 신도시를 산책하다 보니 고인돌공원 바로 옆으로 다산원이라는 작은 공원이 있습니다. 다산이 고안한 거중기 모형이 멀리서 보입니다. 조선 정조 시대인 1792년 수원 화성을 축조하기 위해 무거운 물건을 도르래 원리를 이용해서 들어 올릴 수 있는 장치였습니다.

다산원을 산책하며 아내와 다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잊고 지냈던 것들을 새롭게 기억 속에서 소환했습니다. 이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이복 형님이 있지만 어머니인 해남 윤씨 슬하의 자녀 중에 주요 인물만을 정리했습니다. 이승훈은 조선 최초로 천주교 영세를 받은 사람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했습니다. 가계를 보면 천주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약전은 천주교에 입교했으나 1791년 신해박해 때 정약용과 함께 천주교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1801년 신유박해에서 흑산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자산어보>를 저술합니다. 14년 동안 흑산도에서 지내며 얼마나 무료했을까 생각됩니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학자로서 그 지역 해상생물에 대해 분석한 결과물이라 추측해 봅니다.

정약종은 형님인 정약전의 권유로 천주교에 입교해 신자로서 1801년에 이승훈과 함께 순교했습니다.

다산도 1801년에 천주교와 관련이 있었던 점을 들어 사형은 면했지만 경상도 장기와 전라도 강진에서 18년간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관리의 올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에 대해 기록한 <목민심서>와 국정에 관한 일체의 제도와 법규의 개혁에 대한 <경세유표>를 저술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들이 옥중에서 글을 쓴 분들도 있었습니다.

형과 아우로서 신유박해로 흑산도와 강진에서 10년 이상 유배생활을 한 정약전과 정약용은 서로를 볼 기회를 무척 고대했을 것입니다. 교통이 발달한 현재도 강진에서 흑산도를 가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